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유어 맘
딸과 큰아들이 각각 결혼하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집안이 단출해져서 하나뿐인 화장실로 아침마다 벌이던 선두 다툼은 사라졌다. 제일 편해진 녀석은 대학생인 막내다.
녀석은 쉬는 날이면 느직이 일어나 샤워하고 삼각 팬티차림으로 왔다 갔다 자유를 만끽한다. 홈부시 나이키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아름아름 사 나른 여러 색의 삼각팬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누나와 형이 있었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샤워하고 삼각팬티 바람으로 왔다 갔다 하는 그 모습이 나의 눈엔 조금 거슬린다. 그러나 아내의 눈은 다르다. 막내의 움직임에 시선이 항상 따라다닌다. 여자가 자식을 바라볼 땐 그냥 맹목적이라고 하듯, 아내의 눈동자는 명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아내는 축구선수로써 어려서부터 단련된 아들의 떡 벌어진 어깨와 왕(王)자가 새겨진 복근을 황홀한 듯 바라본다. 언젠가, 오래전에 나에게 보내던 그 눈빛보다 몇 십 배는 더 강한 것만 같다.
어느 날부터, 나도 크게 심호흡 한번하고 용기 내어 통 넓은 사각팬티에서 막내가 즐겨 입는 나이키 삼각팬티를 입기 시작했다. 오늘도 샤워를 마치고 막내처럼 삼각팬티 차림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가 했다. 아내가 힐끔 쳐다보는데 막내를 바라보는 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나 애써 무시하고 계속 거실을 유영하듯 기분 내다가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내가 부엌에서 한마디 하는 것 같은데 아나운서 목소리에 파묻혀 듣지 못했다. 내 대답이 없어서인지 조금 후 거실로 나온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아임 낫 유어 맘. 나는 잠시 영문을 몰라 벙벙하게 서 있었다. 아내가 톤을 더 높였다. 아임 낫 유어 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욕실로 들어와 전신이 훤하게 보이는 대형 거울 앞에 우뚝 섰다.
아니 누가 자기보고 내 엄마라고 했나! 나는 투덜대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이미 벗겨져 반들반들 빛이 났다. 며칠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손자 녀석이 말했었다. 할아버지 머리는 왜 양쪽에만 머리카락이 있어요? 생각해보니 전혀 엉뚱한 질문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양옆의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반 이상 하얗다. 대머리에서 조금 내려와 자리 잡고 있는 길고 꼬부라진 눈썹은 산신령의 모습이다. 눈을 바라보니 오래전부터 제거 수술을 하려 했던 심술주머니라는 눈 밑의 지방이 느슨해져 불룩하게 처지어 있다. 아, 좀 심하네.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바라본 양쪽 볼때기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는 노인들의 마른버짐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그래서인지 얼굴 모습은 영락없이 구겨진 신문지이다.
어깨는 활의 모습을 하듯 구부러져 있고, 양쪽의 가슴은 말라붙었다. 틀림없는 풀 먹이지 않은 홑이불 껍데기이다. 똑바로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타일 바닥만 보였다.
삼각팬티 도전은 애당초 막내와는 게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시작부터 대상이 잘못 선택되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임 낫 유어 맘! 아내의 목소리가 욕실까지 쳐들어왔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해마다 이곳 호주 시드니에서 맞이하는 5월의 마더스 데이 때다. 그때가 가까워져 오면 아내는 나 보고도 마더스 데이 카드를 사 오라고 여러 날 전부터 빚 독촉하듯 한다. 아니,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잖아 하고 대꾸하면 아내는 매일 밥을 주는 사람은 엄마이니 짹소리 하지 마시고 고마워! 하며 마더스 데이 카드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아임 낫 유어 맘 인지, 아임 유어 맘 인지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장석재 / 1996년 계간 ‘창작수필’ 신인상. 수필집 ‘둥근달 속의 캥거루’. 그림책 ‘고목나무가 살아났어요’. 2012년 제14회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