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위국헌신 안보교육(전적지 답사) 결과
위국헌신 안보현장인 전적지 답사를 통해 전쟁영웅의 위국헌신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며 전쟁의 교훈을 되새김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평화통일 의지를 다지는데 있음.
ㅇ기간 : 9. 25(수) ~ 9. 27(금) (2박 3일)
ㅇ장소 : 군산, 장항, 이리전투 전적비, 평택 서해수호관/ 천안함 등
ㅇ참석 인원: 77명
ㅇ복장 : 본회 규정 정장(회모 착용, 적색넥타이, 약장, 영웅메달 패용)
ㅇ준비 : 국가유공자증, 간편복(세면도구 휴대)
ㅇ이동계획
1) 1호차 : 9. 25.(수) 13:00 전쟁기념관 출발 → 군산 숙소 도착
2) 2호차 : 대전역(14:00) 출발 → 군산역(17:00) 경유 후 숙소 도착
새만금의 탄생
"새만금'은 한반도 서남쪽 군산시, 부안군, 김제시를 중심으로
그 외곽의 고창과 정읍, 전주 와 완주, 익산까지를 아우르는
권역이다.
꽤나 드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새만금이란 명칭은 1986경에 탄생했다.
이 일대는 만경강과 동진강 물줄기 옆 비옥한 평야가 만들어졌다.
예로부터 김제평야와 만경평아를 합쳐 금만평야로 불러왔다 이곳에
새로운 땅이 성긴다고 해서 금만을 만금 으로 바꾸고 앞에 '새'자를 붙여
새만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새만금방조제가 생기면서 간척을 통한 새로운 땅 조성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새만금방조제는 1991년 11월 첫 삽을 떳다.
전북 부안군 대항리에서 군산시 비응도를 있는 초대형 둑으로
길이가 33.9km에 이른다.
2010년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는
"중국에 만라장성이 였다면 한국에 는 '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며 경탄했다. 네덜란드의 쥬다치방조제(32.5km)보다
1.4km가 길어 세계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세계 최장의 방조제로
등재됐다.
새만금방조제는 폭이 평균 290m(최대 535m)이고, 높이는 평균
36m(최대 54m)에 이르는 대형해상구조물
이다.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바깥에 드러나는 부분은 평균해수면
위로 11m 정도다. 총 공사기간 19년이 걸렸고 바다에 쏟아부은
토석량은 1억 2000만m2로 경부고속도로(415km)를 13m 높이로
쌓을 수 있다.
새만금 간척지는 4단계 계획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
지금은 2단계(2021~2030년)가 진행 중이다. 공기업 추가 참여를
통해 개발에 속도를 내고 민간투자 유치형 재생에너지 사업 등
새만금 내부개발을 본격 추진한다는방침이다.
새만금개발공사의
새로운 비전은 ‘대한민국 영토를 넓히는 새만금의 Key Player
(키 플레이어)’로 주도적인 새만금 개발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창출하는 새만금개발공사 본연의 역할과 지향점을
의미한다.
4대 경영 목표는 비전 실현을 위한 분야별 목표로
△새만금 책임개발 105㎢
△새만금 재투자액 확보 13조3000억원
△지역 부양효과 10조4000억원
△무결점 경영 트리플 제조(Triple-Zero)이다.
나경균 사장은 “새만금개발공사가 어느덧 창립 6주년을
맞아 수변도시 조성사업, 육상태양광 사업 등에서
성과를 내며 궤도에 올랐다"며 "발로 뛰는 새만금 개발의
Key Player(키 플레이어)로 2040년까지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해병대 군산, 장항,이리지구 전적비
ㅇ위치:전북 군산시 금동 38-3(월명공원)
ㅇ현황. 탑높이 20M, 기단 18MX18M 피라밋 좌대 6MX6MX3M
청동2인상 높이 3M, 조성규모 25MX25M
ㅇ모형: 하늘을 향해 뻗은 탑신은 충천하는 상승 해병의 기백을 표상
•3개의 기둥: 국가의 3대 요소인 국토 국민, 주권을 상징.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표현
•3개의 퍼라및 좌대: 군산, 장항, 이리지구 전투를 조형화.
순국 장병의 고귀한 넋을 추모.
•포효하는 해병상 :통일의 선봉을 다짐하는 용감 무쌍한 해병상
ㅇ건립개요:이 전적비는 6.25동란을 맞아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 해병대가 그 예하 고길훈 부대(대대규모)를 군산, 장항
이리지구 전투에 처녀출전 시켜 서해안의 젖줄인
금강을 지키기 위한 혈전에서 적을 격파한 최초의 전투이다.
1950년 7월초 천안을 점령한 북괴군 제6사단 13연대는 서해안을
우회, 파죽지세로 호남지역으로 진출하여 왔으나 해병대
고길훈 부대는 동년 7월 13일 해군 함정 FS(재천호) 편으로
제주기지를 출항, 7월 16일 군산에 상륙, 금강을 도하하여 장항
북방 4km 지점에서 대대규모의 적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
북괴의 금강선 진출을 저지 격파하였고, 적에게 전율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 이후 고길훈 부대는 7월 20일까지 금강을 방패 삼아 군산시
름 방어. 격렬한 시가전을 전개하면서, 해군 군산 경비부 육전
대와 함께 LST-810함에 정부미 13,000가마와 중요한 정부물자
반출작전을 수행한후, 명령에 의거 고길훈 부대의 주력은 해상
으로 철수하고, 이리 방면으로 출동한 해병 제3중대는 육군
독립대대, 경찰과 더불어 밀려드는 적과 결사적인 항전을 통
하여 적의 남하를 효과적으로 지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
에서 해병대는 적 사살 62명, 사상 311명. 포로 5명
의 대전과를 획득하였으며, 전사 36명, 부상 31명, 행방불명
8명의 손실을 입었다
이 최초 전투를 계기로 필승의 신념과 자신감을 얻은 한국 해병
대는 그 이후 낙동강 전선의 통영 상륙작전에서 [귀신잡는
해병]의 신화를 창조하면서 9월 15일 한•미 해병대가 선두로
한반도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이곳 군산
지역에 양동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전에
나서 패주하는 적을 무찌르고 한맺힌 금강을 다시 찾고 북진을
개시,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끝수 있었다. 여기 이 전투에서
상승불패의 해병대 전통을 창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해병대
(고길훈부대)의 공적을 영원히 기념코자 1990년 12원 1일 해병대
사령부에서 이 비를 세운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통일된 복장에 깔끔한 용모
단합된 모습으로 전적지순례와 회원간 화합으로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호국의 위상을 정립
보훈의 예우에 대한 일상속에 살아있는 보훈을
널리 알리고 실천합시다.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안전한 귀가로 함께한 시간
소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