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음 자료를 읽고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시오. [4점]
(가) ( ㉠ )은/는 헬레니즘 시대의 지적 생활의 중심지로서 특히 박물관과 도서관이 유명하였다. 도서관 설립의 공신으로 알려진 데메트리오스는 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기 위하여 엄청난 예산을 썼다고 전해진다. ( ㉠ ) 도서관의 관장이었던 에라토스테네스는 그의 지리학에서 지구의 둘레 길이를 상당히 정확하게 계산하였다. 이처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이루어진 과학의 진보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우주에 대한 독특한 설명에서도 입증될 수 있다.
(나) 키프로스 출신의 한 철학자는 인생의 목적을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 (중략) … 그의 첫 번째 후계자인 클레안테스는 ‘본성과 더불어’라는 말을 덧붙였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인생의 목적은 본성과 일치하여 사는 것이다.” 크리시포스는 이 말을 더 명확히 하고자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본성에 의해 생기는 경험과 일치하여 사는 것이다.” - 스토바이오스 선집 -
(다) ( ㉢ ) 학자들은 ㉣세상이 신들의 명령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세상은 신과 인간의 공통 도시요, 국가와 같은 것으로 파악합니다. 자연히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므로 우리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 (중략) … 선하고 현명한 자는 법률에 복종하고, 시민의 의무에 게으르지 않고, … (하략) … - 키케로, 최고선악론 - |
<작성 방법> ◦괄호 안의 ㉠에 공통으로 들어갈 도시의 명칭을 쓰고, 밑줄 친 ㉡에 해당하는 내용을 1가지 서술할 것. ◦괄호 안의 ㉢에 들어갈 학파의 명칭을 (나)를 참고하여 쓰고, 이 학파가 로마법 발전에 끼친 영향을 밑줄 친 ㉣을 참고하여 서술할 것 |
<해설>
∙ ㉠알렉산드리아
∙ ㉡지동설
∙ ㉢스토아학파, 자연법과 보편적 정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국가를 구상한 것이, 로마의 자연법 사상 대두
[서양사개론 92∼93쪽]
교통과 경제적 중심이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인구 50만을 넘는 대도시로서 세계의 7대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등대를 비롯하여,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어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헬레니즘시대는 국가가 처음으로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지원한 시대이기도 하였다. 철학분야의 사적인 학원과 더불어 이러한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에서는 철학자를 비롯한 인문과학자와 자연과학자들이 연구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70만권에 달하는 장서를 자랑하였다.
인문과학분야에서는 독창적인 새로운 발전보다 고전기 작품의 수집과 확인 및 고증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과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자연과학분야에서는 국가의 지원과 시설의 충실을 바탕으로 고전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크게 발달하여 근대에 들어와서는 능가하게 될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천문학분야에서는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주장하였으나, 그의 가설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탓으로 로마시대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총론』에서 채택되지 않고, 힙파르코스의 지구중심설이 채택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서양사개론 90∼91쪽]
헬레니즘문화는 보편적이고 세계시민적인 성격이 강하였으며, 당시의 철학 특히 스토아학파에 이러한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키프로스의 셈족계통 출신인 제노가 창설한 스토아학파는 폴리스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서 자연법과 보편적인 정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국가를 구상하였으며, 그 구성원이 되는 세계시민은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속에 로마인은 세계제국의 이론적 기반을, 그리스도교는 그들의 교리의 철학적 뒷받침을 발견하였다.
[서양사개론 135쪽]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었던 로마인은 심오한 독창적인 철학이나 사상체계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헬레니즘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이요 사상이었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루스학파의 사상을 계승하여 이를 생활화하는 데 공헌했을 뿐이다. 현실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에피쿠루스학파의 사상은 로마 사회의 상류층에 널리 보급되면서 멋있고 세련된 향락적인 생활 태도를 낳게 하였으며, 공화정 말기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에게 그 대변자를 발견하였다. 스토아학파는 보다 많은 사상가를 낳게 하였으며 키케로와 세네카를 대표자로 꼽을 수가 있다. 노예였던 에피크테투스의 『語錄』과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 명상록』은 실천적인 스토아 윤리를 권장한 책이다.
[서양사개론 136쪽]
이러한 로마법의 발전을 통하여 로마의 법관이나 법률가들은 집요하리만큼 형평의 원리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적인 법을 초월한, 현실의 법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인 법의 기본원리를 상정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그럼으로써 현실의 모든 법의 토대가 되는 정의와 형평의 원리에 입각한 자연법 사상이 이로부터 나오게 된 것이다. 자연법사상은 로마인의 가장 큰 공적이었으며, 그 사상적 기원은 스토아학파에 있으나, 실제로 이를 구체화한 것은 키케로였고, 이를 계승하여 자연법, 만민법, 시민법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포악하기로 유명했던 카라칼라제 시대의 법학자 울피아누스였다. 이러한 방대한 로마법은 후에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제에 의하여 집대성되어 『로마법대전』이 편찬되었고, 후세의 법체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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