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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4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15
설교 제목: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설교를 위한 묵상: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소개한다. 그것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모습으로 그려지며, 빌립보서 2장에서는 찬송의 형태로 소개된다. 하늘의 권세는 무엇이고 땅의 권세는 무엇일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면 그들은 어떻게 그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교회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분의 대리인인지를 인식하고 있을까? 성령님은 교회를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실까? 우리의 삶과 사역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주제를 생각해 볼 것이다.
설교 개요:
1. 주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검이다
2. 우리의 대적(對敵)
3. 성경의 세계관과 우주관
4.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
5.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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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검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다고 합니다(히 4:12, 엡 6:17). 여기서 말하는 검(μάχαιρα 마카이라)은 싸울 때 사용하는 무기를 의미합니다. 싸움에는 일대일로 싸우는 다툼(μάχη 마케, fight)이 있고 서로 반대되는 세력이 떼로 몰려와서 충돌하는 전쟁(πόλεμος 뽈레모스 polemos: battle, war)이 있습니다. 물론 전쟁을 잘게 나누면 그 안에는 수많은 일대일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 싸움에서 사용되는 무기 중에 대표적인 것이 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고 할 때 그것은 대적과의 싸움에 사용되는 무기라는 의미입니다.
검을 만들 때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과정을 거칩니다. 광석을 녹여 쇠를 뽑아내는 제련(製鍊)을 하면 나오는 쇠를 일정한 길이로 자른 후에 불에 달구어 두드리고 펴고 다시 접어서 두드리는 단조(鍛造)를 여러 번 합니다. 그렇게 단단한 철을 만든 후에 모양을 만들고 예리하게 갈고 광을 냅니다. 그것을 연마(硏磨)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검이 만들어집니다. 몇 년 전에 검을 만드는 장인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각각의 장인들에게 어떤 시대에 사용하던 검을 보여주고 그대로 만들게 한 후에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시험하여 가장 좋은 검을 만든 장인에게 상을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때 시험관들은 장인들이 만들어 온 검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리고 살상력은 어떤지를 테스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할 때 그 검이 얼마나 잘 들며 얼마나 견고하며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적은 혈육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들을 사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귀라고도 합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기 때문에 그들을 성경은 통치자들과 권세들, 또는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엡 6:12).
우리가 싸우는 대적은 영들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할 때 그 검의 이름은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이란 성령이 임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사용되는 검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검이라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검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단단하고 강력하며 사용하기에 편한 검을 준비한 용사는 싸움에서 더 많이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고 성경을 배우며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검을 만들기 위해서 제련(製鍊)하고 단조(鍛造)하며 연마(硏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야기를 배우며 그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리 저리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핵심을 간단한 문장으로 만들어 요약합니다. 그 후에 그것을 복습하고 반복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삶 속에서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고 선언하며, 기도 가운데 묵상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인의 마음에 하나의 검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누구나 좋은 검을 갖고 싶어 하지만 좋은 검을 만드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용사는 자신의 왕을 사랑하고 왕의 원수를 미워하며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며 이길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 훈련을 받으며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불렀습니다(딤전 6:12).
2. 우리의 대적(對敵)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은 누구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나라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북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중국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일본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북한입니다. 그렇기에 그 말은 다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83년 전인 1941년에 일본은 미국의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공습했습니다. 그 두 나라는 태평양전쟁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4년 동안 치렀습니다. 그 당시에 미국의 주적은 일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 동안에 미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상호 우의를 다지면서 동맹을 강화했습니다. 기자들은 그것을 가리켜 ‘벚꽃동맹’이라고 부릅니다. 80년 전에 태평양에서 서로를 주적으로 여기고 싸우던 나라들이 이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들은 자국의 주적을 결정할 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합니다. 현재 자기 나라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나라가 어디인가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을 다스리시고 땅을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과 땅의 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하나님의 원수들이 곧 우리의 대적이며 주적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 바울은 그들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설명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의 대적을 설명하는 다른 표현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을 정복할 때 무자비하게 학대하므로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그 나라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바벨론이 강성한 나라였지만 쇠망하여 음부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사용된 표현이 계명성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啓明星)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이사야 14:12~15
여기서 나오는 계명성은 빛을 가져오는 별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침에 밝은 빛이 온 땅을 비치기 전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가리켜 계명성이라고 부릅니다. 샛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모닝 스타(morning star)입니다. 이것을 라틴어로는 루시퍼(Lucifer)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마음 속에서 샛별(φωσφόρος, lucifer, the morning star)이 떠오를 것이라고 편지로 권면했습니다(벧후 1:19). 샛별은 이처럼 빛을 가져오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며, 광명한 천사처럼 자신을 가장하는 악한 존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원수가 우리의 대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원수들은 최후에 심판을 받아 모조리 멸망합니다. 그들의 결말을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10
3. 성경의 세계관과 우주관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그 대적은 어디에서 역사할까요? 물론 우리는 땅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늘과 땅의 거리는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리보다 더 먼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의 벌을 피할 지 몰라도 하늘의 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 사람들은 언제나 하늘을 세상사를 결정하는 최후의 재판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런 하늘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늘은 그저 광활한 우주 공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땅의 사람들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보좌로 삼으시고 땅을 발등상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이사야 66:1, 행 7:49). 특별히 땅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그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은 회막(會幕, the tent of meeting)입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며 겹치는 장소입니다.
구약성경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이 나옵니다. 그 기도문에서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헤미야 9:6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하늘에 대하여 세 단계로 생각했습니다. 삼층천이 그것입니다. 가장 아래는 새가 날아다니고 구름이 떠 있고 해와 달과 별이 다니는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은 궁창 위의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하늘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하늘들의 하늘도 능히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입니다(왕상 8:27). 그러므로 하나님은 셋째 하늘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땅을 주목하시며(대하 16:9) 땅으로 강림하셔서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에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배반한 천사들도 있습니다(유다서 1:6). 하지만 기본적으로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들입니다(시편 130:20). 그런데 욥기 등 구약성경을 보면, 하늘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그 앞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서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땅의 왕궁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욥기 1:6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시편 82:1
시편 82편은 아삽의 시인데 거기에서 하나님은 신들을 향하여 책망하십니다. 땅에 있는 악인들을 바로잡지 않는 그들을 향하여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땅의 일들이 하늘의 권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가리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부른 것은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뜻을 순종할 때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늘의 세력들이 땅으로 떨어진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70인의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복음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돌아와서 전도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누가복음 10:17~18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늘에서는 사탄의 권세가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 에베소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에베소서 3:9~11
4.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실 계획을 영원부터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까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욥이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늘에서 사탄이 부끄러워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그들이 부끄러워 물러가고 천사들이 수종 든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과 같으며,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도 임한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들리셨습니다. 그것은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하늘로 올리셔서 하나님 오른쪽 보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늘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자기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그처럼 위대한 권세를 가지신 분의 보내심을 받은 대리인이며 사도들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권세를 받으셨는지를 확실히 알 때 예수님의 제자된 대리인들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위대한 사역을 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가 예수님의 권세를 잘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빌립보서에는 사도 바울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8~11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자들을 다스리시며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을 통치하십니다. 그런 믿음과 확신이 사도 바울을 그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이 사실을 가장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교회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그 내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1:19~23
5.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님
이처럼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고 교회 안에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하나님이 전에 성막에 그 영광으로 충만하게 임재하신 것처럼 이제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교회를 통하여 어떤 일을 하실까요? 예수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요한복음 16:7~11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교회에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보혜사는 교회를 돕는 도우미이십니다. 그 보혜사가 오셔서 교회와 함께 할 때 교회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책망한다(rebuke, expose, correct ἐλέγχω 엘렝코)는 말은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고 바로잡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고 따름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이 그릇되었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지 않는 세상의 죄를 책망하는 교회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가정이 바르고 건강하게 세워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세상에게 성령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그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셔서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셨음을 믿고 예수님처럼 끝까지 신실한 신앙을 지킬 때 그 믿음으로써 세상은 깨우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난 부활절 날 오후에 성동구 부활절 연합예배 및 찬양제를 성락성결교회에서 드렸습니다. 그때 천성교회의 찬양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가사 중에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멈추시지 않네 하나님은 새 일 행하시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대목을 들을 때 바로 저렇게 하나님은 나타나시는 분임을 깨닫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며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일하신다고 고백하는 바로 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성령이 교회를 통하여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령은 교회를 통하여 심판에 대하여 어떻게 세상의 생각을 교정해 주실까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교회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때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났음을 확신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지금 통치하심을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유라굴로라는 풍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는 뱃사람들과 관리들에게 이 세상 임금을 쫓아내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 사람들을 두려움에서 건져내고 결국 276명 전원을 구출해냈습니다(행 27:37). 사도 바울과 함께하신 그 주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다음 주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