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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 맞춤의 변천
■ 개 요
낚시에서 중요한 찌가 찌맞춤의 변천사가 있다는 말은 조금 생소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낚시의 발전으로 찌맞춤의 형태도 크게 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만 찌의 형태와 크기, 미끼의 발전, 채비의 발전으로 다양한 형태로 찌맞춤이 이루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절대로 찌맞춤의 원리인 영점의 개념은 변한 것이 없다.
그것은 부력과 중력의 맞춤이기 때문이다.
그 맞춤이 변하는 것은 조건에 따른 응용적인 찌맞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찌맞춤이 필요한 이유이다.
일부의 찌맞춤의 변형을 두려워 하는 이들은 이 변천의 이유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 찌맞춤의 변화
1.60~70년대의 찌맞춤
주로 주간낚시위주로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야간낚시는 별도의 등불인 카바이트통을 이용한 칸델라라는 이름의 가스등이 필요하던 시절이다.
지금의 케미라이트는 사용하지 않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찌는 대롱찌가 주력을 이루다 솔리드톱이 나오면서 대롱은 찌위와 일부분에 사용하는 시인성소재로 바뀌었다.
당연히 찌의 상승에 영향을 주는 톱의 굵기가 굵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이런 찌를 맞추는 것은 부력의 오차범위가 커 쉽게 찌를 맞출 수 있다.
더이상의 다른 맞춤이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동안 60년대부터 내려온 찌끝 수평맞춤이다.
찌끝 수평의 맞춤은 낚시에서 불문법처럼 강하게 지켜졌다.
만약 이를 어기면 추가 떠서 당시의 조개추 채비로는 입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했던 찌맞춤의 룰이었다.
지금도 이를 강조하는 이들은 불문법으로 여기고 절대 강조한다.
이걸 전통찌맞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찌에서 이런 걸 적용하기엔 조금 무리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못 낚으면 다른 탓을 하는 대표적인 경우의 분들이다.
당시의 찌는 대부분 막대형의 찌에 가까웠고, 찌의 길이 짧으며 부력의 크기도 작은 편에 속했다.
사실 부력이 큰 것은 대롱의 부력 때문으로 전체의 무게 중심이나 부력중심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당시는 그렇게 맞추는 것이 그 찌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정답이다.
찌끝 수평맞춤을 하지 않으면 그 낚시는 실제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대롱으로 표면장력이 큰 찌는 오차의 범위가 큰 만큼 찌끝을 내 놓은 맞춤을 하게 되면 바닥에서 추가 뜨고 바늘의 밥이 녹아지면서 뜨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조개추가 바늘을 양쪽으로 벌려 눌려져 추의 중심이 직접 바닥에 닿아 있기 때문에 미끼에서 입질로 발생하는 힘이 반대편의 바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추에 바로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힘이 소실되지 않고 추에 전달되어 초기의 찌 움직임이 크게 나타나게 된다.
이 부분은 요즘의 찌맞춤에서 크게 변해야 하는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찌맞춤의 역사가 찌의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되면서 민감성을 강조하는 찌의 형태로 서서히 바뀌고, 찌맞춤의 과학이 도입되게 된다.
그래서 당시에 유료낚시가 많아지고, 향어라는 신어종이 대상어종으로 시작되면서 입질의 패턴이 바뀌고 둔한 입질을 극복하기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찌의 발전에 일대 변혁을 예고한 것이다.
2. 80년~90년의 찌맞춤
향어가 주종을 이루고 찌의 민감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거친 미끼를 사용하는 낚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 때의 낚시는 양식산 어종과 대형어종 위주의 낚시로 이루어지면서 찌의 민감성을 크게 강조하는 패턴으로 찌제작자들이 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찌의 몸통이 점점 커지고 횡축형찌(당시이름: 다루마형)가 대세를 이루는 시기로 전환되었고, 찌 모통의 크기도 커지면서 순부력이 높고 찌 길이도 긴 것으로 점점 전환되고 있었다.
이 때 큰 인기를 끈 것이 찌에 장신구를 쓰지 않고 굵은 솔리드톱에 끝에 붉은 색의 팁이 달린 찌인 금강찌라는 것이 좋은 찌라는 호평을 받았다.
지금에 비교하면 아주 둔탁한 찌이다.
하지만 몸통도 변형횡축형이고 부력도 큰 것에 속하고 조개추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그래서 당시에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올라와도 채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친구와 낚시를 가서 친구는 밤새 잡고 나는 붕어만 잡았던 것이 생생하다.
처음한 향어낚시라 도저히 입질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친구와 새벽에 건편에서 서로 마주보며 하는말" 야, 어떻게 하면 낚을 수 있냐? 하고 물었다.
물론 약이 올라서이다. 친구왈 "조금만 올라와도 채!!!"이다. 그렇다면 밤새 날 약올린 입질이 향어 입질이었다는 거야~~흐윽^^
그후 난 연속 20여수를 했다.
그 때의 찌맞춤도 역시 찌끝의 맞춤이 당연한 대세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어떤 이는 바늘과 미끼를 달고 찌를 맞추는 것, 찌를 내놓고 맞추는 것은 마치 초보자나 낚시를 모르는 이들이 하는 불량 낚시인 취급을 당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사람이 향어는 더 잘 낚았던 시대였다.
이유는 요즘 분들은 아주 잘 알 수 있다.
이 때의 찌는 조금더 몸통이 있는 날렵한 찌이지만 아직 톱이 조금 굵은 형태의 찌였다.
이 때부토터 케미라이트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당연히 과거의 연속 개념에 묶인 케미라이트 끝 찌맞춤이다.
찌를 야간에 반딧불 형상을 내놓고 그게 올라오면 까는? 그런 낚시의 시대였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찌올림을 포기한 중량과 마릿수로 잡는 파이팅의 낚시시대가 열린 것이다.
3.90년~00년 찌맞춤
낚시의 대변혁의 시대가 열린 시기이다.
향어낚시의 시대가 절정을 이루고 유료낚시터에 꽃이 피면서 고가의 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향어도 찌가 멋지게 올라오게 하는 그런 찌를 갈구하는 2중의 요구가 팽배한 것이다.
이즘 92년에 나는 낚시터를 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사실 인생의 대변화가 생긴 것이다. 즐
기는 아마추어에서 이끌어야 하는 프로낚시인이 되게 된 것이다.
솔리드 톱이 카본톱으로 전환되면서 톱이 차지하는 무게를 줄이고 길게 사용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과감하게 찌끝에 달린 다양한 장신구들이 작아지고 찌의 무게 중심을 몸통의 밑으로 내리려는 강한 시도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채비들도 다양한 것들이 등장하면서 분할채비가 널리 전파되는 시기이다.
아직 추는 조개 추를 이용한 벌림추채비나, 내림추채비가 대세를 이루는 시기이다.
또한, 90년대 말에 방울 케미의 등장이 또다른 변수를 만들어 냈다.
이젠 과거와 같은 형태의 찌끝영점 맞춤은 야간낚시에서 과거의 찌맞춤 만도 못한 찌맞춤이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됐다.
그 것은 찌상단에 많은 량의 무게가 추가되고, 물 표면에 닿는 표면적이 커진 것(표면장력이 커짐)이 가장 큰 문젯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며, 이를 간과한 찌맞춤과 이를 극복한 찌맞춤의 차이는 초보자와 전문가의 수준의 차를 느낄 정도로 변하게 된 것이다.
찌맞춤의 민감성이 강조되고 야간 낚시 시 케미라이트의 무게가 조금은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 등장하면서 좀더 정밀한 찌맞춤을 강조하는 시대가 된것이다.
사실 이때 까지만 하여도 고정적인 찌끝맞춤이 대세였으며, 주간에는 정상으로 사용하다 야간에 케미고무를 끼우고(당시이름:무시고무)케미라이트를 달고 그대로 낚시하던 시대였다.
더군다나 4밀리케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거운 낚시를 하는가 였는지 익히 알 수 있다.
그래두 그 시대는 잘도 잡아냈다.
작은 찌오름의 쪼는 맛이라고 할까~~
그 시대의 중반에 나는 낚시의 오묘함을 터득하는 고수들을 만나게 된다.
밤을 세워 같이 낚시하고 그 분들의 오랜 경험과 낚시의 비법을 알아내기 시작했다.
줄칼로 정성껏 찌를 맞추는 고수의 노력이 왜 필요한지도 알게됐고, 찌맞춤의 정교함과 찌에 대한 깊은 이론도 하나씩 더 깊게 알게 됐다.
또한 낚시미끼의 중요성도 알게되어 95년에 낚시미끼 제조업에 뛰어들게 되어 "에코 스페샬"이라는 미끼를 생산하기에 이르러 지금까지 뽕을 빼고 있다.
당시에 나온 찌중에 석수찌라는 것은 검은 모양에 긴 찌를 하고 변형횡축형의 찌로 길이가 60cm급에 달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
시의 찌들은 거의 30~40cm정도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찌끝에 장신구가 없이 카본톱을 이용한 횡축형의 고부력찌로 지금으로 7~8호추 정도가 나온 것이다.
이 찌는 향어가 입질을 해도 찌가 쑥쑥 올라온다.
참으로 당시의 아마추어들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격도 아주 비쌌다. 1만원 넘기도 했다.
당시의 찌는 보통 3000원이었다.
조금더 좋으면 5천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것이 별것이 아니다라고 느끼지만 당시의 찌로는 최고가이며 자랑거리였다.
이 찌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고부력에 긴 찌가 향어의 입질을 받아 몸통까지 올라오니 당시의 나의 실력으로는 놀라울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부력의 찌에 막대 3밀리케미를 달아 찌끝에 물수평을 맞춘 맞춤이었기 떄문이다.
그리고 케미를 반이상 내 놓은 상태에서 낚시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부력의 찌는 너무 민감하게 맞추지 않아도 찌오름을 크게 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고부력의 찌 오차 범위에 근접해 있기에 느긋한 기다림만 있으면 찌올림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에 또 한 번의 낚시가 발전하는 반전하는 기회가 온다.
97년도 이후 IMF를 맞이하고, 중층 및 내림낚시가 도입되고, 붕어가 수입되는 시대가 되면서 향어와 잉어가 서서히 유료터에서 퇴출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낚시에서 크게 변화되는 시대가 왔다.
우선 찌맞춤의 변화가 오며, 조개추에서 고리추로 급격히 전환되고, 무미늘 바늘의 시대가 시작되며, 찌의 몸통이 오동이나 갈대에서 발사목이라는 소재로 전환되는 시대였다.
체적이 작은 고부력 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상어종도 수입산 붕어(일명 짜장붕어)가 들어와 새로운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금 찌오름이 강조되는 낚시가 된 것이다.
이 때부터 다양한 찌맞춤의 논쟁이 벌어지고, 찌가 낚시계를 이끄는 시대가 된 것이다.
4.00년~11년 찌맞춤
찌를 선도하는 회사가 많아지고 찌의 가격이 고급화하는 시대이다.
기능을 강조하고 순부력을 강조하는 대단한 경쟁의 시대였으며, 중국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수입 오면서 순수 국내 찌제작사들은 존폐위기로 몰린 시대이다.
찌가 대중화되고 화려해지면서 전체적으로 찌 길이가 배이상 길어져 보통 찌의 길이가 이미 5~60Cm넘어 미터급을 넘기는 찌까지 사용되는 찌오름만을 강조하는 시대로 되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찌는 다시 암흑의 시대로 가는 듯한 느낌이다.
찌가 낚시를 하는 느낌이 강해지는 아이러니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시기는 목줄의 길이가 길어지고, 바늘의 구조가 무미늘의 형태로 목이 길어지는 모습으로 전환 됐으며, 케미라이트를 내놓는 맞춤을 강조하는 시기가 됐다.
내림과 중층낚시가 성행하던 시기로 찌와 찌맞춤, 채비의 혼선이 오는 시기이다.
이를 주도한 찌가 군계일학과 이화요수, 나루예공방등 이다.
찌도 다양한 기능을 강조하면서 완전수제를 표방한 다양한 찌들이 고가의 제품으로 출시됐다.
가벼운 짬줓밍 대세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붕어가 약아졌다라고들 하는 그런 시대이다.
이러한 찌들의 찌맞춤은 다양한 형태로 적용하여야 한다.
야간낚시와 주간낚시의 오차를 줄이기 위한 찌맞춤등을 위해 정교한 찌맞춤을 강조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낚시가 어려워졌다"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좀더 영점에 가까운 민감한 찌맞춤을 한다는 것이다.
찌맞춤의 영점을 강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것은 찌가 더 고기능성으로 만들어 졌으며, 그에 따른 오차 수용의 범위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찌의 정교함이 강조된 것을 그 것이 필요로 하는 찌맞춤을 요구하는 그런 시대이다.
어쩌면 낚시가 어려워졌을 수는 있어도 찌가 충족시켜주는 만족도는 과거의 어떤 떄보다 최상이다.
보이지 않던 입질이 보이고, 조금 올라오던 입질이 쭉쭈욱 올라오게 되어 낚시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만족을 얻어 최상의 낚시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젠 낚시인들도 과학적인 이론을 가지고 하는 그런 낚시가 되어 전문레저가 됐다 할 수 있다.
5.바늘을 달고 찌를 맞추는지 여부
그 옛날의 찌 맞춤에서도 정석의 찌 맞춤은 바늘을 달지않고 하는 것이다. 바늘을 달게되면 바늘의 무게 차이로 찌맞춤이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추를 조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맞춤에서 바늘을 달고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별차이가 없고 오차의 범위에 속하기에 별 의미차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지음의 찌맞춤에서 아주 중요하다.
찌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내의 최소 오차까지 찌맞춤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찌맞춤에서 바늘은 달지 않고 맞추는 것은 고정적으로 숙지해야 한다.
바늘은 물고기의 입에 잘 맞는 그런 것을 사용하는 것에 중요한 요소일 뿐이다.
바늘은 물고기의 입과의 관계이며, 찌맞춤의 부력과의 관계는 절대 아니다.
2016년4월 재편집(원글:2009년) 에코맨 노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