새벽의 낙관
김장호
밤샘 야근을 끝내고 난곡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낙엽을 털어내며 새벽바람이 일어나고
버스는 봉천고개를 넘어온다
신문 배달 나간 둘째는 옷을 든든히 입었는지……
텅 빈 버스 창가에 부르르 몸을 떨며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
방금 누가 앉았다 내렸을까, 연탄 크기만한
흔적이 살아있다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미소처럼 남아 있다
누구일까, 이 차가운 의자를 데운 이는
크기로 보아 술집 여인의 엉덩인가
놀음판에 개평도 얻지 못한 사내의 엉덩인가
아니다, 새벽 장 가는 아지매의 엉덩일 게다
새벽 공사판 나가는 인부의 엉덩일 게다
세상살이 흔들리며 데웠으리라
삶이란 세상에 따스한 흔적 남기는 것
나 역시 그대에게 줄 미소 하나 만든다
새벽에 찍는 하루의 낙관
―『詩로 여는 세상』(2014. 봄)
―시집 「나는 을乙이다」(한국문연,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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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찍히는 낙관이란 무엇인가?
낙관이 무엇일까. 그것은 내 것이란 표시일까. 언젠가 읽은 소설에서 떠나간 여인을 아쉬워하며 도장이나 찍어둘 걸 하며 못내 그리워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낙관은 그림이 연상되는 시각적인 이미지이고 그림 중에서도 산수화가 먼저 떠오른다. 내 무지의 소산은 미술품 한 쪽에 찍힌 도장으로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라는 확실한 표시인 줄로만 알았다.
이마적에 낙관에 대한 시를 세 편 읽었다. 하나는 우리 시 6월호 복효근의 「명작」, 또 하나는 반경환의 명시1 김선태의 「수묵 산수」, 그리고 詩하늘 2008.가을호에서 읽은 김장호의 「새벽의 낙관」이다. 산수화 하면 언뜻 떠오르는 유사성의 이미지처럼 앞의 두 편은 내용도 소재도 자연에서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김장호의 「새벽의 낙관」은 다르다.
밤샘 영업에 손님들이 부리는 추태에 지친 술집 여인의 엉덩이가 낙관이 되고 세상에서 이기지 못한 못난 한 사내가 가족에게 얼굴들 면목이 없어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놀음판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가시방석 엉덩이가 되고 오늘은 행여 운 좋게 일당을 거머쥘 수 있을까 하루의 일자리에 목메이는 일용직 노동자의 한숨의 엉덩이가 되고 있다. 실패하여 지치고 무거운 삶에서 묻어나는 고단한 낙관이지만 흔들리지 않으려고 미소처럼 내려놓는 낙관이 따스하다.
시를 선호하는 기호는 천차만별. 지친 삶을 웃음으로 낙관을 찍든 요산요수의 장관을 낙관으로 찍든 그 것이 시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고유한 낙관 하나 찍어볼 일이다. -정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