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코스 : 운천 터미널 – 산정호수
생면 부지의 고장 운천에 이르렀다. 경기 둘레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고장에 왔을까 ? ”운천은 워낙 물이 맑아서 이 맑은 물에 구름이 비치면 구름이 물속에 잠긴 듯하다고 구름내라 불렀다. 그 이름을 따서 운천(雲川)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1910년 국권 피탈 전에는 굴울이라고 불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 하였다.
처음 온 고장은 시장 구경이 그 고장을 알 수 있는 첩경이기에 시장통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장날이 아니기 때문인지 가게들은 문을 닫아 한가하기만 하여 시장에 오면 생각나는 빈대떡조차 맛볼 수가 없었다.
이면 도로를 걸어 이른 곳에는 냇물이 흘러간다. 이름을 알 수 없고 운천 시내를 흐르고 있어 맑은 물의 고장을 뜻하는 구름천이라고 명명하고 둑길을 걸어가면서 지도를 확인하니 부소천이었다.
한탄강 지질공원을 걸으면서 산길을 내려서 부소천를 건너 환상적인 물길과 헤어지고 대지의 기운에 흠뻑 적시게 하였던 부소천 다리가 이 냇가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인데 경기 둘레길은 또다시 물길 따라 걸어간다.
도심을 흐르는 냇물은 도시의 젖줄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동네 개울에서 고기도 잡고 여름이면 발가벗고 목욕도 하던 추억이 서린 곳인데 산업화를 이룬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지만, 개울이 오염되어 안타까웠는데 경제 대국을 이루면서 예전의 모습은 아니지만 맑은 물로 복원되고 둘레길이 조성되어 흥겹게 걸어가고 있다.
시냇물 따라 걸어갈 것 같은 둘레길이 78번 지방도로에 진입하면서 둘레길은 아스팔트의 가장자리에 설치된 보도블록을 따라 자동차와 함께 나란히 걸어간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재미없는 길이 바로 자동차와 친구가 되어 걸어가는 바로 이런 길이다.
즐거운 걸음걸이가 극기 훈련의 길이 되어 짜증 나기 쉬운 길이지만 어디 걷기 좋은 길만 걸을 수 있겠는가? 삶은 항시 상대적이듯 좋은 길이 있으면 걷기 싫은 길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어차피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길이 있으면 걸어가는 우리 도보 꾼의 지닐 자세는 아닐 것이다.
지루한 78번 지방도로의 아스팔트의 길에서 산정호수에 진입하면서 왼편에 솟은 작은 동산 망무봉(293.9m)을 찾아보는 것은 후삼국 시대에 태봉국 궁예의 군사가 왕건의 군사가 추격해 오는 것을 살피던 곳이기 때문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신하에게 배신을 당하여 왕위를 빼앗기고 배가 고파 보리 이삭을 훔쳐먹다가 백성에게 맞아 죽었다는 궁예의 슬픔이 서린 망무봉望武峰을 경기 둘레길에서 왜 탐방로로 지정하지 않았을까?
궁예의 비극을 생각하며 산정호수에 이르니 관광명소답게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산정호수는 산속의 우물山井이란 뜻으로 맑은 수질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여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국민 관광지이다.
호수 주변으로 아름다운 둘레길이 펼쳐있어 물길(수변데크길)과 숲길(소나무길)을 동시에 즐기며 호수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라고 안내문에서 설명하고 있다. 숲길을 따라 호수 둘레를 돌면서 정지용의 시 호수를 떠 올린다.
호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소나무 숲길에서 수변 데크길로 진입하여 호수를 바라다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여행객들의 시끄러운 소리도 호수의 정적을 깨트리지 못한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함에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성인께서 ”산 아래에 못이 있음이 손損이니 군자가 보고서 忿怒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 는 역경의 말씀을 떠 올린다. 하지만 번뇌 망상에 쌓인 범인이라 그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없으니…….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 듯이 정적의 호숫가에 관광객들이 붐비며 흥을 돋우기 위한 음악회가 펼쳐지며 움직이는 호수로 변하게 하지만 아무런 불평도 없이 유리알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지는 나에게는 꿈일까? 상동 주차장에 이르니 우뚝 솟은 명성산이 속살을 드러내어 넘치는 남성미를 자랑한다. 산을 만나면 산에 오르고 싶고 길을 만나면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명성산을 오르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나의 걷기도 인생을 닮았나 보다. 명성산 등산로 입구에 이르렀으면서도 오를 수 없다니……명성산을 바라보며 경기 둘레길 15코스를 마친다.
● 일 시 : 2022년 11월 8일 화요일 짙은 안개
● 동 행 : 김헌영 총무
● 동 선
- 09시40분 : 중3리
- 10시06분 : 멍우리 협곡
- 11시10분 : 부소천교
- 11시45분 : 운천 터미널
- 12시30중 : 운천 시장
- 13시40분 : 낙선지 폭포
- 14시20분 : 하동 주차장. 14코스 날머리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14코스 : 9.2km + -15코스: 8.6km = 17.8km)
- 소요시간 : 4시간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