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新羅(今 慶州) 2
幾処青山幾仏幢
荒池鴈鴨不成雙
春風谷口松花屋
時聴寥々短尾狐
幾処青山이며 몇 仏幢인가고
荒池의 鴈鴨이 .雙을 成치 못하도다.
春風谷口松花屋에
時로 寥々히 短尾 狵을 듯도다.
仏幢은 仏의 旗다. 鵬鴨은 池의 名이니 慶州郡 天主寺 北에 在하였다. 新羅 文武王이 못을 파고 돌을 쌓아 山을 만들고 巫山 十二峯을 형상하였으며 花卉를 심고 珍禽을 養하였으며 其西에 臨海殿 옛터가 있었다.
이제 荒池의 鴈鴨이 雙을 이루지 못함은 못이 荒落하여 없어졌다 하였다.
松花屋은 東京雑記에 新羅 金廈信의 宗女 財買夫人이 죽거늘 青淵上谷에 장사하고 따라서 財買을 谷이라 부르니 항상 春月에 同宗士女가 谷의 남쪽 개천에 놀 때에 百卉가 敷栄하고 松花가 滿谷하였다.
谷口에 菴을 짓고 이름을 松花房이라 하였다. 短尾必은 東京雑記에 慶州의北方이 虚欠하므로 狗의 尾가 短하다 하여 此를 말하되 東京狗라 하다가 이제 谷口 松花屋에 때로 短尾猱의 소리를 듣는다 함은 예전 松花菴은 다 없어지고 다만 개의 소리만 들린다 하였다.
料峭風中過上元
切々怛々踏歌喧
年々糯飯無人祭
一陣寒雅噪別村
料峭의 바람가운데 上元을 지내였으니
忉々怛々의 踏歌가 喧하도다.
年々히 糯飯으로 祭하는 사람이 없으니
한 떼의 寒雅가 別村에서 噪하더라.
料峭는 뜻이 긴함이다. 料峭風은 뜻이 긴한 바람이니 日気 춥단 말이다.
上元은 初 一日로 十五日까지 上元이라 仞々怛々은 노래 이름이니 輿地勝覽에 慶州 金鰲山東에 書出池가 有하니 新羅 紹智王 十年正月 十五日에 王이 天泉寺에 幸하니 마침 烏鼠의 異가 있었다.
王이 騎士로 하여금 烏를 따라 避村에 이르니 両猪가 서로 闘하니 騎士 머뭇거리며 보다가 烏의 간 것을 잃은지라.
마침 老翁이 있어 池中으로 부터 나와서 한 글을 드리니 쓰기를 開見하면 二人이 죽고 開見치 않으면 一人이 죽는다 하였으니 돌아와 王께 드리니 王이 말하기를 二人이 죽기보다 一人이 죽는 것이 낫다하고 開見치 않으니 日官이 아뢰여 말하기를 二人은 庶人이고 一人은 王者입니다.
王이 옳게 여겨 떼여보니 書中에 일렀으되 琴匣을 쏘라 하였으니 王이 宮에 들어가 琴匣을 쏘니 이에 內殿의 焚修僧이 宮主로 더불어 通하여 逆을 謀하였다.
宮主와 僧을 다 베이고 그곳을 부르기를 曰 書出池라 하였다.
王이 임의 琴匣의 禍를 免함에 国人이 쓰되 만일 烏鼠와 竜馬猪의 功이 아니면 王의 몸이 慽하리라 하여 드디어 正月上子上辰 上午上亥日을 択하여 백사를 다 정지하고 그날을 慎日이라 하고,
俚言에 忉恆은 슬프고 근심하여 禁忌함이라 하고 또 正月 十六日로 鳥의 忌日이라 하고 窩飯으로서 祭하더니 至今까지 国俗이 伝하여 왔다.
- 한글
몇 개의 푸른 산들일까? 또한 몇 개의 부처 깃발일까?
황폐한 연못의 기러기 오리들이 둘이서 짝을 이루지 못하였구나.
봄바람 부는 골짜기 입구의 송화암에서
가끔 꼬리가 짧은 원숭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부처 깃발은 부처의 깃발이다. 기러기 못은 연못의 이름인데, 경주군 천주사 북쪽에 있었다. 신라 문무왕이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인공산을 만들었고, 무산 12봉우리를 형상화하고 꽃과 나무를 심고 희귀한 새를 기르기도 했다. 그 서쪽에 임해전 자리가 있었다.
지금 황폐한 연못의 기러기 오리들이 둘이서 짝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연못이 황폐해져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화암은 동경잡기에 신라 김효신의 종녀 재매부인이 죽자 청연상곡에 장사를 지내고, 그 골짜기를 재매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항상 봄철에 동족 여인들이 남쪽 개천에서 놀 때 백화가 펴져 있고 송화가 골짜기에 가득했다.
골짜기 입구에 암자를 지어 송화방이라 이름 지었다. 꼬리가 짧은 원숭이는 경주 북방이 궁핍하여 개 꼬리가 짧다고 해서 동경견이라 불렀는데, 이제 골짜기 입구 송화암에서 가끔 그 짧은 꼬리 원숭이 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예전 송화암은 다 사라지고 개 소리만 남았다는 뜻이다.
추운 바람 가운데 상원날을 지내니
기우제 소리가 요란하구나.
해마다 견과류로 제사 지내는 사람이 없으니
한 떼 기러기 떼가 다른 마을에서 요란하게 울부짖더라.
료곽바람은 뜻이 차갑고 궁핍한 바람이란 뜻이다. 료곽풍은 날씨가 매우 추운 바람이란 말이다.
상원은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를 상원이라고 한다. 너풀너풀은 노래 이름인데, 輿地勝覽에 의하면 경주 금고산 동쪽에 서출지가 있었다.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천사에 행차하게 되었는데 마침 까마귀와 쥐의 이상 징후가 있었다.
왕이 기사를 보내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니 벼리마을에 이르러 두 마리 돼지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기사가 주춤거리며 지켜보다 까마귀를 잃어버렸다.
마침 노인이 연못에서 나와 글 한 통을 주며 말했다.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왕에게 전하니 왕이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게 낫겠다"라며 열어보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일반인이고 한 사람은 왕입니다." 왕이 옳다고 여겨 열어보니 "거문고통을 쏘라"고 적혀 있었다. 왕이 궁중으로 돌아와 거문고통을 쐈더니 내전의 승려와 궁주가 모반을 꾀하고 있었다.
궁주와 승려를 모두 처형하고 그 곳을 서출지라 불렀다고 한다.
왕이 거문고통 사건으로 화를 면했기에 국인들이 말하기를 "까마귀, 쥐, 그리고 돼지 덕분이 아니었다면 왕의 몸이 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결국 정월 상자삭진일을 택일하여 백성들의 모든 노동을 중지시키고 그날을 신일이라 했다.
속설에 너풀너풀은 슬퍼하며 근심한다는 뜻이고, 정월 16일은 새의 기일이라 하여 밥을 단지에 담아 제사 지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