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4. 30
물가 안정? 장바구니 물가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지난주 국민을 놀라게 했던 ‘저성장 쇼크’가 일시적 파문으로 끝날 것인가. 이런 의문을 던지는 이유는 최근 과도하게 낮은 물가 상승률의 흐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0.5%에 그쳤다.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치 2.0%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1966년 이후 분기 기준으로는 최저치다. 그러니 정책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나 미국의 대공황처럼 경기 부진과 물가하락으로 경제가 파괴됐던 구조적 디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1980년대 한국은 물가 상승률이 한 해 20%에 달하던 고(高)인플레이션 국가였다. 이에 따른 생활고를 겪은 우리 국민 입장에서는 낮은 물가 상승률이 희소식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목표치보다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소비와 투자를 비롯해 국민경제의 수요가 부족해 경기가 부진하고 이에 따라 경제의 어려움이 가속화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즉 안정된 경기상황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상(現象)적인’ 저물가는 구매력이 개선되는 좋은 징후라기보다 경기악화의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실물경기는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실질성장률은 지난해 2.7%로 전년(3.1%) 대비 0.4%포인트 떨어졌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0.3%’(연간 기준 1.8%)로 사실상 위기 상황에 진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한 이후 최저성장률이다. 하반기 큰 개선이 없다면 아예 2% 초반으로 떨어질 가능성마저 있다. 현재 정부지출로 버티고 있지만, 민간소비와 투자의 부진이 겹쳤다. 여기에 그동안 반도체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떠받쳤던 수출까지 악화하고 있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기악화 문제가 있지만, 물가상승률이 낮으면 그래도 물건값이 싸다는 뜻이니까 긍정적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물가상승률이 낮아도 국민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높다. ‘내가 사는 물건값만 올랐다’는 소비자의 하소연이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데,치솟는 체감물가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이지만 국민이 일상에서 실제 구매한 품목의 가격은 올랐을 가능성이다. 0%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구성하는 항목 가운데는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보이며 가격이 내려간 품목도 있지만 높은 플러스(+)의 물가상승률을 보인 것도 있다. 그런데 가격이 내려간 것들은 대개 소비자들이 사지 않은 결과로 가격이 내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구매하지 않은 품목의 낮은 가격은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경기 부진과 디플레이션이 복합적으로 진행될 경우 자신의 일자리와 소득은 불확실한데 구매를 검토하는 제품의 가격은 미래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지금 구매하지 않고 나중으로 구매를 연기하게 된다.필수 품목 위주로 소비를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5%지만, 같은 기간 필수 소비품목의 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곡물 가격이 급등해 쌀 18.5%, 현미 23.1%, 찹쌀 24.7%, 콩은 21.4% 올랐고, 소고기(국산 2.2%,수입 2.8%)와 닭고기(10.9%) 가격도 상승했다. 수산물도 마른오징어 15.6%, 낙지 21.1%, 어묵 9.9%, 젓갈 4.2% 등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우유 5.4%, 발효유도 4.2% 올랐다. 여기에 사과 6.9%, 배 41.1%, 복숭아 22.6% 등 주요 과일 가격도 상승했다.
반면에 전기밥솥(-7.6%)·가스레인지(-1.7%)·전기레인지(-9.6%)는 하락세를 보였고, 주방용품 등 가정용품도 -0.2% 떨어졌다. 택시비는 인상됐지만, 교통·통신 관련 가격도 하락하거나 유지됐다. 여기에 음향·영상·사진 및 정보처리 장비도 -5.3% 하락했고, 개인용 전기용품 및 미용용품 가격도 내려갔다. 결국 이러한 비필수 품목의 가격하락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자체는 높지 않다.
둘째, 소득보다 조세와 연금·사회보험 등 비소비 지출이 큰 폭으로 늘면서 소비에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증가하지 못해 구매력이 약화하면서 물가가 올랐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8년도(잠정치) 평균가 고소득은 5705만원으로 전년도 5478만원에서 4.1% 증가했지만, 조세와 연금·사회보험 등 비소비지출 평균액은 1037만원으로 전년도(958만원) 대비 8.2% 증가했다. 특히 세금이 307만원에서 342만원으로 11.4% 증가했고 각종 공적연금·사회보험료 역시 307만원에서 325만원으로 5.8% 커졌다. 더구나 가계경제의 핵심인 50대 가구주의 경우는 가처분소득(전국, 2인 이상)이 아예 줄었다. 결국 가계의 구매력이 저하됐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체감물가가 상승한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책 추진에 있어 ‘경기 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과 ‘개별 품목의 가격상승’을 분리해 대응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일반 물가의 움직임은 경기 부진과 디플레이션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정부지출 확대와 완화적 통화정책을 포함해 적극적 경기 대응이 필요하다.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려면 경기회복 정책을 써야지, 공공요금 인상이나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정책처럼 인위적으로 물가 수치를 끌어올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또 물가상승률 수치는 낮아 보여도 가처분소득 감소와 필수품목의 가격상승으로 국민의 삶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전반적 경기부양 정책은 필요하지만, 시장을 왜곡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개별 필수품목에 대한 가격 상승은 인위적 시장 개입보다는 공급을 확대하거나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지원을 우선시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불황은 막아야 한다.
성태윤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중앙일보
실업률도 국민 체감과 큰 괴리 보여
현재 실업률은 3월 기준 4.3%다. 조금씩 악화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편이어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공식 실업률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공식적으로 실업자는 ‘조사 대상 주간에 수입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던 사람으로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우리 주변의 실질적 실업자와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 실업률 정의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노동시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해석에는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취업시즌이 존재하고 있어 그때가 아니면 적극적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 단기 근로도 취업자로 간주해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최근 단기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취업자가 급증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 확장실업률이다. 실제 체감 실업률을 알 수 있는 ‘고용 보조지표’다. 특히 ‘고용 보조지표 3’은 공식 실업자 이외에 시간제 근무를 하지만 추가취업을 희망하는 추가취업 가능자, 최근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잠재구직자, 구직노력은 했지만 당장 시작하지 못하는 잠재취업가능자 등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실업률에 가깝다. 그런데 올해 1분기 ‘고용 보조지표 3’은 13.0%에 달하고 있다. 2018년 12.2%, 2017년 11.7%, 2016년 11.8%에 비해 상당히 악화했다.
더구나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커지자 능력과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신입직원에 대한 고용을 피하려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청년 실업이 심각해지고 있다.따라서 ‘고용 보조지표 3’으로 본 청년실업률은 올 1분기 24.2%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 22.9%에 비해 1.3%포인트 악화한 기록적 수치다.
적절한 정책을 수행하려면 상황을 직시하고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지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현재 국민이 느끼는 경기와 고용상황이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하고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