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15)-담양
전라남도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담양(潭陽)은 동쪽으로는 곡성군, 서쪽으로는 장성군, 남쪽으로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북쪽은 순창군과 접하고 있는 지역인데, 예로부터 대나무가 유명하다. 백제시대부터 땅이름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오랜 역사를 가진 고장임을 알 수 있는데, 지명의 변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백제시대에는 ‘추자혜(秋子兮)’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 ‘추성(秋成)’으로 바꾸었다. 고려 성종 때에는 담주(潭州)로 했다가 1172년에 담양(潭陽)으로 다시 바꾸었는데, 지금까지도 이 땅이름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할 때 담양이라는 땅이름에 들어있는 지역적, 문화사적 성격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서는 ‘추자혜’가 지닌 뜻을 먼저 풀어내야 함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자료를 근거로 할 때 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의 땅이름들은 대개 이두(吏讀)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네 나라가 각각의 사정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는 있어도 우리말 땅이름을 표기하는 데에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와서 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백제의 땅이름인 ‘秋子兮’는 ‘秋子+兮’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앞엣것은 한자의 뜻(訓)을 가져오고 뒤엣것은 소리(音)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먼저 ‘秋’와 ‘子’를 살펴보자.
현재 글자의 모양으로 볼 때 ‘秋(가을 추)’는 ‘禾(벼 화)+火(불 화)’의 형태여서 벼가 익는다는 것으로 보아 ‘가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음이 비슷한 글자를 빌려다가 쓰는 가차(假借)이고 원래는 메뚜기와 비슷한 모양의 곤충 모양이 글자의 위에 있고 아래에는 불이 있는 형태로 메뚜기(蝗虫)나 귀뚜라미(蟋蟀) 같은 해충을 불로 태운다는 뜻이었다. 가을이 되면 메뚜기 떼가 극성을 부려서 다 익은 곡식을 망치기 일쑤인데, 빛을 따라 움직이는 추광성(趨光性)을 지닌 메뚜기의 습성을 이용해 불로 유인하여 태워죽임으로써 농작물을 보호해야 했다. 메뚜기가 나타내는 때가 바로 곡식이 익는 시기였기 때문에 가을을 나타내는 글자로 빌려서 썼는데, 이것이 굳어져서 지금과 같은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秋’의 원래 뜻은 땅에 불을 놓아 해충을 태워 죽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모든 식물의 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열매는 익는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이 글자의 뜻은 시듦, 쇠락, 수확, 성과, 성숙, 시간, 일 년 등으로 확장되었다. 오행 사상과 결합하면서부터는 쓰임이 더욱 확대되었는데, 사물은 쇠(金), 방향은 서쪽(西), 색깔은 흰색(白)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가을의 기운은 상쾌(爽)하고 물(秋水)은 맑아지면서 아름다워지므로 순수한, 맑은, 청정한 등의 뜻(就 高 白 淸淨)도 가지게 되었다. 가을 물을 지칭하여 ‘秋波(맑은 물결)’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子(아들 자)’는 ‘어린아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글자의 윗부분은 아이의 머리, 중간은 두 팔, 아래는 포대기에 싸인 다리를 그린 상형자(象形字)이다. 또 한편으로는 명리학에서 십이지지(十二地支)의 첫 번째를 나타내는 글자로 쓰이기도 했다. 후대로 가면서 그 용도는 한층 확대되어 음력 11월, 어린아이, 씨, 알, 열매, 낳다, 사랑, 사람, 남자, 당신 등을 지칭하게 되면서 더욱 광범위한 범위의 사물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행 사상과 결합해서는 물, 북쪽 등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두 표기로 된 땅이름에서 ‘秋子’는 ‘맑은 물’이라는 뜻이 된다.
이두에서 문장 종결 어미나 일정한 지명을 나타내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던 ‘兮(어조사 혜)’는 구결(口訣)에서 종결 어미로 많이 활용되었고, 지명 같은 데에서는 일정한 지역, 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였다. 즉 이 글자가 지명으로 쓰일 때는 고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등의 용도로 쓰이는 ‘州, 洲, 成, 城, 省, 伐’ 등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秋子兮’는 ‘물 맑은 고을(물맑골)’이라는 뜻이 된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졌던 이 지명은 후대로 오면서도 그 뜻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조상들의 지혜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라가 삼한을 통합한 후 경덕왕 시대(725년)에 이르면 중요한 지역의 땅이름을 두 글자로 된 한자 지명으로 바꾸는데, ‘秋子兮’가 ‘秋成’으로 된다. 이두로 표기되었던 우리나라의 중요한 지역 땅이름을 신라 경덕왕 시대에 한자로 바꿀 때 두 글자를 원칙으로 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원칙에 의해 ‘秋子’는 ‘秋’로, ‘兮’는 ‘成’으로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秋’는 ‘가을’이 아니라 ‘맑은 물’이라는 뜻이 된다.
‘成(이룰 성)’은 자루가 길고 큰 날을 가진 도끼 같은 무기(戌)와 나이가 젊고 기운 좋은 남자(丁-사내 정)를 나타내는 두 글자가 좌우로 결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이 글자는 힘이 강한 사람이 무기를 들고 지키는 곳 혹은 땅이 기본적인 뜻인데, 후대로 오면 그 쓰임이 점차 넓어지면서 여러 가지 뜻을 가지게 된다. ‘이루다, 익다, 마치다, 다스리다, 평정하다, 화해하다, 정성스럽다, 균형’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무기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戌(열한 번째 지지 술)’은 오행(五行)과 결합하면서 땅(土)을 지칭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가운데(中央)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成’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지역, 혹은 일정한 테두리를 가진 땅을 지칭하는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에 ‘土’를 더한 글자가 바로 ‘城(재 성)’인데, 높은 담장 같은 것을 둘러쳐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成’과 ‘城’이 비슷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秋成’은 ‘秋子兮’와 같은 뜻을 가진 땅이름이 된다.
신라 때 지명인 ‘秋成’은 고려 시대인 997년에 ‘潭州’로 바뀌는데, 이것 역시 앞의 지명이 가진 뜻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潭(못 담)’은 ‘매우 깊다’, ‘널리 퍼지다’, ‘미치다’, ‘길다’, ‘예리하다’ 등의 뜻을 가진 ‘覃(깊을 담)’과 물을 지칭하는 ‘水(물 수)’가 좌우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깊은 물, 못, 물가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하는 글자이다.
이 글자는 우리말로 ‘못’이라고 해서 웅덩이 같은 곳에 고여 있는 물 정도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물이 고여 있어서 수심이 매우 깊은 것을 지칭한다. 이처럼 깊은 물은 보통 땅속에서 나오거나 골짜기 같은 곳에서 흘러와 고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맑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潭’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물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또한 이 글자가 땅이름이나 물 이름으로 쓰일 때는 골짜기의 샘에서 나와 내를 이루어 흘러가는 강 이름이나 지명 등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潭州’는 ‘맑은 물 고을’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1세기 무렵에는 ‘담주’가 ‘담양(潭陽)’으로 바뀌지만 곧바로 폐지되었다가 명종 시대에 다시 ‘담양현’을 설치한다. 고려 초기에 지어진 땅이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법정 지명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앞 시대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뜻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潭’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州’가 ‘陽’으로 바뀐 정도이기 때문이다. ‘陽’은 ‘산의 남쪽, 강의 북쪽에 있는 곳으로 높고 평평하며 해가 잘 드는 지역’을 지칭하기 때문에 ‘潭陽’은 맑은 물(潭水)이 흐르는 영산강의 북쪽이면서 물기슭에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가 된다.
참으로 절묘한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메뚜기 태우는 방법과 제주에서 진드기 없애려고 들판에 방애라고
들불을 놓는 것과 비슷 합니다. 용담, ‘覃(깊을 담)’ 성산, ‘城(재 성)’
주변 지역 이름도 한번 더 생각하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