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며 길을 묻다>
자연과 조화된 진한 감동으로
새해의 여행길을 떠나자
또 한 해가 훌쩍 지났다.
요즘 기온으로 보면 늦가을 같기도 하고, 초겨울 같기도 해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물쩡대는 사이 어느새 ‘짙은 가을’이 머문 듯 하다 가버렸다.
이제 제철이 지난 삭막한 숲, 겨울 속에 들어야 할 때다.
눈 내리는 구룡령 옛길을 혼자 걸을 것이다.
냉랭한 겨울 한파를 뚫고 눈 숲을 한없이 걷고 싶다.
눈 속 텐트 호롱 불빛 아래, 우주를 품고 고독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리라!
곧 1월이 온다. 1월은 겨울 한 복판이지만 1월은 신춘(新春)이라 봄이다.
봄이 몇 번 지나가면 죽을 신세인데도 그래도 따뜻하고 꽃피는 봄을 무척이나 기다리게 된다.
겨울이 짙어 갈수록 작은 인연들을 엮어 아지랑이 봄바람에 띄우고 싶다.
삶은··· 끝없는 사유(思惟), 쉼 없는 물음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인생의 겨울 끝자락에 와있다.
이 글을 쓰기위해 내 나이를 사계절에 비유해서 계산해 보았다.
사계절 중 어디쯤 와 있을까?
80을 넘겼으니 큰 욕심을 내어, 90세를 겨냥하고 계산해 보았다.
1년은 4계절이니, 90세를 4로 나누면 한 계절이 22.5년 이다.
봄, 여름, 가을, 3계절지난 겨울 첫 자락의 나이는 67.5(22.5x3)세이다.
그러니 나는 겨울의 절반을 이미 넘긴 늦겨울에 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겨울과, 이 늙음이 좋고, 언제나 지금이 제일 좋다.
누구도 태어남과 죽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또한 수억 년 이어온 자연의 존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당연히 나이를 줄이거나, 멈추거나, 늘리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숙명에 갇힌 몸으로 이를 거역할 수 없고,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섭리에 따를 수 밖 에 없다.
그런데도 이 엄연한 명징(明澄)을 쉽게 망각(忘却)하고 나이 먹고 늙어 감을 억울해하고,
‘죽음’을 남의 일로만 여긴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 다’를 새삼 새기면서···
젊은 나이 일 때는, 자신속에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젊음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한다.
인간이 이러한 절대 명제(命題)를 깨우칠 수만 있다면 삶의 고뇌(苦惱)는 한결 덜어지고,
삶의 방법이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두려워할 일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살아있으나 헛되게 사는 습성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삶을, 더욱 철저하게하고, 헛된 죽음이 안 되게 하는 재미(滋味) 또한 크다.
그래 항상 지금이 좋고, 이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할 일이 태산 같이 쌓여 죽음을 잊게 하고,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의 숨결에 맞추어 삶을 만들어 갈 때 내가 내가 되는 두려움 없는 길이 열린다.
그 길은 길 없는 길, 자연의 길이며 자연이 나를 인도(引導)하는 길이다.
그 길은 인간이 만든 숨 막히는 굴레를 벗고, “자각된 자유” 와 “자연”을 접목한
넓고 더 넓은 세상을 열어 간다.
남과의 경쟁으로 생을 허비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경쟁하여 자기의 세계를 이룩한다.
나와 경쟁하는 ‘또 다른 나 자신’에게 호된 담금질로 채찍질 하여 진정 새로운 희망을 낳게 한다.
몸과 마음의 빗장 풀어 자연이 우리를 보게 하자
우리가 인간을 떠나 자연을 받아들인 다면
그때 우리는 자연이 되어 모든 것을 초월 한다
지난 주말, 우리 일행은 샘골을 찾아 겨울캠핑을 하였다.
겨울의 산속은 황혼이 내려앉자 바로 어둠이 되었다.
숲은 적막해지고 계곡의 물소리는 썰렁한 한기를 뿜어냈다.
나는 농막 속 희미한 등잔불빛 아래서,
‘전**’(중국 대련에서 온 사업가 아가씨; 김**씨 후배)씨의 능숙한 화술에 홀려,
어린 시절의 호롱불빛 사랑방 장면을 그대로 만끽(滿喫)하였다.
침착하고 당차게 보이는 그 여인은, 차근차근 조리 있게 중국대륙의 소수민족의 숨겨진 이야기를
시작으로 종횡 무진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엮어 나갔다.
‘숲속-싸롱’은 밤을 지새우며 달아올랐다.
초저녁에는 다음의 주제로 ‘워크 숍’을 진행하였다.
제목; 길을 묻는 그대에게(詩/이병한)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이가 들어도 청춘처럼 사는 것
산속 하늘에는 가을 별 반, 겨울 별 반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별들은 하나 둘 셋, 다 세일 듯이 잡힐 듯이 가까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잠을 설치며 별과 함께했다.
우리에게 모든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더 초롱초롱 하였다.
새벽이 가까워 질 수 록, 별은 우리에게 더 다가 왔다.
일상의 시름도 괴로움도 아스라이 그렇게 멀어져 갔다.
우리는 환성을 지르며 새벽을 맞이했다.
농막 캠핑장을 정리하고 곧바로 동해바다로 달렸다.
겨울바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쓸쓸한 바다···
찬란했던 여름을 거두고, 파장의 모래밭에 출렁이는 파도!!
바다를 빙 둘러싼 수평선의 원주를 바라보며
우리는 파도의 유희 따라 백사장을 오래오래 걸었다.
앉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면서 청량한 겨울 해풍에 취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개껍질과 조약돌을 주서 모으며 어린 시절의 한때로 돌아갔다.
주어온 두 개의 조약돌을 책장고인 돌로 쓰며,
고성의 ‘백도 해수욕장’을 오늘도 기린다.
아~ 갈매기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오후에는 싱싱한 도루묵 한 바구니를 사서 시원한 찌개로 점심요기를 했다.
겨울 바다!!
년 말 “북극곰 캠핑”은 “백도 해수욕장”에서 하리라.
삶에 대해서는 백방으로 고민 하면서도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우리...
우리가 당장 버려야할 것은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와
교묘하게 짜여진 ‘가정-사회’ 안의 족쇄가 아닐까?
- 2009년 12월 깐돌이: 박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