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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출애굽기 2장 1-10절
제 목 생명을 살리는 방주[1]
생명을 살리는 방주라는 제목으로 두 번에 걸쳐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생명을 위해 일하는 성도라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가운데 모세가 태어나는 모든 과정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고 남자아기를 살렸던 산파들의 신앙과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어머니의 사랑도 보았습니다.
남자아기를 살리는 여인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한 것처럼 남자아기를 살리는 사명을 받은 성도들의 헌신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부흥시킨 것입니다.
성도들의 헌신과 충성 없이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질 수 없으며, 성도들이 믿음을 보이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나라에 들어가 400년이 되면, 이끌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에 하나님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믿음을 사용하셨습니다.
레위지파에서 태어난 요게벳의 이름은 여호와는 영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딸의 이름을 요게벳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그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부모님께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하시는지 이름안에 그 분들의 뜻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셨습니다.
예수는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름대로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이름처럼 귀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민족혼을 불어 넣는 것을 어머니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요게벳처럼 모든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한다고 아기때부터 가르치므로 이스라엘민족은 나라 없이 흩어져 살 때도 말씀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게벳의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에 세상의 왕 바로가 남자아기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을 알고도 석달동안 아기를 숨겨서 키울 수 있었습니다.
아기가 조금 크게 울거나, 이웃이 신고하면 요게벳과 아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담대하게 아기를 키웠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요게벳은 아기를 담을 갈대상자를 준비하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나서 상자 안에 아기를 뉘었습니다.
상자를 만드는데 사용한 재료는 파피루스인데 지중해 연안 습지에서 1-2m 자라는 아주 흔한 식물입니다.
질긴 껍질을 벗겨낸 다음 파피루스속을 가지고 종이를 만들기도 하고,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아주 유익한 식물이라고 합니다.
벗겨낸 껍질은 보트나 돛대나 끈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아주 질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파피루스를 가지고 요게벳은 모세의 생명을 살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파피루스 상자안에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담아 살리시는 것을 볼 때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의 처지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모세를 살리는 것이 곧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어 내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중을 기했을 것입니다.
갈대안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모세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없이는 넘실대는 나일강에서 죽을 수도 있고, 남자아기를 찾는 애굽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에 처해 있는 모세처럼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갈대상자에 넣어 보호하시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모세를 통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나일강과 같은 죽음의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귀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작은 배는 그저 내 몸을 실고 강을 건널 뿐 그 안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군함처럼 큰 배는 운동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가 크든 작든 물위에 떠 있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배에서 마음대로 내리는 순간 그는 물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넓은 바다인 세상에서는 배 즉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구원인 것입니다.
배의 크기는 바로 여러분의 믿음의 크기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많은 영혼을 태우고 천국을 향해 함께 항해할 수 있지만 적은 믿음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충만한 믿음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담겼던 갈대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인데 이 테바는 노아의 방주와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거대한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가 같은 테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많은 수이든 적은 수이든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방주는 항해하기 위한 동력이나 방향키가 없다고 합니다.
물위에 떠 있는 용도로만 사용될 뿐 방주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며 인도하심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함 받은 모세와,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노아의 구원은 방주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이 사건들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가 있다면 사람들의 눈에는 그 두사람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두 사람을 통해 태어날 아기들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지도자이기 때문에 갈대상자속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함께 담겨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있던 8명을 통해 세상의 인류가 번성한 것처럼 노아의 방주안에는 모든 인류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속에 구원받을 모든 영혼들이 함께 담겨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고난과 연단속에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을 함께 포함시키고 계시며, 다윗의 후손이 그와 함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속에,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날 모든 심령들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안에 그리스도의 칭찬과 하나님의 상급이 함께 있으므로 훈련을 잘 받아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축복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파피루스와 같이 습지에 아무렇게나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이스라엘백성들은 이제 갈대상자에 담긴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은혜의 상자에 담아 주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파피루스는 물속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인데 반은 물속에 있고 반은 물밖으로 나와 있는 갈대와는 조금 다른 식물이라고 합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반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반은 세상에 반은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요게벳은 갈대상자에 생명을 담기 위해서 역청과 송진을 발라 나일강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강물이 스며드는 순간 아기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역시 세상의 물이 스며드는 순간 영적으로 죽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여 성령과 하나님의 은혜를 욕심과 정욕으로 틈이 벌어진 곳에 발라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소원인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역청을 바르시기 바랍니다.
역청을 바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고 사랑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갈대상자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이 담겨 있고, 그 약속을 위해서 하나님은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지금 하나님의 목적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구원의 언약과 성취를 위해서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마음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혼구원을 향한 목적이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해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모세를 구원하실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하나님의 목적인 구원안에서 일어났듯이 여러분이 지금 만난 사건이 영혼구원을 위한 목적안에서 일어난 문제라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만 있다면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과 사고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요게벳과 미리암이 생각할 때는 혹시 아기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갈대상자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물론 작은 상자안에 아기를 넣어서 넓은 나일강에 보낸다는 것은 부모마음이 아프고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게벳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아기를 석 달 동안 믿음으로 키웠다면 하나님의 돌보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게 되고,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더 큰 바닷물결속에 아들을 던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열매를 나일강에 버리라는 사단을 만났거든 온전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잠잠히 인내하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는 모세를 살리신 것처럼 고난 가운데서 보호처가 되어 주실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갈대상자가 거센 나일강물에 떠내려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요게벳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작은 갈대상자를 갈대가 많이 있는 갈대들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 갈대들이 작은 상자를 지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도가 혼자서는 세상의 급류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로 묶어 놓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담대한 성도라 할지라도 지체인 성도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둠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세심한 배려로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게벳이라면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작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버리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키워보신 부모들은 요게벳이 얼마나 아픈 선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서 버리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도 자녀를 사랑하거든 품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품에 안고 있다가 사단에게 빼앗길 수 있으므로 가장 안전한 하나님께 맡겨서 자녀들이 넓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강한 백성으로 거듭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요게벳이 선택한 방법이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살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이 큰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2-23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과했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고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이런 권세는 십자가를 통과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은 것은 오직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사랑때문이며 구원받을 인류의 방주가 되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는 귀한 존재입니다.
이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여 구원의 방주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방주는 완벽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만드는 방주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급류에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갈대사이에 두는 지혜만 있다면 많은 영혼과 가족을 죽음의 물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품에 안고 있다고 해서 다 살릴 수 있는 것 아니며, 방주안에 넣어 갈대사이에 놓았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간절히 기대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바로 요게벳처럼 자녀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믿음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인생은 분명 풍요와 고난이 반복해서 다가오고 있지만 처한 환경에 감사하며 자족할 줄만 안다면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가시가 보일 때는 꽃이 피는 그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꽃이 필 때는 그 향기까지 함께 가질 수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지나가는 인생을 믿음의 꽃밭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여러분이 노력해서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가시만 있는 인생이 없고 꽃만 있는 인생도 없습니다.
됐다 싶으면 무너지는 것이 인생이고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속에 낙심하고 있을 때 쉽게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설 때나 무너질 때나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의지하는 믿음만이 모든 시간을 감사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를 모든 남자아기들을 살인하라고 명령을 내린 바로왕 투트모스1세의 딸인 핫셉슈트공주를 통해 죽음의 물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대상자가 하는 일이며, 그 안에 거할 때 생명을 보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창조된 사람들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드시며 만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리고 계신 크신 영광을 사랑하는 자녀들과 나누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시고 함께 누리려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 은혜를 모두 쏟아버렸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현재의 삶에 자족하지 못하도록 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유혹을 하며, 인간에게 하나님과 같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유혹에 솔깃 하는 순간 하나님을 떠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은 자신이 유혹과 욕심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돌이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유혹이 너무 강하고 인간의 욕심이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불신앙의 자리와 죄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을 전도해 보면 지금 나는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을 전도해 보면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굳이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강건하면 80인 인생을 살다가 가는 인간들이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 전부인냥 하나님을 버리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세상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오직 돈을 향해 달려가며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생명을 주셨는지 상관치 않고 있습니다.
세상의 힘을 가질 수만 있다면 믿음을 버릴 수도 있고, 우상과 사단과 타협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받은 걸 족한 줄 알고 하나님안에서 나누며 사는 것을 보고 싶으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결국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4월에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제주도에는 우박이 떨어지고, 일부 산악지역에서는 눈이 내렸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각 나라마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고, 살인을 하고도 죄의식도 없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관영하므로 모든 자연과 환경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이제 세상은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말씀하셔서 계시록에 기록된대로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향해 달리고 있는 바벨론인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방주안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모세가 갈대방주안에서 살았고, 노아의 가족이 방주안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방주안에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방주가 절대로 교회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방주는 예수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 분의 뜻과 생각과 말씀과 일치하여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모세는 갈대상자안에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비록 핫셉슈트공주의 도움을 받았지만 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핫셉슈트공주는 투트모스 1세의 무남동녀였습니다.
그녀의 이복남매인 남편 투트모스2세와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핫셉슈트공주의 아들로 자란 모세의 지위는 확고했고 그의 권력도 막강하게 되었지만 모세는 애굽인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투트모스 2세인 남편이 일찍 죽자 후궁이 낳은 아들 투트모스 3세를 왕에 앉히고 핫셉슈트공주는 20년 동안 섭정을 하였습니다.
핫셉슈트공주에 관해 말씀을 드린 것은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진 공주가 이만큼 권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주의 눈에 띄게 하신 것은 히브리인의 남자아기를 입양하여 자신의 아들로 삼아도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약한 갈대상자에 모세를 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로의 집안을 통해 모세를 성장시킨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사단의 손을 통해 자녀를 성장시키는 하나님은 언제나 곁에 계시며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험한 세상에서 사단의 종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담을 구원의 상자가 되어 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하디 흔한 파피루스처럼 연약한 우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구원의 방주처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성령님의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방주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공격이 아무리 강해도 성령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하늘의 모든 축복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지 말고 성경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처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곧 방주의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큰 군함이 되어 많은 영혼들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 항해는 큰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영육간에 축복을 받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