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육개초(百六箇抄)의 본적(本迹)
교토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한 신이치의 <백육개초> 강의는 개강식을 포함해 총 일곱 차례 실시하였으며, 다음 해 8월에 종강했다.
그리고 그 강의에 이어서 신이치는 간사이 이서(以西) 지역 학생부 간부와 교토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의구전>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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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육개초>는 신이치에게도 많은 추억을 남긴 어서였다. 도다 조세이가 교학부 교수의 연구과제로 주었던 어서였기 때문이다.
신이치는 매일저녁 일을 마치면 도다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도다는 서두 부분의 “이(理)의 일념삼천(一念三千), 일심삼관(一心三觀)의 본적(本迹)”을 강의하는 데에만 3일을 할애했다.
이 어문을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의(義)’ ‘출세성도(出世成道)의 의(義)’ ‘탈익수량(脫益數量)의 의(義)’ ‘이(理)의 삼천(三千)은’ 이라고 단락을 지어 하나하나를 모든 각도에서 해석하고 강의해 주었다.
도다의 강의는 신이치를 심원하면서도 광대무변한 불법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으며, 그것 자체가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상전(相傳)이었다.
서두의 첫째 조항에 대한 강의가 끝나자 도다는 말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내용은 모두 암기하여 생명에 각인 시켜야하네.
이 첫째 조항을 철저히 배우고 깊이 이해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나오는 105개 조항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걸세.
또 이 <백육개초>를 이해하게 된다면 다른 모든 어서도 이해 할 수 있지.
아무튼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고 깊이 이해해야만 하네.
교수나 조교수가 되면 실수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그 다음 부터는 하루에 2, 3개 조항씩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신이치에게 조금이라도 진지한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도다는 곧바로 어서를 덮어버렸다.
“그만하자! 나는 기계가 아니야!”
그럴 때 마다 신이치는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조심성 없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리고 생명에 각인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연찬을 거듭해 왔다.
그 당시 신이치가 보던 어서는 도다의 강의를 들으며 기록한 메모로 새까맣게 되어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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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는 교토대학 학생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그들이 아직 교학의 기본도 몸에 익히지 않은 멤버인지라 가능한 한 알기 쉽게 설명해 갔다.
그리고 <백육개초>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과 석존의 불법의 ‘본적(本迹)’과 ‘승열(勝劣)’을 엄격히 판별한 어서라는 점에서 ‘본’과 ‘적’의 구분을 모든 각도에서 논하고, 인간의 삶에 비추어 이야기해갔다.
인생의 근본이란 무엇인가. 신이치의 강의는 여기에 가장 큰 포인트가 있었다.
중국의 천태대사는 이 ‘본적(本迹)’에 대하여 ‘본’을 ‘하늘에 떠 있는 달’이라 하고, ‘적’을 달의 그림자인 ‘연못에 떠있는 달’에 비유하여 ‘본’이 월등하고 ‘적’은 열등하다고 이야기 했다.
‘본’이란 본체를 의미한다. 한편 ‘적’이란 본체의 그림자 또는 그 흔적을 가리킨다.
사실에서 이론이 나오듯이 ‘본’이 있으므로 해서 ‘적’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신이치는 이 날의 강의에서 이 문제를 ‘사실’과 ‘이론’의 관계를 통해 알기 쉬우면서 정중하게 설명해 갔다.
“‘이론’은 하나의 척도입니다. 그러므로 ‘이론’은 ‘사실’을 설명하는 규범은 될 수 있어도, 그 전체로는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실제적인 인간의 생명 활동을 보아도 순간순간이 변화의 연속입니다. 그 끊임없이 변화하는 본체가 바로 생명의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사실’에서 추출되어 보편화된 것이 ‘이론’입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과 ‘이론’을 구분하는 날카로운 눈을 지니는 것과 함께 어디까지나 현실의 대지에 입각해 가는 것입니다.
그 근본은 ‘생명’입니다. 살아 숨 쉬며 실존하는 ‘인간’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절대시한 나머지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져 오히려 실존하는 인간을 억압했던 예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젊은 지성을 지닌 여러분이 이런 불행한 역사를 바꾸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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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육개초>의 마지막부분인 “이는 물결, 부는 바람, 만물에 대하여 본적(本迹)을 나누고 승열(勝劣)을 분별 할지니라” (어서869)는 구절에서 신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물결, 부는 바람, 모든 현상에 대해 본적과 승열을 구분해가시오’라는 어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에도, 생활에도, 모든 것에 ‘본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정확히 구분해 가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잠들어 있을 때는 ‘적’, 깨어 있을 때는 ‘본’입니다.
또, 공부가 본분인 학생이 놀기에 여념이 없는 것은 ‘적’,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다할지라도 오로지 출세를 위한 공부라면 마음은 자기중심적이라 할 수 있으며, 세간의 흐름에 물들어버린 ‘적’에 해당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학생부로서 광포를 위해 힘을 키우자는 사명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공부하면 ‘본’에 해당합니다.
아무튼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의 본지(本地)는 광선유포를 위해 출현한 지용이 보살입니다. 따라서 광선유포를 위해 끝까지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본’인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이 장래 사회적 지위나 처지가 아무리 훌륭하게 된다 해도 그것은 ‘적’입니다. 이 점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머지않아 사회인이 되어 험한 세파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생각처럼 학회활동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본적’은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광포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결의가 있으면 ‘본’입니다. 환경에 져서 신심을 잃고 사명을 잃어버리게 되면 ‘적’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과 ‘적’은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념의 문제인 만큼 겉으로는 판단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명확합니다.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본적’을 개인의 일념에 비추어 말한다면 ‘본’이란 원점이고 관선유포를 향한 일념입니다. 또, 전진과 도전의 마음입니다.
그에 반해 ‘적’이란 타성이며 타협이고 후퇴입니다.
자신은 지금, 광포를 위해, 인간혁명을 위해 살고 있는지, 일념은 정해졌는지, 그것을 간파해 가는 것이 ‘본적’을 구분하는 일이며 그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적’이라 해도 이 순간순간의 승부이며,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불도수행의 도량인 것입니다.”
본적에 관한 신이치의 이 강의는 수강생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이후의 삶에서 크나큰 버팀목이 되었다.
신이치는 강의를 통해 단순히 불법의 법리를 가르치는 것 이외에도 한 사람 한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열어 갈 것인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강의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질문이나 간담 시간을 가져 모두의 고민을 듣고 지도와 격려의 손길을 뻗어 갔다.
☞ 신․인간혁명 8권 ‘보검(寶劍)’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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