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12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상담 및 교리 진행 ★
< 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 182~185 p
▷ 일 시 : 불기2567 (2023)년12월18일 (월) 오후1:00~4:00
▷ 장 소 : 서울구치소 소법당
지도법사: 보광-조철주
동 참: 이태연,황정옥 위원
*상구보리 하화중생 *
2023년12월18일(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정기 자매 상담 및 교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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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와
한글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상담 후 생활법문 및 교리를 전하였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자매 상담 및 교리를 회향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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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18일 -교리내용< 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182~185 p
★이해를 그대의 유일한 법으로 삼아라 ★
▶나는 이 존재계와 하나이다.
붓다는 '무(無)는 지성이 작용하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
'붓다(buddha) 라는 말은 '붓디 (buddhi)' 에서 나왔다.
'붓디'는 지성을 의미한다.
그대가 하나의 무(無)일 때,
아무것도 그대를 제한하거나 한정 짓지 못할 때,
아무것도 그대를 가두어 놓지 못할 때,
그대가 완전히 열려 있을 때,
거기에 지성이 있다.
왜 그런가?
그대가 무(無)일 때에는 두려움이 사라지며,
두려움이 사라지면 그대는 지성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있을 때 그대는 지성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두려움이 그대를 불구로 만들고 마비시켜 버린다.
그대는 두려움 때문에 여러 가지 일들을 계속해 나간다.
이것이 그대가 붓다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붓다가 되는 것은 그대의 타고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두려움 때문에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두려움 때문에 사원에 가고, 두려움 때문에 특정 형식을 따른다.
그대는 두려움 때문에 신에게 기도한다.
이렇게 두려움을 통해 사는 사람은 지성적이 될 수 없다.
두려움은 지성을 죽이는 독약이다.
두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지성적일 수 있겠는가?
두려움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대를 끌고 다닐 것이다.
두려움은 그대가 용감해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며,
그대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은 그대가 모험가가 되는 것을 방해할 것이며,
그대가 양떼 같은 군중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은 그대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까지나 노예 상태로 붙잡아둘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면에서 노예 상태에 처해 있다.
우리의 노예화는 다방면에 걸쳐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우리는 노예이다.
그리고 이 근본 원인은 두려움이다.
그대는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여전히 기도하는가?
이것은 매우 비지성적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누구에게 기도한단 말인가?
그대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대는 어떠한 신뢰도 갖고 있지 못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두려움 때문에 신이라는 관념에 집착한다.
이런 현상을 관찰 해 보았는가?
두려움이 많을수록 더 신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대는 신을 떠올린다.
나는 크리슈나무르티(J.Krishnamurti)의 신봉자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인도 전역에 잘 알려진 유명한 학자이다.
그는 적어도 40년 동안 크리슈나무르티의 신봉자였다. 그래서 그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명상이나 기도도 믿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석에 누웠다.
그 당시 우연히 나는 그 도시에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님께서는 지금 매우 위독한 상태입니다.
당신께서 와주시면 아버님께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찾아갔다. 방안에 들어 가보니
그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라마 (Rama), 라마, 라마・・・." 하고 염송하고 있었다.
그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40년 동안 '신은 없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내가 그를 흔들어 깨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방해하지 마시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시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 되는 일이다.
그가 말했다.
크리슈나무르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오!
이렇게 죽어가는 마당에 크리슈나무르티가 무슨 소용이오?"
"그렇다면 당신이 보낸 지난 40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순전히 허송 세월이었단 말인가?
당신은 주력(呪力)이나 기도가 도움이 된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소.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을 믿지 않았소.
하지만 지금 나는 임종을 맞고 있소. 크나큰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소.
혹시 신이 존재할지도 모르지 않소? 그리고 몇 분 있으면 나는 그와 만나게 될 것이오.
만일 신이 없다면 그때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오,
라마, 라마 하고 염송한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소.
그리고 만일 그가 존재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득을 보게 될 것이오.
적어도
그에게 '신이여, 저는 최후의 순간까지 당신을 기억했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현상을 관찰 해 보았는가?
그대는 불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신을 상기하기 시작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그대는 신을 떠올린다. 184
행복하고 만사가 순조로울 때 에는 신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지낸다.
그러므로 그대의 신은 그대가 느끼는 두려움의 투영(投影)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붓다는 두려움에는 지성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두려움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대가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려움의 원인이다. 두려움은 에고의 그림자이다. 에고 자체가 환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상이 그대의 삶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대가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대는 나쁜 짓을 하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자연히 그대는 미래의 삶을 대비하려고 한다.
내세(來世)의 삶을 위해 뭔가 선한 일, 푸냐(punya, 德)를 쌓으려고 한다.
푸나(poona)라는 이 도시 이름은 덕(德)이라는 의미의 '푸냐(punya)에서 유래했다.
그대는 자신의 구좌에 덕(德)을 저축해 놓고 신에게 통장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자, 보십시오. 저는 이렇게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했습니다.
저는 수없이 단식 수행을 했습니다.
다른 여자에게 추파를 던진 적도 없고 도둑질을 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사원과 교회에 많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덕을 쌓는다. 저 세상에서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러나 이것은 두려움에서 나온 행동이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매한가지이다.
그들 모두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지성적인 사람은 두려움 없이 산다.
그러나 두려움 없이 살기 위해서는 그대의 에고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만일 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한다. 는 생각이 없다면
어디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185
"나는 지옥에 던져질 수 없다. 애시 당초 나는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천국에서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애당초 나는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신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죄인이나 성자가 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신만이 존재한다면 내게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나는 태어나지 않는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으므로 나는 죽지도 않을 것이다.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다.
나는 외따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 존재계와 하나이다.
파도로서의 나는 사라지겠지만 바다로서의 나는 살아있을 것이다.
바다는 영원한 실체이다. 그러나 파도는 임의적인 현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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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오쇼라즈니쉬 강의(손민규 옮김 ) 『반야심경 』 초판 2쇄; 서울:태일출판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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