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정리:2000.11.26
11월26일:화엄사(08:00)-써나무터(08:30)-무넹기(10:10)-노고단산장(10:20)-노고단고개(10:30)-중식-출발(13:00)-14:30(연기암)-화엄사(15:00)
화엄사 코스로 나는 20년전 지리산에 첫 산행으로 입문하였다. …중략… 밤새워 달려온 완행열차는 이른 아침 섬진강의 운무와 함께 지리산의 들머리인 구례구역에 도착하였고, 오전부터 화엄사에서 시작된 산행은 해가 질 무렵에야 노고단에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며 가슴이 한없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군용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지새웠는데, 그때 함태식 선생님이 지키는 허름한 노고단 산장의 長明燈(장명등) 불빛을 보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음날 노고단에서 지리산 주능을 따라 걸으며 치마 주름처럼 겹겹이 펼쳐지는 산줄기의 파도에 나는 한숨을 토했으며,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깊고 깊은 피아골 계곡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 이름조차 모르며 셀 수 없이 수많은 골짜기가 있음에 다시 한번 놀랐다.”
<지리산 이야기> 홈페이지를 열면서..
오랜만에 처남과(친구분) 산행이 약속되었다. 병원 진료로 항상 바쁜 처남과의 산행은 조계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이후 지리산행은 올해만 두 번째이다. 새벽 일찍 만나 구례로 떠난다. 빛고을의 휴일은 한산하다. 벌써 차는 서늘한 새벽 공기를 찢고 어둠을 가르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오늘 날씨는 맑다고 예고되었다. 물 좋고 산 좋고 인심 좋은 곡성을 지나 섬진청류가 흐르고 전라선 기찻길과 평행선을 이룬 잘 뚫린 국도를 달린다.
압록을 지나 구례구. 벌써 지리산의 품 안에 안겼다. 구례 화엄사에 도착하니 8시. 배낭을 꾸리고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산행 준비를 한다. 아직 산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화엄사 일주문 옆길 등산로로 접어든다. 입구엔 사람 키보다 훨씬 웃자란 산죽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다. 그러나 잘 포장된 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만 오르면 인적없는 호젓한 등산로가 반기며 화엄사 돌계단 바윗길이 시작될 것이다. 화엄사 길은 소백산 천동골 등로와 비슷하여 돌길로 시작하여 돌길로 끝난다. 아마 무넹기까지 이 돌길은 화엄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산님들에게 제법 힘이 드는 난 코스로 기억될 것이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계곡 길은 사실 매력은 없다. 뱀사골의 아름다움도 없으며 피아골의 화려함도 없다. 더구나 지금은 노고단을 성삼재에서 오르면 쉽게 오르기 때문이다. 날씨가 풀린 탓이라 등과 이마엔 벌써 땀방울이 흐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재킷을 배낭에 구겨 넣는다. 정면 하늘을 보니 저 멀리 노고단의 주능이 까마득하다. 오늘의 산행은 배낭도 발걸음도 가볍다. 여름과 가을의 풍요로움도 모두 삼켜 버린 지금은 초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엔 잎 하나 없고, 옷을 벗어 버린 나목들이 쓸쓸하게 보일 뿐이다.
가파른 돌계단을 헉헉 되며 오른다. 너무 힘이 들어 사람들의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해 코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속 오르니 전망 좋은 눈썹바위. 아래를 내려보니 섬진강과 비옥한 구례 벌판이 조화를 이루며 화엄사 계곡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이젠 다 올랐다. 눈썹바위를 지나자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큰길을 만난다. 휴일이라 많은 산님들이 노고단 산장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오르고 있다. 무넹기. 무넹기는 물을 건너보낸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 미나미 총독 때 큰 가뭄을 맞이하여 노고단의 물을 구례 벌판의 마산 저수지에 가두기 위해 만들었다는 무넹기. 즉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의 흐름을 위해 도랑을 팠고 심원계곡으로 내려갈 물을 인위적으로 화엄사 계곡으로 흘러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무넹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 산장까진 2시간 20분이 걸렸다. 노고단 산장 앞엔 많은 산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고단 고개에 올랐다. 산님들이 탄성을 지른다. 초소엔 국립관리공단직원이 나와 노고단 정상 등 더 이상의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눈앞엔 웅장한 반야봉이 모습을 보이고 저 멀리 천왕봉까지 주능은 희미하고 아스라이 보인다.
노고단.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이곳 노고단에 서양 선교사들이 몰려들어 50여 동의 별장을 짓고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시원한 피서를 하며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교사들과 가족들을 우리 조선사람들이 약간의 품삯을 받고 대나무 들것과 지게에 올려 황전마을부터 노고단까지 올라왔다고 하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이 별장들은 1948년 여순 병란 때 섬진강을 건너 문수골로 노고단을 오른 반란군 근거지가 되었다가 그해 겨울 국군토벌군이 들어와 부서지고 불태워졌다.
산장에 내려와 점심 준비를 한다. 식사 전에 먼저 소주 한잔으로 속을 푼다. 잘 끓인 잡탕 찌개를 안주로 삼아 식사와 함께 마시는 오랜만의 반주가 정말 좋다. 점심을 마치니 갑자기 흐려지며 하늘이 어두워진다. 바람도 쌀쌀하다. 곧 함박눈이 펄펄 날릴 것만 같다.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진다. 1시가 되어서야 많은 산님들을 뒤로 한 채 화엄사로 하산을 한다. 아직도 성삼재에선 노고단으로 산님들이 연이어 오른다. 조금 전에 올랐던 호젓한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샛길로 빠진다. 가파른 경사길이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력은 없다. 그래도 성삼재에서 버스를 타고 화엄사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화엄사 계곡은 서서히 긴 지리산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성삼재 도로가 1988년 새로 개통된 후 화엄사 계곡은 인적없는 호젓한 등산로로 다시 태어났고, 심한 몸살로부터 해방되었다. 따라서 등산로 전 구간이 깨끗하게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린 후 성삼재 도로가 결빙되면 화엄사 계곡은 또다시 산님들의 지리산 종주의 시발점 노고단 들머리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화엄사 부설 암자 연기암을 들러 본다. 화엄사에 내려오니 휴일을 즐기는 가족 단위의 많은 산님들로 붐빈다. 대표적 관광지로 유명한 지리산의 천년 대찰 화엄사. 그동안 자주 들른 터라 화엄사 탐방은 생략한다. 구름에 휩싸인 노고단을 바라본다. 아득하고 까마득히 보이는 나의 첫사랑 지리산 노고단. 아쉽지만 뒤로 한 채 지리산 품을 떠난다. 구례구로 나간다. 곡성 섬진강 변 식당에서 은어 소금구이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처남과 그동안 못 나누었던 산정 담을 나눈다. 지리산 구석구석을 밟았던 처남과의 대화에 매번 쾌감을 느낀다. 지리산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나눈다. 섬진강의 명물 은어 맛도 일품이다. 산행 후 뒤풀이 술맛이란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진미를 알 수 없으리라.
첫댓글 이글를 읽으므로써... 더욱더 화엄사에서 노고단코스가 가보고 싶어지네요.
언젠가는 가고 말리라......!ㅎ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