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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성곽답사기행문-
대한민국 역사의 자존심 종로, 그 생동감으로 / 김명숙
2013.4.7. 인왕산성곽답사기행
*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윤동주시인의언덕~인왕산길~홍난파가옥~경교장
* 정동길:구러시아공사관~정동극장~중명전~정동교회
* 덕수궁돌담길:광화문연가 이영훈 작곡가 추모비~서울시립박물관~덕수궁~숭례문
(약 5km, 5시간 소요)
2013년 4월 7일, 아직 꽃샘추위로 질투가 든 봄바람이 매섭다. 서울 도심 경복궁역을 약속장소로 한 것부터 가슴 설레는 일이다. 경복궁은 조선 왕실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심장도 뛰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벗어나자마자 마을버스로 이어진 자하문고개까지의 공기는 이미 남양주의 그것과는 상이하다. 남양주의 깨끗한 공기 속을 시시각각으로 그리워하며, 서울의 매케한 맛을 보며 오늘 역사기행 시작해보련다.
자하문고개를 첫 출발지로 정했다. 반가운 문이 보인다. 작년 2012년 2월 숙정문에서 성벽을 넘어 이쪽 자하문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자하문 고개는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고개 마루턱에 자하문이 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자하문의 정식 이름이 창의문이므로 창의문고개라고도 하였다. 북한, 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태종 때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한 채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열어놓았다. 문루에는 인조반정 때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의군들의 반정공신 명단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태조 때, 성을 쌓을 당시 건립되었는데, 다락에 나무로 만든 닭을 걸어 놓았다. 풍수설에 이 문밖의 지형이 지네의 형상이므로, 그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서 지네와 상극인 닭을 만들어 걸었다 한다. 서울 사소문(홍화문=동소문, 광희문, 남소문, 창의문=자하문)을 세웠다. 4소문중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라는 역사를 배우며 윤동주문학관으로 이동한다.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어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열린 우물"이라고 명명했다고.
수도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들기에 윤동주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 윤동주라고 한다. 일제 치하의 어두웠던 사회적 배경 속에서 나온 윤동주 시인의 서정적인 시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윤동주 시인의 뜻을 기리고 그의 시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2012년 윤동주 문학관이 설립되었다. 그가 대학시절 자주 지나다니던 청운동에 마련된 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윤동주 문학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시인의 언덕은 윤동주 시인이 시상을 떠올렸던 곳으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시비, 서시와 슬픈 족속)
문학관은 모두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 생전에 읽고 간직했던 시집, 소설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위쪽 벽면을 떼어내 빛이 통하도록 했고, 그 틈을 통해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에 심어진 팥배나무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시인에 대한 영상자료가 상연된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시인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이다.
그가 살았던 누상동을 보기위해서는(마치 삼국지에서 나오던 유비의 고향 누상촌을 떠올리며) 인왕산성곽을 향해 인왕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인왕산성곽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서울의 성곽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짝이 맞지 않을 것 같다. 1394년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조상의 숨결이 담긴 소중한 문화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일컫는 내사산을 연결한 서울 성곽은 남산을 제외하면 모두가 종로구 지역이다.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은 서울 성곽 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연히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서의 문들도 생겼다.
서울 성곽은 전체둘레 약 18.7km 구간 요소마다 4개의 대문을 설치했는데 유교의 5상인 인의예지신에 의해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정문을 두었다. 그 가운데에는 보신각을 두어 도읍지의 이상과 정치이념을 나타냈다. 또한 대문과 대문사이의 요충지에 작은 문을 두어 관문으로 활용토록 했으니 앞서 말한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이다. 이로 인해 종로에서는 발길 닿는 곳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복원한 인왕산 성곽길 2)
이곳은 서울시 종로다. 종로는 우리나라 문화의 보고라고 불린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할 경우 80% 이상이 종로를 거쳐 갈 정도다. 이 지역에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4대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지)이 소재해 있으며 우리나라 최대 관광지인 인사동을 비롯한, 북촌, 청계천, 대학로 등이 위치해 있어 종로를 방문해야 대한민국을 보고 왔다고 얘기할 정도로 종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종로는 조선시대부터 육의전과 시전이 있었던 곳이자 근대 최초의 허가된 시장인 광장시장이 위치한 경제적 중심지였다. 지금은 비록 백화점 등 현대형 쇼핑센터에 밀려 다소 위축됐지만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상인들의 자구책에 따라 광장시장, 동대문시장 등 전통 재래시장에는 국내외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특성화 한 전문 상가거리를 조성해 우리나라 최대의 귀금속상가 거리인 종로3가 일대, 종로5가의 약국 도매점, 창신동 문구완구점 등은 타 지역보다 싸면서도 활기 넘치는 상가 중심지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에 조성된 북촌 한옥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한옥을 잘 보존하고 있어 외국인들은 물론 국내 관광객들에게 필수 관광코스로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종로는 2개의 문화지구(인사동·대학로), 1개의 특구(종로청계관광 특구) 등과 궁궐·박물관·공연장 등 다양한 문화인프라를 정돈해 체계적인 문화관광코스로 개발하기 위해 우선 동별 골목길 관광 20코스를 선정했다. 골목길 관광코스를 따라 골목마다 숨어있는 역사·문화의 흔적을 찾아 2시간쯤 걸으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만나볼 수 있다. 경교장과 홍난파 가옥이 있는 교남동의 역사문화 기행코스, 북촌8경으로 유명한 가회동의 북촌한옥길 코스, 도심속 비밀정원 부암동의 생태·문화 코스가 대표적이다.
(홍난파가옥)
지난해에 벌써 숙정문을 출발하여 부암동방면 생태문화코스를 밟았으니 오늘은 경교장과 홍난파 가옥이 있는 교남동의 역사문화 기행코스를 따라가보는 것이다. 정순왕후 추모제와 비애비(妃愛悲) 뮤지컬은 조선조 6대 임금인 단종을 그리는 정순왕후의 애절한 사랑을 음악에 실어 전달하는데, 남양주와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정순왕후 묘인 사릉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경교장!!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중에서
(경교장 1)
침략국이 아닌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는 민족지도자 김구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김구 선생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곳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이 지난 2013년 3월 2일 개관했다. 3년간의 공사 끝에 드디어 김구 선생이 서거한지 64년 만에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경교장 입구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을 자랑하는 홀이 보이는데, 홀을 중심으로 왼쪽 편에 자리한 응접실은 임시정부의 첫 번째 국무위원회가 개최되었던 곳으로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가 국내외 주요 인사들은 접견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장에는 당시의 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도 전시되어 있어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던 임시정부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경교장 2 - 지하 전시실과 2층 집무실, 서거장소)
또한 같은 층에는 1945년 12월 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와 광복을 맞아 고국에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식사를 한 귀빈식당과 임시정부의 대외적인 홍보를 담당하던 선전부의 활동 공간인 선전부 사무실도 있다. 1,2층 외에도 당시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사용되었던 지하공간은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시실로 꾸려졌다. 전시실에는 임시정부의 활동상과 속옷에 빼곡히 쓰인 밀서, 서거 당시 입었던 백범 김구의 피 묻은 옷 등이 전시되어 있어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한평생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백범 김구는 1949년 6월 이곳 경교장에서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 평생을 분투했던 백범 김구를 국민들에게서 빼앗는다. 결국 경교장은 민족통일을 손꼽아 기다린 백범 김구의 마지막이 담긴 아픔이 서린 장소이기도 하다. 올해는 6·25 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다. 얼마 전 북한은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및 남북 간 불가침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발표하여, 남북관계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남북관계가 험악한 이 때, 경교장을 방문하여 자주평화통일을 역설하던 백범 김구 선생을 생각나게 하는 방문이었다. 슬픈 역사를 뒤로하고 정동길로 방향을 돌렸다. 정동교회와 정동극장과 구러시아공사관을 지나 중명전에서 긴 시간을 두고 다시 근대사에 빠져보기로 한다.
(고종의 아관파천이 이뤄진 구러시아공사관)
경향신문사 건물로 접어들면 아름다운 정동길이 시작된다. 이화 박물관을 보고 길을 건너 정동공원 쪽으로 걸어올라 가다보면 매우 이국적으로 빼죽이 솟아있는 하얀 건축물 하나가 눈에 띈다. 고종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피신해 있었던 구러시아공사관 건물이다. 당시 사건을 우리는 아관파천이라 부른다. 고종은 아관파천이후 건청궁으로 환궁하지 않고 덕수궁으로 향한다. 그리고 곧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러시아 공사관은 한국전쟁당시 대부분 파괴되었고 현재는 지하층과 탑옥부분만 남아 있다. 대부분 파괴되고 없지만 르네상스식 건축양식의 역사적 아름다움이 인정되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정동길을 따라 덕수궁 쪽으로 걷다가 작은 골목에 혹시 지나칠 수 있는 지점에 중명전이 있다. 도심 속에서 보기 드문 건물이다.
(중명전 1 )
20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시기 역사의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이 원형 복원돼 8월 29일 일반에 공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3년 문화관광부가 매입하여 2006년에 묹화재청이 중명전을 인수해 2007년 12월 중명전 복원 공사를 시작한 이후 2년 8개월여 만이었다. 조선 궁궐 내 첫 서양식 건물로 1897년 경운궁(덕수궁) 별채로 건립된 중명전은 처음에는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되었지만 경운궁에 화재가 난 1904년부터 1907년까지 고종의 집무실로 쓰였다. 그 사이 이곳에서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고, 고종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등 밀사를 파견한‘헤이그 특사파견’이 이루어졌었다. 이 일로 인해 고종은 강제 폐위되고 이곳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외국인 클럽으로 사용되었다.
(을사늑약 전문 복사본)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궁궐 내 최초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지만 한국 전통방식으로 화강암 기초를 쌓고, 그 위에 서양식으로 벽돌을 쌓은 독특한 건축 방식을 사용했다. 2층 규모 아치형 테라스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건물 원형도 되살렸다.
중명전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광명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맘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다. “광화문 연가”의 작곡가 이영훈의 추모비를 보니 서양의 젊은이들이 그 나라에서 요절한 젊은 가수나 작곡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처럼 벌써 우리도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동극장과 정동교회를 지나 남대문까지 걷는 동안 동방프라자의 거대한 빌딩은 서울 성곽위에 세워진 것이 새삼 오랜 서울 생활을 했음에도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정동극장) (성곽위의 빌딩) (복원된 남대문)
광화문 연가 / 이영훈 작곡, 이문세 작사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정동교회) (이영훈 추모비)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살피며, 가슴아파하며 또한 광화문연가를 흥얼거리며 오늘의 답사일정을 마감하려한다. 노래는 그 시대를 알게 하고 정서를 담아놓은 그릇과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자존심, 종로를 두루 돌아보며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삶의 생동감을 보게 한 답사였다고 자부한다. 노랫말처럼 세월 따라 모두 가지만 그 흔적은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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