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후에>
2021년 8월 22일 주일
제목: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주일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올라가 의자에 앉아있을 때,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께 마음을 향한다. 그리고 오늘 메시지가 우리 교우들에게 의미와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빌어본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교우들 앞에서 속으로 드리는 기도와 묵상의 시간은 특별한 시간이다. 그때 나는 이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본다. 그럴 때면 설교안에 미처 담지 못했던 포인트가 드러난다. 마치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이 뚜렷이 보이는 것처럼 ‘이 설교는 바로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번 주일은 ‘부활’에 대한 설교를 했다. 나는 설교안을 작성한 후에 두 차례 그 요약문을 써 보았다. 사실 그 요약문은 주제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그 강조점과 의미를 정리해 보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의 요약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전체 구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그런데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또는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것은 설교를 끌고가는 힘이며 문자에 열정의 불꽃이 불붙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주일에는 바로 그 한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너를 여기에 세운다!’
‘네가 있는 땅은 이전과는 같지는 않을 거야!’
이번 주일 설교에는 부활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죽음의 의미와 사후세계에 대한 여러 생각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상식으로 가지고 있는 사후세계관에 대한 반성,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의미,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 부활을 소망한 제자들의 인생목표와 강조점 등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를 종합하고 나면 바로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나는 깨달았다. 설교 직전 마지막 순간에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경에서 부활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일어날 일이다. 성경에서 심판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노아의 시대에 세상은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수면 아래로 잠겨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가 물이 물러가고 육지가 드러났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였다!
이스라엘도 바빌론과 페르시아를 통해 심판을 받았다. 그때 그 백성들은 먼 나라에 끌려가 고생을 하면서 자기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다시 창조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겠다…’고 하셨다(사 43:19~21, 사 65:17).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파멸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창조를 목적으로 한다. 징계의 목적은 괴로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하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히 12:11).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이다. 그날에 주님의 재림이 있고 성도의 부활이 있으며, 이전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체될 것이다. 성도가 부활한다는 것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이며, 썩지 않을 몸을 입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활의 목적은 새롭게 창조된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것을 성경은 ‘왕 노릇 하리라’고 표현했다(롬 5:17, 딤후 2:12, 계 5:10, 22:5). 부활은 그저 무릉도원 같은 곳에서 신선놀음하는 세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은 천국에 들어가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라’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부활 신앙이 현세의 삶에 주는 것은 고난을 참으면 나중에 편안히 쉴 날이 온다는 것뿐인가? 이런 생각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차원에서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제자들은 매우 특이한 삶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사역하던 시절과 다르지 않게 공동체를 이루고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던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고 있었다. 그것이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부활은 제자들의 생각에 혁명적 전환을 가져왔다. 사실 그들은 처음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예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 제자들이 받은 충격이 하도 커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생선과 떡을 가져오라 하시고 그들과 조반(朝飯)을 드셨다(요 21:10~14).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령이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직접 보여주셨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기록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서 과거를 돌아보면서(retrospective)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들은 전에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대한 예언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부활은 제자들의 눈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을 예수 부활의 사건에 비추어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각성이 제자들에게 일깨워준 것은 모세와 시편과 선지자들의 수많은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미리 말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 결과 제자들은 복음을 기록하고 전하기 시작했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시며(마 16:16), 그의 죽음과 부활은 바로 그분이 다윗의 씨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냈다(롬 1:3).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와 사망의 법을 깨트린 사건이며 그것은 새로운 출애굽과 같은 사건이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했다(롬 6:3~4). 그 결과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이 체결되었고 새 이스라엘이 탄생했다. 베드로는 그 새 이스라엘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렀다(벧전 2:9). 사도 바울은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기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성도들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천명했다(고후 5:17).
신약성서가 들려주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도 죽으면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라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의 신앙은 구약성경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열린 새로운 세상을 물려받을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바로 교회인 자신들이라는 확신이었다. 그 위대한 확신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재판정에서 섰을 때에도 담대할 수 있었고, 세상의 군왕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아니, 그들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의 진을 깨트리는 강력한 권세를 받은 사람들처럼 선한 싸움을 싸웠다.
그들은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심겨진 겨자씨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어부들을 불러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가르치셨고 그 복음을 세상에 함께 전하자고 초대하셨다. 처음에 제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나서 그들은 비로소 담대하게 자신들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에서 왕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왕 노릇은 세상의 권세자들이 하는 왕 노릇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방식이었다(the cruciform life, the cross-shaped life).
예수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초기교회가 보여준 왕 노릇은 당시의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2:44~45
그중에가난한사람이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발앞에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사도행전 4:34~35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하여 후원한 것을 칭찬했다(빌 4:15).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을 폈다(행 12:25).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름 받은 교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난리가 나서 그 나라를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아프간 난민이다. 그 중에 일부를 우리나라에 주둔 중인 미군기지에 수용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응원한다. 아울러 우리 교회도 아프간 난민을 위한 선교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를 돕는 일에 나서야 할 때이다. 그것이 지금 여기에 심겨진 겨자씨들이 할 일이며, 새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의 소임이다.
“주님의백성이모인교회가있는곳은
그 이전과는 다른 곳이 될 것이다!”
<끝>.
설교 요약 1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512
설교 요약 2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513
설교안 전문:
https://cafe.daum.net/Wellspring/W37v/8
참고:
하나님의 경륜으로 풀어본 사도신경 - 전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