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숙종의 치적 일반(一斑) -1651
숙종의 일대의 치적은 당론에 중독되어 별로 이렇다 할 것 없으나 만년에 와서 장희빈의 일이 잘못된 줄 깨닫고 장희빈의 위호를 거두고 인현(仁賢) 왕후 민씨를 회복할 새 인현 후는 여양(驪陽) 부원군(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따님이다. 폐함을 당하여 친가에 가계시었다. 여러 해 동안 고목(膏沐)을 폐하시고 나와 같은 죄인이 어찌 지존을 짝하리요 하시고 조금도 원망이 없었다.
숙종이 매양 내관을 보내어 탐지한 결과 민후의 동정을 들으시고 차차 뉘우치는 마음이 생겼다. 그뿐 아니라 왕이 소설을 조화하심으로 서인 중 일인이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등 소설을 드렸더니 구운몽은 여색에 미혹을 경계한 것이요 사씨남정기는 첩을 두고 살던 사람이 큰 화를 만난 것을 기록한 것이라. 왕이 이것을 보시고 장희빈의 해독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희빈을 폐하고 민후를 회복하였다.
또 비망기(備忘記)를 내리사 당화를 경계하시고 장릉(章陵)에 뵈이시고 돌아오는 길로 노량진(露梁津)을 건너 오시다가 성삼문(成三問) 등 육신묘가 그 곳에 있는 것을 보시고 곧 제관을 보내어 제사하고 육신의 관작을 회복하시고 또 근신을 명하사 노산군(魯山君) 묘소에 치제하다.
그 후에 신규(申奎)의 상소로 인하여 노산을 위호를 회복하여 단종(端宗)이라 추존하고 묘소를 장릉으로 하여 능관을 두고 향화를 받들게 하다. 신민(臣民) 복제(服制)를 정할 새 신하가 임금에게 대함이 아들이 부모에게 대함같이 흰옷으로 삼년상을 입도록 정하였다. 모든 사화에 무죄치명한 자의 관작을 회복하였고 또 임진란에 남원에서 전사한 명장 이신방(李新芳) 모영선(毛永先) 장표(蔣表) 등 삼인에게 제사하다.
왕이 야순(夜巡)하시다 어느 후궁을 지내실 때 그 후궁 어느 여인이 음식을 진설하여 놓고 무슨 축원하는 것을 보셨다. 왕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무슨 이유로 축원하느냐 물으시니 그 여인의 대답이 소녀는 인현황후의 시비로서 오늘이 인현마마의 생일이시라. 그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축원한다는 것이다. 왕이 그 여인을 후궁으로 드려 그 여자에게서 왕자가 났으니 곧 영종이다. 여자가 태중에 있을 때 장희빈의 손에 죽은 것을 겨우 살았으니 그는 곧 최씨이고 이가 육상궁(毓祥宮)이오 영조의 모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