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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의 미소
아석호가 집의 텃밭에다 처음으로 콩을 심고 나서 가뭄이 드는 바람에 날마다 식전에 물을 주다 보니 어느 결에 콩 싹이 아이들 키만큼이나 잘 자라기 시작을 하였다.
그런데 이웃 아저씨가 와서 보시더니 순이 너무 웃자라면 콩이 열리지를 않으니 순을 자르라고 해서 다음날 아저씨의 말대로 새벽에 일어나자 바로 낫으로 콩 순을 잘라내다가 낫질이 서툴러서 그만 왼손 둘째손가락을 베었는데 피가 분수처럼 솟아 올라가는 것이어서 다급한 김에 119 에 신고를 하였고 불과 10분 만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도착을 한 것이다.
옛날에 아버지가 쇠꼴을 베실 때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을 낫이나 풀에 베어도 끄덕도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들인 이석호가 벤 손가락의 부위는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깊고 인대를 자른 탓으로 그냥 놔두면 손가락이 꼬부라질 수가 있다고 하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멀쩡한 손가락을 베어서 잘못 치료를 했다가 불구가 된다니 이석호는 그 말에 겁을 집어먹고는 의사의 말대로 수술을 하기로 한 것이다.
수술 날짜가 결정되자 하루 동안 금식을 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수술로 알았는데 전신마취까지 하라고 하니 이석호는 그것이 두려워서 의사에게 마취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묻자 의사는 수술의 제일 조건은 마취라고 하면서 의사의 지시에 따르라는 것이다.
이석호가 마취에 대해서 공포를 갖는 것은 언젠가 친구 하나가 심장 수술을 받다가 깨어나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입원기간을 두 달 동안이나 하라는 것이니 그러다 보면 그가 하는 사업에 지장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가 지금하고 있는 자전거 대여업이라는 것은 여름방학이면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고 여름철 장사로는 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는데 병원에 오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난감하였지만 그렇다고 입원을 포기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의사의 지시대로 금식을 하고는 수술을 받았는데 전신마취를 하였지만 홀연히 깨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사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매일같이 위험을 안고 살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할 만큼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같은 입원실에 입원한 사람들의 사고 경위를 보아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와 접촉사고를 내고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진하는 차의 뒤를 지나다가 다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멀쩡하게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달려오던 차가 뒤를 받아서 목을 심하게 다쳐서 온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릴 징조인지 입원을 한지 일주일 만에 경리를 맡았던 직원의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고향인 제천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연락이 왔던 것이니 이 석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할 수 없이 외출을 해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였으나 의사는 손가락을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수술한 부위가 다시 벌어질 위험이 있으니 외출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석호는 아무래도 의사의 말을 듣다가는 죽도 밥도 될 것 같질 않아서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기로 하고 의사와의 면담을 요구하였다.
저녁때 겨우 담당 의사를 면회할 수가 있어서 부득불 퇴원을 해야겠다고 하자 의사는 이석호를 빤히 바라보더니 돈이 귀하냐. 생명이 귀하냐를 따져 묻는 것이다.
“ 선생님 여북해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의사는 손가락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수술한 부위가 터지게 되어 있으니 본인이 알아서 결정을 하데 손가락 병신이 되려면 퇴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회사의 일로 고민 중인데다 현재 부사장 격으로 업무를 총괄하는 박동춘이 날마다의 현황을 일과가 끝난 후에 알려 주어서 그냥 저냥 돌아가긴 하였지만 수익에 대한 것을 살펴보니 예상과는 달리 수입이 줄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매사에 주인이 없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가 생각한 것과 는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것이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하였다.
그래서 이석호는 생각다 못해서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일단은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의사는 자기도 고집이 세긴 하지만 보통 고집쟁이가 아니라면서 젊은이가 손가락불구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면서 치료만이라도 열심히 받으라고 하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환자를 한사람이라도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서 그렇게 위협을 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석호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법대에 진학원서를 낼 때만해도 그는 일선 공안 검사를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런 꿈을 갖게 된 동기는 경찰관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6.25때 후퇴를 하시지 못하고 산속에 숨어서 지날 때에 지방 빨갱이들의 밀고로 할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경찰가족으로 인민재판에서 회부되고 거기에서 사형언도를 받고는 그날로 총살을 당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꿈을 무산시키는 첫 번째 결과가 나왔던 것이니 그것은 이석호가 서울 법대에 응시를 하였으나 1차로 불합격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실망을 하고는 그 다음해에 다시 도전을 하였으나 실패를 하게 되어 이듬해에는 할 수 없이 지방대 법대에 응시를 하고 보니 거기에는 무난하게 합격이 되는 것이다.
그는 그제서야 학교를 탓하지 않고 어디서나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는 매일같이 학과 공부와 병행해서 고시준비에 몰두하면서 3학년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그가 생각한 법관의 꿈이 차츰 허물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그의 선배 법관 지망생들이 10년을 공부하고도 합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석호는 아직 나이도 있고 자신도 있긴 하였지만 날마다 그런 선배와 친구들을 한두 명 대하다보니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펼쳐도 머리로 들어가는 것이 없이 공상만 생기는 것이어서 그는 과감하게 목표를 수정하고 공무원시험에나 응시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석호는 대학을 졸업하자 그 해 공무원 시험에 응시를 하였는데 공무원시험 과목은 고시공부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거기에도 경쟁력은 대단하였다.
그런데 응시하던 첫 해에 운이 좋게도 합격을 하여 3개월간의 연수를 마치고 마침내 서울시 공무원으로 당당하게 취직을 한 것이다.
공무원이 되면서 비록 법관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공직자로서 임무를 다 할 것을 선서하고 보니 그것이 또한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이석호는 3년간을 근무하다가 업무가 가장 많다는 총무과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거기에서 서울시 발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행정에 반영을 시키다 보니 윗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을 하였다.
그는 공무원으로 기왕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행정실무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알아야 하겠기에 야간대학원에 개설된 행정사무 양성과정을 수료 하였다.
공무원이 1년 중에 가장 바쁜 때는 연말정리를 하는 12월이었다.
연말정산에 신년도 계획수립을 하느라 어떤 때는 밤새움까지 하는 날이 많았는데 하루는 직속상관인 박주홍계장이 이석호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면서 퇴근 후에 어느 장소로 오라는 것이다.
계장님이 모처럼 말을 하는데 거절할 처지도 되지 못하여 시간에 맞추어서 만남 장소엘 가서 보니 그곳은 으리으리하게 장식을 한 요정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키도 크고 몸집이 뚱뚱한 분으로 그 분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서니 거기에는 계장님이 이미 와서 있었다. 잠시 후에 한복을 차려입은 어여쁜 색시 세 명이 문지방 너머에서 “인사 올립니다. 하면서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이다.
“ 계장님 어떻습니까. 분위기가 괜찮지요. 오늘 저녁 마음대로 잡수시고 마음대로 회포도 풀으십시오. 하하.”
방금 자기를 안내하던 분은 박계장님에게 깍듯하게 대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모 협동조합의 조합장으로 저녁을 사게 된 동기는 최근에 여러모로 박계장님이 편리를 봐 주었기 때문이라고 토를 달았다.
조합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요리상이 들어오는데 실로 저녁상치고는 최고급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석호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 분이 왜 계장님을 깍듯하게 대접을 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이석호는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 불안하였지만 계장님은 자꾸만 술을 권하는 것이다.
“ 이 주사.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우리 과의 베트랑이 이주사라는 것 알고나 있나. 그렇게 귀한 몸이기 때문에 오늘 다른 사람들은 다 제쳐놓고 이렇게 불은거야. 알지. 하하”
“ 계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뭔 일을 제대로 한 것이 있습니까.”
“ 하하 .아직도 모른단 말이야. 일전에 아이디어 공모한 것 당선되어 상금까지 타지 않았어. 그 바람에 이 박계장도 한 등급 올랐고 국장님께 칭찬을 받았단 말이야. 그 아이디어를 인정해 주신 분이 바로 이 조합장님이시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 잘 모시라구 알았지?”
박 계장님은 그런 일로 고무되다 보니 요즘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석호가 내부 감찰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앞서 만났던 조합장이 횡령 사건으로 입건이 되었으며 입찰과정에서 담합된 증거가 포착이 되어 담당 공무원이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자기 과의 일이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다.
이튿날 박계장이 그 선상에 놓였다는 말을 들은 이석호는 자신이 제대로 상관을 모시지 못한 책임도 있는 것 같아서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후 박계장과 이석호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박계장은 변명의 여지없이 징계를 받아 다른 부서로 이동이 되었고 이석호 또한 경고를 받고는 구청으로 좌천이 되었던 것이니 벌을 받은 것이 창피스럽고 동료들에게 미안하여 도저히 더 이상 근무를 할 의욕이 나지를 않아서 그렇게도 애착이 가던 직장이지만 그 자리에서 사표를 쓰고 말았던 것이다.
이석호가 사표를 낸다고 하자 친구들이 그런 일로 고만둘 필요가 있느냐면서 만류를 하였지만 그로서는 젊은 놈이 이 직장 말고 다른 직장이 없겠느냐면서 기어코 직장을 고만 둔 것이다.
막상 사표를 내고 보니 당장 집에서 할 일이 없어서 이따금 강가로 나가서 낚시를 하면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니 그런 낭만도 그에게는 필요할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숲속에 들어 누워서 떠다니는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낮달이 서산으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너무도 신비하여 얼른 일어나 앉아서는 기도하듯이 합장을 하였다.
이석호는 우주 공간에 떠있는 하얀 낮달이 어쩌면 자신의 처지와 같이 외롭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가롭게 하늘에 뜬 별과 달을 쳐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이석호는 한동안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쉬다가 밤낮으로 빈둥대고 있을 수도 없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중에 보험설계사를 하게 되면 공직자처럼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불원간 교육보험설계사 시험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는 바로 응시원서를 출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험 날 장소엘 가서 놀란 것은 학사 출신들이 그렇게도 많이 응시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석호는 그렇지만 시험만은 자신을 가지고 본 결과 예상한 대로 합격이 되었고 1개월의 연수가 끝난 후에는 바로 발령을 받게 된 것이니 또 다른 희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인생살이 두 번 째로 대하는 직장이라 이석호는 조심스럽게 동료들의 말을 새겨듣고 본인의 인지력을 동원해서 적응하려 애를 쓰다 보니 차츰 공무원 역할과는 다소 달랐지만 거기에는 개개인의 특징을 파악하는 안목과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화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석호는 한동안 동료들의 눈치를 보면서 나름대로의 보험설계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 2년이 지나자 예상외로 고객확보를 다수 할 수가 있었다.
그때 이미 이석호의 나이는 30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친하게 지나던 친구가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아가씨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으니 그는 아닌 밤중에 웬 아가씨냐고 하자 친구는 나이도 찼는데 장가를 들어야지 언제까지 일에만 몰두를 하느냐면서 아무 소리 말고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다.
이석호가 그 소리를 듣게 되자 자신도 이따금 그런데 대해서 문득 문득 생각한 바가 있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일이 생각이 나는 바람에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석호는 원래가 내성적인 성격에 초등학교 입학 때만 해도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부끄럼이 많았고 시장을 간다고 해도 혼자 다니지를 못하고 늘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만 다녔다.
그러다가 반이 올라가면서 차츰 그의 성격도 변하기 시작을 하였으니 4학년 때에 김혜영이라는 짝꿍을 만나서 부터였을 것이다.
한번은 김혜영이가 저의 집에를 가자고 해서 갔더니 혜영이 어머니는 짝꿍이 왔다면서 몹시 반기시며 혜영이와 좋은 친구가 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혜영이는 겁이 많아서 동네를 지나다가 개를 만나도 깜짝 놀라고 남자아이들이 장난치느라 소리를 ‘빽’ 질러도 놀라는 아이니 네가 혜영이를 잘 돌봐 주라는 것이다.
이석호는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가기만하면 혼자서 활동을 하는 편이고 공부는 중간 성적이지만 한껏 공작 시간만은 작품을 잘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게 되자 공작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주위에 모여들어 그때부터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을 한 것이다.
김혜영은 얼굴도 예쁘고 공부뿐 아니라 노래까지 잘 하여서 노래시간이면 혜영이가 피아노까지 치다 보니 반에서는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반에서 힘이 제일 세다고 으스대면서 친구들을 못살게 구는 우형식만은 김혜영이를 볼 때마다 재수가 없다고 놀리고 복도를 지나 갈 때에는 발을 걸어서 넘어뜨리기 까지 하더니 한번은 이석호가 보는 앞에서 혜영이를 또 놀리고 있었다.
“ 혜영아. 너 샌님 같은 이석호와 짝꿍 하지 말고 나와 짝꿍 할래. 내가 너의 심부름이라는 것은 다 해줄게 알았지.”
혜영이가 대꾸도 하지를 않자 우형식은 화가 나는지 갑자기 혜영이에게 달려들더니 치마를 덜렁 들어 올리자 혜영이의 빨간 팬티와 하얀 넓적다리가 들어난 것이다.
혜영이는 우형식을 노려보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는 “앙” 하고 울면서 주저앉는 것이었다.
이석호는 그 순간 화가 나고 우형식을 당장 메어다꽂고 싶었으나 그럴 용기가 나지를 않아서 그를 째려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식이가 이석호를 향해서 주먹을 한대 날리는 것이다.
“ 넌 뭔데 옆에서 사람을 째려보는 거야. 혜영이짝이라고? 그래 어디 한번 덤벼보시지.”
우형식의 느닷없는 주먹세례를 받고 보니 볼따구니가 얼얼하긴 하였지만 생각보다는 주먹이 강하지를 않자 이석호는 금방 이 자식을 하고는 겨뤄볼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 뭣이라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
그야말로 이석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용기를 내서 황소같이 내달아서 우형식의 면상을 후려갈긴 것이다.
그러자 그렇게 힘자랑을 하던 우형식이 저만치 나가떨어지는데 코에서는 피가 솟아나고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 너 사람 웃업게 보았어. ”
이석호는 내친김에 발길질을 가하려 하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몰려와서는 뜯어 말리는 것이다.
" 석호야 네가 이겼어. 쟤가 맹물인 것을 너는 아직 몰랐구나.“
아이들이 웅성대는 속에서 우형식은 슬며시 일어나더니 우물가로 기다 싶이 가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 혜영이를 반에서 놀리는 아이는 없고 이석호는 그 후 반에서는 영웅시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석호는 그와 힘을 겨룬다면 힘이 부칠 것 같아서 감히 덤비기를 꺼렸었는데 그는 생각보다는 힘이 약했던 것이다.
그 후 혜영이는 이석호를 자주 저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아버지가 사다주신 인형을 선물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밥도 같이 먹고는 강가에 나가서 모래밭에 앉아 공기받기도 자주 하였다.
한번은 날이 몹시 더운 날 개울가로 나가서 공기받기를 하자던 혜영이가 이석호에게 심심하니 소꿉장난이나 하면서 놀자고 하더니 신랑각시노름을 하자는 것이다.
“신랑 각시 노릇을 어떻게 하는 건데.”
“ 얘. 넌 아직도 그런 소꿉장난 한번 해보지도 않았단 말이야? 내가 가르쳐 줄게 .”
김혜영은 그리고는 이석호에게 납죽한 강돌을 주워오라 하고는 모래밭에다 금을 긋고 줄을 따라서 돌을 놓고 칸을 만드니 방이 되고 다른 간에는 부엌이라고 해서 불을 때도록 돌 솟을 걸어 놓는다.
“ 너는 지금부터 신랑노릇을 해야 하니까. 지게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저기 부엌 앞에다가 부려 놓으란 말이야. 그러면 나는 네 각시가 되어 그 나무로 밥을 할 테니까. 알았지?”
이석호는 김혜영이가 시키는 대로 강가에서 풀뿌리와 장마때 떠내려가다 걸려서 바스러진 나무 조각들을 줏어가지고 부엌 앞에다가 놓으면서 혜영이가 제 색시노릇을 한다는 말에 어린애였지만 싫지는 않았다.
김혜영은 풀잎을 뜯어서는 밥을 지어 돌상에 차리고는 이석호를 부르는 것이다.
“ 서방님. 어서 오시와요. 점심 드셔야지요.”
김혜영이 깎듯이 이석호를 서방님이라고 부르자 이석호도 덩달아 혜영이를 각시라 부르고 싶었다.
“ 각시도 같이 듭시다.” “ 호호. 석호야. 내가 지금 네 마누라 노릇을 하니까. 정말 부부 같지 않니?”
이날 소꿉장난을 하고 나자 혜영이는 석호에게 또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 나 오늘은 가기 싫은데.”
“ 왜 내가 벌써 싫어진 거야. 응?”
이날 혜영이네 집엘 갔더니 혜영이는 엄마에게 강에서 소꿉장난 한 얘기를 하면서 신랑각시노릇을 하였다고 까지 자랑을 하는 것이다.
“ 그래. 석호가 너에게 잘 해준다니 이다음에 정말 신랑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원.”
“ 엄마. 이다음의 일은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 같아서는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 혜영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는 것 같구나. 호호.”
김혜영의 아버지는 순경으로 이석호네 집보다는 잘 사는 편이었다.
그런데 혜영이가 6학년 때 아버지가 순경에서 경사로 승진이 되자 부득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석호는 혜영이가 간다는 소식에 갑자기 맥이 풀리면서 그를 붙잡고 싶었으나 그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보니 은연중에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혜영이는 그날 저녁때 이석호를 만나자고 하더니 너와 헤어지게 된 것이 서운하다면서 석호의 손에다가 무엇을 쥐켜 주는 것이다.
“ 이게 무어야.”
“석호야. 나 아버지를 따라서 이사를 가게 되는데 나 잊어버리지 말라고 사진 한 장주는 거야.”
“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데?”
“ 내가 가게 되면 연락을 할 테니 까 우리 자주 편지하자 .”
혜영이는 그날 처음으로 이석호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혜영이의 손을 잡고 보니 그의 손은 아기 손처럼 얄쌍하고 향기가 나는 꽃잎을 만질 때처럼 보드라웠다.
혜영이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던 이석호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제자리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혜영이와 그렇게 헤어지고 난후에 이석호는 저녁마다 혜영이를 생각하고 그와 헤어질 때 선물로 거울이라도 하나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봄과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몇 번 지나도 혜영이는 그 후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도 혹여 길가에서 여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혜영이도 저만큼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다.
혜영이가 이사를 간곳을 알게 되면 찾아가고도 싶었지만 혜영이는 가다 한에는 일자소식을 보내지를 않는 것이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혜영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석호는 다른 여자들을 거들떠 볼 사이도 없이 일에만 열중을 하여 왔고 주위에서 여자를 소개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혜영이가 늘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한쪽에서는 이석호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자 혹시 옛날의 궁중의 환관처럼 거시기에 병이 있는 것은 아니야 하면서 수군대기도 하였지만 여직원 중에 두어 명은 이석호에게은근히 접근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역하였다.
그렇지만 늙은 총각이란 딱지가 붙은 당사자인 이석호는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를 않았다.
“ 이석호 오늘 저녁 약속 알지?”
그날 친구는 “별이 반짝이는 다방”으로 오후 6시까지 하고는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이석호는 그날 따라 사업상의 모임이 있어서 서둘러서 오전에 마치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다방엘 나가니 그 시간까지 친구는 나타나지를 않았는데 20분 가량을 기다리자 그가 들어서는데 그 뒤에는 한 아가씨가 따르고 있었다.
“ 인사하지. 이쪽은 모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푸리 렌서로 일을 하고 있는 미인이야.“
이석호도 일어서서 “반갑습니다.” 하고는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친구는 인사 치례만 몇 마디 하고는 눈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 여봐. 좀 더 있다 가지 그래. ”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 버리고자 그를 불렀으나 친구는 들은 체도 하질 않은 채 문밖으로 살아진 뒤였다.
생전 처음으로 선을 보게 된 이석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였는데 아가씨가 조근 조근 말을 걸어 주어서 겨우 대답을 하였다. 아가씨의 첫인상은 이석호가 그리는 여성상으로는 최고라고 할만치 마음에 들어 소개해준 친구가 너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이날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오랜 시간 서로의 지나온 과거를 들춰내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리고는 헤어질 때에 다음 만날 장소와 시간약속을 하면서 두 사람 중에서 어느 한쪽이 마음에 없으면 나오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석호가 아가씨와 헤어지고 나자 친구는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바로 나타났는데 첫마디가 어떠냐는 것이다.
“ 예술 작품 감상을 한 것도 아닌데 뭘 묻냐?”
“ 어쭈 .사람을 제대로 본 것 같네. 그래 마음에 들어 ?”
아닌 게 아니라 이석호가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한 사무실에서 지나던 여자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이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다.
“ 야! 너 이만한 여자를 만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 인물 좋지. 학벌 좋지. 그리고 마음씨가 비단결 같아서 같은 직장의 총각들이 침을 게게 흘린다는 소문까지 난 아가씨라는 것을 알아야 해. 인물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매년 학교에서 5월 달에 뽑는 ‘메이퀸.으로도 뽑히기까지 한 경력이 있다더라.”
“ 그런 미인이 왜 지금까지 임자를 못 만났을까.“
“ 너 모르는 게 너무도 많구나. 원래 시장에서도 값이 비싼 물건은 뒤에 숨겨 놓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여자의 주가가 얼마나 높은지 넌 모를 거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과 같이 아무리 잘 난 여자라 할지라도 누가 소개를 해야 지 물건이 팔리는 것 아니니? 어쩌면 너 같은 샌님을 만나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야. 하하 .”
친구는 이날 이석호를 맥주 집으로 유인하였다.
“ 친구야. 여자를 잘 만나야 해.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구. 주인애비 노릇을 제대로 하면 술이 석잔 이지만 잘못 하면 뺨이 세대란 것을 너도 잘 알겠지.”
이석호와 친구는 이날 밤을 새워서 맥주를 마셨는데 그 바람에 친구는 그 다음날 하루종일 을 앓았다는 것이다.
며칠 후 약속을 한 날 이석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지금까지 이석호가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한때 검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공무원이 되었고 다시 이것을 고만두고는 다른 직업을 택하고 살아오면서 어쩌면 생존경쟁에만 머리를 썼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연령이 지났음에도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이제 와서 후회되기도 하였지만 늦게나마 친구가 아가씨를 소개를 한 것이니 친구의 성의를 보아서라도 다시 만나보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아니 그 아가씨가 첫눈에 들어서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을 굳힌 것이다.
김영화라는 아가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석호는 모처럼 거울 앞에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넥타이를 매려고 하니 좀처럼 자연스럽게 매어지지를 않았다.
시간이 급한 중에 몇 번이나 시도를 하다가 잘 매어지지를 않자 가을 타작 때 새끼줄로 볏가마니를 묶듯이 얽어매고는 서둘러서 다방엘 들어가니 다방 안은 는개내린 새벽의 연못처럼 조용한데 다만 슈펠트의 교향곡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바람에 마음은 차분해지는 것이 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이석호는 시계를 보면서 거울 앞에 다시 서서 넥타이를 고쳐 매보았지만 비뚤어지기는 매 한가지였다.
“이만하면 신랑감으로 괜찮은 편인가? ”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자기 평가를 해 보던 그는 살다가 별일을 다 해본다면서 혼자 쑥스러워 하였다.
사실 그는 아침부터 모처럼 만나려는 아가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마치 닭장에서 숫탉이 암탉을 호릴 때처럼 별 별 수단을 다 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평상시에는 꿰어진 양말까지 신던 그가 빨간 줄무늬가 섞인 곤색 양말을 사서 신었고 구두는 낡은 것이지만 약을 칠해서 반들거리게 광을 내고 보니 새신이나 진배없었다.
약속 시간 10분이 지나자 이석호 는 몇 번이나 현관에 온 신경을 쓰고 아가씨가 들어오면 어떻게 자세를 취할 것인가를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이석호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반면에 기다리는 아가씨는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았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아가씨가 나타나지를 않자 마음이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을 하였다.
그날 약속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로 나타나지 않기로 하였는데 자기는 이미 1시간 전 부터 나와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아가씨에게 빠져도 흠뻑 빠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
다시금 생각을 해보니 자기에게는 매력이라고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는 작은 편이고. 직업은 보험설계사. 누가 알아주기나 하는 직업인지 모르지만 게다가 안경까지 걸친 얼굴이고 보니 내 세울만한 것이 한 가지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실한 마음 한가지와. 무엇이건 하려고 생각을 하였으면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박력만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를 못할 정도라는 것만은 자랑하고 싶기도 하였다.
40분이 자나도 김영화란 아가씨는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 너. 그날은 기다리는 인내심을 보여야 해.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거든.”
50분이 지나자 더 이상 친구의 말이 미덥지가 않아지고 10분만 더 기다리다가 정각이 되면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방의 괘종시간이 마침내 1시간을 땡하고 울리는 것이다 .
이석호는 기지개를 크게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니 너무도 아쉽고 서운하였다.
문득 처음 아가씨를 만났을 때의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 호수같이 맑게 빛나던 검은 눈동자를 그는 그날 무심코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저 눈빛을 오래도록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데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의 생각이 틀렸다면 아가씨는 자리에 나타나지를 않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늦게라도 혹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래도 10분은 더 기다려보아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주저앉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얼마동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가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눈을 떠보니 아! 거기에는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난 듯 한 모습의 아가씨가 꽃다발을 안고 들어서는데 다방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 아! 김영화씨로구나.’
이석호는 너무도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논산훈련소의 이등병처럼 벌떡 일어서서는 “오셨네요.” 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 오다가 뜻밖에도 친구를 만나는 바람에 이렇게 시간이 늦었어요. 호호. ”
그는 마치 늦은 봄날 갈참나무의 높은 가지 꼭대기에 앉아서 조잘대는 꾀꼬리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 저는 막 일어서려던 참입니다. “
“ 네? 성질도 급하셔라. ”
이석호는 방금 자기가 한 말과 일어서려던 행동에 대해서 계면쩍은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아가씨에 대해서 가졌던 불안한 마음이 봄눈 녹듯이 스르르 녹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날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해가 뜨는 날이거나 달이 밝은 날이건 간에 스스럼없이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고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자 두 사람은 어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하기로 손가락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6개월 후 천사처럼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곱게 걸친 김영화의 손을 잡은 이석호는 당당하게 주례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 신랑. 어깨 좀 펴라. 왜 주눅이 들은 것 같아.”
“ 신부의 대가 세어서 그런 것 아니야. ”
“ 신부. 너무 웃지 말아. 웃으면 딸 먼저 낳는다고.”
“ 딸을 낳아야 부모님이 비행기를 타실수가 있지 .”
친구들은 신랑신부가 입장을 하는 중에 웃기느라 별 소리를 다 지껄이고 있었다.
이날 주례사가 길었지만 이석호는 꿈만 같은 결혼식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하게 선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지 몰랐다.
이석호는 원래 행동이 민첩한 편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학교 다닐 때에는 달리기에서 1등 한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뛰기 내기는 제로였다. 아무리 달려도 5등 안에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달리기는 정말 못하였다.
그런데 딱 한번 6학년 운동회 때에 장애물 경기가 있었는데 망을 뚫고 나가는 이 경기에서 이석호가 모처럼 1등을 한 것이니 운동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 석호가 1등을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그 후 부터 어떤 동문 모임에 나가서도 초등학교 때의 운동회 말이 나오기만 하면 이석호도 할 말이 있었다.
“ 정글을 뚫고 나가는 경기 있지? 내가 거기에서는 당연히 1등을 했다니까 그래. 내 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치 어망에 걸린 고기 새끼들이 몰려 있는 것 같더라니까. 하하.”
보험 설계사 10년 동안에 이석호는 남달리 높은 고객확보를 하는 바람에 회사에서는 일등 설계사로 자리를 잡아 보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한 10년쯤을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이 회사에 나가기가 싫어지는 것이었으니 한군데에 오래도록 머문다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들을 대한다는 일에 대해서 점차적으로 중압감(重壓感)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너무 이문만 따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석호는 어느 날 아내에게 자기의 뜻을 전달한 것이다.
언어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던 아내는 첫 대면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말을 듣고는 당신의 마음이 그렇다면 뜻대로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언질을 주는 것이다.
아내의 격려에 고무된 그는 바로 동문 선배의 알선에 따라서 CU 가맹점을 강원도 도청 소재지에 처음으로 입점 시키는데 성공을 하였고 이어 보험 설계사의 경험을 살려 1년 만에 매장을 시군으로 확장을 하였지만 3년간 운영을 하다 보니 24시간 영업이라는 게 말이 쉽지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달려들던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를 하는 것이어서 이 사업을 오래도록 지속하다가는 손해만 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중개인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명예를 넘겼던 것이다.
매사에 의욕도 앞섰지만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지 성공한 그가 이 일을 접게 되자 아내는 앞으로는 수익이 적더라도 머리 쓰는 일보다는 손쉬운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중에 다시 새로운 업종에 손을 대게 된 것이 스카이(자전거) 대여업이었고 서울의 대학생들이 MT장소로 가장 많이 선호한다는 강촌리에 있는 것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그가 이 업종을 대여 받아 초창기에 운영할 때만 해도 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몇 명에 불과하여 몇 년간은 많은 수익을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고랭지 채소의 수익이 많다고 하여 한때 많은 사람들이 많이 재배하는 바람에 값이 폭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후죽순처럼 여러 사람이 이 업종에 개업을 하다 보니 이익이라는 것이 별로 나지를 않고 있어서 이 업(業)에 대한 존속 여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는 동안 고생을 많이 하지 않고 순조롭게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내가 내조를 잘 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도 자기의 업무가 항상 바빴기 때문에 남편에게 내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남편의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일을 도와준 것이다.
10분만 빨리 일어섰어도 지금의 아내를 영영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그는 지금도 아내만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근래에 와서 이혼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한 결같이 이석호를 부러워들 하는 것이다.
“ 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그런 복덩이를 안게 되었냐.”
그럴 때 마다 이석호는 잔잔하게 미소만 띄울 뿐인데 그 미소 속에는 남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 10분을 더 기다렸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그 진리를 모를 거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