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식 마르코 신부님의 사목 여정
41년을 되돌아봅니다
1983년 1월 29일 사제서품 시
♱ 신부님이 선택하셨던 성구(聖句) ♱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하느님 은총의 덕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1. 신부님의 성장 배경과 사제 서품
◎1954년에 마산회원구 석전동에서 태어나신 신부님은 유년 시절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 어머님의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유년 시절 어머니를 따라서 석전동에서 우리 남성동성당까지 걸어 다니며 본당 부설 성모유치원에 다녔습니다. 남달리 영특하셨던 신부님은 성모유치원 시절에 첫영성체(1963년 9월 26일)를 받고 신부님과 수녀님의 총애를 받으며 ‘어린이복사단’ 단원으로 뽑혀서 잘못하면 신부님의 꾸중을 들어가면서도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 ‘정 마르코 신부님’은 초· 중학교 시절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였지만, 가정형편으로 당시 실업고의 명문이었던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성악에 재능이 특출했던 신부님은 고등학교 재학 중 [상남동성당]에 다니면서 성인들과 같이 성가대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정흥식 마르코 학생은 ‘상남성당’ 성가대의 재원(才媛)으로, 당시 함께 활동했던 성인 대원들은 ‘신부님의 울림이 있는 굵고 부드러운 바리톤 음성은 매혹적이라 특히 여고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다양한 청소년부 선교활동에서 뛰어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정흥식 마르코」 학생은 신부님과 수녀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날이 갈수록 신앙심이 깊은 청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정흥식(마르코) 학생의 장래 희망을 아버지께서는 남달리 체격이 당당하고 성품이 강직하며 책임감이 강한 당신의 자제분을 장차 장교(將校)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신앙심이 깊은 신부님의 어머님께서는 신부(神父)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신부님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해군사관학교와 광주신학대학에 동시 합격하였으나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신학교로 진학을 결정하여 신부가 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2. 정흥식 마르코 신부님의 41년 사목 여정
◎ 신부님은 ‘광주신학교’에 재학 중 육군에 입대하여 3년간의 군 복무를 만기 제대한 후 복학하여 7년간의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983년 1월 29일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정 마르코 신부님의 41년 동안의 자세한 사목 이력을 다음과 같습니다.
◇ 1983년 1월 29일 사제서품을 받으신 이후
♛ 하동성당 주임신부(1983.01.31./1986.02.16.)
♛ 진영성당 주임신부(1986.02.17./1989.07.03.)
♛ 해외 선교/에콰도르 주임신부(1989.07.04/1993.09.02.)
♛ (휴양) 주임신부(1993.09.03./1994.04.11.)
♛ 장평성당 주임신부(1994.04.12./1997.08.27.)
♛ 해외 사목/「LA 성삼한인성당 」 주임신부(1997.08.28./1999.09.09.)
♛ (휴양) 주임신부(1999.09.10./2000.01.17.)
♛ 칠원성당 주임신부(2000.01.18./2003.01.13.)
♛ 반송성당 주임신부(2003.01.14./2007.01.01.)
♛ 대건성당 주임신부(2007.01.02./2011.01.06.)
♛ 안식년/에콰도르 주임신부(2011.01.07./2012.01.05.)
♛ 수산성당 주임신부(2012.01.06./2015.01.01.)
♛ 망경동성당 주임신부(2015.01.02/2018.01.18.)
♛ 경화동성당 주임신부(2018.01.09./2021.01.21.)
♛ 금산성당 주임신부(2021.01.22./2022.01.13.)
♛ 남성동성당(2022.01.14./2024.01.14.)
♤ 신부님의 첫 부임지었던 「하동성당」에는 오지 마을에 있는 공소가 많았다고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자갈길과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고 합니다.
♤ 거제 「장평성당」 사목 시에는 초대 신부님 으로 부임하여 성당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 통영 「대건성당」 사목 시에는 낡은 성전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낙도인 「사량도공소」에 어업에 종사하는 신자들을 위해 성모상을 세웠습니다.
♤ 「망경동성당」 사목 시에는 인근에 버려진 조선(朝鮮)의 사형 도구 선혈이 묻어있는 ‘형구틀’ 성당으로 가져와서 교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당 입구에 ‘형구틀상(像)’을 세워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도록 하였습니다.
♤ 진해 「경화동성당」시에는 넓은 부지를 찾아 성당을 새로 크게 새로 지었습니다.
♤1989년 「에콰도르 해외 선교」 초기에 제5회 남가주 성령 쇄신대회(1989년)에 초청받아 특강을 하셨습니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나 뵙고 해외 선교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3. 신부님의 해외 선교와 해외 사목
◎ 에콰도르 밀림 지역에서의 원주민 선교
♛「1989년 7월 4일부터 1993년 9월 2일까지」 4년 동안. 남아메리카 적도(赤道) 지역에 있는 나라. 전 국민이 가톨릭 신자인 에콰도르(Ecuador)의 [과야낄 주(Guayaquil)州 로마스 데 사르헨띠죠(El Lomas de Sargent: 파수병의 언덕) 군(郡) 원주민 지역에 4년간 파송되어 지역민과 원주민을 상대로 선교하셨습니다. 그곳 본당에서 현지 언어인 스페인어로 일요일 교중미사를 집전하시고, 정기적으로 악어 떼와 맹수가 우글거리는 아마존강을 위험을 무릅쓰고 깊숙한 밀림 숲을 드나들면서 문명과 동떨어져 생활하는 원주민을 상대로 가톨릭 선교에 나섰습니다. 그러다 영양실조로 폐결핵이 걸려 결국 귀국하여 1년간 휴양하셨습니다.
♛한편 에콰도르에 파송되어 현지의 풍토에 적응하며 선교활동에 임하시던 1989년 초기에 당시 천주교 마산교구청 박정일(미카엘) 주교님께서 정 마르코 신부님의 선교활동을 위로차 현지를 방문하여 신부님을 격려하고 가셨다고 합니다.
◎ 「LA 성삼한인성당」 해외 사목
♛휴양을 마친 정 마르코 신부님은 1994년 거제 「장평성당」 주임신부의 임무를 다하고 1997년 8월 28일 자원하여 1999년 9월 9일까지 미국 「LA 성삼한인성당」에서 해외 사목하셨습니다. 「LA 성삼한인성당」에서 사목하신 동안 ‘성령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타국에서 생활하는 교포 신자들의 돈독한 신앙공동체 형성을 위해 열정을 쏟았습니다.
♛LA 성삼한인성당 사목 기간 중, 정 마르코 신부님은 ‘에콰도르 의료봉사단’을 조직하여 신부님께서 선교했던 에콰도르 현지를 방문하여 의료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정 마르코 신부님이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에콰도르 현지 주민들은 마을 어귀에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신부님과 의료 사단을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당시의 감동으로 신부님께서는 에콰도르에서 ‘짓다 만 초등학교를 완공하고 와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1년 안식년을 이용하여 ‘에콰도르에 다시 가신 신부님
♛정 마르코 신부님은 「LA 성삼한인성당」 사목을 마치고 귀국하신 후 1년간 휴양하셨습니다. 이후 주임 신부님께서는 「칠원성당」, 「반송성당」, 「대건성당」을 거쳐 2011년 안식년을 맞이하여 11년 만에 초등학교 건물의 골조만 세워놓고 공사를 중단한 그곳을 찾아가셨습니다. 준비해간 사비 1억 원으로 짓다가 중단한 초등학교 건립 공사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 정 마르코 신부님께서는 현지 주민들을 고용하여 손수 손수레를 끌고 시멘트를 비벼가며 공사 진행에 앞장서 마침내 안식년 기간이 끝나가는 즈음에 시멘트 철근골조로 된 아담한 3층의 학교 건물을 완공시켰습니다. 기적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 드리는 깡마른 신부님의 얼굴에는 감동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고 합니다.
[지혜의 샘이신 성모님 초등학교] 라는 교명으로 준공식을 하던 날에는 기쁨과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우리 마을에도 초등학교가 생겼다' 는 기쁨으로 온마을이 며칠 동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 이에 감동한 [로마스 데 사르헨띠죠/El Lomas de Sargent. 군(郡)]의 군수를 비롯한 지역의 기관장들은 신부님께 감사패를 증정하고 지역의 중심 거리를 신부님의 이름을 따서 [마르꼬스 정 로드(MARARCOS JUNG ROAD)]로 명명하였습니다.
♛ 마을 중심 거리를 ‘정 마르코 신부님’의 이름으로 명명식을 한 그날에 신부님은 “주민들이 달아주신 야생화꽃다발을 목에 걸고 그 길을 지역민과 함께 박수를 받으며 즐겁게 행진하였다”라고 회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신부님 내려주신 은총과 축복의 순간이었습니다.
4. 신부님의 마지막 임지-본당(남성동성당)에서
◎ 「에콰도르」에서 안식년을 끝낸 신부님께서는 2015년 1월 초, 귀국하는 즉시 밀양 「수산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임기를 마친 이후에 진주 「망경동성당」, 진해 「경화동성당」, 진주 「금산성당」을 거쳐 지난 2022년 1월 14일 신부님의 마지막 사목 임지인 본당(남성동성당)에 부임하셨습니다.
◎ 「정흥식 마르코 주임 신부님」께서는 첫영성체를 받았던 본당에서 2년간 사목하셨습니다. 신부님의 마지막 사목 임지이기도 한 본당에서 사목하신 2년은 신부님의 사목 생애에서 ‘금싸라기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정 마르코 원로 신부님은 강인한 정신력과 타고난 체력으로 본당의 열혈 청년들과 함께 ‘2년을 10년같이’ 촌음을 아껴가며 사목 열정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하며 소중했던 시간을 틈틈이 이용하여 ○본당의 환경 개선 ○신자들의 복지 증진 ○신앙심 고양을 위해 애쓰신 주요한 사목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당 건물 전면 야광 간판 설치(‘바오로회’ 봉헌)
♛구(舊) 천주교마산교구 주교좌 성당의 정통성 보존을 위해-연혁(沿革) 바로잡기, 본당 좌·우측 독립 건물名 이름 바로잡기(左/프란치스코 회관, 右/바오로 회관)
♛「주보성인 聖 바오로」액자 봉헌, 「타일 조각 성화 액자 봉헌(가나의 혼인 잔치/김옥수 도미니코 신부님 作」
♛70년이 넘는 아름다운 본당 건물의 유지, 관리를 위한 외벽 방수 공사
♛고목 조경수 전정 작업, ‘성모님 동산’ 잔디마당 판석 깔기, 生 울타리 조성(10년생 에머랄드그린’ 20여 그루 식재)
♛강당 내 식당 조리기구 및 급수 시설 개선, 행사用 테이블 교체 사업, 탁구대 설치
♛재대 위 「신부님 강론대」, 「복음대」, 「해설대」, 「제의방」 가구 교체(‘수정공소’ 지원금)
♛「수정공소」 환경 개선-수세식 화장실 설치, 공소 건물 실내외 벽면 도장, 방문객 안내를 위한 외부 간판, 성모상 앞 정원 정화, 본당 정원수 이식: (익명의 기부자 1000만원 기금으로)
♛신자들의 신앙심 함양을 위한 성경 소양 교육 기회 제공-·「이청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의 향심기도 강의 개설(연 14주)」, 본당 정흥식 신부님의 「신약성경 총론 강의(2022년-11회, 2023년-8회)」
♛코로나 사태로 무너진 「신앙공동체 의식 회복」을 위한 성지순례 기회 제공 –「연차총친목회」, 「연령회」 연수
♛신앙심 고취를 위한 신심 단체별 공소 방문 및 개인별 성지순례 체험활동 권장
5. 덧붙임 <에세이>
「에콰도르 밀림의 성자 정흥식 마르코 신부님」
♤2022년 연중 제20주 화요일 저녁 미사 복음 말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 라는 주제 강론 끝에 정 마르코 신부님은 1983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에콰도르 밀림 속 가난한 원주민 마을로 찾아가 가톨릭 신앙을 선교하셨던 경험을 곁들여 말씀하셨다.
♤무장 강도와 살인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인 그곳에서 주일날이면 「권총을 소지하고 무장한 경호원과 함께 보트를 타고 밀림 호수가 숲속 마을로 아침에 들어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미사를 마치면 이미 밤중. 피곤한 몸을 보트에 태우고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밤의 정경 속에 무서움을 잊어버리고 악어 떼와 맹수가 우글거리는 호수를 지나 식은땀을 흘리며 사제관으로 무사히 되돌아오곤 했다」라고 회상하셨다.
♤그곳에 부임하신 초기에는 원주민들이 밤낮없이 신부님을 찾아와「’약값 달라‘, ‘가족 먹을 식량 살 돈 달라’, ‘아기 우윳값 달라’」고 하는 이유를 달아 부탁하는 가난한 원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었다. 수중에 돈이 떨어진 즈음에 신부님은 「물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 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그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성당의 인근 마을에 초등학교를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짓다가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려 삼층 건물의 골조만 세워놓고 서둘러 귀국하셨다고 한다.
♤그 후 다시 그곳으로 가기를 희망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회를 엿보다 그곳을 떠나 온 지 11년 후인 2011년 안식년을 이용하여, 그동안 모아둔 현금 1억 원을 가지고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서 당신의 손으로 짓다 만 초등학교를 완공하고 미리 발령이 나 있던 수산성당으로 급히 부임하셨다 한다.
♤이후에도 신부님이 세운 그곳의 초등학교 학생들과 소식을 주고받았으며, 신부님의 도움의 손길이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운동장을 마련해 달라는 그곳 학교 운영자의 요청을 받았고 한다. 그 당시 수중에 경제적 여유가 없던 ‘정 마르코 신부님’은 천주교 공제회에서 500만 원을 대부받아 번듯한 운동장까지 지어주었다고 하셨다.
♤話者는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 밀림을 찾아가 열정을 쏟아 원주민을 선교하신 본인의 경험을 곁들인 감동적인 강론을 들으면서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왔던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를 떠올렸다.
♤얼마 전 화자가 속한 ‘바오로회’ 친교 모임에 초대받은 신부님께서는 우리 남성동성당을 끝으로 은퇴하시면 에콰도르로 돌아가 「당신께서 젊음을 바쳐 가톨릭 선교의 꽃을 피워 놓은 에콰도르 밀림 속 마을 그곳으로 돌아가겠노라.」 하셨던 결의에 찬 말씀이 떠올랐다. 신부님의 그 소망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면서 신부님의 앞날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2년 연중 제20주 수요일 아침)
<글 쓴이: 2023.12.28.홍보분과장 김동출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