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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비극이란 작품의 내용과 흐름이 슬픔과 고통을 동반하여, 등장인물의 파멸이나 죽음으로 귀결되는 양식을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희곡들이 그 원류에 해당하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예술사에 영향을 끼친 양식이라고 하겠다. 예컨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같은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일상에서의 비극이라는 표현과는 결을 달리하여 사용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비극’이라는 주제로 일관한 테리 이글턴의 이 책은 ‘실생활의 참사는 알 것 그대로의 고난의 문제이기 때문에 비극적이지 않다’고 단언하면서, ‘그런 고난이 예술에 의해 형태가 잡히고 거리가 두어져 어떤 더 깊은 의미가 풀려 나올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본격적으로 비극 이야기를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먼저 ‘비극은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논의를 이끌고 있는데, 그리스의 고전 비극들이 ‘추상적 형식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실체’라는 전제를 통해서 근대 이후 비극이 불가능한 까닭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거론된 주요 작품들의 내용과 서양문학사에서의 위상을 모르고서 읽는다면, 글들이 다소 난해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비극의 하나로 거론된 <리어왕>에서 드러나듯이 ‘근친상간과 산술’을 비극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로 꼽을 수 있으며, 이어지는 ‘비극적 이행’이라는 항목 역시 다양한 작품들을 거론하면서 그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 ‘유익한 허위’와 ‘위로할 수 없는 자’라는 요인을 거론하면서, 비극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인용된 텍스트의 생소함과 저자 특유의 추상적이고 딱딱한 문체 역시 한몫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와 벤야민을 비롯하여 서양 문화사의 주요 인물들이 대거 소환되고 있기에, 그들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선행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도 내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번역자에 의하면 이 책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출발했던 근대가 빚어 놓은 이 참담한 현실, 이 비극적 상황을 인간이 이해하고 수용하고 넘어서려는 다양한 정신적 노력을 비극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번역자가 설명한 내용조차 쉽게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저 이 책을 끈기있게 완독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나중에 서양문학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후에 다시 읽는다면, 지금보다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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