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 54km
주행이동장소: 공주보- 합강오토캠프장
소요시간: 5시간 30분
또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삶의 연속에 반복적인 생활의 연속이다.
5일근무제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틀을 무엇을 하고 지낼꼬,,
교회에 목자님 말씀들으시러 가고, 아님 가볍게 야산이나 오르고,
아님 친우들과 어울려 술한잔 거나하게 걸치련만,
우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한다.
사실 내가 자전거 주행중 소요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체력의 부진
도 있을 수 있으나, 책을 다독 하는 것이 아니라 정독한다고나 할까
주위의 환경을 향기롭게 음미하게 한 풍경 한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사진으로 기록하여 둔다.
물론 여행기의 모체가 되는 스토리 구성상 필요한 사진만 기록한다.
또 한가지 의문점은
왜 힘들게 다닌 여행을 단순한 언어로 구사하며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나는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일기장" 이다.
내가 땀흘러 지나간 발자욱을 생생히 기록하여 내가 70세 이상 된후
몸가름이 편치 않을시 위안받을 수 있는 증거물이라고나 할까
아님 내 손자,손녀들이 할아버지의 기록을 더듬으며 삶의 척도에 한가닥
밑바침이 되였으면 할까 하는 취지에서나 할까.
물론 상업성이나 문학적인 요소는 피했다.
나만의 기록이 생존하고 나만의 추억거리가 어울릴시 덜커덩 사진몇장
몇분짜리 동영상 보며 젊음을 기억하기로는 너무 미흡하다.
모든이들이 일기장 쓰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삶의 모체속에 주체를 잃은 몸뚱아리는 주말의 뜻깊은 나날들을 낮잠이나
자며 티브이나 보는 안타까운 감옥아닌 독방에서 칩거하기 바쁘다.
넓은 들판으로 거닐어 보아라
얼굴에 그슬린 내 얼굴을 보며 나는 흡족해 한다.
나는 햇살에 그슬린 팔뚝을 보며 웃고 만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그날까지 마냥 온 들판과 산야를 헤집고 다닐 것이다.
낮의 햇살이 만만치 않다.
한여름의 온도는 아닐지언정 햇살만큼은 피하고 싶은 시간이였다.
그래도 나는 나와의 약속을 위해 금강종주 돌파를 강행한다.
점심도 대충 먹었겠다.
공주보 곰나루교차로에서 출발..
교차로를 건너니 공주 한옥마을 입구가 보인다.
전주의 한옥마을보다는 못할지언정 산뜻한 기와지붕이 가을햇살에
반짝인다.
한옥마을 돌담으로 표시된 안내판을 보고 10도의 경사국도를 오른다.
고개위에 오르니 "공주시 자전거길 안내판."
온 도시가 자전거 일주가 잘 되여 있었다.
종종 아주머니나 젊은이들의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을
공주시를 통과하며 많이 보게 되였다.
고개아래 사거리에 자리잡은 ' 무열왕릉묘"
관람치 못하고 사진한장 찍고 스쳐지나간다.
길은 시내도로와 연계됐으며
공주시내를 관통하는지 다감한 인심이 집집마다 풍겨난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국경을 가진 공주이려니 도시자체가 성곽이 많았고
모든것이 금강을 위주로 요새화 된것 같았다,.
그래도 공주의 도시이름은 왠지 "백설공주'처럼 다감한 느낌이 나는 것은
왜이뇨,,,
공주시내가 보인다.
삼거리에 위치한 산성공원 자세한 명칭은 "공산성"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적이며
산성에 오르시면 금강 넘어 공주시내가 전부 보이는 절대 관람포인트 자리이다
그러하니 그 옛날 백제는 이곳을 절대 군사요충지로 삼은 것이다.
길은 다시 역사가 있을법한 철교를 건넌다
자동차는 일방통행이였고 1/3은 자전거나 보행자 길이였다.
다리 중간쯤에서 바라본 금강.
물줄기가 여김없이 당당하며 굿굿하다.
공주의 금강 공원부지가 너무나 부러워 잔디밭에서
쉬면서 공주시민이 되여본다.
모든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즐거워 보였으며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풀밭에서
뛰어놀고 잇었다.
저벌리 공산성이 금강넘어 버티고 이곳을 주시한다.
공원에서는 KBS 콘서트가 열리는지 준비에 한창이다.
금강종주길은 편한 공원의 자전거길이 있음에도 굳이 버스터미널 제방 자동차길로
안내한다,
이사실은 다시 금강쪽으로 내려갈시 알게되였음.
그리고 나타나는 공주시 끝부분에 위치한 "신공주대교"
모양새에 걸맞는 수많은 금강의 다리중에 하나거니 무척 외로워 보였다.
꽃중에서 봄꽃이 화려하거니 가을꽃은 국화와 더불어 가을을 상징하는
흔하디 흔한 꽃
"코스모스"
"그자체속에 질서와 조화를 지니는 우주 또는 세계'를 칭하거니 다양한 색깔의
합궁은 단순한 색채를 지니는 다른 꽃들다는 대조적인 친근감을 유발한다.
코스모스에 취해 금강의 쉼터에서 한시름 쉬어본다.
길은 금강을 왼쪽에 끼고 어울린다.
지나가는 차량들의 엔진소리는 들리나 토목설계자의 배려로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홀로 가는 길.
스마트폰 음악을 틀어본다.
마치 자동차로 강변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양 상쾌한 기분이 난다.
얼마후 강변길은 "석정리박물관"에 의해
우회하고 만다.
과속 단속하는 교통순경도 없고, 신호등 없는 평탄한 길이 한없이 이어진다.
누구하나 없는 사막의 길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길은 희망에 차있었다.
진실을 모르는 이들이 방황하듯 길은 아무말 없이 편하게 누워 있다.
얼마후 나타난 "세종시"을 알리는 행정구역 안내판..
길은 금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콰이강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철교모양이 튼튼한 우량아 같았다.
"불티교"를 건너 다시 길은 다리 밑으로 연계되여 습지지대로 들어선다.
한없는 습지지대를 지나간다.
오늘따라 메뚜기들이 유난히 자전거길에 많다.
심지어는 엄지손가락 만한 뱀이 자전거길을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를 날뻔하였다.
마치 등산중에 가을뱀이 무서워 아무 바위에 앉지도 못하거니 뱀의 무단횡단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드디어 목적지인 "세종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라스베가스처럼 어느 목적을 위해 생성된 급조의 도시.
자연적인 아닌 정치적인 이슈에 어울려 형성된 도시.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생산성이 전혀 없는 행정의 도시로 전세계 유일무일한
공무원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시
한국가의 도시이름을 이조시대 임금의 호칭으로 만듬에 의아해 본다.
세종대왕이 이곳 출신인가.
세종시의 탄생은 아이러니 하게도 "공주"와 "부여"와 비슷하다
백제의 성왕이 "공주"가 협소하여 수도를 "사비성" 지금으로 말하면 "부여"
로 이전하였듯
어찌 현존의 수도가 서울이거늘 행정의 중요업무를 "세종시"로 이전했을꼬.
더이상 어울리면 큰일날일,,,,,
저멀리 금강교를 지나 세종시 공원으로 입성..
세종시의 터죽대감인 철새가 나를 맞이한다.
저 금강하구둑에서 단체로 오셨나.
아님 세종시에 사는 누굴 만나러 왔다..
아뭏든 반갑구먼,,,
습지지대는 지금도 곳곳에 공사중이였고 미완성의 작품이
여기저기 표현된다.
그중에 만난 "학사대교"
모양새도 금강의 다리중 제일 일등신이요, 그 이용가치 또한 금강종주 중
힘든 나를 놀라게 하였다.
다름아닌 인천대교처럼 다리의 하단부를 전부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든 것이다.
원더풀,,,
내가 거닐어 온 자전거길과 금강..
모든것이 하루밤의 꿈처럼 넘실된다.
언제다시 올런지..
사진으로 기억하기로 한다...
현대화로 지어진 청사들,,
강남의 빌딩 못지 않다.
그리고 살아숨쉬는 도시,,
미완성의 도시에서 20만의 인구를 흡수한 도시
그 도시는 대한민국 도시중 임금님의 도시로 기억될것인지..
그리고 "공주보"나 "백제보"에 못미치는 "세종보"
뭐여,,,
활기찬 금강의 물줄기가 왜소해 졌다
심지어는 섬으로 구분되여 양분된채 흐르고 있다.
금강이 충청도의 자존심이거니 여기서 그 생명다하리오
그러나 지천의 생명수가 한없이 유입되고 있었고 뒤 돌아본 세종시는
금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내일의 대청댐 도착을 위해 조금도 전진한다.
"합강 오토캠프장"까지 가기로 한다.
마지막 여정
금강의 자전거 종주
4대강의 서막을 알리는 나와의 약속이다
대청댐이 이렇게 보고 싶기는 살아생전 처음이다.
무엇이 나를 길바닥에 내몰았을 꼬,,
그 답은 내가 대청댐에 도착하면 알게되겠지
길은 다시 이어진다.
저멀리 아름다운 조형물을 갖춘 공사가 진행중인 "합강공원"으로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도착한 공원
무엇이 조국인지 서서히 알것 같다.
무엇이 인생인지 알것 같다.
말없이 무지하게 가다보면 도착지가 있는 법
우리 모두 그 곳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달려봅시다.
감사합니다.
금강종주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