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화전놀이, 서운암을 가다
부산여류시조문학회 사무국장 김덕남
춘3월 진달래가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여인네들의 가슴도 봉긋해진다. 봄을 맞는 것이 어디 자연 뿐이겠는가? 삼국시대부터 여인네들은 이 봄을 그냥 보내지 않고 꽃놀이를 하였다. 산자락엔 진달래, 무덤가엔 할미꽃, 울바자엔 개나리가 다퉈 피면 두꺼운 옷 활활 벗고 봄옷으로 치장하고 집을 나선다. 꽃그늘 아래 솥뚜껑을 뒤집어 걸고 기름을 두르고 찹쌀반죽 동그랗게 올려놓고 진달래를 얹어 지졌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문화를 살리고 이어오고자 하는 성파스님의 권유로 1987년 부산시조문학회에서 시작한 화전놀이를 1994년부터 부산여류시조문학회에서 이어받아 서운암에서 하고 있다. 부산여류시조에서 시작한 지 올해로 열네 번째다. 올해는 부산여류시조 창립 30년이 되는 해이어서 지금까지 해오던 화전놀이를 확장하고 내용도 다양화하기로 했다.
서운암에는 16만 도자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이 있다. 장경각은 세계에서도 하나뿐인 옻칠 건물로 색다른 아름다움을 뿜고 있다.
해인사에는 목판경이, 화엄사에는 석경이, 서운암에는 도자경이 있다. 성파스님이 1990년부터 도자경 작업, 장경각 건축 등 22년에 걸친 민족유산의 대역사를 이룩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곳에서 화전놀이의 맥을 잇고 확산해 가기 위해 올해는 경남, 울산, 청도의 시조시인들까지 초청하여 더욱 뜻깊은 행사를 할 수 있었다.
3월 28일 11시 30분에 서운암에 집결하여 점심 공양을 마친 후 뜰에 차일을 치고 현수막도 걸면서 행사장을 꾸몄다. 전연희 시인의 오르간 반주에 맞춰 봄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군데군데 자리를 깔았다. 각 시조단의 참석자들을 9명 내지 10명을 1개 조로 하여 5개 조로 나누었다.
선남선녀들이 참선하듯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장독대와 잘 가꾼 야생화 단지를 지나 지천으로 흐드러진 진달래를 따기 위해 삼삼오오 산속으로 흩어졌다.
매화와 산수유 숲을 지나 나뭇가지에 물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바구니 가득 따 온 진달래가 소녀의 연지볼같이 붉었다.
고소한 해바라기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다 동그란 찹쌀반죽을 올려놓고 노릇하게 구워지면 그 위에 진달래를 살짝 얹으니 부처님도 코를 벌름거리며 기웃기웃하듯 하였다. 본부석에서는 미리 준비해온 쑥떡과 송편 그리고 손무경 시인이 갖고 온 와인, 정희경 시인이 갖고 온 보리수주가 놓여졌다. 화전놀이에 참석키 위해 어려운 시간을 내어 연변에서 오신 임종찬 부산시조 고문과 청도에서 오신 민병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이처기 경남시조시인협회 회장, 한분옥 울산시조시인협회 회장, 백승수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장, 정현숙 부산여류시조문학회 회장, 박달수 부산시조 고문, 박옥위 부산여류시조 고문 등이 본부석에 자리하였다. 각 조에서 부쳐온 화전을 정현숙 부산여류시조회장이 준비해 온 꿀에 찍어 맛보며 미리미리 채점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화전이 어느 정도 부쳐질 무렵 각 조에서는 봄을 가득 담은 화전 한 쟁반씩을 본부석 심사대 위에 진열했다.
손으로 수놓은 하얀 테이블보 위의 진달래전은 모양도 색도 그 조의 특징을 잘 반영한 듯 정갈하고 화사했다.
2부 행사는 성파스님과 동진스님이 참석하신 가운데 시작되었다. 두 스님과 본부석 위원들이 심사를 맡고 필자의 진행으로 행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각 조에서 출품한 화전에 눈길이 모아졌다.
심사기준은 화전의 모양과 맛, 화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팀웤(꽃을 따는 과정부터 화전을 부치는 과정, 팀별 합창까지의 전 과정)을 포함한 종합평가다.
먼저 심사대 앞으로 조장이 나와 화전의 특징, 상징을 설명하고 조원들의 동요합창을 듣는 것으로 하였다. 다만 1조는 조장(정희경시인)을 대신하여 청도의 정경화 시인이 화전의 상징을 낭랑한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8명의 심사위원이 10점 만점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고점을 받은 4조(조장 김정시인)가 대상에, 차점을 받은 2조(조장 최성아시인)가 최우수상, 나머지 3개의 조는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성파스님이 심사총평을 동진스님이 시상을 해주셨다.
출품한 작품들은 진달래를 주로 하여 쑥과 산수유, 곶감을 고명으로 얹은 조가 있는가 하면 동백, 솔잎, 댓잎 등으로 장식하기도 하고 글자를 솔잎으로 시·조·사·랑이라 쓰기도 하였다.
시상식 후 정현숙 부산여류시조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성파스님의 축하 말씀이 있었다. 성파스님은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서운암 화전놀이가 확장된데 깊은 감사의 뜻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화전놀이가 확산되어 이 전통을 우리 후손들도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민병도 한국시조이사장, 이처기 경남시조회장, 백승수 부산시조회장의 축사 및 격려사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시상식 후 시조창, 시조 낭송, 악기 연주, 독창 등의 순서로 행사가 이어졌다.
이 자리를 한껏 빛낸 순서는 정인경 시인의 창이었다. 애초에 이조년의 다정가로 준비하였으나 즉흥적으로 팜플랫의 시조 <화전놀이>에 곡을 부쳐 은은하고 유장하게 때로는 봄불을 밝히듯 화사하게 불러주어 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다음은 시조 낭송의 순서로 경남시조의 정도영 시인이 자작시 <동백꽃 지다>를 낭송했고, 부산시조의 나동광 시인이 민병도 작 <목련>을, 이상훈 시인이 자작시 <감사의 기도>를 낭송했다.
정희경 시인은 자작시 <봄날 보리밭>을 손증호 시인은 자작시 <이 봄>을 임성구 시인은 마이크 앞에 서자 착착 감기는 목소리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 1, 2절을 부르고 <서운암의 봄> 자작시를 꽃불을 지르듯, 수미산을 넘어가듯, 흰 나비 떼가 서운암 삼천불전을 넘나들듯 낭송하다 다시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로 3절까지 불러 탄성과 함께 박수세례를 받았다.
대금을 들고 나온 최성아 시인은 흐느끼듯 치맛자락이 산허리를 돌아가듯 애절히 산조가락을 선보이다 자작시 <동박새 산조>를 부리로 쪼듯 가슴을 도려내듯 낭송하였다. 낭송 후 다시 대금의 구멍마다 손가락을 짚어가며 혼을 부르는 소리로 마무리를 하였다.
시조 낭송 중간중간 강신구 시인의 하모니카 연주, 김석이 시인의 오카리나 연주, 정경수 시인의 독창 등으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숲에서 나온 공작도 흥에 겨워 목소리를 높이고 삼천불전 용마루에서 학이 한참이나 귀를 기울이다 유유히 날아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꽃과 사람이 어우러지고 여기에 시조와 화전을 더하니 3월의 하루해가 짧았다. 부산여류시조의 화전놀이가 계속되고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통도사 앞 경복궁식당에서 평가회를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2015. 3.)
- 《부산여류시조》 2015. 제2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