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사자의 서>보관된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티 곰파
텅 빔 속에서 읽었던 책
어제 밤부터 설사가 심하게 났다. 무엇을 잘 못 먹었는지 모르지만 멈추지 않는 설사를 주제할 수가 없어 밤새 화장실을 들락 달락 했다. 아직 갈 길은 먼데 이렇게 설사가 심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뱃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비워내야 했다. 원래 소식을 하는 체질인데 다 비워내고 나니 뱃가죽이 등에 붙는 느낌이 들 정도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마치 앙상한 뼈만 남은 부처님의 고행 상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밤새 텅 비워내고 나니, 오히려 머리는 맑다. 모든 걸 비워버려서일까? 눈은 말똥말똥하고 잠이 오질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바에야 책이나 읽자. 나는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파드마삼바바 평전’을 읽어 내려갔다. 이번 여행길에 두 권의 책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한권은 오래전에 읽었던 ‘티벳 사자의 서’이고, 다른 한권은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다룬 ‘파드마삼바바’이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부탄이다. 그러나 내가 굳이 부탄으로 직행하지 않고 다르질링과 시킴을 거쳐 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티벳 사자의 서’란 경전이 이곳 다르질링에서 발견되었고, 시킴에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을 할 때부터 비행기에서 읽기 시작했던 파드마삼바바 평전을 나는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으면서 거의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티벳 사자의 서’가 보관된 ‘부띠아 버스티 곰파를 가다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을 보관하고 이있는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티 곰파
다리에 힘이 없고 일어서면 어질어질하지만 이상하게 머리는 맑다. 내일은 시킴의 갱톡으로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갱톡으로 떠나기 전에 다르질링에서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티벳 사자의 서’가 발견된 ‘부띠아 버스티 곰파Bhutia Busty Gompa’다.
이 곰파는 초우라스타 광장에서 CR Das Road를 따라 약 1km쯤 내려가다가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이미 이 사원의 위치를 다르질링에 도착한 날 호텔 지배인에게 물어서 파악을 해 놓았다.
▲비온 뒤의 다르질링 아침 풍경
나는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침도 거른 채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부띠아 버스티 사원으로 길을 찾아 나섰다. 청정남님과 바다님이 함께 동행을 해주었다. 내가 몸이 시원치않기도 해서이지만 두 분도 <티벳 사자의 서>를 보관하고 있는 사원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여 걷기가 힘든 아내는 호텔에 남아있겠다고 했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다르질링의 아침거리는 쾌적했다.
힘이 너무 없 없어서일까? 몸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휘청거리며 골목길을 내려갔다. 사람이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면 초인적이 힘이 나오는 법이다. 밤새 설사를 하고 속을 텅 비워낸 나는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다르질링의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부띠아 버스티 곰파에 도착했다. 이 사원에서 <티벳 사자의 서>를 번역 편집한 에반스 웬츠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는 1919년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을 빨강모자파(홍모파) 카규종의 젊은 라마승으로부터 전해 받았다.
초목이 우거진 언덕, 입구의 일주문 지붕에는 두 마리의 사슴이 팔정도를 돌리고 있는 금색 찬란한 모습이 보였다. 사원에 도착하니 없는 힘이 나는 것 같다. 원래 이 사원은 시킴왕국이 다르질링을 통치할 때 옵저버토리 힐에 위치해 있었는데, 19세기 시킴의 왕이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당시 다르질링은 시킴의 영토였다.
▲부띠아 버스타 곰파 입구
합장을 하고 입구를 지나니 작지만 근사한 사원이 나타났다. 칸첸중가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티베트 풍으로 지은 사원이다. 저 사원 안에 바로 화제의 ‘티벳 자자의 서’ 복사본이 보관되어 있다. 사원은 한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책을 보관해 놓은 대웅전 입구의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힘들여 왔는데 어쩌지요?”
“누군가를 찾아보아야지. 분명히 이 사원을 관리하는 스님이 계실 테니까…”
이대로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선 마니차를 돌이며 사원을 한 바퀴 돌며 아름다운 탱화가 그려진 벽을 구경했다. 대웅전 옆에는 요사로 보이는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나는 무턱대고 그 요사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스님을 만나지 않을까 해서다. 이 사원은 아직도 시킴에서 파견된 라마승이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사원의 벽괴 마니차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나는 문득 성경의 이 구절이 생각났다. 요사로 들어간 나는 인기척을 내며 방문을 두들겼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 정말로 방문이 열렸다. 젊은 스님 한 분이 홀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는 그 스님을 본 순간, 100여 년 전 에반스 웬츠 교수가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을 전달해 주었던 그 때의 젊은 라마승을 연상하며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수그리며 그 젊은 스님에게 합장 배례를 했다.
▲열쇠로 굳게 잠겨진 사원의 문
▲부띠아 버스티 곰파의 아름다운 벽
“무슨 일이지요?”
“네, 스님 식사하시는 데 미안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이 사원에 보관된 티벳 사자의 서를 친견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 내가 식사를 마칠 때가지 잠시만 밖에서 기다리시오.”
동자승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라마승은 잠시 침묵에 잠기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스님의 얼굴에 자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식사를 마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스님께 합장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찰라님, 안에 누가 있어요?”
“네, 스님이 아침 식사 중인데 식사를 마치고 곧 나오신다고 하시네.”
“정말요?”
“우린 운이 좋아요!”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에 대하여
식사를 마친 스님이 슬리퍼를 끌고 셔츠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는 모두 스님께 다시 합장을 했다. 스님은 자신을 ‘소남’이라고 소개를 했다. 원래 사원 문을 여는 시간이 아닌데 우리들을 위해서 특별히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며 열쇠를 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스님은 멀리서 온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사원 안은 아담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스님은 ‘티벳 사자의 서’가 보관된 서가로 우리를 안내했다. 책은 황금보자기로 싸 놓아 서가에 얹어져 있었다. 스님은 책을 펴 보일 수는 없다고 했다. 경전에 삼배를 하고 나는 한동안 경전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바르도 퇴돌> 필사본
스님은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경전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에반스 웬츠 교수에 의하면 이 필사본은 당시 라마승의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온 것이라고 한다. 필사본 각 지면은 24.1㎝,세로 8.4㎝의 크기다.
경전은 디아 또는 월계수라고 알려진 나무껍질로 만든 종이에 티벳어의 씌어진 14장의 그림(삽화)과 함께 전부 137매로 이루어져 있다. 발견당시 150년 내지 200년 전부터 전해 온 것으로 추정된 이 필사본은 종교의식용으로 무척 많이 사용되어 매우 낡은 상태였다. 지금은 사본의 각 지면들을 손질해, 티벳 종이로 만든 보호막 안에 끼워 넣어 보관하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는 초기의 홍모파 시절에 탄생한 경전이며, 티벳 탄트라 불교를 소개한 대스승 파드마삼바바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다. 이 경전은 파드마삼바바 사후 줄 곳 숨겨져 있다가 세상에 알려질 때가 되었을 때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다.
연꽃 위에서 태어난, 위대한 스승 마삼바바
▲파드마삼바바를 그린 불화
파드마삼바바, 나는 그에게 절한다. 티벳인들에게는 파드마삼바바라는 이름 대신에 ‘구루 린포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소중한 스승’이라는 뜻이다. 그는 원래 인도의 승려였는데,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티벳의 티송데친 왕의 초청을 받아 히말라야로 왔다.
그는 유명한 탄트라(밀교)의 대가였으며, 신비과학에 정통한 자로 인도 최고의 대학인 나란자 불교대학의 교수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파드마삼바바(연꽃 위에서 태어난 자)’라고 불렀다.
이 위대한 스승은 국왕의 초청을 놀랍게 여기고 3년간의 긴 여행 끝에 747년 티벳의 삼예 지방에 도착했다. 일설에 의하면 국왕 티송데친은 그 지방의 악귀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를 특별히 초청했다고 한다.
국왕이 그곳에 사원을 세우려고 하는데, 사원의 벽을 세우면 곧장 지진이 일어나 무너지는 바람에 불교를 반대하는 악귀들의 소행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스승이 악귀들을 몰아내자, 놀랍게도 그 지방의 지진이 모두 그쳤다. 그 후 그는 사원이 완성될 때까지 직접 감독하고, 그곳에 티벳 불교의 라마승들을 위한 최초의 공동체(승단)를 749년에 세웠다.
사원을 완성 한 뒤 그는 티벳에 머물며 히말라야 설산에서 인도에서 가져 온 신비의 경전을 티벳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의 비밀과 인간을 저 너머 세계로 안내하는 초월의 언어들이 그의 아름다운 손끝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 경전은 모두 100권이 넘었고, 각 권의 분량은 수백 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파드마삼바바는 그 비밀의 책들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아직 그 경전을 공개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경전의 내용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신비서들을 티벳 전역의 히말라야 동굴 속에 한 권씩 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몇 명의 제자들에게 적당한 시대에 환생하는 요가의 특별한 능력을 심어 주었다. 그것은 제자들이 적당한 시기에 다시 육체를 갖고 세상에 환생하는 능력이었다.
수백 년이 지난 후에 한 명씩 다시 세상으로 환생한 제자들은 세상이 경전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마다 그 비밀의 경전들을 동굴 속에서 한권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테르퇸(티벳어로 보물을 찾아내는 자)’이라고 불렀다. 현재까지 이 테르퇸들이 찾아낸 파드마삼바바의 경전은 65권에 이른다. 나머지 경전은 아직도 세상의 때를 기다리며 동굴 속에 묻혀 있다.
파드마삼바바의 화신이 찾아낸 <티벳 사자의 서>
그 경전들 중에서 ‘티벳 사자의 서’는 릭진 카르마 링파Rigs-hdzin Kar-ma Gling-pa가 티벳 북부 한 동굴에서 찾아낸 비밀의 책이다. 그는 세르단 강의 기슭에 있는 감포다르 산의 동굴에서 발견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세르단은 ‘황금을 지닌’이란 뜻이다. ‘카르마 링파’는 카르마 지방을 의미하고, ‘릭진’은 지식 소유자를 의미한다. 이 경전을 발견한 릭진은 환생을 한 퇴르퇸의 한 사람으로 보디사트바들의 여덟 화신 중 북쪽에 있는 카르마 링파이다.
릭진이 이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이었다. ‘바르도Bardo’는 '둘do 사이bar'라는 뜻으로, 그것은 낮과 밤사이, 곧 황혼녘의 중간 상태를 말한다. 즉 이승과 저승 사이의 틈새다.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사후의 중간 상태를 ‘바르도’라고 부른다. 그 기간은 49일로 알려져 있다.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thos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grol’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고 번역한다.
릭진이 이 책의 두루마리를 동굴 속에서 꺼낸 뒤에 그것은 필사본과 목판본으로 티벳과 히말라야 인접국가에서만 전해져 내려왔다. 그 필사본 중의 한권을 영국의 구도자 에반스 웬트가 다르질링의 한 사원인 부띠아 버스티 곰파에서 발견했다.
웬츠는 옥스퍼드 대학의 종교학 교수였다. 그는 이 경전을 발견한 후 시킴으로 넘어가 티벳 승려 라마 카지 다와삼둡의 제자로 입문했다. 그리고 1919년 시킴의 갱톡에서 ‘바르도 퇴돌’의 번역과 편집을 쳤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의 제목을 <티벳 사자의 서 The Tibetan Book of Dead>라는 이름을 붙였다.
▲<티벳 사자의 서>의 영역자 라마 카지 다와 삼둡(왼쪽)과
영문판의 편집자 에바스 웬츠 교수. 1919년 시킴의 갱톡에서
그의 스승 라마 카지 다와삼둡은 영어와 티벳어,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학승이었다. 다와 삼둡이 번역하여 구술한 내용을 웬츠는 주석과 해설을 받아 책을 편집했다. 그리고 그 초판본이 <티벳 사자의 서>란 제목으로 1927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인쇄되었다.
이 책은 발간되자 말자 서구세계에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당시 대표적인 심리학자 칼 융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융은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한 심리학자의 해설을 <우나 살루스-대자유에 이르는 길>이란 제목으로 쓰기까지 했다.
칼 융이 심리학 해설을 쓴 위대한 경전
“<바르도 퇴돌>을 번역한 라마 카지 다와 삼둡과 에반스 웬츠에게 나 자신이 큰 빛을 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빚을 더는 길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경전에 담긴 거대한 사상과 주제들을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해설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열린 눈으로 읽고 편견 없이 자신들의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은 큰 공부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칼 융
당시 유럽이 대표적인 심리학자 칼 융은 이 경전을 읽고 크게 감명 받아 심리학자로서의 해설을 달며 이같이 고백했다. 그는 <티벳 사자의 서>는 가장 높은 심리학이라고 극찬을 했다.
<티벳 사자의 서>는 심리학적 진리로부터 시작한다. 이 경전은 바르도(죽음과 환생 사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로 사자를 인도하는 안내서이며 죽는 자를 위한 가르침이다. 이 책에는 사후에서 49일 동안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왜 49일인가? 49라는 숫자는 7의 제곱수이다. 북방불교와 힌두교 신비과학에 따르면 윤회계(현상계) 안에는 일곱 세계 또는 7등급의 마야(환영)가 있는데, 그것은 일곱 개의 행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행성에는 진화의 일곱 단계가 있기 때문에 모두 합해 49개(7×7)의 정거장이 존재한다.
여기서 윤회계란 산스크리트어의 삼사라를 번역한 것으로 우주의 현상계를 뜻한다. 그 반대어는 니르바나(열반)이다. 니르바나는 현상계를 초월한 곳에 있다. 마야는 환상과 환영을 뜻한다. 마야는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데, 힌두교의 고차원적인 의미에서는 최고의 신 브라흐마의 여성 원리(샥티)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태아의 상태로 있는 열 달 동안,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아메바에서부터 영장류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를 거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죽음의 사후세계로 들어가면 이 세상으로 다시 환생하기 전에 심령 적으로 그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다시 말해 태아 상태일 때는 육체적으로, 사후세계에서는 영적으로, 존재의 49정거장에 대하는 진화와 퇴화의 과정으로 거치는 것이다.
또한 <티베트 사자의 서>의 49일은 일곱 개의 신비의 모음들이 갖고 있다고 하는 49가지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일곱 개의 신성한 모음들은 신비의 불을 상징하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49개의 불 또는 49가지의 형태를 상징한다.
7이라는 숫자는 오랫동안 아리안 족과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신성한 숫자로 여겨져 왔다. 요한계시록에서도 7일은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연계에서 7이라는 숫자는 생명의 일정한 주기와 현상을 지배한다. 화학원소의 주기율이나 소리와 색의 물리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저눕터 아기가 태어나면 7일 마다 아기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비는 치성을 드리고,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제사를 지내는 49제를 지내왔다.
▲부띠아 버스타 곰파로 가는 길에 핀 꽃
<티베트 사자의 서>는 이처럼 49하는 수자, 7×7에 과학적인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경전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치카이 바르도이다. 여기서는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제2부는 초에니 바르도로 사후에 곧바로 일어나는 꿈의 상태와 이른바 카르마의 환영들을 다루고 있다. 제3부 시드파 바르도는 환생을 갈구하는 사자의 본능과 환생 직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려 보인다.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의 실제과정에서 일어나는 동안에 깊은 통찰력과 깨달음으로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환생으로 인도하는 환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깨달음의 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조잡해지며, 환영들은 더욱 더 공포스러운 것으로 변한다. 이러한 추락은 의식체가 점점 육제척인 환생에 가까워짐에 따라 영원한 자유의 진리로부터는 멀어짐을 말해준다.
▲108개의 바퀴로 둘러싸인 부티아 버스티 곰파를 짓는데 시주자를 표시한 액자
<티벳 사자의 서>의 목적은 죽은 자에게 그가 목격하는 환영의 성격을 이해시키고, 잇달아 그를 현혹하는 망상들로부터 벗어나 그의 주의력을 영원한 자유의 길에 붙들어 두는 데 있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라마승들이 이 <바르도 퇴돌>을 사자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준다. 그 첫 장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들으라.
이제 그대는 순수한 존재의 근원에서 나오는 투명한 빛을 체험하고 있다.
그것을 깨달으라.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그대의 현재의 마음이 곧 존재의 근원이며 완전한 선이다.
그것은 본래 텅 빈 것이고, 모습도 없고, 색깔도 없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곧 참된 의식이며 완전한 선을 지닌 붓다임을 깨달으라.
그것은 텅 빈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이 아니라 아무런 걸림이 없고,
스스로 빛나며,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텅 빔이다.”
텅 빔을 깨닫는 것이 완전한 깨달음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텅 빔은 모든 생각과 모드 생명을 초월한 경지다. 허지만 그것은 낱낱의 사물들로 모습을 나타낼 만큼 생명력으로 충만 한 것이다. 그 텅 빈 충만은 인간의 영혼 속에는 깃들어 있다. 이처럼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은 사람에게 최고의 궁극적인 진리를 들려주고 있다.
▲부띠아 버스타 곰파 소남스님(중앙)과 함께. 청정남(좌), 필자(우측)
▲부띠아 버스타 곰파 소남스님(중앙)과 함께. 바다님(좌), 필자(우측)
▲▲부띠아 버스타 곰파에서. 청정남(좌), 중앙(바다), 필자(우측)
소남 스님은 우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것을 기꺼이 응해주었다. 한 번은 청정남님과 함께, 또 한번은 바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스님의 미소는 동자승처럼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이 사원에서 소남 스님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인연이었고, 하나의 큰 축복이었다. 이번 여행길에 함께한 청정남님과 바다님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위대한 스승의 진리 앞에서 인연을 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원에 휘날리는 룽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티벳 사자의 서>에 나오는 한 소절을 바치며 이들을 끝내고자 한다.
내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극도의 고통을 당할 운명이라도
나로 하여금
배고품과 목마름과 뜨거움과 차가움의 고통을
겪지 않게 하소서.
-<비르도 퇴돌> 기원문 중에서
사원을 나오는데 소남 스님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당의 세워둔 룽다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그것은 대자유를 향해 하늘에 나무끼고 있었다. 텅 빈 속, 그러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찼다.
대자유에 이르는 길-<티벳 사자의 서>과 보관된 다르질링의 부띠아 버스타 곰파를 방문하여 소남 스님을 만나고, <바르도 퇴톨>을 친견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가르침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첫댓글 찰라님!!
저는 요즘 함께하는 동료들의 움직임에 큰 감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눈빛들,그 친구들의 목소리들 도마위에서 움직이는
칼끝에서 나오는 소리들, 자신의 동료들을 대하는 표정들의 움직임들을
느끼면서 같은 시간들과 공간들을 함께하며 서로의 관계를 위해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는 노력들을 반복하면서 마음의 실체를 동료들도
이해하여 가고 있음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이다음 이친구들이 더 멋진
어른이 되였을때에는 제가 키운 요리사들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