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설렙니다. 녀석을 생각하면요. 바로 우리집 강아지 ‘산’의 이야기입니다. 산이가 태어난 지는 이제 6개월 하고 보름이 지났고 우리집에 온 지는 5개월쯤이 됐으니 아직은 강아지입니다. 반년쯤 먼저 우리집에 온 고양이 ‘바다’의 친구로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에서 ‘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산’ 또는 ‘산이’라고 편하게 부릅니다. “산아! 이리와.” 또는 “산이 어디 갔지?” 하는 식으로요. 산이가 사는 ‘산이집’ 우리로 가면 얼마나 나를 반기는지, 얼마나 밖으로 나오기를 원하는지, 또 밖으로 나와서는 얼마나 활달하고 경쾌하게 돌아치는지 모릅니다. 내게도 그 힘과 기운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나가봐야겠습니다. 산이가 짖는 걸 보니 누군가가 왔나봅니다.
지난해 시골살이를 시작했지만, 개를 들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래전『발토(Balto)』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의 오지에서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 운송에 투입된 썰매견의 활약을 보여주는 감동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였습니다. 개가 제법 쓸모있는 존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토종의 아키타견(Akita犬)인 ‘하치(Hachi)’라는 이름의 개가 10년의 세월 동안 주인을 기다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치의 이야기는 미국에서까지 영화화되기도 했는데요. 개가 사람의 충직한 반려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골에 산다면 개 한 마리쯤은 길러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를 기를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산이를 만난 것은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필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고추건조기를 구매하려고 그 제품의 판매자와 연락을 취하던 중에 그것이 설치된 현장의 사례를 미리 볼 수 있느냐는 요청을 했더니 바로 얼마 전 그 장비를 구매해서 설치했다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집으로부터는 작은 능선 너머 같은 마을의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그 집에 이르자 개 한 마리가 나와서 짖어댔습니다. 아주 멋지게 생긴 날씬한 몸태의 녀석이었습니다. ‘갑’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미 진돗개였습니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끼들을 보듬는 중이어서 신경이 예민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고추판매기를 살펴본 뒤 나는 대뜸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집주인은 그렇지 않아도 강아지의 적당한 분양 처를 찾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옳다구나! 즉석에서 분양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강아지들이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으니 보름쯤 후에 암컷 한 마리를 우리가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5개월쯤 전이었습니다. 검은 눈이 아주 크고 두 귀가 머리를 덮은 복슬복슬한 녀석이 우리집 새 식구가 됐습니다. 녀석이 혹이나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서지 않을까 해서 며칠간 집안에서 녀석을 보살핀 뒤에 바다가 어렸을 때 지내던 새끼고양이 집을 문 앞에 두고 녀석을 한동안 지내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깥마당 뒤편에 녀석의 집을 만들고 우리를 쳐서 산이가 편히 지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대문으로부터 산방으로 오르는 농원 안길을 아래쪽으로 내다볼 수 있는 곳입니다. 뒤편으로는 산자락이 둘러싸고 있어서 아늑한 곳이기도 합니다. 주로 가두어 기르기는 하지만 산이를 무심코 가까이하다가 물리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개조심’이라는 팻말을 만들어 세우기도 했습니다.
산이는 이곳에 온 지 2개월쯤이 지나자 짖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이가 오거나 자동차가 접근하면 짓고는 합니다. 7개월 남짓한 산이는 몸무게 12kg 정도의 중개로 자랐습니다. 어느새 키가 훌쩍 컸고 머리를 덮었던 귀는 쫑긋 곧게 일어섰습니다. 이제는 아주 우렁차게 짖습니다. 꽤 멀리에서 일어나는 인기척이나 무엇인가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사실 진돗개는 매우 용감하고 사나운 성질의 맹견(猛犬)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준 주인을 잘 따르며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개구쟁이 어린이처럼 짓궂고 나대며 말썽을 부립니다. 무대뽀, 천방지축, 좌충우돌, 덜렁이가 따로 없습니다. 기어오르고, 달려들고, 잡아채고, 물어뜯습니다. 신발을 물어다가 이리저리 내팽개칩니다. 수영장에 넣는 고무 튜브 2개를 물어뜯어 펑크를 내기도 했습니다. 텃밭에 들어가서는 씨앗을 뿌린 밭고랑을 종횡무진 망가뜨립니다. 화단에 들어가 꽃대를 물어뜯는가 하면, 줄기를 잘라버립니다. 쉴 새 없이 냄새를 맡으며 주둥이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합니다. 부산스레 무엇인가 일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역동적인 힘과 발랄한 생기가 느껴집니다.
산이는 진돗개, 진도가 그 고향인 진도견(珍島犬)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토종의 개로서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몸집은 다소 작은 편이지만 몸이 날래고 동작이 기민합니다. 꼬부라진 꼬리가 아닌 쭉 뻗어내린 장대꼬리를 가진 진돗개가 더 용맹하다고 합니다. 우리집 산이도 장대꼬리를 가졌습니다. 진돗개는 우리 안에서는 배변하지 않기에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정도 산책을 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함께 산책에 나서면 산이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릅니다. 온 세상이 자기의 것인 양 쾌활하게 길을 내달리고 풀 섶에 들어가 돌아칩니다. 산짐승을 보면 달려가서 잡아 오기도 하고 쫓아버리기도 한답니다. 진돗개와 같은 용감한 개가 집에 있으면 고라니, 멧돼지 따위가 집 쪽으로는 내려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산이의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나대기를 좋아하는 만큼 고양이처럼 쌀쌀맞거나 까다롭지는 않습니다. 먹는 것도 고양이처럼 크게 가리지 않습니다. 사료는 물론 익혀서 주는 것이라면 사람이 먹는 거의 모든 것들을 잘 먹습니다. 채소도 상추, 배추, 양배추, 콜라비, 브로콜리 따위와 같이 씹어서 삼킬 수 있는 줄기가 있는 것이라면, 또 당근, 토마토 등도 잘 먹습니다. 귀찮게 달려들기에 발로 걷어차기도 하는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넉살 좋게 너분거립니다. 한편 바깥일을 할 때면 우리에서 녀석을 내어놓습니다. 때로는 녀석이 달려들어 귀찮게도 하지만 이내 주변을 맴돌며 혼자서 놀고는 합니다. 산이와는 산책도 함께 하고, 일도 함께하는 셈입니다.
산이를 무심코 가져와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녀석은 이제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하는 막역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녀석도 나를 그렇게 대하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반년쯤 후 산이가 유년기를 벗어나면 아마도 서로가 더욱 친하게 믿고 지내는 좀은 더 점잖은 친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늘 쫓으며 싸우려고 하는 산이가 바다와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12.28.)
첫댓글 하! 고 녀석 똘똘하게 생겼네요. 적적함을 달래주는 반려자로서 든든하시겠습니다.
산이 주인 잘 만났고요 ᆢ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