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정의를 공감하는 선지자
하박국 1장 1-11절
이 세상은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길 원하시지만, 실질적으로는 강포와 죄악과 패역이 넘쳐납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악한 세력의 공격으로 매우 힘듭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시행되지 못합니다. 선지자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서는 하나님과 선지자 하박국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대답으로 하나의 대화가 이루어지며, 그 대회를 기초로 다음 질문과 대답이 이어집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공의를 실현해 달라고 기도하고(2-4),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제국을 불러오겠다고 대답하십니다.
하박국의 표제(1)
하나님의 정의로운 행동을 촉구하는 우리의 기도는 불의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오, 불의로 고통 받는 이들의 편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시입니다. 당신이 이 부르짖음에 참여할 곳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불의 앞에서 ‘욱’하지 않는다면 선량한 사람이아니라 불량한 사람입니다.
1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1)
하박국은 정의로운 선지자입니다. 주전 7세기 말엽 앗수르가 힘을 잃고 바벨론 제국에 멸망당하던 당시에 활동한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경고’라는 말은 신탁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경고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담은 예언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하박국의 첫 질문(2-4)
살아가다 보면, 불의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을 핍박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촉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에는 첫째는 자신이 불의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며, 불의에 고통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시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불의한 일들을 보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2-4)
선지자 하박국이 하나님께 첫 질문을 던지는 내용입니다. 하박국은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2)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간곡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선지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런 하박국의 핵심적인 단어는 ‘강포’입니다. 이곳에서 ‘강포(סמה)’는 ‘폭력’이나 ‘강탈’을 의미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동을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유다 왕국 가운데 이러한 강포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강포한 모습들을 보시고도 구원하지 않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도만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강포로 인해 억압당하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 선지자 하박국은 어찌하여 자신의 눈으로 죄악과 패역을 보게 하시느냐고 질문합니다. 그가 보게 되는 일들은 ‘겁탈’, ‘강포’, ‘변론’, ‘분쟁’들입니다. ‘겁탈’과 ‘강포’는 힘을 가진 사람이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괴롭히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며, ‘변론’과 ‘분쟁’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이곳에서 ‘변론(ביר)’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법정에 소송하는 것과, 그리고 ‘분쟁(ןודמ)’으로 싸움이나 분란을 의미합니다. ‘강포’로 인해 유다 왕국이 소송과 분란에 휩싸이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유다 왕국이 소송과 분란에 올바르게 시행되고 있겠습니까? 유대 왕국 가운데 율법이 해이해지고 공의가 올바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소송’과 ‘분쟁’에서 기준은 ‘율법’인데, 그 ‘율법’이 더 이상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즉 공의는 굽게 행해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다고 한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의(טפשמ)’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곳에서 ‘정의’는 ‘하나님의 통치가 올바로 이루어진 상태나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유다에서는 이 ‘정의’가 항상 올바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유다에는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공의는 곱게 행해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유다에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를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악인들이 득세하여 의인을 둘러싸고 어렵게 만드는 상황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악인과 의인의 관계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하박국서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정황은 ‘의인과 악인의 정체성과 그들 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올바로 이루어지는 상태라면,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이 잘되고 악인은 벌을 받아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악인들이 득세하여 의인을 둘러싸고 어렵게 만드는 상황인 것입니다. 하박국은 여기서 ‘의인’과 ‘악인’ 그리고 ‘공의의 실현’을 말할 때, 구체적인 민족 혹은 지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박국의 문맥을 생각해 볼 때, 하박국은 분명 2-4절에서 유다 왕국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과 전능한 주권을 행사하시도록 호소하였습니다. 유다 왕국 내에서 의인을 회복하시고 악인을 심판해달라고 기도하던 것입니다.
첫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5-11)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불의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 할 때,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보면서 하나님의 무관심과 무능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침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방법과 시간을 저울질 하고 계십니다.
5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6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7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8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9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10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11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5-11)
하박국의 첫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하박국에게 ‘너희는 열방들을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한 가지 일이고, 그 일을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인데, 사람들이 그 말을 들으면 도저히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납고 성급한 민족 곧 갈대아 민족 즉 바벨론 제국을 불러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갈대아 사람’이란 당시 승승장구하여 앗수르를 꺾고, 고대근동의 패자(牌者)로 부상하고 있던 바벨론 제국을 말합니다.
장차 바벨론은 주전 586년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까지 계속하여 유다를 어렵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을 표현함에 있어서 ‘자기 소유가 아닌 것들을 점령’한다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표현은 ‘당당함과 위엄’이 그들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즉 바벨론 제국은 공의가 스스로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벨론의 공의가 ‘참된 공의’가 아니며 ‘자의적인 공의’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박국이 하나님께 공의를 행하여 달라고 기도한 요청이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바벨론 군대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들이 표범보다 빠르고 이리보다 사납고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어서 먹이를 빨리 덮치는 독수리와 같다고 서술합니다.
9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가 유다와 전쟁에서 행할 일들에게 대해 예언하십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9-11).
10절은 또한 그들이 유다의 왕들, 방백들을 멸시하고, 성들을 점령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11절은 매우 강력한 언어를 사용하는데 바벨론은 자신의 힘을 자신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힘에 취하여 결국 범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자신의 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기는커녕 죄악을 저지르고 마는 자들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여기서 본문은 바벨론이 유다를 칠 가격이 없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런 바벨론을 불러 올려 유다를 심판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하박국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의로움, 악함, 하나님의 의, 믿음의 문제가 하박국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교회와 사회가 심판을 촉발하는 곳이 되지 않도록 속히 돌이키고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패역과 강포 대신 의와 사랑, 긍휼과 자비, 공의아 정직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공감의 영성을 가진 주님의 제자로서 사회의 아픔에 함께하며 탄식의 기도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