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98/ 먹고 즐거워할 독주와 포도주는 무엇인가?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퇴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신 14:23, 26)
신명기 14장 22~27절에 언급된 십일조는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며 먹고 즐거워하는 '축제 십일조'이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 즉 성전 가까이 사는 사람은 여호와 앞에 나아와 '포도주(티로쉬)를 먹으라고 권하고(23절), 성전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은 땅의 소산물을 돈으로 바꾸어가지고 와서 '포도주(야인)나 독주(쉐카르)를 구하여 가족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권하고 있다(26절). 여기서 말하는 포도주와 독주는 무엇인가? 과연, 성경은 십일조를 가지고 술을 사서 먹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하고 있는가? 많은 주석들이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술을 마셔도 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셨다는 증거로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구절은 결코 음주를 허락하는 구절이 아니다. 그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히브리 원어의 의미가 그것을 증거 한다. 23절의 '포도주는 히브리어로 티로쉬인데 이 단어는 성경에 모두 38번 사용되었으며 언제나 수확된 포도 그 자체나 순수한 포도즙을 의미하였다. 예를 들어, 미가서 6장 15절은 “포도(티로쉬)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고 하여 티로쉬가 포도 그 자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민수기 18장 12절은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티로쉬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이라고 하여 티로쉬가 곡식과 기름과 함께 수확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27절은 거제로 드린 십일조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포도즙 틀에서 받드는 즙같이 여기리니”라고 하여 성소에 십일금으로 가져오는 '제일 좋은 티로쉬'가 포도즙 틀에서 짜낸 포도즙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 신명기 14장 23절에서 말하는 곡식과 기름의 십일조와 함께 '여호와 앞에서 먹는 십일조 티로쉬도 분명히 취하게 하는 포도주가 아니라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 (23절)우기 위해 일년의 토지 소산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둘째는, 23절의 티로쉬와 26절의 야인과 쉐카르가 병행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6절의 '포도주나 독주'는 히브리어로 각각 야인과 쉐카르이다. 그 두 단어는 티로쉬와는 달리 구약에서 취하게 하는 포도주와 신선한 포도즙 모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문맥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 신명기 14장 26절에서는 문맥의 증거가 분명히 포도즙임을 증거 한다. 그 이유는 이 단어들이 언제나 포도즙을 의미하는 23절의 티로쉬와 병행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23절은 하나님의 택하신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자는 티로쉬를 먹고, 먼 곳에 있는 자는 야인이나 쉐카르를 먹으라고 권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가까이 있는 자는 포도즙을 마시고, 먼 곳에서 온 자는 취하는 포도주를 마시라고 명령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다.
셋째는, '여호와 앞에서'라는 문맥의 증거이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로 십일조 소산을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셨다. 그러므로 그때 마신 야인과 쉐카르는 취하게 하는 포도주일 수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 앞에서는 가장 맑은 정신으로 거룩한 축제(sacredcelebration)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 앞”(레 10:1)에 나아갈 때 술에 취해 다른 불을 분향하다 죽임을 당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그 사건 직후에 "회막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야인)나 독주(쉐카르)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레10:9)고 명하셨다. 그런 하나님이 백성들에게는 여호와 앞에서 술을 먹고 취하며 즐거워하라고 명하셨을 리가 없다.
넷째는 다른 성경 구절의 증거이다. 이사야는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면서 "노래하며 야인을 마시지 못하고, 쉐카르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사 249)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쉐카르는 '쓴맛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즉 쉐카르는 '단맛'의 음료를 의미한다. 그래서 「국제표준성경백과사전」도 "성경 시대에 사용된 쉐카르의 가장 일반적인 종류는 대추야자 음료였다"(ISBE, 2:879)고 하였다. 성경은 술 취함에 대해 거듭하여 경고한다. 노아나 롯의 끔직한 경우(창 9:20~21; 19:31~38)는 모두 음주로 인한 것이었다. 이사야는 술 마시는 자들의 교만하고 역겨운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사28:1~8), 잠언 20장과 23장은 술에 취한 자들의 어리석음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다섯째는, 역사적인 증거이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알코올을 증류하여 오늘날과 같은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AD 500년 이후였다. ‘독주'라는 번역은 현대의 독자들로 하여금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알콜을 마셨다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이런 모든 증거를 고려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여 바친 십일조로 '여호와 앞에서' 마신 '포도주나 독주'는 신선한 포도과일이나 단맛이 나는 신선한 포도즙이었다. 그들은 이것으로 풍성한 은혜를 주신 여호와께 감사하며 온 가족들이 함께 기쁨의 축제를 가졌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