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문화상 수상자를 만나다>(2023. 제12호) 에 발표한 글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박진영의 인연
김현우 마산시문화상 14회 수상자, 소설가, 아동문학가
고성 당항포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해전 승전을 기념하는 숭충사崇忠祠가 있다. 그 일대에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비를 비롯한 당항포 해전관, 거북선 체험관, 임란창의공신 현충탑 등 관광지로 꾸며져 있다.
이 당항포승전 때 경남 함안에 살았던 박진영朴震英이란 젊은 함안의병군 선봉장이 이순신 장군과 만나 함께 왜적을 퇴치하는 인연을 가졌으니 전장戰場에서 맺어진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항포해전은 임진년(1592) 6월 5~6일, 전라 좌수영 이순신 장군이 총지휘를 하였던 해전이었다.
이순신 전라좌수사가 전라우수영 이억기 그리고 경상우수영 원균 등과 함께 수군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두 번째 출격으로 치르진 세 번째 승전이었다. 주축은 이순신의 전선 23척과 이억기의 전선 25척이었는데 경상도 수군의 원균의 전선은 고작 3척에 불과했으니 경상 우수영 수군의 방어력은 와해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제2차 출전에서 사천·당포 해전에 승리하고 이어 세 번째로 고성으로 향해 당항포에 정박 중인 왜선 26척과 치른 승전의 당항포해전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왜군이 당항포로 들어간 것은 거기에서 고성읍까지 바다라는 그들의 지도를 믿고 진입하였고 통영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이순신 함대가 적을 쫓아 거제 당포에서 당항포 당항만 어귀 창포(지금의 마산 회원구 진동 구산면)에 1592년 6월 5일(양 7월 13일)에 다다랐을 때 육지에서 왜적과 싸우고 있는 군사들을 보았다.
그 군사들은 바로 류숭인 함안군수가 이끄는 관병과 함안의병군의 혼성부대로 며칠 전 창원성에서 합포를 거처 함안군성으로 침입한 왜적과 일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때 진해현(지금의 진동)은 함안군의 속현으로 함안군사들은 왜적을 함안성에서 몰아내며 적을 쫓아 진해현의 창포 바닷가까지 진출했던 것이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육지에서 함안군사들이 왜군을 치고 있음을 알자 수륙양면작전을 구상하고 급히 전령을 보내 함안 군사들로부터 적의 동향을 알아 오게 하였다. 이때 왜적 전선의 움직임과 당항포 일대의 지리를 상세하게 보고한 사람이 바로 함안의병군의 중군 군관이며 선봉장을 맡아 활약하고 있었던 박진영(1596~1641)이란 젊은이였다. 24세의 박진영은 이순신의 지휘군선에 올라가서 적정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적의 배는 대선 9척, 중선 4척, 소선 13척이며 소포와 시락을 지나 동해와 용흥 마을 앞 당항포 바다 한가운데 정박해 있습니다. 우리는 함안의병군으로 함안성을 공격하며 침입한 왜적을 쫓아 류숭인 함안군수의 관군과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강崔堈과 운포 이달李達의 고성의병군도 당항에 와서 방어진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거 공부에 열중하던 박진영은 함안 검암 출신으로 왜적이 부산포로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분기탱천하여 충의로 일어나 단기필마로 혈전이 벌어질 김해성 전장으로 용감하게 싸우러 달려갔다. 그는 함안 최초의 포의布衣로 창의倡義한 의군(의병)이었다.
김해성에는 그의 외숙부 제포만호 이숙李潚과 매제 신갑의 형인 천성만호 신초辛礎 등이 제승방략에 따라 먼저 와서 남문 수문장으로 대적하고 있었다. 박진영은 남문에서 외숙부를 만나 함께 싸우게 되었다.
집안의 노복과 동리 장정을 급히 모은 향군(함안의병군)을 이끌고 싸우러 온 이령 의병장(김해성에서 전몰)에 한발 앞서 전장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이령 대장도 곧 뒤따라와서 싸웠으니 박진영은 함안의병군 선봉장이라 하겠다.
김해성 싸움은 4월 17일(음)부터 20일까지 혈전이 벌어졌었다. 동문이 무너지면서 격렬한 백병전이 벌어져 쌍방간에 많은 희생자를 내고 끝내 성은 함락되었다. 부상을 입으면서 박진영은 왜적과 싸웠으나 전세가 기울자 김해성에서 탈출하여 함안으로 돌아갔다. 그 후 아버지 박오와 외숙부 이정, 이숙 등과 함안의병군을 조직하며 또 김해성에서 후퇴하여 함안으로 몰려온 군사 600여 명을 수습하여 류숭인 군수에게 인계하기도 한 젊은이로 류 군수가 그를 중군장, 선봉장을 맡겼다.
김해를 거쳐 창원부를 노략질하고 진주성으로 가려는 왜적이 6월 초에 함안으로 들이닥치자 함안의병군과 유숭인 군수가 이끄는 군사들이 힘을 합쳐 싸웠다. 이때 함안성에서 패퇴하여 달아나는 왜적을 쫓아 대현관문(함안의 남쪽 입구, 지금의 진동면 북쪽의 고개)을 지나 진해현이었던 진동 앞 바다까지 60여 리 추격전을 함안 군사들이 펼치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을 그때 만난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벼슬도 하지 않은 함안 젊은이가 총명하고 용감하며 전략이나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간파하였다. 물길을 잘 알아 지휘선에 함께 타고 있었던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이 박진영이 그의 손서孫壻(손녀사위) 임을 알리자 이순신은 김해성 싸움에 출전했다는 젊은이를 더욱 장하게 여겼다.
어영담(1532~1594:선조 27)은 함안 안인촌 사람으로 이순신보다 나이가 많았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한 후 진해鎭海 여러 진鎭에 근무하면서 남해 해로의 험애(險隘: 험준하고 좁음)를 자세히 조사하여 선박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는데 사천현감, 무장현감, 창성부사 등 여러 군직을 거쳐 왜란 당시(1592. 3월) 광양현감으로 전라좌수영 이순신 장군의 해로 향도嚮導가 되어 부관으로 있었다. 어영담의 아들 어응해魚應海(한성우윤에 추증)의 딸(함종어씨)이 박진영과 결혼하였으니 곧 어영담의 손녀사위가 된 인연인데 이순신 장군의 지휘선에서 우연히 만났던 것이다.
이순신은 박진영에게 수륙양면작전 전개 계획을 자세하게 알리며 육지에 있는 류숭인 군수 휘하 군사들과 고성의병군에게 까지 방어진을 구축하고 협력하도록 하였다.
“왜적이 육지에 상륙하면 더욱 노략질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 적선이 가급적이면 바다 가운데 있을 때 공격할 것이니 함안의병군과 관군은 적 수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방어진을 치도록 하게. 왜적은 칼을 잘 쓰는데 조총도 조심해야지만 가급적이면 접근전을 피하고 활을 쏘고 창과 방패를 써서 대적하도록 전군에 알리게.”
이순신은 왜적의 군략을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그에 잘 대처하도록 알려 주었다.
드디어 이순신의 수군이 당항포에 진출하며 왜선을 공격하였고 함안과 고성의 군사들은 이순신의 작전 계획에 따라 방어진을 구축하고 왜적이 조선 수군에 쫓겨 상륙하자 패잔병 섬멸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순신은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전승한 후 전공이 있는 자들에 대한 포상과 전황을 상세하게 기록한 장계를 선조 임금에게 올렸다.
이때 비록 육지에서 싸운 무명소졸無名小卒 의병이었지만 이순신의 포상 장계에 의해 아무 벼슬이 없었던 박진영에게 전공으로 군자감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시절 전공의 측도로는 흔히 적의 목을 베어 수급의 숫자를 장계에 올렸는데 이순신은 부하 장졸들의 군공을 많이 기록했는데 비해 경상우수사 원균은 적 50여 수급을 베었다고 장계를 올렸다 한다. 원균과 이순신의 차이점은 그런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박진영은 이때 조총 철환을 옆구리에 맞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 바람에 유숭인 군수가 경상우병사로 승진해 갔을 때 창원부에 함께 가지 못하고 함안의병군의 중군장으로 남았다. 그러다가 1차 진주성 대승 이후 초유사이며 경상감사 김성일 휘하에 갔다가 그해(1592년) 말에 전라감사 권율장군의 부름을 받아갔으며 곧 이듬해 2월 행주산성 대첩에 선봉장으로 참전하였다. 권율이 도원수가 되자 그 막하의 군관, 종사관, 복병장 등으로 임진왜란 내내 정유재란이 끝날 때까지 도원수부에서 활약하며 왜적과 싸웠다.
이순신 장군과 박진영은 당항포해전 때 만남 이후 다시 만난 것은 정유년(1597) 7월이었다.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입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끝에 선조로부터 도원수를 따라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아 초계에 있었던 도원수부로 왔을 때였다.
그때 박진영은 무과 급제를 한 후 벼슬이 여러 품계 올라 군자감 부정, 병조참지로 권율 도원수부의 중요 막료로 활약하고 있었다.
정유년 7월, 백의종군으로 초계 도원수부에 온 이순신을 맞아 옥고를 치러 쇠약한 장군을 위로하고 정성껏 접대하며 지난날의 인연을 얘기하였다.
“오! 그대가 당항포에서 만났던 어영담 조방장의 손서孫壻로군. 처조부되는 어 조방장이 물길을 잘 알아 큰 도움을 받았지.”
함안이 고향인 합천군수 오운이 이순신을 만나러 초계로 왔다. 광주목사를 지낸 오운은 의령에서 곽재우 장군과 함께 의병군 소모관으로 활약한 사람이었다. 박진영이 고향의 대선배(아버지 박오, 외숙 이정과 교유한)인 오운을 반갑게 맞이하여 이순신을 만나게 했다. 임지인 합천이 초계 인근이라 오 군수는 햅쌀과 수박을 마차에 싣고 와 이순신에게 문안하며 올렸다. 그러 저런 인연으로 박진영은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통영으로 갈 때까지 함께 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29세였다.
1598년 8월에 풍신수길이 죽고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의 9월 명량해전의 승리와 11월에 노량해전의 대승으로 드디어 왜란은 끝이 났다. 박진영은 권율 도원수부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애도하였다.
* 통제사 이공순신 전사에 통곡하다 慟統制使李公純臣戰死
오장원두에서 붉은 별빛(장군)이 떨어졌으니(전사하다)
어찌하여 하늘은 제갈량의 드날림을 빼앗았는가
곡성은 바다를 들끓게 하고 큰 고래(경예;흉악한 자)는 달아나네
청사에 널리 전하니 백세토록 꽃다우리라
― 五丈原頭墜赤芒 天何生亮奪之忙 哭聲沸海鲸鲵走 靑史流傳百世芳 ※
※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로 제갈량이 가을바람을 맞으며 오장원의 군중軍中에서 세상을 떠났던 것과 같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도 그에 비유하였다.
박진영은 왜란이 끝난 후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록되었으며, 관직은 용궁현감을 시작으로 무장武將으로서 서북방 지키는 수어사, 절충장군, 황주수성방어사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인조 2년 이괄의 란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 1등공신으로 책록되고 평산도호부사, 경상우도병우후 등으로 지내다가 1625년(57세) 함안 안인촌(지금의 산인면) 고향으로 물러나 창원 광려산 아래 광려재를 짓고 책을 읽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다가 73세에 별세하였다. 훗날 광려재를 중건하니 곧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의 여산서당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초토화되고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 온 몸을 던져 왜구를 막으며 싸웠던 어영담, 박진영, 오운 등 경남 함안 출신 장수들…… 이순신 장군과 전장戰場에서의 인연을 살펴보니 선인들의 충의가 오늘날에도 빛남을 알 수 있다. ***
첫댓글 마음을 얻는 것이 재물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마음을 얻는 순수한 지혜를 가지세오.
마음을 잘 만져주시고.
마음을 잘 치유해 주심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중하고 정겨운 남녀 친구 님~!!!愛
♥*빵긋~방가워요♥(*^-^*)♥ 쵝오!@!@~♥★
하루 1분 나를 향해 웃는 시간을 가진다면
힘든 일도 어느새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것이다.
오늘도 고운 미소 가득 지을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함께 행복한 웃음의 하루 보내세요~乃 .
미소안에 담긴 마음은 배려와 사랑입니다.
우리 삶속에 영원히 미소 짓는 나 이고 싶습니다
╋━━O━━O━━━╋
┃♡행복한 시간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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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니욕심을 채우려
발버둥쳤던 지나온 시간들이 내 발목을 잡아.
뒤돌아 보며 하나 둘 생각하고 반성하며
한해 사랑 해 준 친구분들게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 안부를 띄우는 기도를 올립니다~~!!!
★ⓗⓐⓥⓔ ⓐ ⓝⓘⓒⓔ ⓓⓐⓨ★ "*.forever!.* ♡~★
마음이 우리를 병들게도 하고 또 치료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병이라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마음이 아픈 우리의 몸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만듭니다~!!!.
계묘년(癸卯年)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있지만 마무리 잘 하시고
희망괴 화합의 대통합을 위한 갑진년(甲辰年)에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며 국민 모두 화합하는
밝은 내일을 맞이하도록 함께 해야겠습니다.~♡♡愛
안녕하세요~?? ♥"
정겹고 소중한 남녀 친구님~!!!愛
빵긋~!!! 방가워요~♥♥`★愛 쵝오@!@~!!
닥쳐올 새로운 한해 멋진 계획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한해되도록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기쁨과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기 소망해 봅니다~乃
__ ㆀ● ''______새해 甲辰年에는 _____ ㆀ● ''
__ ┏■┛______幸運이 있으시고______┏■┛ 우헤헤
____┛┓_____健康하고 幸福하세요____ ┛┓
한해 잘 보살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격려와 사랑을주신 친구님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 ⓐ ⓝⓘⓒⓔ ⓓⓐⓨ★ "*.forever!.* ♡~★
가는 해 오는 해 마무리와 계획과 실천으로 뜻하시는 바
꿈 이루시며 행복하시고 즐겁고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리며
가정에 행운 있으시고 신의 가호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습니다.떠날 때는 잘 떠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