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대표팀이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NFC)에 소집된다. 금메달을 따려면 20명의 스쿼드로 20일 동안 8경기를 돌파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일정이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결정적인 실수로 재추첨한 조 편성에서 UAE가 들어오며 한국이 속한 E조의 무게감도 올라갔다.
악조건이 거듭되면서 훈련과 이동 로드맵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은 전술적 방향성은 손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인 명단을 발표한 지난 7월 16일 3-1-4-2 포메이션에 기반한 선수단 구성을 공개했다. 김학범 감독의 선수 구성으로 보는 전술적 무게는 공격에 실려 있다. 손흥민, 황의조(이상 와일드카드), 나상호, 황희찬에다 상황에 따라 이승우까지 공격으로 올릴 수 있다. 2장의 와일드카드를 공격에 쓴 것은 과거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보기 어려운 선수단 운영이다.
선수 선발을 놓고 여론의 갑론을박은 있지만, 김학범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한국을 상대로 극단적인 선 수비 후 역습을 펼칠 팀들을 상대로 개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공격수를 최대한 뽑았다. 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가 그랬듯 공격의 힘으로 상대를 완전히 누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황의조와 나상호는 현재 쾌조의 골 감각을 자랑하고, 황희찬과 이승우는 아시아권에서 수비수 1~2명은 어렵지 않게 제친다. 손흥민은 존재 자체로 상대가 수비를 더 뒤로 두게 할 것이다.
수비도 김민재, 조현우의 가세로 무게감이 높아졌다. 지난 2월 AFC U-23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허술한 포백 조직력과 미드필드 3선의 커버는 상대 카운터의 주된 공략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실리적인 스리백을 택하며 역습 시 숫자 싸움에서 밀리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려고 한다. 러시아월드컵에서 신들린 선방을 보인 조현우는 실점 확률을 한층 낮추려는 의도다. 미드필더진 구성도 수비 가담과 빠른 전환에 강점을 보이는 유형의 선수들 위주다.
이런 가운데 와일드카드나 유럽파의 가세 등을 통한 전력 상승효과가 없는 유일한 포지션이 있다. 양 윙백이다. 김학범 감독은 오른쪽 윙백에 김문환(부산), 이시영(성남)을 왼쪽 윙백에 김진야(인천), 이진현(포항)을 선발했다. 이들은 20일 동안 8경기를 소화하는 것이 목표인 김학범호의 계획에서도 가장 큰 부하를 받게 될 선수들이다. 스리백 전술에서의 측면 자원은 활동량과 커버 범위가 늘어난다. 4명의 선수가 최대한 로테이션을 돌아야 한다.
선발한 4명의 선수 중 전문 윙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문환은 윙포워드였다가 지난 시즌 故 조진호 감독의 주문 속에 윙백으로 전환했다. 김진야는 올 시즌 동계훈련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풀백을 보고 있다. 이진현은 측면 미드필더도 보지만, 중앙이 더 익숙한 선수다. 이시영 정도가 윙백과 스리백의 스토퍼를 보며 수비로 꾸준히 성장한 유일한 케이스다.
지난 3월 선임된 뒤 두 차례 선수들을 소집해 훈련을 진행하면서도 김학범 감독은 측면 수비 자원을 놓고 고민했다. 김한길, 강지훈, 이유현, 윤종규, 서영재 등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선수들도 소집했지만 만족 못 했다. 체력과 전환 속도가 김학범 감독이 원하는 중요 포인트였지만, 지난 3월 첫 훈련 때 소집된 선수 자원 중 살아남은 것은 김진야, 김문환뿐이다. 결국 K리그 챌린지를 중심으로 직접 발품 팔며 이시영을 찾았다. 남은 한 자리는 이진현을 멀티 플레이어로 활용하기로 했다. 김문환이 좌우 측면을 모두 볼 수 있어 위험도를 낮춘 선택이었다.
김학범 감독으로선 그나마 나은 선택을 했지만, 아시안게임 대표팀 전체 포지션에서 전문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프로 무대에서 이들이 제 포지션을 소화한 것은 길어야 두 시즌, 짧게는 반 시즌 정도다.
문제는 이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축구가 직면한 현상 중 하나라는 것. 모두 연령별 선수를 총망라할 수 있는 A대표팀을 제외하면 각급 연령별 대표팀은 하나같이 윙백, 혹은 풀백 자원 고갈에 골치를 겪는다. 한때 그 포지션은 한국 축구 최대 강점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90년대 한국 축구는 윙백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갔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이영표, 송종국, 이을용이 맹활약했다.
최근 이어진 주요 국제대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2016년 리우 올림픽과 2017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윙백 포지션에 항상 아쉬움을 표현했다. 공격 가담이 좋으면, 수비 위치 선정이나 피지컬이 아쉬웠다. 반대 경우도 많았다. 감독의 전술적 요구를 수행할 수준급 윙백은 손에 꼽을 정도고,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아예 핸디캡을 안고 가야 했다.
현대 축구 전술에서 윙백은 빌드업을 통한 경기 운영의 시작점이다. 공격 기술은 윙포워드 이상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체력과 피지컬, 축구 지능이 요구된다. 세계 축구 시장에서도 윙백의 몸값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단점 없는 선수여야 한다.
김학범 감독이 아시안게임 최종명단을 준비할 때 윙백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뽑을 와일드카드가 없었다. 대부분이 군문제를 끝내 동기 요소가 부족했다. 그 말은 현재 한국 축구에서 믿을 수 있는 와일드카드가 대부분 20대 후반 이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에 나선 윙백 자원은 이용(86년생), 고요한(88년생), 홍철(90년생), 김민우(90년생)으로 30세 전후였다. 그들 뒤를 이을 자원이 보이지 않는다.
K리그를 들여다봐도 성적을 내는 상위권 팀들의 윙백 자원 대부분이 비슷한 연령대다. 전북은 이용과 최철순(87년생)이, 경남은 유지훈(88년생)과 이광진(91년생)이 보고 있다. 수원은 이기제(91년생), 제주도 박진포(87년생)가 주전이다. 울산은 김창수(85년생)다. 장호익(수원, 93년생), 이명재(울산, 93년생) 정도가 상위권 팀에서 주전 윙백으로 활약 중인 20대 중반 선수다. 서울은 후반기 반전을 위해 윤석영(90년생)을 긴급 임대해 와야 했다. 정상급 선수 수급이 어려운 하위권 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어린 윙백을 활용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을까? 육성 단계에서 전문적 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전문적 교육이 가장 적다던 골키퍼조차도 최근 들어 많은 팀이 전문 지도자를 확보하며 수준을 높여가지만 유독 윙백 포지션은 그런 지식과 훈련이 떨어진다. 오히려 패스 훈련 빈도가 올라가 일정 레벨 이상의 미드필더가 배출되고 있지만, 윙백은 정반대 상황에 쳐해 있다. 여전히 학원 축구 대다수에서 윙포워드를 보다가 경쟁력이 떨어지면 윙백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축구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윙백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많아지지만, 그것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성인 무대로 오며 경쟁력을 잃는 것이다.
당장 성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프로 무대의 상위권 팀이 선수 발굴에 실전 경기를 투자하긴 어렵다. 그 얘기는 기량 면에서 준비되지 않은 선수에게는 높은 수준의 경기를 통해 성장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윙백은 골키퍼와 더불어 교체가 가장 적다. 공격수처럼 출전 시간을 나눠 갖기도 어렵다. 김학범 감독이 가까스로 최상의 선택을 했지만, 윙백 자원은 아시안게임 성공의 가장 큰 변수다. 과연 이 문제가 그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표팀 지도자의 탓일까? 수년째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윙백 육성에 대한 축구계 전체의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글=서호정
사진=대한축구협회, 프로축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