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개성왕씨홈페이지와 공유합니다.)
어제가 음 5월 5일이니 단오이고 옛적에는 설날, 추석, 한식과 함께 우리 겨레의 큰 명절이었으며 여성들의 나들이가 이 날은 허용되었다고 한다.
음 5월은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이다.
교외를 벗어나면 모내기를 하는 농민을 볼 수 있다.
종영된 kbs tv 사극 ‘태종 이방원’ 후속작으로 고려 현종 시의 '여요(고려와 거란) 전쟁'이 전파를 탄다고 한다.
시기는 내년 후반기라 하니 지금쯤 대본을 마무리하고 등장 인물 캐스팅을 고려하고 있지 않을까.
사생아 현종(왕순)에 대하여는 많은 역사서에 등장하고 후손도 까페나 단톡방에 소개한 듯하다.
그 만큼 현종의 기구한 삶이 개성왕씨 후손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아
선조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고려 백성은 어떠한 복식과 음식으로 하루를 이어가며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효은태자(왕원)의 자제이자 고려태조 손자인 온결공(왕유/초기 휘 왕정)) 할아버지는
큰아버지인 광종(왕소)의 왕권강화정책에 희생양이 되어 50여년 청춘을 사가에 몰래 숨어 지내다
현종에 의해 1009년 복권되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고통이 누적되어 남은 생은 3년이 되지 아니하였다.
개성왕씨 갑신세보를 보니 11세 충정공(왕복명) 할아버지까지 외동(독자)으로 세계를 이어간다.
고단한 삶에 기인한 탓 일까---.
그러나 후손의 생각은 다르다.
충정공은 공민왕 재위 시 인물이니 400여년을 외동으로 이어감은 불가하다.
개성왕씨창간보인 무오세보는 1798년에 발간되었으니 7, 800여년의 세월에 선조들의 생사 행적이 불명하고
조선 조정의 탄압이 또한 심하였으니 정확한 세계 파악은 기대하기 어렵다.
황제문중인 평양공, 양양공, 안경공, 시중공 후손을 제외한
한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개성왕씨 후손은 온결공이 직계 선조가 된다.
인터넷백과에서는 강릉왕씨라 하여 온결공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는데 어느 자료에 근거한 것일까.
고려태조의 개국에 초기 반대한 이가 있었으니 명주(강릉) 호족 출신인 순식이다.
허월대사의 아들인 그는 대사의 설득으로 후일 후백제 정벌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고 공신이 되었으며
왕씨 성을 하사 받았다.
그리고 강릉왕씨가 되었으나 조선이 개국하며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여 원래의 성인 김씨로 복성하였다.
온결공은 사후 공부상서(현 국토교통부장관) 관직을 추증받았다.
온결(溫潔)은 시호로서 훈은 ‘인자하고 품행이 바르다’이다.
시호에서 선비의 자질을 가진 할아버지임을 느낄 수 있다.
현종은 목종의 유일한 왕위계승자이었다고 후세학자는 기록한다.
무리한 유추일런지 모르지만 이는 온결공께서도 왕위계승자 후보군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고려 광종 재위 시 왕자의 난으로 많은 형제와 조카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그 근거이다.
광종의 아들 경종은, 아들 목종이 어려 성종에게 왕위를 계승하고
성종은 후사가 없어 목종이 다시 왕위를 찾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목종에 이어 현종이 왕이 되었다.
온결공에 대한 세보의 다른 기록은 첨사, 상경거도위를 지내시고 현종3년인 1012년 3월 별세하였으며
부인은 협천(합천)이씨이다.
첨사(詹事)는 고려시대 동궁의 사무를 보던 관아, 태자첨사부의 정3품 관직이고
상경거도위는 서훈(훈장/명예칭호)의 일종이라 한다.
거란은 고려 개국 초기, 고려태조에게 축하사절단과 낙타를 보내어 외교를 청하였지만
형제국 발해를 멸한 거란을 용인하기가 어려웠다.
태조는 사신을 유배보내고 낙타는 개성 만부교에서 굶겨 죽였다.
그리고 훈요십조에서 “거란을 멀리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여요 전쟁은 26년간 세 차례의 전쟁으로 치루어져 고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요나라는 후일 원나라에 의해 패망된다.
사극이 전개되면 거란의1차 침입 시는 서희의 외교담판을,
2차 침입 시는 현종을 옹립한 실권자이면서 몸소 전장에 나가 숨진 강조 장군의 모습과 현종의 몽진(피난)을,
3차 침입 시는 강감찬의 귀주대첩 활약상을 시청하게 된다.
원이 고려를 침공하였을 때 무신집권자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심도(강화도)에서
자기의 안위를 위하여 삼별초에게 항전 명령을 내리지 않음은 강조 장군의 인품과 대비가 된다.
그래서 최충헌과 자손의 이름은 고려사 열전 중 반역전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북한의 조선중앙tv가 5월25일 보도한 고려25대왕 충렬왕 추정 릉이다.
충렬왕은 할아버지 고종의 붕어(임종) 시 부친 원종을 대신하여 곁을 지켰고
즉위 전에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여섯째 딸과 정략혼인하여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된 격동기를 살아간 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