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우표 한 장 붙여서 편지를 띄우며
(가을바람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수채화를 만나다)
이번 주가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기에 조금이라도 덜
붐비는 날을 택해서 7년 만에 개방되었다는 설악산
흘림골로 산행을 다녀왔답니다. 그곳에서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머지않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설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울적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종종 산책 나선 길에 여기저기 물들어 떨어진 예쁜
나뭇잎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하나씩
주워 와 방바닥에 뿌려놓으니 그대로 가을을 담아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쩜 이리도 예쁜지, 읽던 책 속에
하나씩 끼워 넣다가 어느 날엔 카메라를 챙겨 들고서
다시 집을 나섰답니다. 마실 물과 김밥 한 줄 들고
그다지 멀지 않은 산으로 발길이 향했는데 그곳에서도
예쁘게 물든 단풍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불타는 듯한 붉은 단풍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한 꼬마가 떠올랐습니다. 위아래 빨간색 옷을 입고,
신은 운동화까지 빨간색이었던 그 아이는 빨간색
가방을 메고서 아버지 자전거에 태워져 국민학교
입학식에 갔었답니다. 늘 붉은 단풍을 만날 때면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색바래지 않을 것 같은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의
물결도 만나고, 푸릇함이 남아있는 잔디밭에서 열린
작은 그림 전시회를 관람했을 때는 자연과 색채의
만남이라는 주제답게 그림의 색채도 다양하고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연이 그려내는 색채에
비할 수 있는 그림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서산을 물들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던 길에 가을바람 그네 삼아 팔랑이는 나뭇잎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을바람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특별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당장에라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은 나뭇잎도 가을바람이 그려주는
대로 해맑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가을바람이 선물로 주고 간 아름다운 수채화를 만날 수
있어서 오랜만에 마음이 설레었다면 그대는 믿을 수
있을까요? 지나온 많은 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가
사라집니다.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이 가을에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 순간은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될 것입니다.
한순간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사진으로 담았던 가을바람이 그려낸 아름다운 수채화를 벗에게 보여 드리오니, 마음에 닿을 때면 오랫동안 가을의
마법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을 그려 나가는 소중한 날들에 서로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언제라도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곱고 좋은 생각으로 가득한 행복한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사진,글 ©️비꽃(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