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19 예방으로, 골판지로 거리 두기를 한 지프니
어느 날 아침 조깅을 나가는데 구청 청소행정과에서 나온 직원 두 분이 다세데 주택 앞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며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지 코를 막고 상을 찡그리고 땀을 흘리며 애를 씁니다. 가다가 멈춰 무얼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버린 음식물이 있나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몇 몇 사람들이 몇 백원 아끼기 위하여 자주 아무 비닐봉투에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쓰레기봉투를 팔아 그 수입으로 청소차를 운영하고 미화원들의 봉급을 주고 그들의 복지를 이루어 가는데 큰 어려움이 생기겠지요. 하여 불법 쓰레기 투기자를 색출하여 벌금을 매기려는 모양입니다.
경제학 용어에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똑 같이 기부금을 내면 그 기부금이 세 배로 불어서 쌓이고, 모금이 끝나면 공공금고에 쌓인 돈을 각자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똑 같이 내기로 하고 무명으로 기부금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다섯 명이 1만원씩 내기로 하고 모금이 끝나면 5분의 1로 나눠 다시 각자에게 돌려줍니다. 다섯 명이 낸 5만원이 세 배로 불어 15만원이 되었으니 각자 3만원씩 나누어 가지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몰래 1만원을 넣지 않은 한 사람(무임승차자)이 있었습니다. 하여 네 명이 낸 4만원에 세 배하여 12만원을 다섯 명이서 나누게 되어 한 사람당 24,000원씩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무임승차자는 자기가 내지 않은 1만원과 분배 받은 24,000을 합하여 34,000원의 수입을 보게 됩니다. 나머지 정직한 4명은 24,000원만 받게 된 거지요. 나중에야 이를 알게 된 나머지 4명은 자기들도 앞으론 무임승차하기를 바라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인해 서서히 경제정의가 무너지고 더 나아가 사회정의와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임승차자(free rider)는 건전한 사회가 규정한 윤리와 도덕을 무너뜨리고 외도(外道)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외도하고, 부인이 화난 김에 덩달아 외도하게 되면 그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 되겠지요. 전철에서 표를 사지 않고 슬쩍 타거나 공원에서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슬쩍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행위, 쓰레기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슬쩍 버리는 행위 등은 모두 공공사회에서 무임승차 하는 것이며 외도하는 행위이지요.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위험하여 정부가 공공집회를 자제하길 원하는 때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밀집한 대중 집회를 하거나, 교회당을 폐쇄하고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는 반면, 만일 몇 몇 교회들이 그냥 예배를 드리고 그로인해 헌금도 잘 걷힌다면, 비대면 예배를 드리던 교회들이 서서히 대면예배로 전환하겠지요. 또한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전라도 광주에는 600여 음식업체가 영업폐쇄명령을 받았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 한 두 업소가 생겨나면 그를 따라서 용기를 얻어 서서히 다른 업소들도 문을 열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의료통제시스템이 무너져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막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사회는 몰락의 위기에 처하겠지요. 하여 공공질서와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우린 먼저 무임승차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서로서로 감시하고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소개하고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은 ‘슬픔도 괴로움도 모자람도 없는 풍부하고 영원히 아름다운 행복한 나라’이지요. 그러나 그 곳에서도 공동사회를 위한 윤리와 질서와 도덕이 있겠지요. 만일 그곳에 사회적 규약을 지키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이 있다면 천국의 삶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요? 천국의 구성원이 되려면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 다스리는 훈련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어쩌면 그렇게 훈련된 사람들만이 천국에 초대받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