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에서 양평으로 진행하다 이포보 부근에서 당남리성을 찾았다
당남리섬은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에 위치한 남한강의 섬이다. 인근에 이포보가 위치해 있으며 섬 위로 이포대교가 지나간다.
수도권의 대표적인 경관농업단지로, 유채꽃, 라벤더, 메밀꽃, 코스모스, 핑크뮬리 등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잠깐 산책이나 하려했더니 강바람이 생각보다 세 겨울 체감온도를 격하게 낮추어 패스하고 인근 파사성으로 향했다
파사성은 양평가는 지방도 길가에 주차를 하고 현수교가 있는 이곳부터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 성은 해발 250m 정도의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석축산성이다.
그래서 근 해발 150여 미터까진 경사있는 임도를 걸어올라야 한다 처가 엊그제 산행으로 무릎이 좋지 않아 오르는데 고생을 하는 것 같다
파사성은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산9 번지와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산43 번지 경계에 있는 해발 230m의 파사산 정상에 위치하며, 6세기 중엽 이후 초축된 테뫼식산성이다.
둘레는 936m이고, 내부 면적은 약 3,966㎡이다. 산정상부와 계곡을 일부 포함하여 부정형에 가까운 형태로 축성되었다. 현재 사적 제251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동문지 쪽으로 오르면 경사가 완만해 그쪽으로 성 정상으로 향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 때 축성되었기 때문에 파사성이라고 하며, 또는 고대 파사국(婆娑國)의 옛터가 있어 파사성으로 불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문헌적으로 뚜렷한 근거는 없다.
파사성의 축조와 관련하여 백제의 초축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성벽의 축성방식과 현문구조, 성돌의 치석방법 등으로 미루어 6세기 중엽 이후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신라에 의해 초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인 임진왜란 때 수축하였다.
파사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조선 초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이미 ‘고산성(故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선조실록(宣祖實錄)』에는 1595년(선조 28) 3월에 유성룡의 발의에 승군총섭(僧軍總攝) 의암(義巖)이 산성을 수축하였다고 기록되었으며, 유성룡(柳成龍)의 『서애집(西厓集)』에도 파사성의 수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이후 파사성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1656) 등 17~19세기의 각종 지리지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정상에 오르면 사방팔방으로 주변이 탁 트여있고 보이는 남한강 물줄기 광경이 가히 예술이다
정상에서 이정표가 있는 데크계단을 내려가 양평방향으로 180여 미터 이동하면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은 입체감이 전혀 없는 선각마애불이지만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비례와 윤곽선의 흐름은 유려한 편이다.
200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높이 5.5m. 양평군 개군면 파사산 정상부에 위치한 파사성 동문자리 인근의 넓은 자연 암벽 한가운데 새긴 높이 5m의 대형 마애여래입상이다.
바위의 암질이 단단해서 깊이 있는 조각을 하기 어려웠던지 얕은 선각으로 윤곽선만 간신히 새겨 마치 바위에 그린 회화 작품처럼 보인다. 양감이 전혀 없지만 마멸된 부분이 적어서 형체는 잘 남아있다.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은 가는 선으로 새긴 선각불상이고, 입체감이나 괴량감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균형 잡힌 신체 비례, 부드러운 인체의 굴곡 묘사와 유려한 조각선은 기존의 고려시대 대형 석불입상이나 마애불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선각이지만 인체에 대한 지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애여래입상 옆엔 마애약수가 있는데 추운 날씨로 인해 흘러내리며 얼어붙어 약수가 정결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파사성으로 되돌아와 서쪽으로 성둘레길을 타고 내려왔다
파사성의 일부는 강기슭에 돌출되게 자리 잡아 남한강 상하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성내 시설물은 문지 2개소, 포루 3개소, 우물지와 수구지, 그리고 곡성지 각 1개소, 추정 건물지 8개소 정도이다. 이 중에서 동문지와 포루 2개소, 곡성지 그리고 몇 개의 건물지가 성벽과 함께 발굴되었다
이렇게 소나무연인이란 주제로 스토리텔링도 되어있어 탐방객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파사성은 주변지역에 험난한 산지가 없으며, 파사산의 정상부에서는 양평과 여주 일대의 넓은 강안 충적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멀리 당남리섬도 한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이곳을 통해 남한강 하류나 상류 방향으로 진입하는 왜적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파사성에서 북쪽으로 약 2㎞ 부근에는 현재 그 터만 전하는 이포(梨浦)나루가 있어 이 지역이 남한강의 수운로에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한강변의 육상교통로는 충주에서 시작하여 여주-양평-서울로 이어지는 남한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이러한 육상과 하천교통로는 중부내륙지역과 서울, 그리고 황해를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인데, 파사성은 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파사성은 지정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이런 파사성의 역사 지정학적 중요도 그리고 한강 조망 등 훌륭한 여건으로 관광객들에게 견학 및 탐방지로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