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냉면을 먹으로 가요
김태식(가든수필 2023/05/30)
어릴때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라게 되면 마마보이 까지는 되지 않을 지라도 부모의 사랑과 비슷한사랑을 그린다. 엄마한테 느꼈던 포근함, 든든함, 포용력 같은 부분을 느낄 수 있는 이성을 좋아하게 되는것 아닐까? 나도 사랑스런 아내가 든든하게 지켜줄 때, 챙겨줄 때, 아플 때 글썽글썽한 눈으로 손 잡아줄 때 사랑을느꼈다.
부부(夫婦)라는 표현의 옛말은 “가시버시”라고 한다. 가시는 찌르는 것이고 갓은 머리위에 올라 앉는 것이다. 가시의 옛말은 갓이다. 그래서 아내의 바가지를 가시같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살가운 정이 든다는 것을 느낀다. 부부는 젊어서는 사랑으로, 중년기에는 친구로, 노년기에는 간호사처럼 살어야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 예수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위임 받은자가 땅에 숨겼다.이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을 하면 승리의 기쁨을 맛본다. 아내를 가시처럼 조심 스럽게 다루고 갓처럼 머리위에 소중히 다룬다면 다정다감한 현모양처 ‘가시버시’를 이루게 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부부가 맛짱구를 친다는 뜻이다. 가부장 시대에는 부창부수(夫唱婦隨)가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근대에는 부창부수(婦唱夫隨)의 세대가 합리화되고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한국생활이 더욱 희망적인 앞날이 보장되었다. 부부가 대학원을 마쳤으니 당시에 전문 및 대학교를 창설하는 붐으로 인력이 부족하던 때이었다. 부부가 희생하더라도 희망과 꿈을 자녀들과 공유 하였으면 했기에 이민을 선택했다.
1972년에 출국하려고 모든 수속을 마쳤다. 돌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별세 하셨다. 삼년상을 마치고 떠나자는 아내의 제안에 3년후 이민길에 올랐다. 미국이민의 3년 지연은 우리에게는 많은 호기를 놓지게 했다.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가 되었다. 특히 간호사의 면허시험에 장벽이 험난했다. 그런 고통가운데도 한마디의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고 굳건하게 어려움을 극복 했던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는 이민 온후 한동안 건달의 삶을 지냈다. 멀정한 신세가 뻔뻔히 놀고 지낸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더욱이 많은 고통과 고민을 하는 아내를 보기에 면목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마디 불평이 없이 묵묵히 고생을 하던 그 때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다.
이민 5년이면 시민권을 얻게된다. 서류 신청을 4년 6개월이 지나면 제출할 수 있었다. 만 5년만에 시민 권을 받아 양가에 모두에게 이민신청의 초청신청 서류를 보냈다. 한국 경제가 호전 되면서 이민 생활의 고통을 원치 않은 형제 자매는 포기했다. 처가 형제는 모두 왔으나 친가에서는 막내 동생만 와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후에 이민 오셔서 영주권을 받으셨고 우리와 함께 사시다가 이곳 글렌데일 묘지에 잠드셨다. 우리도 잠들 곳을 어머니 묘지 근처에 근래에 준비했다.
이민을 온 한달이 막 되었을때, 함께 근무 했던 동료가족이 이민을 왔다. 연고가 없는 그를 비행장에서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단칸방 아파트에 거처를 정했다. 우리가족 네 식구는 방에서 기거를 했고, 그의 네 식구는 천을 리빙 룸에 치고 한동안 함께 지냈다. 직업도 없고 이민 온지 한달만에 이민자를 마지한 우리의 삶은 홈레스는 없던 때 이니 어쩌면 홈레스 시조이었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학생과장을 할때 직장을 알선해 주었던 토요일 결근하는 전임 독일어 교사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삼년을 지연 하는 동안 준비를 하여 뒤 딸아 온 이민이었다.
하루는 아파트 주인이 찾아왔다. 두 가정이 모두 이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 가정은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친구가 근처 아파트에 방을 얻어 거처를 옮겼다. 홈레스의 생활은 아파트 주인의 권고로 초창기 이민시절 분가하는 일로 막을 내렸다. 아내가 어려움을 함께했던 천사같은 마음의 너그러움의 심성에 감사한다.
아내가 이제까지 베풀어 준 친절과 사랑이란것을 어느 순간인가 알았으면서도 받는것에 습관이 되여 응당한것으로 여겨온 나이었다. 늘 받기만 했을뿐 준적은 가음에 콩나듯 했을 뿐이다. 이제 나도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나는 어느새 앞서서 가는 아내 옆으로 다가가 살며시 팔을 걸었다.
‘여보, 우리 맛있는거 먹으러 가요. 오늘은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냉면을 먹으로 가자 구요’
첫댓글 김선주선생님은 참으로 고우신 분이네요.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사랑으로 이겨내신 강하신 분이구요.
선생님께서 아내의 내조를 당연히 여기시지 않으시고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으시다니 멋진 남편이십니다.
두분 오래오래 서로 사랑하시며 두 손 잡고 냉면도 잡수러 가시고 행복하세요.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 저의 가슴을 살짝 흔들며 감동받았어요.
힘든 이민 초창기를 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만 그 모든 고생을 이겨내고 자리잡고 살면서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남편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아내 사랑은 참 깊고도 넓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김선주 선생님의 부덕 또한 존경스럽습니다.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