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매달기(hanging / talah / kremannumi)
공공의 적이나 범죄를 한 자들은 죽이고 난 후에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
들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나무에 매달아 놓았었다(창 40:19, 수
8:29, 10:26, 삼하 4:12). 성서의 율법은 처형의 방법으로 목매다는 것을 인정
하지 않고 있으나, 후에는 그 시체를 당일에 내려서 장사하는 조건으로 나무에
매다는 것이 허용되었다(신 21:22-23). 나무에 매어달린 사람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 매어달린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한 것으로 간주되었다(elohim
kilalta; 그러므로 칠십인 역에서는 하나님을 모욕하였다는 의미에서 kekatera-
menos hypo Theou, 즉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번역하였다<참조. 갈 3:13>;
신약성서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신명기의 구절들을 인용
한 것<행 5:30; 10:39; 갈 3:13>에 대해서는 4QP Nah 7-8을 참조하라. 그러나
Tosef. Sanh. 9.6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이해한다). 수 8:29, 10:27은 가나안 왕들을 나무에서 끌어내어 나
무에 매단 그날 석양에 장사지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애굽
사람들과(창 40:19), 블레셋 사람들(삼상 31:10), 그리고 다윗왕(삼하 21:10-14
)에 의해 오랫동안 나무에 매달아 놓은 내용들도 있다.
요세푸스(Antiq. IV. viii.24)에 따르면 처형받은 모든 범죄인들은 죽은
다음에 나무에 매달았다. 미쉬나(Sanh. 6.4)는 신을 모독했거나 또는 우상숭배
로 인하여 돌로 쳐죽인 자들만을 나무에 매달도록 하였다. 교수대(etz; 칠십인
역, ksulon)가 미쉬나에서는 효시대, 즉 죽은 자의 손을 묶어서 그 묶인 손을
나무에 매달아 시체를 늘어뜨려 놓는 것으로 기술되었다. 페르시아에서는 찔러
죽이는 형벌이 행해졌는데(Herodotus, III.125,159), 에 2:23, 5:14, 7:9에 있
는 talah(이 부분에 대해 칠십인 역에서는 stauroo, 즉 '말뚝에 찔러 꿰는 형벌
에 처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10장과 9:13-14에 있는 talah가 바로 이러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목매달아 죽는 것(apagcho<질식이라는 뜻>는 ma-
hanak의 칠십인 역이다)은 두 번 언급되고 있다(삼하 17:23, 마 27:5). hokia,
즉 '매달다'(민 25:4, 삼하 21:6,9,13)의 의미는 불분명하다. 어떤 종교적 의
미('여호와를 위해' 또는 여호와 앞에'를 이와 관련시켜 참조하라)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만은 추측될 수 있다. 삼하 21장에서는 희생자들의 시체가 매장 이전
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는 내용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