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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선민 회원권의 우선적 혜택>의 줄거리:
선민 회원권 혹은 선민 멤버십카드를 잘 사용하고 계시나요?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회원권 연회비만 내면서 실제로 사용하지 않아 그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민 회원권만 잘 사용하셔서 그 혜택을 누리기만 하면 인생의 판이 달라집니다.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현실이 됩니다. 그 가장 최우선적인 혜택이 바로 속죄입니다. 이 속죄의 막대한 혜택이 너무 사후 구원으로만 축소되고 미루어진채 우리의 삶에서 심하게 평가 절하 되고 있습니다.
선민 회원권의 우선적 혜택
(레16:1~34)
1.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7.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선민 회원권의 우선적 혜택>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선민 회원권의 우선적 혜택’
선민 멤버십카드, 선민이 멤버십카드를 갖고 있으면 가장 우선적으로 받는 혜택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서 아시겠습니다마는 바로 속죄입니다. 여러분의 지갑에도 한 두 개의 멤버십카드가 있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주부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전에는 코스트코(창고형 마트)이었습니다. 좋은 물건들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두세 가정이 합쳐서 물건을 사서 서로 나누고 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지는 않지만 곳곳에 코스트코가 들어와 있는데 이 코스트코를 이용하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됩니다. 회원권이 3-4만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회비를 내고 값싼 물건들을 사와서 냉동고에 재워 넣고 먹기도 합니다. 코스트코 물건이 덩치가 크기 때문에 사실 혼자 가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남이 하니 덩달아 회원권은 샀는데 한 번 가고는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회원권이 죽는 것이지요. 이런 회원권이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제 여름이니 리조트를 이용할 때 회원권이 있어요. 일 년에 30일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면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게 7일 밖에는 되지 않으니 회원권 있는 사람들 옆에 아는 사람들이 붙어서 좀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멤버십카드 중에 백화점 VIP 회원권, VVIP 회원권을 이용하고 싶어서 멤버십카드를 사고 회원이 되는데 아무리 많은 혜택이 준비되어 있어도 이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우리가 선민이라는 멤버십카드를 갖게 되었고 거기에 혜택이 있습니다. 사실 의무라는 것조차 혜택으로 봐도 될 만큼 혜택이 큰 것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혜택이 ‘속죄’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 속죄라는 선민회원권을 갖고 있어도 혜택을 죽은 뒤에 구원받는 것으로만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회원권의 혜택을 사는 동안에 주로 종교 심리의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인생의 장애들 앞에서 신 찾기, 모든 종교인들이 다 하는 식으로 기독교 선민의 멤버십카드의 혜택을 사용하는데 이건 원래 혜택에 들어있지도 않은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고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는 죽은 다음에 내가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혜택이 엄청난 것이지만 그 엄청난 혜택은 죽은 다음에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미 살아있는 동안에 어느 정도로 어마무시한 혜택이 속죄 속에 들어 있는가 하면, 동화 속에 나오는 신데렐라 되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고 왕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내 출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출생을 바꿈으로써 인생의 판을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업 잘해서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애쓰지 말고 취직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취직 못한 상태가 안타까운 상황인 것은 맞지만 우선적으로 이 세상에서 없는 것 잘못된 것을 고치려하고 더 채우려하고 더 찾기 전에 있는 혜택을 먼저 누려 보세요. 취직을 하더라도 선민회원권이 주는 혜택을 누린 다음에 해도 되는 것이고, 결혼을 못해서 안타까운 노총각 노처녀가 있어도 우선 선민의 혜택을 누린 다음에 결혼을 생각하자는 얘깁니다. 사업을 하는 게 급박한 일이지만 우선은 선민의 회원권에 포함된 혜택을 누리고 나서 보면 그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를 생활화할 것이에요. 더군다나 본문은 일 년에 선민들에게 한 번씩 주어지는 대속죄일의 속죄에 관한 얘긴데 십자가 사건으로 날마다 속죄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혜택으로 날마다 왕자로 살 수 있고 날마다 신데렐라로 살 수 있고 날마다 내 인생의 판을 새롭게 쓸 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돈 걱정, 건강걱정, 취직걱정, 결혼걱정, 승진걱정, 성과걱정 등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날마다 주어지는 혜택을 누리라는 것인데 이게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확장되었으므로 성경을 믿으십시오.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기 전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상태를 나병의 상태로 얘기하시고 더 일상적으로 세밀하게 포착하게 하시기 위해서 유출병으로 비유를 하셨고 이제 그것을 종합적으로 대속죄일로 마무리를 짓는데 이게 바로 혜택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삼성의 부회장인 이재용 씨가 이건희 씨의 아들이고 또 이건희 씨는 이병철 씨 아들로 그 집안에 태어났어요. 우리도 그 자리에 앉히면 그 정도는 할지도 몰라요. 인생의 판을 바꾼다는 것이 이것을 뜻하는 겁니다. 속죄가 바로 이렇게 우리의 인생의 판을 바꾸어 놓는데 이병철 씨의 아들로 이건희 씨의 아들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의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하기 전에 우선 주어진 혜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 속죄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뚜렷하고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식의 뚜렷함과 명확함과 강함에 비례해서 혜택은 커집니다. 죄의식이 희미하면 혜택도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죄가 뭡니까? 오늘 본문의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자기 자신의 죄를 속하고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지성소에 세 번 들어갑니다. 일 년 내내 성막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대속죄일에 세 번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지성소에서 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이지요. 지성소 안에 향로를 들고 들어가서 향불을 가득 피운다는 것은 지성소 안에서 나의 죄가 발생했으므로 나의 죄가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속죄 제물들의 피를 일곱 번씩 뿌리게 됩니다. 속죄소는 법궤의 뚜껑으로 법궤 안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상징하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결국 죄란 마음의 지성소 안에 인격체 되시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을 끌어들인 것이에요. 돈을 끌어들이고 자식을 끌어들이고 건강을 끌어들이고 사업을 끌어들였다면 그 다음부터는 판단도 생각도 느낌도 죄가 됩니다. 다른 것을 집어넣고 기뻐하면 기뻐하는 대로 죄가 되고 슬퍼하면 슬퍼하는 대로 죄가 됩니다. 다른 것을 집어넣고 십년 뒤에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결심하면 결심도 죄가 됩니다. 십계명 돌판 중에서 대인관계의 계명들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마음 안에 이미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을 집어넣게 되면 그게 바로 죄고 그 죄로 인해서 판단과 생각과 결심과 느낌과 감정의 표현까지 다 죄가 돼서 모든 이후의 죄들을 범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범죄에는 죗값이 있는데 그 죗값을 속하는 게 속죄라는 것입니다.
결국 선민회원권의 특혜의 첫 번째이고 우선적인 혜택이 바로 속죄인데 속죄의 진행과정이 두 마리 염소를 가지고 진행이 됩니다. 이게 특이합니다. 우리가 속죄를 생활화하면서 속죄의 혜택을 누리려면 죄의식이 깨달아져야 하고 그 다음에 죄를 깨달았으면 그것에 대한 속죄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두 염소로 이루어집니다. 이 의미를 알아야 속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개인적으로 속죄 제사를 드릴 때는 소제를 곁들여서 한 마리를 드리면 되는데 대속죄일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일 년에 한 번(7월 10일) 있었던 것이 날마다 가능해졌는데 왜 두 마리 염소냐는 것입니다. 항아리 속에 제비를 넣어서 제비의 한 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라고 쓰고 하나에는 ‘아사셀을 위하여’라고 써서 제비를 뽑아서 두 염소의 뿔에 걸어요. ‘여호와를 위하여’라고 쓴 숫염소는 번제단 위에서 죽여서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와 앞에 일곱 번씩 뿌리고 번제단에서 속죄제물의 규례를 따라서 속죄 제사를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속죄제사가 이루어졌잖아요. 그런데 왜 또 속죄제사의 의미를 담고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끌고 가서 광야로 보냅니까?
‘진영 밖으로 나가서 버린다.’는 것은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므로 광야에서 죽겠지요. 왜 이렇게 하느냐면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라는 제비뽑은 염소에 대제사장이 안수를 하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은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의 범죄의 죗값이 다 옮겨지는 것입니다. 마치 물 먹는 하마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내 죄를 다 빨아들였어요. 이명래고약이 고름을 빨아들이듯이 내 죗값을 다 빨아들였어요.
그런데 왜 또 다시 ‘아사셀을 위하여’라고 쓴 염소에게 안수할 때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무엇이 그리로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안수를 통해서 이관(transfer)되는 것인데 무엇이 이관되느냐는 것이에요. 우리는 이것도 그냥 속죄를 위한 것이라고 해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속죄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8:3-11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글을 쓰시니 /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사람들이 다 갔습니다. / 마지막에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속죄의 두 과정이 나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시는 말은 간음한 죄가 묵살된다는 게 아니고 간과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여자가 돌에 맞아 죽어야 될 죗값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외상처리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의 죗값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룰 것이므로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온 인류의 죄를 그렇게 외상처리하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자의 죄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죗값으로 돌로 쳐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 여자가 저지른 간음죄에 해당하는 죽음이 없어진다는 게 아닙니다. 그 죽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외상처리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게 속죄의 두 가지 과정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과 헤어져서 또다시 간음의 현장으로 간다면 속죄의 의미가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 과정을 알아야 속죄의 혜택이 주어지고 우리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고 인생의 판을 바꿔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무엇이 결핍되고 무엇이 안 되었을 지라도 이 속죄의 두 가지 과정을 제대로 알고 이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면 인생은 달라지는 것인데 사업이 안 되더라도 인생은 달라지고 결혼을 못했더라도 인생은 달라지고 일류대학 가지 못했어도 인생을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아사셀 염소에게 안수할 때는 도대체 뭐가 이관될까요?
죄가 뭐라고 했습니까?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이 들어와 있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판단부터가 범죄가 돼 버립니다. 돈이 들어온 상태에서 판단하고 보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다 죄가 됩니다. 돈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죄고 범죄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죄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왔다가는 죽임을 당하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 특별한 절차를 밟아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싫어하시는데 아사셀 염소에 안수할 때 그 염소 속으로 이관되는 것은 그동안 마음의 지성소 안에 내가 첫 번째로 사랑해서 들여놓았던 것들입니다. 자식을 마음에 들여놓았어요. 아사셀 염소 속으로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던 자식이 그리로 들어갑니다. 실제 내 바깥에 있는 자식이 염소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의 지성소 안에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집어넣고 있던 것들이 아사셀 염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내가 사업을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았다면 아사셀 염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목사님들 같으면 예배당 건축을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고 첫 번째 관심사가 그것이었다면 아사셀 염소 속으로 그것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첫 번째로 사랑하는 것들을 다 담았어요. 그러면 왜 첫 번째로 사랑합니까? 그것에서 기쁨이 주어질 줄로 믿고 그것으로부터 만족이 주어질 줄을 믿기 때문인데 이게 극악무도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겠다고 하는 것과 그것이 내게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내 마음의 지성소 안에 무엇을 들여놓는다는 것의 역방향 얘기로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의 지성소 안에 첫 번째 사랑의 자리에 들여놓고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다 아사셀 염소에게 이관시켜서 담는 것입니다. 그 안에 담았으면 진영 바깥의 뜨거운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매몰차고 차가운 이별을 하는 것입니다. 진영은 내 삶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내 삶에서 더 이상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은 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속죄의 마무리 단계로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내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광야에서 차가운 이별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자식을 넣었으면 자식을 아사셀 염소에게 이관시켜서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가 이런 의미들이 있는 것이에요. 속죄는 내 죗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내 죗값의 죽음으로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집어넣고 있었던 나의 죄 된 나의 존재가 죽는 것이 번제이고 이 번제 속에 십자가의 의미가 있고 십자가는 내가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놨던 것들의 죽음입니다. 그게 바로 아사셀 염소의 의미가 십자가 속에 담겨있는 것이지요. 내가 사업체를 첫 번째로 사랑했다면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은 내 사업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으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업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내가 사업을 잘해서 기뻐하려고 했는데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주님 따라 올라가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만 기뻐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생활화가 이런 의미들이 담겨있기 때문에 완성이라는 것이고 여기서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십자가 생활화를 못 하게 되겠지요. 십자가 생활화를 하지 못해서 아사셀 염소의 과정이 누락돼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내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갖고 살게 되면 내 마음에 들어 온 다른 것의 삶의 운명은 광야로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한 그것의 운명적인 삶의 자리는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내 마음에 자식을 넣고 있으면 자식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 자식의 삶은 광야가 돼버립니다. 수가성 여인이 여섯 번째 남자와 같이 살고 있었잖아요. 남편에게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삶이 광야로 바뀌어 버립니다. 내가 내 사업을 잘해서 옥토로 내 인생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건 난센스라는 겁니다. 사업도 광야가 될 것이고 내 삶도 광야가 될 것입니다. 특히 이런 일은 선민의 멤버십카드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더 극렬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혜택으로 주시기로 결정한 자들이기 때문에 혜택 아닌 것들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그 몰두하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 광야를 허락해 버리신다는 것이 아사셀 염소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의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내가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았던 것을 안수하여 이관시킴으로 아사셀 염소 속에 사업 담고, 돈 담고, 건강 담고, 내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다 담겨진 채로 뜨거운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차가운 이별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광야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적 약속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 안에 들여놓은 것이 광야가 되면 나의 삶이 광야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광야로 끌고 가서 거기서 버리지 않고 끌고 데리고 들어오면 삶의 현장이 광야가 돼버립니다.
그러면 아사셀 염소에게 다 이관시키고 나면 이웃 사랑은 어떻게 하느냐?
내 마음에 들어 있던 타인을 다 아사셀 염소에게 보내버리고 하나님이 내 마음의 지성소에 들어오시면 진짜 이웃사랑이 됩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질 못하고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하면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사냥이 돼버립니다. 내가 내 자식을 사랑하는 것 같아도 마음을 하나님으로 완전히 채워진 사람이 아니면 자식을 위한 사랑을 할 수 없고 나를 위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건 자식사랑이 아니라 자식사냥이 돼버리는 것이지요. 하나님으로 내가 완전히 채워지기 전에는 모든 타인 관계는 타인사랑이 아니라 타인사냥이 돼버립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마음이 채워진 사람만이 이제 그 이웃의 삶에도 옥토를 초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사신 것이고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이 그렇게 사신 것이고 유무상통을 통해서 이웃사람들이 나로 인해서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명심하세요. 속죄의 두 과정을 통하여 죗값이 치러지고 아사셀 염소에게 마음의 지성소의 모든 것들을 이관시켜서 뜨거운 광야에서 차가운 이별을 하지 않으면 대인관계는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사냥이 돼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가 돼버리고 삶이 피폐해져버리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도 피폐하고 돈이 없어도 피폐하고 건강해도 피폐하고 병이 걸렸어도 피폐합니다. 그러나 반대가 되면 사도 바울처럼 가시를 몸에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고 옥토가 되고, 건강해도 옥토가 되고, 병이 들어도 옥토가 되고, 부자라도 옥토가 되고, 가난해도 옥토가 되는데 이게 바로 속죄의 혜택이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범죄 한 죗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음에 나의 마음의 지성소에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이었던 모든 것들을 이관시키므로 내가 죽는 번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이 죽는 아사셀의 죽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속죄를 반복함으로서 일 년에 대속죄일에 한 번씩만 했던 것을 우리는 일상화할 수 있음으로서 혜택 짱을 날마다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죄가 인생의 판을 바꾸는 일입니다. 죽은 뒤에 구원 얻는 천당 가는 일일뿐만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인생의 판을 바꾸는 일을 날마다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대속죄일이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날마다 일상이 되도록 혜택을 무한대로 확장하였사오니 이 혜택을 누리며 사는 회원권 가진 회원다운 선민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