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라산 등반 다음날이라서 가볍다고 생각한 사려나 숲길 가는 날입니다. 결국은 가벼운 일정이 아니었습니다만. 7시 토스트 두 쪽과 커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어제의 라면, 오늘 토스트. 계속되는 밀가루 음식에 드디어 탈이 났습니다. 샤려니 숲길 약 30 분 가니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열이 나고 아주 좋지 않습니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갔습니다만 제대로 된 아침을 못 먹은 탓인 거 같습니다.
8시 반 숙소를 나서 8시 45분 터미널에서 780번 버스 타고 성판악 한 정거장 전 교래입구에서 하차. 사람도 없고 길을 모르는데 사려니 표지판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기웃기웃하다가 사려니와 연결된다는 오솔길 입구를 가리키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합니다. 남조로 변입니다. 제대로 된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숲속 길을 가니 왼쪽 도로변에 삼나무 숲이 일렬로 늘어선 것이 너무 좋아 일행 한 분이 사진을 찍고 가자고 합니다. 이 길은 그야말로 울창한 원시림입니다. 몇 아름의 소나무들이 강원도 산간의 소나무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합니다. 게다가 건강한 생태의 상징처럼 푸른 이끼와 기생 덩굴둘이 아름 들이 나무들을 휘감고 있습니다. 평지입니다. 그런데 원시림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저 감탐사만 연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참을 가니 사려니 탐방로 정식 입구. 여기서 붉은 오름입구 까지 10km. 탐방로는 아주 잘 닦여진 탄탄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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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를 따라가다 천지천 다리. 몸 컨디션이 이상합니다. 조금 진행하여 휴게 벤치에서 옷을 추스립니다. 아무래도 어제 한라산 정상을 다녀 온 몸입니다. 건강한 젊은이도 끙끙 앓을 판에 퇴임도 2년이나 지난 늙은이가 겨울의 한 복판, 한라산 정상 그것도 비 맞는 험한 날씨에 다녀 온 이튿날 10km 숲길 걷고 다시 오름 오르고 숲길 간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여하튼 최대한 천천히 걷습니다. 그런데요, 사려니 숲 정말 대박입니다. 평지, 그러니까 10km 넘는 숲이 그냥 평원인데 그곳이 원시림입니다. 내가 가본 어느 숲보다도 넓고 원시가 잘 살아 있습니다. 길이 자동차 다니는 큰 길입니다만 오솔길 숲길 등 최대한 자연 속으로 들어 갑니다. 같이 간 일행은 연신 와우 하는 감탄사만 연발하고 나 역시 그저 감탄사만 내 뱉습니다. 사려니가 이럴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절물을 다녀온 터라 그런 정도인줄 알았는데 이곳은 절물과 전혀 다릅니다.
물찻오름. 사려니 숲길 중간입니다. 생태복원을 위하여 2015.6.30까지 출입 통제입니다. 차라리 다행입니다. 오르기가 너무 겁이 납니다. 이 숲길은 완전 평지입니다. 천만 다행이지요. 물찻오름 조금 지나니 삼나무 숲입니다. 1930년대 조림하였다는데 정말 환상입니다. 거의 5km정도를 삼나무가 뒤덮고 있습니다. 삼나무 숲길을 돌아 나오는 코스도 있습니다. 오늘 정말 사려니 숲은 대박. 기껏 2시간 이내를 예상하였던 나는 세 시간 넘는 사려니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세신간의 사려니 숲길 탐방을 마치고 버스 타고 제주시. 사라봉 오름을 가려고 합니다. 나야 올레 18코스에서 올라 간 곳이지만 일행 한 분이 가고자하여 그 곳을 찾아 갑니다. 시외버스 16호 광장에서 하차. 제주 국립 박물관 앞입니다. 전에 제주 왔을 때 음식점 찾다가 실패한 곳이기에 걱정입니다. 다행히 축구 전지 훈련장 건너 새로 생긴 음식점에서 해물 뚝배기를 먹었는데 별로입니다.
점심 후 국립 제주 박물관을 탐방합니다. 그런대로 충실한 박물관입니다. 지난 해 경산 박물관에서 워낙 실망을 하였기에. 그러나 이곳은 국립이라서인지 나름 출실한 전시였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사라봉 오름을 오릅니다. 원래 별도봉이 한라산 조망이 좋은데 이곳 사라봉은 나뭇가지에 가립니다. 게다가 안개로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사라봉 내려와서 제주 여객 터미널. 추자도 배편을 알아 보았더니 9시 30분 들어 가고 4시 30분 나오는 것입니다. 풍랑이 문제입니다. 추자도는 목포를 오가는 배편에 들르는 곳입니다. 아내들과의 일정을 짜다가 추자도는 제외하기로 합니다. 원래는 계획에 있었는데 배편의 불안정이 문제라서. 나는 이제 거의 녹초입니다. 그저 숙소로 가서 쉬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그래서 버스타고 가자고 하였더니 일행은 소문난 맛집 산지천 식당을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내키지 않지만 늙은이 고집 부려 봐야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따라갔지요. 회 한 접시 물 회 하나. 아주 밥까지. 결코 싸지 않습니다. 싱싱하기는 합니다. 스끼다시 일체 없고 오직 회 뿐.
힘든 하루를 마치고 숙소에서 산행기 정리하는데 아직도 씩씩한 일행들로 약간의 야간 일정. 그래도 일찍 숙소에 온 터라 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4일차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