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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기대어
강 용 호 (명예교수, 생명공학과)
내가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알게된 것은 영남대학교 생명공학연구소의 국제심포지엄 행사 때이었다. 교내의 생명공학연구소는 1999년 10월29일에 한국연구재단의 중점연구소 사업에 선정이 되어서 향후 9년동안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생명공학연구소는 매년 가을에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 있는 해외과학자들을 초청하여 국제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었다.
어느 해인가, 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한국의 가을풍경을 보여주기 위하여 심포지움 전날에 안동 하회마을을 다녀왔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독일에서 오신 과학자 한분이 어제 오후에 다녀온 하회마을의 황금빛 넘치는 농촌풍경을 자신의 세미나 발표시간에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그 당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사진관에 맡기면 인화하는데 보통 3~4일이 소요되는데, 어제 오후에 찍은 사진을 어떻게 오늘 아침에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궁금해 하는 청중들에게, 그분은 손바닥만한 Canon 카메라를 보여주며 바로 이 작은 디지털 카메라의 놀라운 성능 덕분이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필름과 사진인화 비용이 부담이 되어서 한국은행에 다니던 누님이 사준 Pentax 카메라를 멀리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필름이 필요없는 카메라가 개발이 되어서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도 저런 디지털 카메라를 꼭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겨울방학 동안에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서 Nikon사의 Coolpix라는 작고 귀여운 카메라를 구입하였다.
필름이 필요없는 Coolpix 디지털 카메라는 모든 기능이 자동이어서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부담없이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되었다. 또한 찍은 사진을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각 삭제할 수도 있어서 정말 편리하였다. 겨울방학동안 Coolpix 카메라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지내다가 나는 다시 혼자서 귀국을 했다.
새로운 봄학기가 시작된 2005년 3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집에서 밀린 청소를 하다보니 점심때가 되어서 식사를 하고 학교 연구실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나니 식곤증이 심하게 와서 침대로 가서 잠시 눈을 붙였다.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미국에 있는 어린 아들과 딸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함께 신나게 놀다 보니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꿈속의 장면이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해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꿈속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은 미국에 가 있었는데 몸만 한국에 있었다. 생각과 몸이 분리되면서 우울증을 동반한 심한 감정적인 고통이 찾아왔다.
“지금 나 혼자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만약 ‘생각’이 원하는 대로 ‘몸’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면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 그냥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커서 호흡이 힘들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Coolpix 카메라를 집어들고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디로 가겠다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채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다.
따뜻한 봄날의 토요일 오후라서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다. 나는 생각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듯 달렸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았다. 그래서 가능한 차들이 없는 한적한 도로를 선택해서 달리다 보니 내차는 영남대학교 캠퍼스 남쪽에 있는 “상대온천”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상대온천” 주변 산지에는 복숭아 과수원들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분홍색의 복사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화사한 복사꽃이 눈길을 끌기도 하고, 정신없이 운전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기도 해서, 길가에 있는 어떤 과수원 근처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카메라와 함께 차에서 내려서 과수원 영내로 조금 걸어 들어갔다. 과수원 안쪽에는 서너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의 과수원에 왜 들어옵니까~”라고 소리를 지르면 들릴 수 있는 거리였다.
난 사진을 찍으려고 과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복사꽃이 눈길을 끄니 가까이 가서 관찰해 보고 멋있으면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복숭아 나무에 근접해 보니 복사꽃 보다는 나무 아래에 피어난 ‘할미꽃’에 더 호감이 갔다. 어릴 때 할미꽃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한 동심의 추억이 있어서 그것을 찍어보려고 카메라 화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할미꽃을 카메라로 확대해서 화면으로 보니 색상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가능한 잘 찍어 보려고 모든 신경을 할미꽃에 집중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여러번 눌렀다. 복숭아 나무 주위에는 할미꽃 외에도 이름모를 들꽃들이 많아서 하나씩 카메라에 담다보니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도로 옆이긴 하지만 남의 과수원에 들어와서 너무 오래 머무는 것 같아서 나는 과수원을 벗어나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갔다. 차를 타고 운전을 하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조금전 우울하고 고통스럽던 감정이 사라지면서 왠지 마음이 좀 자유롭고 편안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감정이 갑자기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난 단지 카메라로 사진을 몇장 찍었을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메라가 어떤 심리치료 효과를 준 것이 분명하였다. 카메라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효과를 줄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1)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팔과 다리 처럼 나를 구성하고 있는 일부이다. 나의 일부인 팔과 다리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듯이, 나의 일부인 ‘생각’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세계에서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한계성이 없다. 그러므로 ‘생각’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곳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2) 나의 일부인 팔과 다리가 같은 방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심한 고통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나의 일부인 ‘생각’과 ‘몸’도 같은 방향이 아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심한 고통이 발생하게 된다.
(3) 나의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가족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꿈에서 영상으로 나타났을 때, ‘생각’은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로 이동할 것을 요구했으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몸’은 그럴수가 없어서 저항하였다. 그렇게 ‘생각’과 ‘몸’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자 나에게 심한 감정적인 고통이 발생하였다.
(4) 야외로 나가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는 ‘생각’과 ‘몸’의 역활이 정반대로 작동하였다. 이번에는 ‘몸’이 먼저 카메라를 들고 앞서면서 ‘생각’이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생각'은 즉시 ‘몸'이 원하는 요구에 순응할 수 있었다.
(5)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20분 동안 '몸'과 '생각'의 방향은 서로 일치가 되었다. 그 결과 조금전 '몸'과 '생각'의 불일치로 말미암아 발생하던 고통이 사라지면서, 나는 마치 심한 고통에서 순간적으로 해방이 된 것 같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심리분석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를 통한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를 직접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후부터 다음과 같은 논리를 신뢰하게 되었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
카메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바꿀수 있다. 그러므로,
카메라는 감정도 순간적으로 바꿀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는 것은, 신라시대 때에 경산에서 태어나신 원효대사도 무덤에서 해골물을 마시며 경험한 일이다(현재 경산시 “삼성현” 공원을 방문하면 가상현실(Virtual Reality)로 원효대사의 이런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생각이 '나의 일부’가 아니고, '나의 전부’라고 믿는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을 바꾸면 ‘나의 전부'가 바뀐다고 믿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짧은 순간에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어떤 대상을 1/1000초로 찍었다는 것은, 1초에 그런 사진을 1000장이나 찍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카메라에서 1초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어떤 대상을 찍을 때는 보통 1/5000 ~ 1/30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짧은 순간에 발, 다리, 몸, 팔, 손, 눈, 코, 입, 생각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이 같은 목표를 향해서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도가 좋지 않거나, 흔들림이 있거나, 초점이 명확하지 않거나, 등등의 이유로 해서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을 수 없다. 특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려는 바로 그 순간에는, 호흡에 의한 손떨림까지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후회, 우울, 불안, 분노, 슬픔, 실망, 고민 등 부정적인 생각이 아무리 깊고 크더라도 중단될 수 밖에 없다.
감정은 생각에 의해서 창조되기 때문에, 아무리 짧은 순간일지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중단된다는 것은, 곧 부정적인 감정이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을 연속해서 찍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중단된 상태가 길어지면서, 어느 시점에 가서는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카메라에 의한 감정의 변화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사진을 취미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16년 9월에 서울 청담동 성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노인 한분이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와서 성당에서 진행하는 모든 장례식 절차를 따라 다니며 열심히 찍고 계셨다.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분에게 조용히 접근해서 “왜 사진을 그토록 열심히 찍으시냐고?” 물어보았다. 나의 질문에 그분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해주셨다.
“사실은 내가 몇년 전에 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아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장례식장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어요. 결혼식장에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장례식장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요. 그러나 유족들에게는 마지막으로 고인을 보내는 시간이기에 결혼식장 못지않게 중요한 순간입니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나는 자원해서, 지금까지 성당에서 진행한 모든 장례식에 참석하여 사진을 찍은 다음, 그것을 CD에 저장하여 유족들에게 선물로 보내줬습니다. 그 일을 계속하는 동안에 놀랍게도 내 몸에 있던 암이 저절로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으로 알고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답니다.”
그분의 이런 고백을 지금와서 다시 회상해보니, 카메라의 심리치료 효과는 소소한 미약한 것이 아니라, 불치의 암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 같다.
2005년의 따뜻한 봄날에 카메라가 주는 긍정적인 심리치료 효과를 발견하고 난 이후 부터, 카메라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아침저녁이나 주말에는 내 마음을 '카메라에 기대어'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며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조그만 사진을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이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Daum Blog’가 마음에 들었다. Daum Blog를 개설하려면 “이름”을 정해야 되어서, 나는 사진도 예술분야이니 “예술사랑”이라고 입력해보았다. 그러나 누군가 이미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술” 자를 생략하고 “예사랑”이라고 입력했더니 역시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 자를 생략하고 “예술랑”이라고 입력했더니 사용이 가능하였다. 그래서 나는 “예술랑(Artlover)”이라는 이름으로 Daum Blog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Daum Blog에 내 사진들을 ‘포토일기’ 형식으로 올리면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사이트 주소를 소개하였다. 그러자 초등학교 동기인 한 친구가 이 사이트에서 나를 부를 때 “술랑”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지만, 자꾸 듣다보니 왠지 친근감이 갔다. 그래서 그 친구 덕분에 나의 애칭은 “술랑(Sulrang)”이가 되었다. 간혹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 마다 나는 Coolpix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한 친구가 조그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좀 딱해 보였던지, 사진을 전문으로 하고 싶으면 큰 카메라로 찍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를 하였다.
나는 사진을 취미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카메라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말을 듣고보니 이제는 나도 큰 카메라가 필요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전자동인 Coolpix 소형 카메라 대신, 수동으로 타이머나 조리개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 큰 카메라로 찍으면 더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Canon 5D DSLR (Digital Single-Lens Reflex) 카메라를 구입하였다.
Canon 5D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파일 용량이 커서, Daum Blog 보다는 Daum Cafe 사이트가 더 적합하여서 2009년 7월에 Daum Cafe를 개설하였다. Daum Cafe에도 올리는 사진파일에 대한 용량제한이 있어서 원본사진을 그대로 올릴 수가 없었다. 보관한 사진을 나중에 재편집하려면 원본사진의 파일용량이 큰 것이 유리하였다. 인터넷으로 다른 사이트를 찾아보니 미국회사인 ‘야후’가 운영하는 Flickr.com 에서 원본파일을 그대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13년 7월에 Flickr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해외의 사진전문 사이트에 내 사진을 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의 사진전문가들이 찍은 사진들을 자주 감상하게 되었다. Flickr에는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사진전문가들이 소개한 놀랄만한 사진들이 수백억장이나 되었다. 그런 사진들과 내가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 보니 내 사진은 그야말로 순진한 초등학생의 그림 같은 수준이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서 미술분야에서 사용하는 구도, 색상, 채도, 명암 등에 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였다. 나는 미술분야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고, 사진기술을 정식으로 배운적도 없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진들만 열심히 찍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Flickr 사이트에 올린 내 사진에 관심을 보여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Flickr 사이트에 정성들여 찍은 사진을 올려도 아무런 반응들이 없으니, 마치 야구시합에서 날아오는 공을 맞추지 못하고 매번 헛스윙만 하는 허탈감이 들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었다.
Flickr 사이트를 개설한지 2년이 지난 2015년 7월에, "혹시 해외에 Flickr 사이트 말고 다른 사진전문 사이트는 없을까?"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500px.com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캐나다의 한 벤처기업이 만든 500px 사이트는, 사진을 취미로 하거나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서, 500px 사이트에 올라온 모든 사진들에 대해서 24시간이 지난 후 '평가점수'를 부여하는 아주 매력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런 특징이 마음에 들어서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500px.com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왜냐하면 사진전문가들이 만든 공정한 기준에 의해서 내 사진이 점수로 평가를 받는다면, "지금 내 사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또는 내 사진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지?" 등을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가 찍은 사진은 500px 사이트에서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최근에 찍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서 올려보았다.
위 사진은 2015년 7월 23일에 퇴계 이황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안동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100점 만점에 37.7점을 받았다. 사진분야에서 왕초보이긴 하지만 은근히 60점 정도는 기대했었는데 37점이라니~??? 내가 2005년 3월 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니 2015년 7월이면 약 10년 동안 사진을 찍었는데, 첫 시도에서 낙제점수인 F 학점을 받으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혹시 사진 평가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사진들을 더 올려보았지만 모두 60점 이하의 낙제점수를 받았다. 평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제 내 사진수준이 그런 것이 확실하였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하천에서만 놀다가, 여름방학 때 부산 해운대 바닷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하면서 얼굴을 수면위로 돌려서 호흡을 하려는 순간, 하천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파도가 위에서 덮치면서 바닷물을 듬뿍 마시고 아주 혼이 난적이 있었다. 500px 사이트에서 F 학점을 받은 기분이 바로 그때의 기분이었다.
더 큰 낭패는 내가 왜 F 학점을 받았는지 그 이유도 모른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 작가가 되려고 하지는 않더라도, 내 사진의 수준을 더 향상 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때부터 내 사진촬영의 목적은, 카메라에 의한 심리치료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A+점수인 95점 이상 받는 것이 되었다. 이것을 등산으로 비유하면, 지금은 왕초보이긴 하지만 지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한번이라도 밟아보자는 야심찬 목표이었다.
F 학점 받은 학생이 A+ 학점에 도달하려면 우선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한지를 연구해봐야 했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왔다 --> 보았다 --> (본것을) 찍었다]라는 과정을 따르지만,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내가 [왔다 --> 보았다 --> 느꼈다 --> (느낌을) 강조했다]라는 과정을 따른다고 한다. 즉, 본 것을 그대로 찍은 것은 '아마추어' 수준이고, 보고 느낌을 강조한 것은 '프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사진에서 "느끼는 것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데 "자신은 특별한 것을 느꼈을 때" 그것을 찍는다는 의미이다. 카메라로 어떤 꽃을 찍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그 꽃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은 아름답다’라고 느끼는데, 그 꽃사진에서 뭔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게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사진도 내가 찍은 풍경이 멋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진에서 ‘멋지다’ 라는 것 외에, 뭔가 더 새롭고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평가 점수는 낮게 나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밖에 찍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나 스스로도 저 풍경을 보고 "멋있다"라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가 아무리 성능이 좋더라도, 자신이 느끼지 못한 것은 절대로 찍을 수 없다.
무엇을 "느낀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어렵다. 왜냐하면 사진찍을 대상에서 어떤 특별한 "느낌"을 얻으려면, 다음과 같은 필요조건들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아는 것만큼만 느낀다 (= 모르는 것은 절대로 느낄 수 없다).
(2) 느끼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3) 아는 것이 많으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
(4) 많은 노력을 하려면, 끈기있는 열정과 인내가 필요하다
다행히 사진을 찍을 대상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상을 찍은 사진이라도 시간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모두 느낌이 다르다. 인공조명으로 실내에서 찍을 경우는 모르겠지만, 자연광 조명으로 풍경을 찍을 때는 "셔터 찬스"의 포착을 위해서 끈기있는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 "셔터 찬스"를 만났더라도 대상이 주는 느낌을 강조해서 표현하려면, 카메라 화면 내에서 구도(Composition), 색조(Hue), 채도(Saturation), 밝기(Brightness)는 물론, 시선 유도(leading line), 좋은 전경(good foreground), 빛의 방향(direction of light), 보는 각도(angle of view) 등의 변화를 통해서 대상과 배경의 조화나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자연환경에서 주어지는 이런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면, 미술과 사진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자연환경은 대부분 본인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후에 그 사진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처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진 편집기술도 필요하다.
500px 사이트에서 이미 A+ 이상의 점수를 받은 사진들을 조사해보니 모두 이런 어렵고 까다로운 요구 조건들을 다 만족하고 있었다. 이것은 A+ 점수를 받으려면 이 정도의 노력과 인내와 열정이 뒷바침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사진촬영의 소재 선택도 중요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찍으려 해서는 안되고, 하나의 대상을 정해서 꾸준히 찍어야 전문가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진촬영의 주요 소재를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을 하다가 "물”을 선택했다.
물(H2O)은 지구상의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에, 물이 있는 곳에는 식물, 곤충, 동물 등 다양한 여러 종류의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물이 있는 근처의 자연적인 풍경은 아름다워서 사진촬영 대상으로 적합하였다. 또한 산소와 함께 공존하면서도 항상 전자의 결핍을 부분적으로 느끼고 있는 수소는, 그 부족함 때문에 이웃한 물질들과 친화적으로 지내고, 또 바로 그런 친화력 때문에 생명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물을 선택하였다.
2015년 여름에 A+ 점수를 받으려고, 나는 주말마다 지도를 보고 물이 있는 하천, 호수, 강 등을 부지런히 찾아 다니며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그러나 95점의 점수를 받는데는 모두 다 실패하였다. A+ 점수를 받으려면 지금까지 하던 방법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식의 좀더 과감한 모험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10월 17일 토요일에는 새벽3시에 일어나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캄캄한 위험한 산길을 운전해서 운문댐 부근에 있는 숲속에 도착했다. 지도에서 해가 뜨는 방향을 알려주는 앱(App)으로 좋은 촬영 장소를 선정한 다음, 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산등선 너머로 아침 해가 떠 오르기를 기다렸다.
쌀쌀한 가을철이라 운문호수에는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 붉은 해가 운문호수의 물안개를 비추면서 올라오는 장면은 위의 사진처럼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이 무척 짧기 때문에 카메라 셔터를 연속해서 눌렀지만 여기서 찍은 사진들은 최고 94점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침해가 높게 떠 올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 중턱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그곳에서 운문댐 쪽을 바라보며 그날의 마지막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여다 보며 구도를 잡고 있었다. 바로 그때 새 한마리가 물안개 올라가는 운문호수 위로 날아오고 있었다. 결정적 순간이 온 것이었다.
결국 이 사진으로 나는 A+ 점수인 95.4점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아마도 고요한 아침 호수위를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 장면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로운 느낌을 더 강하게 준 것 같았다. 저 장면에서 새 한마리가 없었다면 이 사진도 어디서 본듯한 평범한 사진이라서 95점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2015년이 지나고 2016년의 새봄이 왔다. 토요일 아침에 경산의 남천 둑길을 산책하다가 눈길을 끈 꽃을 카메라로 찍었다. 위의 꽃사진을 24시간만에 전 세계에서 3,200명이나 감명깊게 보면서 놀랍게도 나의 최고점수인 99.0점을 받았다. "사진예술은 어떤 대상을 잘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내가 사는 경산시를 중심으로 여러 장소를 다니며 많은 노력을 했으나, 아마추어 사진실력으로 95점 이상 받는 사진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높은 점수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대신 세계 각국에 있는 사진애호가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소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2015년 7월부터 2022년 7월 현재까지 약 7년동안 세계 각국에서 2,100,000명의 사진애호가들이 내 사진을 관심있게 봐주었고, 그 중에서 약 12%인 246,000명이 내 사진에 '좋아요'라는 호감을 표시해주었다.
내가 사진을 올릴 때 마다 자주 '좋아요' 표시를 해주는 해외의 사진친구들, 그리이스의 Elias, 네델란드의 Oomke, 뉴질랜드의 Tony, 독일의 Franz, 라트비아의 Edvins, 러시아의 Edvard, 로마니아의 Luca, 리투아니아의 Aleksandr, 미국의 Conrad, 벨기에의 Koen, 벨라루스의 Vasili, 불가리아의 Nikolai, 브라질의 Fabrice, 사우디아라비아의 Abdullah, 세르비아의 Mladen, 스위스의 Marco, 스페인의 Matilde, 싱가폴의 Eddie, 슬로베니아의 Ales, 알제리아의 Hamdi, 영국의 Jon, 에스토니아의 Aivar, 오스트레일리아의 Tim, 오스트리아의 Jurgen, 우루구아이의 Carlos, 우크라이나의 Evan, 이라크의 Kareem, 이탈리아의 Roberto, 인도네시아의 Ilham, 일본의 Toshihiro, 중국의 Xiaoyun, 캐나다의 Marthe, 크로아티아의 Tomi, 타이완의 KuanYu, 터키의 Mohammed, 포르투갈의 Carlos, 폴란드의 Kamil, 프랑스의 Taylor, 체코의 Tomas, 헝가리의 Istvan 등은 온라인상에서만 만나지만, 그들의 얼굴을 볼 때 마다 마치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아마 그들도 내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언젠가 나도 이 시대에 지구촌 한 모퉁이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세계 각국의 사진친구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오늘도 내 마음을 '카메라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에게 큰 기쁨이 되고 있다.
2021년 8월에 영남대학교를 은퇴하면서 그동안 발표한 논문들을 정리하였는데, 일년이 지난 2022년 8월에는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지인 ‘늘푸른나무’에 기고할 글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보관한 사진들을 정리하였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한 나의 논문과 사진 속에는, 나만이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고마운 사람들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술랑이의 봄/여름/가을/겨울]" 영상을 선물로 드립니다. 아래의 사진화면을 클릭하면 "Music Video"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링크주소: https://cafe.daum.net/yuprofem/Yudy/16).
Gallery: https://oncyber.io/spaces/n51l9feNCRWkNzgiWF3M
[1. 봄]
[2. 여름]
[3. 가을]
[4. 겨울]
* YouTube: 배경음악이 없는 영상입니다.
1. 봄: https://www.youtube.com/watch?v=RXA_sjUZlso
2. 여름: https://www.youtube.com/watch?v=J_-Eu16auH8
3. 가을: https://www.youtube.com/watch?v=vuVh879EAw8
4. 겨울: https://www.youtube.com/watch?v=L8sB661-RHo
첫댓글 초보에서 고수가 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음악치료, 미술치료에 이어 사진치료도 각광을 받겠습니다 ~^^
평소 강교수님을 보면서, 뭔가 치열한 내공이 있는 분 같다는 느낌을 받아 왔습니다.
드디어 제 느낌의 실체를 알게 되었군요.
<늘 푸른 나무>12호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멋진 글과 사진 영상 모두가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