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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지성소 법궤 8-2 내 안에 오신 속죄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25:22)
오늘 <지성소와 법궤>에 대한 두 번째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받는 말씀이 되고 영적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사람
이 하나님을 섬긴다 할 때, 자기의 온갖 정성을 다해서 섬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께서 계시하신 방법에 따라, 그 뜻대로 섬겨야 하는 것, 여러분이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방법이 아닌 것은, 인간 생각에서 나온 자기의 종교심에 의한 신념일 뿐, 하나님과는 관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가 있고, 섬기는 방법을 알게 하시고, 성경의 전 내용이 되는 곳,
하늘 성소의 모형으로 주신 성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뜻이 되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구약 성전은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성전을 알고 성전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져야 참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전이라 한 것은 참성전이신 예수님 안에 들어가니,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보
좌, 지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셨으니, 예수님 안에 들어간 나도 함께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죽은 뒤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고, 지금 현재 육체 안에 있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참 이거
너무나 엄청난 복인데, 그런데 이 복(믿음)을 가진 자가 없다 해도 참으로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는데 저의 영감으로 '이 복을 아는 자가 그리 없다'하시며 고개를 저으시는 하나님
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에게, 아버지의 지성소에서 아버지를 보는 자가 그리 없다는 표정을 지으
시며, 고개를 저으시는 모습이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구 엉엉 울었습니다. 늙은 할머니
가 그냥 아이처럼 마구 울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해요!'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를 뭐라고 부릅니까?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심판을 받게 된, 이스라엘의 패역한 죄악
상을 보고, 예레미야가 얼마나 울고 울었는지, 눈이 짓무르고, 창자가 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졌다
고 했습니다. 극렬한 슬픔으로 인한 애통의 울음은, 그의 온 장기들이 손상을 입어 피를 토하기까
지 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그 슬픔을 노래한 예레미야의 애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때
부터인지 슬픔을 노래하고 있더라는 얘기예요. '슬프도다, 슬프도다,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아
버지!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제가 울 수밖에 없는 그 영혼들의 상태가 영상처럼 보이니 가슴
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울고 울면서 저절로 탄식의 노래가 되어 나오곤 했던 것입니다. 수
년, 아니, 그 이상을 그래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내가 청승맞게 왜 이러는 거지? 내가 지금
청승 떠는 것 아냐?'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애가가 언뜻 생각났습니다. 예레미야애가를 펼쳐 보았습
니다. '아 예레미야가 민족의 그 비극을 보고 울면서 그 슬픔을 그렇게 노래했구나' 나 또한 청승
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망하게 생긴 영적인 모습들이 들여다보이니, 어찌할
수 없는 탄식이 그같이 영혼의 아픔이 되어, 애통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일평생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목사 사모로 온갖 고생 다 하며 가난한 삶을 살다가, 십여 년 전
59세에 갑자기 암이 걸려 서너 달 통증으로 고통을 받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 비
통해하며 제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시편 116편에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신다 하셨으
니'하는데 성영님이 순간 기도를 막으시며 하신 말씀이 "그의 죽음을 내가 기뻐하지 않노라"고 나
로서는 도무지 생각도 못 했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가 일평생 믿는다 하며 수고했으나 하늘에 들
어가지 못한 영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수십 년 장로의 직분으로 교회 일에 충성하
다, (때로는 전도사로 예배 인도와 설교도 했음, 인간이 보기엔 매우 신실했음) 어느 날 쓰러져서
병원 중환자실로 들어가 3년의 세월을 참담한 모습으로 병원 생활하다 그도 죽음을 맞았습니다. 저
는 똑같이 그 죽음 앞에서 기도하기를 '오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성도가 땅에서의 사명을 마
치고 안식하러 아버지께로 들어갔으니 아버지가 영혼을....,'하는데 또 성영께서 기도를 막으시면
서“그의 죽음은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느니라, 내가 저를 사랑함이 없노라" 하셨습니다.
나의 무지함을 깨워주시기 위해 그들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를 알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
니다. 저는 이들의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물어본 적 없습니다. 또한, 당연히 하늘에 들어
간 줄로 아는 것이지, 물어볼 이유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영님께서는 이 일뿐만이 아니라 알려주실
필요가 있는 것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제게 말씀하신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적인 일에
대한 여러 가르침으로 성경의 영적인 뜻을 더욱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믿는다고 해서 다 믿음이 아
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이렇게 말씀을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소의 복을 아는 자가 그리 없다. 지성소까지 들어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자가,
아버지를 보는 자가 그리 없다'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제가 영으로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고개
를 저으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서만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
인 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땅에서 육체 안에 있을 때, 구원받지 못
하면 죽음 뒤에는 구원 없습니다.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믿을 때 구원받아야 하고, 구
원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구원받은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
는 것도 지옥 갈까 봐서 지옥 가지 않으려고 믿는 것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지옥 갈까 봐 믿는 것은, 지옥 가지 않으려
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그것은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요, 지옥 가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수단
으로 삼는 것이 되어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옥 보내려고 지으신 것 아닙니다.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예수님을 위해서예요.
예수님으로 살게 하려고 지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있는 이유예요. 지어진 이유! 우리를 지으실
때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으로 살게 하려고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이 같은 뜻을 알고, 예수님을 당연히 믿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영님의 도우심
가운데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권리예요.
그러면 지옥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예수님 자신이 천국이시니, 그 천국에 이미 들었으니 육체에서
떠나면 그냥 천국입니다. 이 차이를 여러분이 분명히 아십시오. 사실 성영님께서 이것을 경고하라
고 하셨는데, 지금 여기서 언급합니다. 지옥 가지 않으려고 믿는 예수님은 구원이 없거나 만일 때
가 되었다면 환난으로 다 들어갑니다. 지금 믿는다는 사람들 속에 이것이 다 갈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새김질해 듣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인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는 이적이
일어난 곳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은 거기 계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
는 엄청난 이적이 일어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
지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모든 뜻을 받아가진 나를 또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
역사가 내 안으로 들어와 버린 성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법궤 안에 넣으라 하신 증거판과 만나와
마른 지팡이에 열매 맺은 그 모든 생명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니, 구원과 생명과 영
생의 뜻이 또 내게 다 이루어진 것이 되었고, 지성소까지 들어와 버렸다고 하는 겁니다.
신약성서에서 성전을 말할 때 '히에론' 또는 '나오스'라고 합니다. '히에론'할 때는 성전 전체를
포함한 것을 말하고 '나오스'는 지성소를 말하는 거예요. 휘장이 찢어져 하나로 된 성소와 지성소,
통일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소라고도 하고, 지성소라고도 하는데 이 '나오스, 지성소'는 하나
님의 뜻이 사람 안에 이루어진 그 성전과 관계된 것을 말할 때의 지성소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성
전이니'하는 것은 '너희가 나오스니'라는 말인데 너희가 하나님의 나오스, 즉 지성소인 것과 하나님
의 성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해서, 곧 성전의 뜻이, 믿는 자 안에 들어와 이
루어진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가 성전인 것과"하는 것은 "지성소가 이루어진 것을 알
지 못하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지성소다'라고 하셨을 땐 '하나님의 복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너희 안에 다 와 있다'라는 말입니다.
법궤 속에 넣으신 하나님의 전 뜻이 되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니 죄가 사해지고 구원이 이루어
졌고 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된 이 엄청난 복이 내 안에 다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속죄소 시
은좌가 있는 지성소가 내 안으로 들어 와버렸으니, 이제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는가? 바로 성영님이
오신 내 영이 지성소이므로, 내 안에서 만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삼위의 하나님
을 만나는 곳이 어디라고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고 계세요? 사람
들은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또 기도원으로 쫓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러
나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전을 통하여 지성소 속죄소에서 만나주신다고 하셨고(민17:4 출30:6,36
레16:2) 거기에서 말씀하시고, 이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자기의 복이 되고, 능력이 되려
면 잘 이해하고 듣기 바랍니다.
그다음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흘리신 그 피로 나의 영의 죄, 혼의 죄, 육체의 죄까지
깨끗이 용서해버리셨고, 그 예수님 안에 내가 들어가니, 지성소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이적이
일어났는데, 또한 그 성전이신 예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셨으니, 무엇까지 오셨는가? 지성소 속죄
소까지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서 삼위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내가 살면서 혹이라도 지은 죄들을 내 안 속죄소에서 용서받는 은혜가 매일매일 있
게 된 그 엄청난 이적이 나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의 성소 속죄소 시은좌에서는 예수님이 뿌린 속죄의 피로 나의 영적인 원죄와 그 밖
의 모든 죄가 사해졌고, 내 안으로 들어오신 속죄소 시은좌에서는 이제 내가 땅에서 사는 동안 혹
이라도 짓는 죄들이 있을 때 용서받게 된 것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면
하늘의 속죄소에 뿌려진 예수님의 피가 내 안으로 오셨으니, 이제 내 안에서 죄를 씻어버리는 것입
니다. 예수님의 피로써 깨끗함을 받는 은혜가 날마다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너무나 귀하고 귀한
은혜가 우리 안에 와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 예수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린
자 안에 이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님의 감동하심도 말씀하심도 다 자기 안에 지성소
에서 있는 것입니다. 지성소의 믿음은 성영님과 교제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면 하나
님의 전 뜻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안에 이루어진 것이니, 세상과 마귀와 인간에게 지배받
지도 당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배해야 할 것들은 지배하는 능력이요, 지배받아야 할 것에는 지
배받는 영적인 능력과 지혜가 있습니다.
요8:31,32에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
라 하셨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하늘의 참법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참법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으면 하늘의 참법이 내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죄 용서받은 자요, 구원받
은 자요, 모든 병에서 놓여나 강건한 자요, 저주가 떠난 자요, 하늘의 생명을 얻은 자요, 하나님
자녀의 권세요, 세상을 이길 능력과 마귀를 지배할 능력이 있는 자요, 하나님이 잘되게 하시는 복
을 가진 자요, 아버지께 영생하러 가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요,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운영해 나가면, 진리의 자유로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지성소다'하는
것은 바로 천국의 참법으로 지배받은 자라는 말이요, 하늘의 복이 내 안에 다 들어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전이 되었으면 세상 것에서 만족을 찾거나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랑을 기
대하거나 만족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물질을 좇아 살지 않습니다. 필요 그 이상은 연연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면 참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참 만족을 얻었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하여 계신 그 엄청난 행복이 있는데, 그러므로 하늘을 가졌으면 뭐
그리 갈증만 더해주는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복이 다 들어온 하나님의 지
성소가 되었으면, 부정적인 것들을 명령하여 굴복시키는 능력입니다.
구약 때 법궤가 있는 곳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 알지 않습니까? 수3장에 이스라엘이 가
나안에 들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할 그때는 우기였으므로, 요단
강 물이 불어서 강둑이 넘쳤습니다(수3:15). 깊은 물로 물살이 몹시 빠르고 사나워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건널 방법이 없는 때입니다(사람으로서는 건널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우기 때 요단강 가로 인도하심). 그런데 하나님께서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서가서 물가에 발을
넣으면,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게 되어, 마른 땅 같이 길이 나 지나가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말씀대로 순종하니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3:11에 제사장들이 요단으로 들어갔
다고 말하지 않고,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해서 요단에 언약
궤가 들어가는 것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요단강은 사람(자기)의 힘으로 건너지 못할 세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믿음이 되지 못
하도록(구원받지 못하도록) 막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강둑에 창일하여 범람하는 물과 같고,
깊고도 깊어서 사람으로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이라는 겁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세상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방법 없어요. 오직 방법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 능력이 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은, 세상
이 붙잡아 둘 수가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셨습니다. 말씀을 순종한 믿음만이
세상을 건널 수가 있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 속에 넣으신 언약의 뜻,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니 언약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졌
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메고 다니던 법궤보다 더 큰 성전, 하나님의 지성소입니다. 우리가 성
전의 믿음이면 세상을 건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부로서 한 몸을 이룬 예수
님의 사람이니, 세상이 어떤 것으로도 붙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나와야만
예수님 안에 들어간 예수님과 함께 있는 천국입니다. 세상에서 나오지 않으면 천국은 없습니다.
세상 길에서 나와야 천국입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나올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하
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세상이 나를 붙잡아두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룬 신부
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침몰시킬 수도 없고, 세상에 붙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다음 수 6장에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 여러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들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거주민들을 다 몰아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여리고'라는 아주 견고한 큰
성을 무너뜨려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 성 거주민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의
행사를 다 듣고 보았고, 사십 년 광야 생활 등,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 한다는 것, 여호와께서 요단
강을 끊어서 땅을 말리고 자기 백성을 건너게 하신 것 등을 다 듣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
온 그 이스라엘로 인하여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더라고 했습니다(수5:1). 여러분, 성영님이 함
께하는 자 앞에는 악한 영이 어떻게 한다고요?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더라는 것 아닙니까? 그
러니 이런 권세 있는 믿음이 돼야지요.
간담이 녹은 그 가나안 거주민들이 크고 견고한 그 여리고 성으로 들어가서 성문을 꼭꼭 다 잠그고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 성은 사람의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성입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으
로 사람이 헐어버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을 무너뜨리고 그 안에 들어가 꼼짝 않는
여리고의 왕도 용사들도 다 멸해야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성
이 무너졌습니까? 안 무너졌습니까? 분명히 무너졌지요? 누가 무너지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여리고 성과 왕과 용사들을 다 여호수아 손에 붙였다고 했습니다. 엿새 동안 궤를 메고 하루에 한
번씩 그 성을 돌다가 제칠일에는 일곱 번을 돌고 신호가 떨어지면 크게 외치라 하셨는데, 이스라
엘이 그대로 행하자 성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 속에 있는 왕도 용사도 백성들도 남녀노
소를 불문하고, 또 가축들도 다 칼로 쳐서 멸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는 것인지 여러분은 깨달아서 자신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여리고 성은 첫째, 세상 권세 잡은, 사단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권세 아래 종노릇하는 악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사람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그 성이, 언약의 말
씀을 넣은 궤를 멘 제사장들의 순종을 통하여 그 앞에서 무너졌던 것같이, 사단의 권세가, 궤에
넣은 언약이 이루어지는 날 무너진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실
때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무력으로 또는 무기로, 힘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
시는 그 사랑으로 무너지게 하실 것을 보이셨습니다.
그다음 둘째,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유할 수 없게 하는 우리의 견고한 아집, 즉 자
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원수를 맺은 그래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거역한 육의 본성 인본의 자아
입니다. 사단의 속성들로 자라난 아주 고약한 우리의 성품입니다. 사단과 함께 멸망 받을 죄의 본
성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나님과 원수된 옛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육의 옛사람은 무너
져야 하고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내 능으로는 죽을 수가 없어요. 사단으로 자란 옛사람을 멸할 능력은 자
기에겐 도저히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무너지게 하고 멸하게 하셨습니까? 구약 때는 법궤와 함께
행차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다시 사신
예수님이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성영님으로 오셨으니, 이제 예수님이 죽으실 때 나도
같이 죽었음을 절대로 믿는 믿음이 되어, 성영님이 도우시는 가운데 옛사람은 죽음에 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니,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가 있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으로 사는 승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권세
요, 능력이요, 천국입니다.
삼상 5장에 사사 시대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하나님의 법궤까지 빼앗겼습니
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사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에 붙여
패하게 하시고, 법궤를 빼앗기도록 버려두셨어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과 같은 법궤를
빼앗아 좋다고 하며, 자기들의 섬기는 신을 모신 신당에다가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뒷날 가서
보니 자기들 신이 꼬꾸라져 있는 겁니다. 일으켜 세워놓고 그 이튿날 가보니, 이번에는 목도 떨어
지고 두 팔 다 부러진 채로 꼬꾸라져 있는 겁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 때문에 자기네 신이 맥
도 못 쓰고, 갈가리 조각이 나니까 겁이 덜컥 났습니다. 또 사람들까지 염병이 들고 재앙으로 자꾸
죽고 망하니, 그들이 무서워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보내는 도중에 벳세메스라는 곳에서 머물게 되
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블레셋에서 일어난 그 정황을 다 듣고는, '그 속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무
서운 일이 일어났는가?'하고 호기심으로 그 법궤를 들여다본 고로, 그 자리에서 오만 칠십 인이 죽
었다고 했습니다(삼상6:19). 사람이 블레셋에서 일어난 그 엄청난 사건들을 다 듣고도 겨우 호기심
만 발동해, 법궤를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들여다보았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도 교회 나오는 이유가 대부분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진짜 믿음이 되려는 것보다는 병이 나았네, 어려운 일이 해결됐네, 응답해주셨네, 사업이 번
창해졌네, 이런 간증들이 주류이니, 그것을 들은 사람들 또한 자기에게도 이루어지기 원하고 호기
심과 요행을 바라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삼상7:1,2에 그 법궤가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이십 년 동안 있게 되었습니다. 삼하 6장에 다
윗이 왕이 되었을 때, 이 법궤를 자기 궁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소 마차에다 법궤를 싣고 몰고 가던 중, 소들이 뛰는 바람에 법궤가 떨어질 것 같으니 웃사가 그것
을 붙들려고 했는데, 웃사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법궤는 하나
님의 제사장들이 메고 옮겨야 했고, 법궤를 옮기는 일도 규례를 거치는 예를 갖추어야 했는데, 다
윗이 이 부분에서는 대단히 경솔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법궤는 아무나 옮기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법궤를 마차에다 실어 옮기는 것도 아니므로, 무엇인가 웃사의 잘못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이 같은 사건들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 해도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하나
님의 방법대로가 아니면, 성영님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오히려 저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자기의 경솔함으로 웃사의 죽은 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잘못 다루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는 것을 알고는, 가까이 두기가 무서워서 법궤를 옮기지 못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가져다 놓았어요. 그렇게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다윗이 자기가 생각을 잘못 가졌음을
깨닫고,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에게 법궤를 메워서 자기의 궁으로 옮겼습니다(대상13장 15장) 이번
엔 어떤 사고도 나지 않으니 다윗이 너무 기쁘고 신나서 왕이라는 자신의 신분도 체면도 잊어버리
고 춤을 추며 법궤 뒤를 따랐습니다. 다윗이 에봇을 입었는데 에봇은 앞이 갈라진 옷이어서 춤을
추니 몸이 드러났습니다. 이 광경을 다윗의 부인 사울 왕의 딸 미갈이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왕이
체통을 지키지 않고 계집종들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방탕한 자처럼 그러느냐고 다윗을 업신
여겨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했어요. 그런
까닭에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삼하6:23). 바로 법궤를 가진 자를
업신여겨 비웃으니 그가 여자로서의 수치를 당하는 저주받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때 당시 여자
가 자식을 못 낳는 것은 저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서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궤를 가진 자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이 들어있는 그 법궤가 있는 곳마다,
법궤를 가진 자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생각해보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는 그 언약의 뜻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으로 오신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전이 된 자는 마귀가
손댈 수 없고 마음대로 넘보지 못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굴복하는 것
이요, 질병도 굴복합니다. 법궤가 있던 오벧에돔의 집에 범사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던 것처럼 삼위
하나님의 전 역사가 들어 와버린 지성소의 복, 영과 혼과 육체, 전인의 복입니다.
저는 구약의 성전과 예수님이 성전이신 것과 또 내가 성전이라는 이 관계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때 당시의 그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너무
기쁘니까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숨이 멈추듯 하였고 떨렸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 교회에
나온 지 몇 년 되었을 즈음, 어느 날 예배 모임에서 기도하는 중에 내 안에서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하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때의
내 신앙 상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이나 천국보다는, 물질적 환경의 어려움이 컸었기에, 기도,
예배, 전도, 모임, 봉사 등 열심히 하면 복 주신다는 그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다 보니,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나 좀 잘되게 해달라고, 나 좀 잘살게 해주실 수 있지 않으냐고, 능력이
많으시니 나 좀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하며 교회 생활 열심히 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른 믿음이 되고자 성경을 깨닫기를 너무나 소원했고,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영적 체험이야 많았지만,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만나고 싶어서)정말 소원
하는 마음 간절했기에 나름 그 노력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물질로 부자 되게 해주리니'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천국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그 뒤로 그 말씀하신 것도 잊어버렸는데 아주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부터인가 기도할 때마다 계속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영
님께서 '그것은 잊어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6:18,19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시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
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
서도 풀리리라 하신 말씀이 있었지만, 그땐 확실하게 뜻을 알지 못했던 때라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하신 것이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가 되는 분이라서 그것을 말씀한 것인가? 라는 나름
의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음에선 맞는다고 여겨지진 않았지마는, 그 말씀이 내 생각에서 떠나질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내게 주신다는 그 천국 열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도를
할 때쯤은 제가 세상의 요구들을 다 내려놔 버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내 구주시니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내게 적용하기 원하고, 참으로 말씀을 사랑해서 따르기 원하
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이면 내놓을 것으로 각오도 했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바로 나에게 천국 열쇠가 되셔서 말씀이 열려 깨
달을 수 있는 성영님의 지혜가 있게 하시고, 하늘의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
의 이름이 와계신 성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사랑하여 영접한
내게 성영님께서 그 이름으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성소에다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죄 용서하시고 말씀을 주시고 복을 주셨던 것처럼, 지성소 시은좌 속죄소가
내 안에 이루어져 나를 만나시는 것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내게 예수님의 이름이 있고 삼위 하나님이 나와 대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예수님 그 이
름의 권세가 있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말라라 했을 때, 무화과나무가 말라던 것처럼, 그 같은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천국 열쇠가 내게 있으니 음부의 권세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
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마귀의 권세요,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입니다. 나를 세
상으로 끌어내리고 세상으로 유혹해서 무너지게 하려는 그 모든 음부의 권세가 성영님이 나를 돕고
함께하시니, 나를 이기지 못하고 손들고 떠나더라는 말입니다.
이 음부의 권세가 오늘날은 믿는다는 곳에서 어떤 행사를 하는지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임들로 즐거움으로 삼게 하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동창회니 동문회니 회식이니 단합대회
니 가족 계니, 등산모임이니 친목계니 하는 온갖 모임의 구실을 만들어 쫓아다니게 하고, 예수님의
날에 그 모임들의 활동은 더 힘을 가지고 기세를 발하여 모이는 것에 거리낌도 없고, 술 먹게 되면
술 먹고, 농담하게 되면 농담하고, 희롱하고, 자랑하고, 잘난 척하고, 떠들고, 싸우고, 음담패설
하는 등, 그 음부의 권세에 잡혀 감각 없이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영적인 감각 없이 혼
미한 가운데 믿는다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성전, 지성소의 권위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큰지를 성경을 깨달으며 알게 되었고, 또한 나
자신이 이 엄청난 권위를 가진 성전의 믿음이 되어, 그동안 이 믿음을 여러분에게 열심히 말하여
왔습니다. 물론 사단은 내 믿음을 무너지게 하려고, 여러 시험을 가지고 덤비고 비방하고 비웃으며
많은 방해를 해 왔습니다. 제가 믿음이 장성하게 되기 전 어린 믿음 땐 철없어서 피눈물을 쏟는 때
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음부의 권세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모든 것에 자유가 된 지성소의 믿음이
되었으니 그럴 일 없습니다만, 이 지성소의 권위가 내게 있는 것을 알았기에, 지성소를 걸고 훼방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아서, 혹여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실까 심히 염려되고, 그들이
바로 서기를, 하나님 은혜의 긍휼과 깨닫는 복이 있기를 소원하며,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내 쪽
에서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그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왜 이 말을 하겠습니까? 어느 개인 한 사람에게만 신앙의 특권이 있는 것도, 주시는 것도 아
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는 자가 다 성전(지성소)이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은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가 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나오스, 지성소
는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악한 자가 감히 손댈 수
없고 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으로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오늘 지성소에 관한 두 번째 말씀인데, 여러분이 구약의 법궤가 있는 곳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다 알지 않습니까? 이 법궤 시은좌에 계신 하나님께 물어보고 나갔고, 하나
님이 가라 하면 가고, 있으라 하면 있고, 전쟁에 나갈 때도 법궤에 물어보고 나갔고, 법궤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 범하지 않는 이상 법궤가 있는 곳에는 평안의
복이 임했습니다. 안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평안 속에 살게 되니 또 교만해져서 죄를 짓는
것이 문제였지, 하나님께서 평안의 복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들과 결탁하여
우상들을 섬기는 죄로, 이스라엘을 깨닫도록 하시려는 도구로 이웃 나라를 들어 치시고, 그 어려운
고통을 통해 또 죄를 깨닫고 도움을 구하면, 백성을 감싸 안고 복을 주시는 이런 순환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같이 이스라엘은 법궤로 인해 복을 받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법궤 안에 넣었던 언약의
뜻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아예 들어와 버리셨으니, 지성소가 되었다는 것이요, 그 지성소 성
전은 삼위 하나님이 함께 오신 것으로 세상이 이길 수 없고, 사단도 그 앞에 굴복하는 것을 말합니
다. 이 복에 대한 믿음으로 깨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바랍니다.
그동안 번제단과 물두멍을 거쳐 성소에 들어와 등대, 떡 상, 분향단의 이 모든 과정을 거친 것은,
다 이 지성소에서 나간 뜻이었다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을 오늘 재차 다룬 것이고, 또
한 지금까지 듣게 된 말씀들로 여러분의 믿음이 되고, 지성소의 큰 권세와 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
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보좌이신 속죄소가 믿는 자 안으로 오셨으니, 이 엄청난 복과 권세, 혹 실
수하여 짓는 죄들은 자기 안에서 용서하시는 은혜를 입게 된 이 엄청난 복이, 여러분의 복이 된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하늘 지성소의 믿음을 가르치시고, 자녀의 권세가 되어, 그 지성소까지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깨닫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참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한 감사로, 영원히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지성소 법궤 8-2 내 안에 오신 속죄소.p291-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