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 이국종의 ‘골든아워’를 읽고 >
2019.1.
더불어 차 상 희
우연히 ‘대화의 희열’이라는 TV프로를 보게 되었다. 시대를 움직이는 '한 사람'의 명사와 사석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의 토크쇼에서 그날의 한사람이 바로 이국종교수였다. 이국종 교수는 여러해 전 뉴스를 통해서 한국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석해균 선장과 북한 귀순 병사를 치료하고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 브리핑하는 장면을 언뜻 본적은 있었다. 나는 그가 하고 있는 중증외상외과 의사로써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중증외상센터에 대해서 무지했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진행된 그 프로를 통해 일반인들이 누리는 일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비상시에 대비해서 늘 긴장하고 호출에 귀를 열고 있어야하는 그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달에 읽게 된 책 ‘골든아워’를 통해서 중증외상외과 의사로써의 그의 삶을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보듯이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책을 한 페이지씩 넘겨가다 ‘정경원에게’ 라고 쓰여 있는 한 페이지에 시선이 머물렀다. 누구의 이름일까? 아마도 이국종 교수에게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사람의 이름일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정경원’ 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되었고 그 이름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골든타임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이 책의 제목인 ‘골든아워’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에 골든타임과 골든아워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hwp
골든아워 [ golden hour ]
심장마비나 호흡 정지, 대량 출혈 등의 응급 상황에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을 말한다.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금 쪽같이 귀중한 시간'이라는 뜻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여 심장마비나 호흡 정지, 대량 출혈 등의 요인으로 사람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신속한 치료를 행하면 목숨을 구조할 가능성이 높은 시간을 말한다. 흔히 '골 타임(golden time)'이라는 용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골든타임은 프라임 타임(Prime time)의 일본식 표현으로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미국의 외과 의사이자 응급의학의 개척자인 애덤스 카울리(R. Adams Cowley)가 "삶과 죽음 사이에 골든아워가 있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골든아워에 대한 개념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기록된 프랑스의 의료 관련 자료에 이미 나타나 있다. 당시 1시간 이내에 치료를 받은 중환자의 사망률은 10%였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망률이 증가하여 8시간 뒤에는 75%에 이르렀다고 한다. 카울리는 이러한 개념을 확장하여 중증 외상 환자들에 대한 근본적 처치(definitive care)를 강조하였으며, 부상을 입은 후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는 경우에 생존율이 높아진다고 보았다.
골든아워는 일률적으로 1시간이 아니라, 응급 질환에 따라 차이가 있다. 심장마비인 경우에는 4~6분 이내, 대량 출혈과 같은 중증 외상은 1시간 이내, 뇌졸중인 경우에는 3시간 이내에 적절한 응급 처치를 하여야 생존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본다. 예컨대, 심장마비 발생 직후 응급 처치를 행하여 4분 이내에 혈액순환이 회복되면 중추신경의 기능이 대부분 회복됨은 물론 영구적 장애가 남을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골든아워의 시간은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대략적인 기준일 따름이며, 의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진단·치료 방법의 변화에 맞춰 변할 수 있다. - 두산백과 -
중증외상환자들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그렇기에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뒤를 봐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 중증외상센터로 오게 되는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해서 병원에서는 반기지 않고 중증환자들을 되도록이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게 하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중증환자들을 받음으로써 투입되는 의료진의 수와 약품의 수가 늘어나게 되고 보조해주는 공단의 보조금은 턱없이 모자라게 된다. 그럼으로써 병원은 적자를 보게 되고 중증외상 환자의 수가 늘면 늘수록 더 많은 적자를 보게 되는 구조라고 한다. 그나마 이국종교수로 인해서 중증외상센터를 전국적으로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중증환자를 위해 제대로 보조금이 쓰여 지지 않고 병원의 운영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센터로 실려 오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살고 있다. ‘절규하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십시오’ 라는 인쇄물을 얻어 그의 방 창문에 붙여두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이국종 교수. 그가 어렵게 자라온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중중외상외과 의사로써의 삶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막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같다고 생각하는 그를 보면서 세상을 향한 따뜻한 그의 시선에 마음이 쏠렸다.
어렵게 외국 연수를 통해 배워온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여 국제 표준에 맞도록 정착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런 그를 병원에서도 보험공단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를 별종취급하며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인 골든아워의 시간 안에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눈물겨웠다.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조차 없이 밀려드는 중증외상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의사로써 강한 사명감이 없다면 도저히 해 나갈 수 없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국에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제대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부딪치고 끊임없이 깨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힘겹게 느껴졌다. 그도 힘들 때면 다 그만두고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바래보지만 그의 스승이셨던 임대진 교수님께서는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버티는 것이 나은 법이며, 나 스스로 판을 정리하려는 노력조차 아까우니 힘을 아끼라” 고 조언해주시고 그는 또 그렇게 중증외상센터를 지키는 쪽을 택한다.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이룩한 역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버티며 이루어 온 기적과 같은 과정이었고 누군가가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시스템을 이루어가는 일은 더 힘든 일이다. 그래서 황무지에서 숲을 이루어야 하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과정인 것이다.
이국종 교수가 걸어가는 길이 바로 이러한 길이고 그는 무수한 사람들의 말들 속에서도 타인에 의해 그의 일이 잘리는 순간까지는 환자들에게 최고의 수술 적 치료를 제공한다는 스스로에게 내건 직업적 원칙을 되새기며 지금도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런 그의 곁에는 중증외상센터에서 같은 팀으로 그의 곁에서 힘겨운 일들을 함께 하는 정경원이라는 동료의사가 있어서 든든하게 느껴졌다. 힘든 길을 함께하는 정경원에게 늘 미안해하면서도 그의 도움이 너무나 절실하기에 그와 함께 이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믿고 함께 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한국에 새로운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선두에 서서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이국종 교수와 그런 그의 뒤를 따라서 그 길을 함께 걸어 가는 정경원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으로 여겨졌다. 중증외상 센타에서 같이 팀을 이루고 있는 의료진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다른 과 의사들이지만 그의 수술을 함께 도와주는 이들과 응급 구조사들, 의료기사들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고마웠다. 아마도 이국종 교수가 가는 그 길을 응원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도 힘겹지만 버티는 삶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세대 중 누군가가 다시 이 꿈을 꾼다면 그때를 위해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는 이 책을 내는 일을 수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에게 정의라는 것은 그저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이고, 그런 그가 계속해서 하는 일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이지만 그는 허황된 희망을 품지 않은 채 끊임없이 그의 일을 해나가면서 막장 같은 현실 앞에서도 그의 뒤를 이어갈 정경원과 같은 외과의사가 다시 그 길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중증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매진해나가고 있다.
이국종 교수의 방에 붙어있던 쇼생크탈출 영화 포스터가 기억에 크게 남는다. 왜 이 포스터를 붙여놓았는지 묻는 말에 그는 이 일을 끝내게 되면 언젠가는 이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쇼생크 탈출’ 영화의 주인공 앤디는 그 누구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던 감옥에서 탈출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19년 동안 끊임없이 탈출을 위해 땅굴을 파낸 끝에 결국은 자유인으로써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주인공 앤디는 결말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자유인이었고 그는 ‘희망은 좋은 것이고, 소중한 것이며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끝까지 가지고 최선을 다한 끝에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국종 교수의 방에 붙여 둔 쇼생크 탈출의 포스터처럼 이국종 교수도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깜깜한 현실 속에서도 한줄기 빛처럼 희망을 가지고 막장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기를 바라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주인공 앤디의 삶과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바랐다
-김훈-
골든아워를 읽고 나니 이국종교수가 왜 김훈 선생의 글을 좋아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국종 교수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길에 부디 희망의 싹이 돋아나서 언제가 그가 바라는대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