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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1~16 하갈과 이스마엘
포도주는 오랜 것이 맛이 있다고 하는데,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눅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하여간 백년이 지난 술들은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한다.
그런데 믿음도 그렇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언제 결혼하였는지 모르지만, 최소 이들이 이삭을 낳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까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그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기까지는, 인내하게 하시는 포도주로 치면 최소 25년에서 최대 70년 산짜리 믿음이다.
성경을 보면, 복음이 온 후로는 율법은 뒤로 물러나고 초등교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자녀와 종, 또는 자유자와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갈4:21~26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그런데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인내가 필요하였나. 하나님은 사람을 회심시키시는 것은 쉬우나, 인격적인 방법으로 하신다. 때론 포도주의 숙성같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기독교는 믿으라 선포하거나 전도하지만, 강제하지 않는다. 물론 내세의 구원과 심판이 있음을 말하나,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기다려준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 될 때, 그것을 강제하여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십자군 전쟁이라던지, 또는 검은 바르톨로뮤 같은 신구교의 억지 평화주의같은 통합이다. 이는 무엇을 억지로 하는 것은 큰 재앙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억지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며, 그것은 잘못된 신념이다. 물론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다. 오늘 아브람도 그렇게 가다가 실수를 하였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성령은 이스라엘에서만 아주 극소수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냇물같이 졸졸 흐르던 성령의 역사가 오순절 이후에는 전세계로 강수와 같이 뻗어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신념으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억지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역사에서 보듯이 오히려 큰 부작용과 반대세력을 키우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고려연방제같은 것도 억지로 남북을 합치자는 것인데, 하나님은 초이성의 하나님이시지만, 질서의 하나님이다. 김일성 김정일 우상이 2만개 이상 있고, 미사일 매니아가 있어서 백성들이 굶어 죽든 말든 히쭉히쭉 웃으며 수십억짜리 미사일을 쏘고 있고, 반면에 백성은 주체사상과 기아로 죽어가고 있고 탈북민이 끊이지 않고 있고, 끊임없이 대남적화와 공작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남한을 합치자는 생각이 맞는 생각인가. 성경도 그런 것은 반대한다.
고후6:15~16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그러므로 극단적인 것은 귀신론도 그렇고, 율법주의도 그렇고, 평화주의도 그렇고, 심지어 율법폐기론처럼 율법을 무시해버리는 니골라당 같은 것들은 조심해야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율법의 바른 사용을 지시한다. 딤전2:8~11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복음이 율법을 굳게 세운다. 복음으로 인하여 율법의 기능이 더 강화된다. 무슨 말인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신의 죄에 대해서 더 민감해지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함으로 인하여 억지로 그것을 만들고 말았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 하갈은 ‘방황하는’, ‘도피하는’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브람이 출애굽할 때, 받아온 여종인 것 같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선악과 열매를 먹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어겼더니, 죄와 사망이 들어왔는데, 아브람도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신다는 약속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될란가봐요. 그렇게 하소연을 할 때, 분명히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네 씨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래가 임신을 하지 못하자, 약속이 가물가물하여져서, 어짜피 씨는 같으니까 배가 좀 다르면 어떤가. 그런 생각에 사래가 애굽에서 데려온 종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보려고 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10년이나 기다려서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보다 생각하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아브람은 하나님께 또 물어봐야 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부부 곧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당연히 아내인 사래가 자녀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조급함이 딴 생각을 가져온 것이다. 또 나중에 생각해보면,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얻었는데, 이는 유다가 성급하게 가나안 족속에게서 아내를 얻어 아들 셋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가나안 족속 사이에서 자녀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므로 다말 며느리를 통해서 자녀를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룻과 라합은 어떠한가. 하여간 이는 어떤 혈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게 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육신의 혈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의 그릇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10년이나 지나고 아브라함은 또 전에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처럼, 또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였다. 우리도 그럴 때가 많다. 아무튼 사래가 첩에게 들어가라고 말할 때, 아브람은 아니야 여보 그렇게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네 씨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당신과 나 사이에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뜻 일거에요. 기다려봅시다. 그렇게 가야 하는데, 물론 결과론적으로 볼 때 10년이나 지났음에도 그렇게 가길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었다. 아브람은 적어도 최소한 자식을 갖기 까지 25년 이상이 걸린 사람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내를 갖도록 하신 것이다.
벧후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 아브람과 사래는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에서 10년 정도를 있었는데, 전쟁도 치루었고, 그러나 자식이 없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우선 간절함을 두셨고, 인내의 과정을 두셨다.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 그러나 조급한 결정이 무엇을 초래하였는가. 하갈이 사래를 무시하게 되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율법주의가 예수님과 바울을 괴롭혔던 것처럼, 시내산과 예루살렘이 전통과 관습에 매여 복음을 질식시킨 것을 의미한다. 알맹이가 빠진 관습과 전통은 종교가 되었는데, 극단적으로 갈 때, 그것은 생명을 체험적이 아니라 종교로 습관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반동할 경우, 강제하고 징벌한다. 마치 전체주의같이 로봇같이 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은 없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하갈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 조급한 결정 후에, 부부는 서로 다투게 되었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러자 아브람은 사래와 상대하기가 싫었던지, 알아서 하라고 하였고, 하갈이 미운 사래는 그를 학대하였고, 하갈은 도망갔다. 조급함이 불러온 결과이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니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 그런데 도망하는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복종하라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무슨 그림인가. 곧 은혜 아래 율법이 거하는 그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실수를 수습하시고 동시에 이를 비유로 나중에 보여주시는데, 메시야 영원의 차원에서 볼 때, 율법도 임시적인 것이 되는데, 그러므로 나중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쫓겨나게 된다. 율법주의가 복음을 압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율법은 임시적일지라도 그것은 천지가 없어지기까지는 존재한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 그리고 번성을 예언하였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 그런데 이스마엘은 모든 사람과 대항해서 살게 된다. 평생에 이스라엘의 대적이 된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 하갈은 여호와의 천사를 만나고,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곧 브엘라해로이 곧 살아계셔서 나를 살피시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여종일지라도 살펴보시고 도우셨다.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 그런데 하갈은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을 종교로 만들어버렸다. 관습으로 강제하며 칼로 죽여버린다.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 아브람이 하갈에게 들어가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팔십육 세였다. 75세에 출바벨론하고 약 10년 정도 지난 시기이다.
바울은 사라와 하갈은 하나의 비유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를 육신적으로 혈통적으로 차별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볼 때, 비유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갈과 이스마엘은 율법과 애초부터 상관이 없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 안에서 민족이나 혈통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상관이 없어졌다. 왜냐하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건 곧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서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혈통과 관계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곧 이스마엘이나 하갈도 예수를 믿음으로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행2:16~21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제는 누구나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성령세례를 주신다. 하나님의 권한이다. 성령이 바람같이 비둘기같이 임한다고 하였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또한 구원은 민족이나 종족과 신분여하에 상관이 없다.
골3:10~11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사래와 하갈은 모형이었을 뿐이고, 이제는 믿음으로 모든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심지어 하갈이나 이스마엘도 그러하고,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도 한참을 멀리 떨어져서, 우상과 미신을 섬기던 우리나라도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엡2:11~13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러므로 하갈 사건으로 인하여 아브람의 가족이 잠시 막걸리처럼 될 뻔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정리해주심으로 다시 아브라함은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실수가 있더라도, 약속을 믿음으로 믿음의 도수가 좋은 포도주처럼 숙성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