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십이칙(十二則)
암환주인(巖喚主人) 서암이 주인공을 부르다.
본칙(本則) 역(譯)
서암 언 화상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아! 하고 부르고,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깨어있어라!, 예!, 훗날 남들에게 속지 말아라!, 예, 예! 하고 말하였다.瑞巖彥和尚, 每日自喚, 主人公, 復自應諾. 乃云, 惺惺著, 喏, 他時異日, 莫受人瞞, 喏喏.
평창(評唱) 역(譯)
무문은 말한다. 서암 노장은 자기가 팔고 자기가 사면서 허다한 귀신 탈바가지들을 장난스럽게 내어놓으니 무슨 까닭일까? 자,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응답하고, 하나는 깨어있고, 하나는 남들의 속임을 받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 줄로 알면 여전히 옳지 못하고, 만약 그를 흉내 낸다면 모두들 여우 같은 견해이다.
無門曰 瑞巖老子, 自買自賣, 弄出許多神頭鬼面, 何故. 聻, 一箇喚底, 一箇應底, 一箇惺惺底, 一箇不受人瞞底, 認著依前還不是, 若也傚他, 總是野狐見解.
송(頌) 역(譯)
게송으로 이른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예전부터 식신(識神)을 자기로 알았기 때문이네. 헤아릴 수 없는 과거부터 생사의 근본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라고 부르네.
頌曰 學道之人不識真, 只為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사족(蛇足)
서암선사(瑞巖禪師)는 방(棒)으로 유명(有名)한 덕산선사(德山禪師)의 법손(法孫)이고, 암두전할(巖頭全豁) 선사(禪師) 사법(嗣法) 제자다. 서암사언(瑞巖師彦)는 민월(閩越) 사람이며 성이 허씨(許氏)다. 천성(天性)이 둔근기(鈍根機)라 멍텅구리 소리를 듣고 살 정도였다고 한다. 스승인 암두선사도 너무 둔한 사람이라 중 될 인연(因緣)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다지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선문(禪門) 선가(禪家)에서는 좀 멍청한 듯 근기가 둔근기(鈍根機)를 선호(選好)한다. 머리가 좋고 약살 빠른 상근(上根) 이근기(利根機)는 머리 통박을, 굴려서 쉽게 좌절하고 만다. 부처님 당시에도 주리 반특가는 출가 교단에서 제일 멍청한 멍텅구리였으나 부처님이 일러준 매일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 자로 도통(道通) 성불(成佛)을 하게 된다. 대기만성(大器晩成)하는 사람들은 근기는 약하지만, 결과(結果)는 대성(大成)를 하게 된다. 서암사언(瑞巖師彦) 선사도 스승도 별 볼 일 없다 할 정도로 둔한 선사지만 결과는, 득도(得道)하게 된다. 무문관(無門關) 십이칙(十二則)은 매일 자기가 자기를 부르고 자기가 답을 한다. 부르는 것도 자기고 대답도 자기가 한다. 철저(徹底)한 자기점검(自己點檢)이다. 염불(念佛)도 주력(呪力)도 화두참선(話頭參禪)도 자기성찰(自己省察) 자아통찰(自我洞察)이다. 찾는 방법(方法)만 다른 주인공(主人公)이다. 영리함도 둔함도 하나로 통체로 뭉치는 방법은 자기 근기에 맞으면 가장 빠른 첩경(捷徑)이다. 매일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있는 수좌나 돌 바위 위에서 주인공(主人公)을 부르는 서암선사나 수행하는 방법만 다르지 똑, 같은 수행이다. 우열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부르고 깨어있어라! 라고 하는 것은 깨어있음의 현창(顯彰)이다. 혜개선사는 평창에서 자매자매(自買自賣)라고 했다. 혼자 팔고 혼자 산다는 말이다. 선(禪)은 장사가 아니다. 이익을 보자고 하면 남을 속여야 남는다. 자기가 팔고 사면 남은 것은 없는 장사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구 한날 비싼 밥 먹고 남지도 않는 장사를 하니, 따라 하지 말라고 한다. 똑같이 흉내 내면 여우란다. 모방은 금물이다. 주인공이 자기가 아니란 말이다. 송구(頌句) 경책(警責)은 식신(識神)이 자기로 착각(錯覺)하면 그 수행 백날 해 봐야 “헛, 고생 수고란 말이다. 혜개선사 송구를 깊이 통찰해, 볼일이다.
화옹평송(和翁評頌) 역(譯)
자나 깨나 주인공을 잊지 않고 매일 돌에 앉아 부르고 대답하는 것은, 스스로 팔고 스스로 사는 장사일세! 본래 내가 없는 것을 증득(證得) 하는 수행일세! 寤寐不忘主人公 每日石坐呼應答 自買自賣返照商 本來無我證得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