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原理原本) - 제1권
[16]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섭리노정의 근본 의의
(하나님적 분담 섭리기간)
심판을 통하여서 노아의 여덟 식구는 제2차로 번식하여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 섭리완성(摂理完成)으로 시작과 동시에 결과로 나아가야 할 사명적 책임의 분담(分担)은 즉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노아의 후손에게 맡겨진 중대 과제이었다. 그런데 전인류를 심판하고 나니 사탄은 자기를 숭배(崇拜)하며 섬기는 전인류를 잃고 나니 사탄은 뜻 부칠 곳이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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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떨어질 수 없는 관계적(関係的) 인연(因緣)이 있는 이상 하나님 뜻 이외에 존재하는 부분만 있으면 자기의 소유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한테 자유 굴복하지 않고 노아의 여덟 식구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입장으로 자기의 뜻 소유자 될 수 있는 존재가 혹시 있는가?
또는 자기가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이라도 혹시 없는가 하는 것이 사탄에게 있어서는 필요한 중대한 주목점(注目点)이었다.
이 어마어마하게 긴장된 입장에 서게 된 자들이 바로 노아 여덟 식구였다. 이 식구들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어 자기들의 근본 책임을 감당(勘當)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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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나님 편으로 가려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을 따르면 하나님이 멸하는 이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그때 원리적으로 알았다고 하면 모르지만 이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여덟 식구는 그저 하나님에 대한 적극성(積極性)을 보존하고 지켜야 할 존재들이었는데 그런 방향으로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는 인간에게 특유성(特有性) 자유행동결과(自由行動結果)가 좌우하는 문제였다.
노아 식구는 모든 하늘의 기대인 소망존재(所望存在)요 또 사탄이 빼앗고자 하는 소망(所望)의 기대(期待)의 존재였다. 그런 입장에 있는 존재들,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義)로 여기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은 인간가치(人間価値)를 알고 보니 이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받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탄식이 자연히 나올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원리로 보아 긴장한 입장들인 줄을 알 수 있는 복(福)된 시기를 만남이 무한한 행복스러운 것이었으나, 이 시대에는 이 근본 문제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한 수수께끼의 문제였기에 그다지도 자기들 존재가치(存在価値)와 하나님을 대함과 사탄 대함에 대하여서는 그저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 결과를 보아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와 반대적으로 서 있다는 것만을 역사를 통하여 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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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노아는 천지(天地)의 주인공격(主人公格)이며 제2차 인간의 조상이 되는 존재로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의 행동 여하를 결정하는 중대한 초점이었다.
그때 노아의 여덟 식구 중 죄(罪)라는 생각조차 하여서는 안 될 존재들이고 하나님의 의(義)만이 시작되어야 할 존재로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흠 하나라도 보이는 행동이 없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노아는 농부가 되어 포도농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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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먹고 취하여서 장막(帳幕) 안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서 잠을 자고 있을 때 노아의 아들 차자 함이 아버지가 옷을 벗고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부끄럽게 여기면서 자기 형제들에게까지 가서 부끄러운 행동의 표시를 하니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아버지 벗은 것도 보지 아니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벗은 몸에 옷을 입혔는지라.
이것이 성경을 보면 왜 이런 행동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이 되는가 하는 근본의 뜻은 오늘날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이나 그 근본원리(根本原理)로 볼 적에 그 사실은 명백(明白)하여지는 것이다.
이 행동은 무엇을 상징(象徵)하는 사실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지극한 미움의 행동이며 사탄과 한 편이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음의 수치를 다시금 증거하며 타락성(墮落性)의 계승(継承)을 표시하는 행동이며,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입장을 세울 수 있는 근거(根據)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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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으로 타락된 부끄러움 그 자체임을 아직 잊지 못하는 존재의 씨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행동이면서 또 전인류를 심판하심도 그것의 시작으로 한 결과에 도달하여지는 것에서 나온 것을 생각하니 하나님은 분통하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보여줌인 동시에 사탄의 성품 즉 범죄한 직후의 행동의 계승을 증거하는 사실이다.
또 역시 하나님의 뜻하는 근본목적이 완성하지 못한 요소가 남아있음을 즉 잠재함을 알게 됨이니 또 다시금 사탄이 상대할 수 있는 기착점(起着点)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다시금 사탄은 그 행동 개시를 보게 할 근거(根據)를 잡고 나서니 그 요구의 터를 막을 수 없는 사탄의 번식의 시작을 다시금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행동을 직접 시작하게 한 그 존재가 사탄 편 아들이니 함을 대하여 가나안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가 되리라는 것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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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또 다시금 하나님과 사탄은 대립을 보게 되어서 자손을 번식하니 또다시 그 자손들은 다시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으로 흘러 나아가게 되었고 노아의 홍수 이전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탄의 뜻 번식에 협조하여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뜻 가운데 품으려 하는 자들을 빼앗긴 셈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이 사탄한테 속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속(代贖)이 요구되는 것이다.
때마침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곳으로 흘러 나가는 행동뿐이었다. 그것은 즉 사탄이 즐거워하는 행동결과(行動結果)이니 이것을 그냥 두어 둘 수 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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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들의 언어가 하나이니 전부가 의사(意思)가 통하여 한 곳으로 동작하는데 전체적으로 움직이게 되니 하나님에게 있어는 하늘 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도움이 되는 말이(언어) 못되고 도리어 바벨탑을 쌓아 사탄의 뜻에 협력하는 행동의 한 원인을 가져오니 하나님은 언어를 서로 다르게 함은 뜻에 반대하는 행동과 협조하여 언어로써 한 방향으로 모든 인간이 흘러 들어가겠으니 말이 통하지 않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서 그 사탄 뜻을 돕는 길을 막고자 한 것이 인간 언어를 혼잡하게 만든 근본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뜻 중에서 인간이 이런 탑을 쌓았으면 또 뜻을 이루는 것으로 나갔으면 언어를 혼잡하게 할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가 오면 언어는 하나의 목적으로 하늘적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이 뜻을 이루는데 협조하여서 통일된 언어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 시작은 중심존재, 즉 재림주(再臨主)가 오면 그로부터 하나의 언어와 창조적 주관 허락이었던 세계주관세계(世界主管世界)는 근본적으로 복귀(復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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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바벨은 분열시키는 작업이었으나, 하늘 대하는 뜻의 탑(塔)은 합체(合体)하여 하나 되도록 하는 것이 되게 하는 작전이다. 하늘 뜻을 중심하고 복귀(復帰)된 사람들이 뜻의 탑(塔)을 높이 쌓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우리 이상(理想)의 터다.
이렇게도 하나님은 사탄에 대하여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하신 언어 혼잡은 그야말로 복된 일이다. 이와 같이 안타깝게 한 사람의 죄를 누가 감당하겠는가! 이렇게 하였으나 인간들은 여전히 뜻을 멀리하니, 전 인류 중에는 뜻을 세워서 받들면서 거기에 늘 성심 다하는 자를 보기가 심히도 드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에 품으려던 노아의 자손들을 또다시 사탄에게 빼앗겼으니 이것을 다시금 빼앗는 역사(役事)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탄이 사랑하는 상대자(相対者) 우상(偶像) 장사하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다시금 사탄 품으로부터 빼앗아서 자기 뜻이 자손을 빼앗은 것을 다시 갚는 모양으로, 즉 반대 노선으로 찾아 세우기 위하여서 아브라함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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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사탄 품에 있다가 빠져나온 대표자요, 뭇사람의 본(本)이 될 행동이면서, 다시는 사탄한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왔으니 들어갈 수 없는 입장을 취하게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는 딴 지역으로 인도함이, 즉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이, 곧 고향산천(故鄕山川)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신 근본 목적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에 따르니 하늘은 기쁨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기쁨의 존재다. 그러나 사탄에게는 완전 슬픔의 존재이었다.
사탄에 대해서는 설움의 존재로서, 한 분립 노선을 세울 수 있는 중심존재(中心存在)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아브라함 뒤에는 원수 사탄이 미련을 가지고 따라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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