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치병에 은퇴, 어린이 야구코치…WBC우승 감독의 인생역전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의 야구 철학
도쿄=성호철 특파원
김동현 기자
입력 2023.03.23. 21:27
업데이트 2023.03.23. 23:03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이 21일(현지 시각)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3대2로 꺾고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UPI 연합뉴스
21일(현지 시각)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에서 야구 종주국 미국을 꺾고 14년 만에 우승한 ‘사무라이 재팬(일본 야구 대표팀 애칭)’ 선수들은 구리야마 히데키(栗山英樹·62) 감독을 10차례나 헹가래 쳤다.
일본 언론에선 그를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二刀流)’에 견줘 ‘구리야마류’라고 부른다. 이는 결승전에서 5회부터 매회 투수를 교체하는 초강수로 미국 강타선을 잠재운 그의 작전 스타일을 칭하는 말은 아니다. ‘구리야마류’는 ‘아빠와 공원에서 캐치볼을 하는 어린이’란 콘셉트를 중심에 놓고 팀 전체가 화합하는 새로운 일본식 야구 문화다.
구리야마 감독은 WBC 체코전을 앞두고 “전국을 돌면서 해설가로 활동한 2011년 당시 대지진이 덮친 참혹한 모습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며 “지난주가 대지진 12주년이었다. 야구를 통해 슬픔을 없애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 라스 눗바(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WBC 무대에서 어린 시절처럼 유쾌하게 웃으며 야구를 했다. 그때 그 일을 안 했다면, 나 역시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2023 WBC에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 대표팀 감독. /뉴시스
2023 WBC에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 대표팀 감독. /뉴시스
‘그때 그 일’의 시작은 1999년이다. 1984년 일본 야쿠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구리야마는 1985년 평형감각을 잃는 난치병 메니에르병을 앓게 됐고, 1990년 29살의 이른 나이에 유니폼을 벗었다.
야구 인생에서 큰 좌절을 맛본 그는 홋카이도의 한 마을인 구리야마에 터를 잡았다. 도쿄 출신인 그가 그곳을 찾은 이유는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마을 청년회에서 그의 이름이 마을 이름인 ‘구리야마(밤나무의 산)’와 똑같다고 1999년 홍보대사를 의뢰한 것이다.
30대 후반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는 마을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마음을 열고 본인의 꿈을 얘기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꿈의 구장’과 같은 푸른 야구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 ‘꿈의 구장’은 주인공이 옥수수밭을 갈아엎어 야구장을 만들자 한때 메이저리거였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영혼이 되어 찾아온다는 스토리다.
일본 야구 대표팀의 2023 WBC 우승을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지난 2011년 홋카이도 구리야마정(町)에 있는 ‘밤나무 농장(栗の樹ファーム) 야구장’에서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에서 견학 온 아이들에게 야구 수업을 하고 있다./구리야마정
일본 야구 대표팀의 2023 WBC 우승을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지난 2011년 홋카이도 구리야마정(町)에 있는 ‘밤나무 농장(栗の樹ファーム) 야구장’에서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에서 견학 온 아이들에게 야구 수업을 하고 있다./구리야마정
주인공은 그 구장에서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는데 구리야마도 야구의 원점은 아버지와 하던 캐치볼이라 생각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성원 속에 사비를 털어 황무지를 정비했다. 2002년 잔디가 깔린 야구장이 완성됐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야구 교실을 열었고 동네에서 야구 대회도 개최했다. 야구장 입구엔 항상 글러브와 공을 놓아두어 누구나 와서 캐치볼을 할 수 있게 했다.
구리야마 마을에서 꿈을 펼치고, 해설가로 야구와 인연을 이어간 그에게 2011년 프로야구팀 닛폰햄이 감독 자리를 제안했다. ‘야구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싶다’는 이유였다.
오타니 쇼헤이(왼쪽)의 프로 입단 당시 감독이 닛폰햄 파이터스의 사령탑 구리야마 히데키였다. 둘은 이번 WBC에서 우승을 합작했다. /일본 대표팀 홈페이지
오타니 쇼헤이(왼쪽)의 프로 입단 당시 감독이 닛폰햄 파이터스의 사령탑 구리야마 히데키였다. 둘은 이번 WBC에서 우승을 합작했다. /일본 대표팀 홈페이지
2013년 오타니가 닛폰햄에 입단했다. 대부분 선수가 프로에 와서 투수와 타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서 구리야마는 오타니의 꿈을 존중해 그가 이도류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았다. WBC 무대에서 스승과 다시 해후한 오타니는 옛 가르침대로 투수와 타자로 모두 맹활약하며 대회 MVP에 올랐다.
구리야마는 감독 부임 10년째인 2021년 9월, 닛폰햄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사퇴했다. 두 달 후 그는 ‘사무라이 재팬(일본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에 올랐다. 아사히신문은 “구리야마 감독이 대표팀에 있었기에 최고의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모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예컨대 일본어를 못 하는 일본계 미국인 메이저리거 눗바가 대표팀에서 활약한 것은 ‘야구를 사랑하는 어린이’의 마음이면 모든 걸 같이 한다는 구리야마류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다르빗슈는 우승 직후 “우리의 더그아웃에선 늘 웃음소리가 넘쳐났다”고 말했다. 오타니는 이번 WBC 대표팀에 대해 “최고의 팀으로 우승해 행복하다”며 “훌륭한 선후배와, 정말 좋은 팀원들과 야구를 할 수 있어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구리야마 감독은 이날 “오늘로 감독을 끝내고 내일부터는 아무런 직함이 없는 일반인으로 돌아간다”며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WBC에서 활약한 대표팀 선수들을 보고, ‘멋있다. 나도 야구해 볼래’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만족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WBC 우승 상금 13억원... 오타니 연봉의 10분의 1
“일본 야구엔 혼이 있다”… 日, WBC 세번째 우승 비결
‘홈런왕’이 문 열고, ‘야구 천재’가 끝냈다...일본, 미국 꺾고 WBC 우승
많이 본 뉴스
보르도 시청사까지 불탔다...프랑스 연금 개혁 강행에 100만 시위
난치병에 은퇴, 어린이 야구코치…WBC우승 감독의 인생역전
표현의 자유인가, 상표권 침해인가... 미 대법원 달군 ‘개 장난감’ 논란
100자평21
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자유10
2023.03.23 22:27:16
일본인은 우리에게 게다짝 신고 기저귀 찬 앞니가 툭 튀어나온 왜구로 치부되지만 실제 일본인은 저렇게 훌륭한 면도 있다. 그런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무조건 경멸만 하는건 얼굴만 파묻고 숨었다고 안심하는 꿩대가리보다도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답글
2
208
0
답글을 입력해주세요.
lobstet
2023.03.24 01:00:56
至當한 見解.
Veritas
2023.03.24 00:06:03
아시안 국가가 우승하는 것 괜찮다 본다.
beaboss
2023.03.23 22:52:36
역시나 일본은 우리가 한참을 "보고 배우고 느껴야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직 "대한민국은 할일이 남아있고, 갈길이 멀었으며, 쉴 때가 아닙니다!!!"
답글
1
176
0
Henry
2023.03.23 22:44:54
그동안 잘 몰랐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답글작성
157
0
사소믿
2023.03.23 23:35:31
이번 WBC를 통해서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배웠다. 그건 정말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귀한 교훈이다. 요즘 한국이 일본에 견줄수 있는 선진국이 되었고, 마치 일본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는 것처럼 선전하는 유트브들이 많은데 그건 다 그저 어그로를 끌어서 국뽕으로 클릭수나 올리려는 얄팍한 경우가 많다. 지금 유트브들중에 한국이 탈락한 WBC에 대해서 진심으로 생각하고 왜 한국이 탈락했는지 분석하는 유트버들이 있나? 심지어 야구인들이 하는 유트버들도 못 봤다. 다 잠수를 탔는지... 그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저 보이는 것만을 전부라 생각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현실을 인식하고 파악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국으로부터 좋은 것은 배우고, 계속해서 발전해야 한다.
답글작성
62
0
살구꽃피다
2023.03.24 01:20:27
존경스러운 일본인이다. 사랑과 행복과 웃음으로 야구를 평정했다. 저주의 굿판을 벌이는 여의도와는 다르다. 여의도의 한국인보다 밤나무 산의 일본인이 훨씬 더 존경스럽다. 그렇다 나도 친일파이다.
답글작성
33
0
청꿀
2023.03.24 00:11:28
역시 "일본은 있다".
답글작성
33
0
딸각발이
2023.03.24 00:47:54
격이 다른 감독... 인생 승리입니다.
답글작성
29
0
카톡대학교
2023.03.24 00:01:16
내일..이 기사를 카톡대학교에 링크해야겠어요. 감동 愛 감동입니다!!
답글작성
26
0
ivynewyork
2023.03.24 00:42:25
이강철 배워라. 그는 우선 소속팀이 없이 대표팀만 맡아서 집중했다. 너는 너네팀 전지훈련장에 대표팀을 끌고 갔지. 동경에서 삼주뒤 개최될 시합에 머나먼 미국 동남부끝까지 대표팀을 끌고 갔다. 밤낮바뀌는데 2왕복 2주는 걸리는데. 왜??? 이 사심 가득찬자야! 꿩도먹고 알도 먹을려고! 넌 쓰레기 아닌가? 해명해봐라!!!사심 없었단걸!
답글작성
25
0
자유가
2023.03.24 01:16:32
일본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구나.감독이나 선수나 모두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증명?榮?
답글작성
24
1
이은주82
2023.03.24 00:41:03
멋진인생--
답글작성
19
0
prad1
2023.03.24 05:15:09
아 정말 부끄럽다. 우리에게도 저렇게 정말 야구를 사랑하는 선수, 감독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에게 꿈을 주고 올바른 인간으로 자랄 수 있는 야구가 필요하다. 단지 프로선수가 되어서 돈만 밝히는 선수가 아닌.... 오타니도 고등학교때 작성한 본인의 미래의 각오를 보면 쓰레기를 줍자라는 정말 작은 일도 있고 그걸 지금 메이저리그에서도 실천하는 걸 보면 정말 인성이나 의지가 대단한 친구이다.
답글작성
11
0
돈조반니
2023.03.24 03:01:47
오늘 뉴스에 한국이 프로야구 선수가 성착취물로 협박을 하다 검거됐다고 한다 이게 한국야구의 현주소라 한국야구는 희망이 없다
답글작성
10
0
Obrigado
2023.03.24 05:51:57
우리 사회의 곳곳에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이 10%만 존재해도 정말로 좋은 나라 될겁니다. 혐일을 떠들고 강요하는 자들 반성해야 합니다. 일본 곳곳에 이런 분들이 수두룩한 것이 일본의 진짜 경쟁력입니다.
답글작성
5
0
난다날아간다
2023.03.24 04:06:44
우리 현실은 명문대 입학하기 위해 학교와 학원으로 뺑뺑이 도는 모순~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많은 돈을 벌기위해 학업과 인성은 포기한채 운동만으로 하루를 사는 모순 꿈과 스포츠정신이 아닌 남보다 돈도 많이 벌고 갑이 되어야 한다는 3류 인생을 권하는 사회적 집단 모순 ~ 아~~~~
답글작성
5
1
그린필드
2023.03.24 07:38:20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 들어는 보았겠지? 우물안 개구리 같이 매사 죽창가를 앞세워 반일몰이에 광분하는 인간들은 이기사를 보고 뭐 느끼는게 없을런지?
답글작성
3
0
블랙 이글
2023.03.24 07:52:20
모든 곳에서 지도자의 중요성은 말해 무엇하랴? 대한민국 야구도 일본 감독 불러다 정신 개조부터가 답이다. 우물안 개구리, 죽창가, 이것으로 상대를 넘어설수 없다. 실력이 답이다.
답글작성
2
0
박용재
2023.03.24 06:32:50
일본인 들에게 배울점이 많읍니다,,그래서 윤대통 령은 과거를 버리고 정책적으로 끌어안고 앞으로 가까운 나라로 같이 나가자고 한것 같네요~~,그런데도 좌파 민주당 넘들은 무조건 반대로 헐뜯느라고 떼쓰고 있으니 나라가 말이 아니네#~~~//^^
답글작성
2
0
Outpost
2023.03.24 04:13:49
1940년대의 만화? 실제론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본인과 한국인 젊은이들의 인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말로만 설명하기 어려우니 남아있는 일반 대중의 사진 (구글 참조)을 보면서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는 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근래의 사진에서는 성형 수술하지 않은 한국 젊은이의 사진을 찾기 어려우나 시골 농부들의 얼굴과 비교하거나, 양국 정치꾼들의 성형하지 않은 얼굴과 비교하여 각기의 사회속에 숨어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추론하여 우리 스스로가 반성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답글작성
2
0
bigi
2023.03.24 08:24:19
감동스런 기사네요. "잇쇼겐메이(온힘을 다해)" 야구를 했군요. 본받을만한 자세입니다. 굿 잡 !
답글작성
1
0
bearking
2023.03.24 06:01:19
'용장 밑에 약졸 없다'의 반대말은 '그 나물에 그 밥' 입니다.
답글작성
1
0
당신이 좋아할만한 콘텐츠
산부인과 전문의, Y존 탄력 수술없이 되돌린 '이것' 추천
임영웅, KBS 단독 특집쇼 출연료 안 받은 이유
Y존, 씻어도 가렵고 냄새나? '이것' 냄새‧염증 싹 없애!
국방과학연구소, 北 본뜬 저가형 소형 무인기 100대 제작 발주
"소변 콸콸~" 수술없이 '이것' 후 전립선 비대 완치!
신애라 큰딸, 클수록 연예인 미모…女 연예인들이 더 난리
Recommended by
많이 본 뉴스
1
문재인의 베이징 연설, 윤석열의 도쿄 연설 [박정훈 칼럼]
2
박연진이 아니었다...전문가가 꼽은 ‘더글로리’ 속 가장 위험 인물은
3
김학의·윤미향·곽상도 이어 검수완박… ‘비상식적 판결’ 논란
4
항구 접근해 수중서 핵폭탄 쾅… 北 ‘방사능 해일 공격’ 무인잠수정 개발
5
공시가 162억…전국 가장 비싼 아파트, 누가 사나 봤더니
6
中, 반도체 굴기 대수술… 첨단 안되니 구형으로 승부하라
7
[기자의 시각] 하다하다 멍게까지...품격 잃은 日 언론보도
8
김의겸 “당무위서 만장일치로 李 당직유지” 또 거짓말
9
체포된 2명, 권도형과 측근 맞았다...몬테네그로서 송환 준비 중
10
정유라 “엄마 또 재수술, 또 병원비”…후원 요청하며 계좌번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