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정에서 늦게 만난 값진 친구 "탁구"
푸른색 바다는 녹색의 산들을 지나 하늘까지 덮어 결실의 계절 가을과 조우한다. 어제까지 폭염으로 에어콘을 가동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비가 온 이후 확연히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2012년 8월 27일 사랑하는 아들 상준이가 세상에 왔다. 내 삶의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MTB (산악자전거)로 한국의 아름다운 산들을 달렸다.
2년 동안 백두대간을 자전거로 돌았고 부산시청에서 서울시청까지 480Km를 1박2일 무박으로 완주했다. 상준이의 탄생은 우리 가정에는 축복이었으나 나의 MTB 사랑은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다.
평소 다니는 교회에 토요일마다 조그만 탁구 모임이 있었다 . 존재감 없는 실력이다 보니 관심 조차 없었고 도리어 2.7g 탁구공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을 공만큼이나 작고 우습게 여겼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축구공이나 농구공은 가지고 놀아야지 !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서 목사님배 탁구대회가 있었다. 내가 소속한 남선교가 4강에서 지고 말았다.“이럴수가” 타 남선교에 지기 싫었다.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탁구와의 첫만남은 그랬다.
2013년 1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당동 패밀리 탁구클럽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강호동의 스타킹에서 보았던 탁구신동 박경태 선수 (초등학교 국가대표)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탁구대는 5대 , 작은 지하 탁구장이었다. 이렇게 내 삶에 탁구는 시작되었다. 기초 래슨이 시작되었고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PRI를 알 것이다. “피가 솟고 알이 베이고 이가 갈린다는 그것” 탁구는 푸드웍 2분도 하기 힘들었다. 죽을 것 같았다. MTB로 달련된 내 몸도 견디질 못했다. 모든 운동은 힘을 빼야 하는데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11개월을 개고생 했다.
2013년 11월 지역대회에 첫 출전 하였다. 지역대회는 도전부 (6등급~10등급) 와 무한부(1등급 ~ 5등급)로 나누어 경기한다. 내가 속한 도전부는 총 72명이 참가해 한조에 6명이 예선전을 치르고 4명이 본선에 진출,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결정한다. 나는 9등급이었다.
처음으로 넓은 체육관에서 탁구를 치는 것이라 그런지 날라오는 공이 달랐다. 공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정확한 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붕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당황스러웠다.
첫 시합이 시작되었다. 상대는 커보이고 반대로 나는 작게만 느껴졌다. 가슴은 뛰고 몸은 허둥지둥 , 역회전 서비스로 무장한 상대를 만나면 서비스 리턴 조차 힘들었다. 더욱 어려운 상대는 핌플 러브로 무장한 아줌마들, 예선전부터 안 만날 수 없는 상대 "신하균과 고수"의 영화“고지전”의 “애록고지”처럼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지였다. 태극기 휘날리며 전진하는데 그녀들은 핌플이라는 신무기로 신공을 날렸다. 공을 넘기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공이 흔들려 오기도 하고 치면 툭 떨어지며 네트에 걸렸다. 커트하면 붕 뜨고 결국 싸대기 타법에 공격 당했다. 빽쪽으로 주고 싶은데 공은 내 생각과 다른 괘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상대는 여지없이 공격해 들어왔다. 결국“패” 예탈을 직감했다. 그러나, 운좋게 4등으로 예선전을 통과 본선에 올랐다. 첫 토너먼트에서 “패” 결국 탈락이었다.
그러나, 규정에 따라 바로 8등급으로 승급 되었다. 11개월의 개고생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물이 났다. 왠지 허탈하고 분했다. “난 뭐한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부터 무한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단상 위에 아무대나 축 쳐져서 걸터앉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맥없이 앉아 있는대 그 때 한 경기가 눈에 들어왔다.
키도 작고 동글동글한 사람과 키도 크고 당당한 체구에 오른쪽 팔 위로 문신이 있는 골리앗 같은 사람이 시합을 하고 있었다. 작은 사람이 공간을 만들어 가며 공을 날렸다.
어떤 때는 빠르게 또 어떤 때는 느리게 공이 날라오는 곳에는 벌써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놀라운 푸드웍 이었다. 경기는 백중세였다. 상대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드라이브에 환상적인 맞드라이브 그리고 계속되는 리턴과 공격 화려한 빽드리이브 는 화룡점점 이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절대 고수의 경지였다. 고수들의 향연은 놀랍고도 놀라왔다. 한편의 잘 짜여진 무협영화 한 장면을 연상시켰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탁구의 향연은 그야말로 숨이 막혔다. 한 호흡도 내쉴 수 없었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그 동글 동글한 사람이 승리했다. 아! 탁구는 저런거야 ! 환상이었다. 절망이 꿈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힘이 났다. 탁구는 그렇게 강렬했다.
매일 회사업무를 마치고 저녁 8시에는 탁구장을 찾았다. 일주일에 두번 20분간 래슨을 받았고 회원들과 경기를 즐겼다. 목이 말랐다. 탁구는 매일 치는데 계속 갈증을 느꼈다. 탁구는 마치 갈증을 유도하는 탄산음료 같았다.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말랐다. 시합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탁구에 관심을 가지자 탁구와 관련된 것만 보였다. 모든 것이 귀하게 느껴졌다 .
월간탁구도 꼭 읽었다. 그러면서 중국의 장지커도 알게 되었고 마롱도 알게되었다. 일본의 미츠타니도 한국의 정영식도 주세혁도 알게되었다. 그들의 플레이는 유튜브를 통해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다. 탁구는 어느새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각종 지역대회는 반드시 참석했다. 매번 “패 “가 익숙해질 무렵 “패”했던 상대의 공이 보였다. 내 몸은 알아서 반응했다. “승”이었다. 값진 첫 승이었다. 어느덧 대회는 내 실력을 점검하는 장이 되어 있었다. 그 후 이기고 지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이기고 지는 것에 의미가 없어지자 상대의 모습 보다 어떤 구질의 공을 가진 상대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상대와 충분한 랠리를 했다면 진 경기도 만족할 수 있었다.
나의 플레이를 하기 위해 리그에 왔고 내 플레이를 하기 위해 시합을 찾아 다녔다. 만족하지 못하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 반성했다. 겨자씨 같은 실력에 매번 "패"라는 쓴 보약을 먹었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난 2014년 6월 관악구 지역대회에서 공동 3위로 7등급으로 승급했다. 그리고 연이어 2014년 11월 정기리그에서 공동 3위로 6등급으로 승급했다.
물론 교회 목사님배 탁구 대회는 2013년, 2014년 내가 속한 남선교가 우승했다. 실력이 쌓여갈수록 하늘의 별만큼 고수는 많았다.
2015년 8월 리그에 첫 출전한 9등급 이현덕(여자)씨가 예선전 중에 나에게 물었다. “얼마나 탁구치셨어요?” "2년 좀 넘었어요 ” “2년 열심히 치면 그 정도 되요?”
내가 이런 질문을 받을 만한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처음 탁구를 시작할 때 1년이면 김택수 감독님(대우 증권 감독)과 맞짱, 맞탁구를 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1년이 지나면서 바로 현실을 느끼게 되었고 2년이 지나면서 땅과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다. 3년이 가까워 지는 지금은 10년 후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5년 10월 관악구 지역대회 개인전 혼성4부로 출전하여 3위를 했다. 드디어 나는 무한부로 승급했다.11월부터는 1등급에서 5등급까지 하는 시합에 참가한다.
탁구는 상대가 있는 운동이다. 사람이 천명이면 천명 다 다른 옷을 입고 있다. 탁구도 또한 그런 것 같다. 그러므로 상대에 따라 같은 수준이라도 다르다. 한 사람에게 이긴다고 내 등급이 한등급 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또한, 한등급 아래의 사람에게 졌다고 자책하는 것도 바보 짓이다.
한등급 안에도 천가지 색이 있다. 그러므로, 지고 이기는 것에 연연해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과 경기를 통해 다양한 구질의 공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사람이 보이지만 나중에는 공의 구질이 보일것이다.
시합에 나오는 것은 상대를 이기고 우승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많은 구질을 상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함에 있다. 우승은 덤으로 따라오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기고 지는 것보다 어떤 구질의 공이 와도 다룰 수 있는 실력과 경험을 쌓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과의 경기는 다양한 구질을 경험하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탁구는 어느덧 내 인생 여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늦게 만난 값진 친구, 이 친구와 잘 사귀고 싶다. 이 친구를 통해 오늘도 웃고 내일도 웃는다. 흘린땀은 언젠가 멋진 랠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 때 동료들에게 박수 한번 받을 수 있다면 환호성 한번 외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대 만족이다.
내일은 사랑하는 아들 상준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다. 나는 40대에 만났지만 그는 빨리 만나 그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미디어 세상이다. 미디어는 아이들의 눈과 귀를 멀게한다. 우리들의 귀중한 아이들은 넘쳐나는 스마트폰 게임이나 TV에 갖혀 버렸다.
땀흘리며 땀흘리며 2.7g의 공과 끝없는 경쟁을 즐기는 건강한 소년으로 성장해 가길 소원한다. 미디어에 빠진 세상을 향해 포핸드 드라이브를 날리며 스마폰 게임에 빠진 친구들에게 빽드리이브를 날리는 존재감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탁구사랑 닷컴 윤유원 올림
월간파워코리아 모바일 사이트, 업소용 주방기기에 혁신을 이루다
http://m.powerkoream.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2756
첫댓글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