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결사 20년을 되새기는 행사에 다녀와서
생명-너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평화-네가 살고싶은 삶이 어떤 삶인가?
생명평화결사 20주년 행사에 참여했다. 노고단을 걷고싶은 단순한 마음, 우리 마을을 생명평화 마을로 만들어가고 싶은 염원으로 귀동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삼재~노고단~박소산 님 동래학춤~김유철 시인 시낭송~천은사 상생의 길 걷기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지난 20년 느슨하게 연결되어 알던 분들을 만나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서른살 즈음,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난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강진, 영광, 해남,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상주 등 생명평화 마을을 일구어 가는 곳을 돌아보고 특별한 분들을 만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제는 나의 삶터에서 지난 시절 보고듣고 배운 바를 펼쳐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걷고,
박소산 님의 동래학춤을 바라보고
천은사 상생의 길을 걷고
안상수 교수님 생명평화 로고 이야기 듣고
도법스님의 이야기 듣고
천일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생명평화에서 주되게 다루어 온 생명평화 서원을 일상에서 생각하며 온숨 절명상을 해왔구나.
넘어지고 또 넘어졌지만, 이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 했구나! 싶어 고마운 마음이다.
이제부터 뭔가 내가 가장 살고싶은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다.
노고단에서 도법스님 말씀
"생명의 가치는 제 일의 화두였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가치 평화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은 모두가 동지로 여기며 여기까지 왔다. 생명의 가치 평화의 가치를 찾고 살아가자.
우리가 만들어온 생명평화 무늬, 100가지 문장을 100대 서원 절명상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을 탁발순례에서
걷는다
얻어먹는다
얻어잔다.
만난다
대화한다
이런 모습으로 생명평화를 대중화하고자 했다.
순례를 마치면서 정리한 것이 우리 모두 대동소이 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특별한 사람 없다. 대부분 비슷하고 다 다르다. 생명이 안전하고 삶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이 단순 소박한 삶이다.
걷는다
얻어먹는다
얻어잔다.
만난다
대화한다.
이 부분을 사회화하면 단순소박한 삶이다.
이것에 담겨있는 내용을 생활화하고 사회화 하는 것으로 생명평화가 깊어질 것으로 본다.
이제 2004년보다 좀 더 진전된 고천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상수 교수 생명평화 로고에 대한 말씀
2004년 3월 순례를 시작했다. 생명평화 이미지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흔쾌히 수락했지만 쉽지 않았다. 평화라는 말 추상적인 개념이다. 생명을 생각하면 딱하다는 느낌이다. 고심을 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절에서 새벽예불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절에서 예불을 드리면 사물을 친다. 모든 생명을 무명에서 깨우는 상징이다. 목어를 두드리고 은판을 두드리며 모든 생명을 깨운다. 맨 나중에 법고를 치며 중생을 깨우고 예불을 시작한다. 온 우주의 생명을 사물에서 표현한다. 물에 사는 생명, 하늘에 사는 생명, 네발달린 짐승, 사람, 해와 달을 표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육서는 3천년 전에 생겨난 글자 조작법이다. 상형, 지사, 회의, 이 중 회의는 추상적인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女와 子가 만나 好 좋다는 말이 된다. 人과 言이 만나 信이 된다. 사람이 말을 하면 믿음이 따른다는 추상 개념을 만들어내는 디자인 방법론이다. 생명에 평화, 생명이라는 속성을 표현하는데 모든 생명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평화는 정주가 아닌 상태, 여기 살아야 마땅한데, 그러지 못한 상태다. 전쟁으로 피난하거나 파헤쳐져서 피해를 당하는, 정주라는 개념이 파괴될 때를 평화가 아닌 상태로 본다. 지금은 자연과 환경의 불균형 상태다. 인간들의 이기적 문화에서 생기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배워서 최고의 포식자로 여기고 다른 생명을 업수히 여긴다. 평화는 다른 생명이 인류의 희생물이 아니라 서로 봉사하는 존재로 본다. 해와 달 우주 아래 자기가 살아온 그곳에 사는 것이 평화다.
나는 이 이미지가 글자가 되기를 바랬다. 읽을 수 있으면 글자고 읽을 수 없으면 심벌이 된다. 평화는 어울림으로 생명은 삶을 살림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단식행사, 비움잔치 같은 데서 스님이 생명평화 이미지로 말씀하시면 제가 황홀한 거다. 저의 삶에 어떤 큰 중요한 저걸 남기게 되었다. 이런 인연에 참 고맙다.
도법스님 이야기
처음 봤을 때 이게 뭐지? 감이 안 잡혔다. 사람들은 제가 무얼 알아서 길을 간지 아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아지면 모아진 대로 가자는 생각이다. 그 당시에도 옆 사람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잘 몰라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가 재능기부로 진지하게 요청하여 받은 것이니 잘 다루어서 입장정리를 하자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며 이해와 공감이 갔다. 내가 천착해온 불교와 잘 연결이 된다. 불교는 언어와 내용이 굉장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무늬와 연결하여 생각하면 불교가 명료해진다. 내 방식으로 설명해 제끼는 거지. 말하면서 확신이 생겨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히 잘된 일이다. 좋은 뜻으로 연결해보자 해서 온건데, 제법 잘 된거죠? 어때요? 이 전개를 들으면~
최근 여기에 온 계기는 여기 있는 지리산 숲길 이상윤 이사장이 지리산 둘레길을 세계적인 순례길로 만들겠다고 한다. 요즘 종교가 인기가 없는데, 지리산 운동은 다른 지점이 있다. 첫째는 범종교 시민사회가 함께 한거다. 둘레길 만들어지는 과정도 관-민, 전문가, 활동가가 함께 만들었다. 범종교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었다. 세계적인 사건이다. 외국에는 잘 안된다. 한국 다종교인데 극단적 사건이 안 일어난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리산을 세계적인 명품순례길로 함께 공유하며 만들어가고 싶다.
생명이라고 하면
“너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그것을 현실적으로 검증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생명이라는 개념이다. 백인도 흑인도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 생명이다.
평화는
“그 생명이 살고싶은 삶이 어떤 삶인가?”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그것을 현실 경험이 가능하도록, 검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잖아? 이 방식대로 이야기를 만들고 풀고 가보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 불교계에서는 불교가 그렇게 평범하고 시시한거야? 신성모독 같은 느낌을 말한다. 생명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생명이 살고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 현실경험, 검증이 가능하도록 다루어지도록 공을 들여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