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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순수함과 만족함
시편131편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의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어렸을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은 아이들이 젖먹는 모습들이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가 병 때문에 어떤 약을 드셨기 때문에 그 약이 태아에 영향을 준다는 의사의 조언 때문에 젖을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특히 분유통에 그려진 잠자는 아기의 얼굴을 볼 때 그 완전한 평안이 있습니다. 또한 동물이 새끼를 낳으면 특히 개가 새끼를 낳으면 개새끼가 얼마나 귀여운지, 어미 젖을 먹는데 초식동물이고 육식동물이고 어찌 그리 귀여운지, 젖먹는 복실이 새끼들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또 그 모습이 얼마나 평안한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기가 젖을 만족하게 먹으면 엄마 가슴에 안겨서 입을 벌리고 고요하게 잠을 잡니다.
또한 목장에 사는 초식동물들의 얼굴을 보면, 초식동물들은 먼 산을 쳐다보면서 배속에 있는 것을 꺼내서 되새김을 합니다. 눈앞에는 천둥번개가 치는데도 먼 산 쳐다보듯이 되새김질을 합니다. 아기 동물들은 잇몸에 우유가 묻어 있습니다. 음메 마굿간의 동물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울타리로 두르고 있고 양치기 개가 있고 목동이 지키고 있으니까 별로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시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보면 느끼겠지만 마치 단련된 보석과 순결한 것을 만질 때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맞구나. 그러므로
벧전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안개가 짖은 곳에 햋볕이 쬐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 따뜻해.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햋볕에 쬐이는 것 같이 내 마음에 빛이 임합니다.
사18: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 되새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움도 새로움이지만 담백함 읽으면 읽을수록 맞다. 맞아요. 하나님 그렇게 수긍이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맞아 이것이 죄야. 내가 이랬어. 그래서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이 성경이 마르고 닳도록 읽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시1편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다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마치 초콜렛을 감춰놓고 먹는 것같이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3~5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사람이 세상의 재미와 쾌락을 쫓으면 성공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나중에 눈꺼풀이 뜨고 폐인이 되고 마침내 죽게 됩니다. 아드레날린 중독 술중독 게임중독으로 마치 삭힌 홍어처럼 됩니다. 마음은 붕붕 뜨고 계속 세상의 것을 찾습니다.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이 되고 그러나 우리가 언제든지 주님께 돌아가면 말씀을 읽으면 말씀이 우리를 정확하게 우리의 상태를 알려주고 죄를 알려주고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도록 도와줍니다. 말씀이 우리를 수술하고 우리의 터진 마음에 다시 약을 발라주고 우리가 다시 회복되도록 인도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역사입니다. 초과학입니다. 그렇다고 마술적이거나 기계적인 것은 아닙니다. 말씀의 역사는 믿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중생을 일으키고, 우리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평안은 내가 잘하면 평화롭고 못하면 불안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든 못하든 예수님이 하신 일 때문에 오는 평안입니다.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십자가로 사람과 인간 사이에 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의 막힌 담을 허시고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마 화평을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롬4:25~5:1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할렐루야
전에는 아담 안에서 죄와 사망이 왕노릇 하였는데, 이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중생한 사람은 은혜가 왕노릇하여 화평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의로운 일을 해서 얻는 율법적인 의와 다른데, 이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주인이 바뀌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양심 도덕 율법으로 의로워지는 것은 겉이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것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평안을 얻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 품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컴퓨터로 말하면, cpu가 바뀌는 것입니다. 중고품 폐기물도 중요부품은 빼서 쓰는데, 하물며 아담 안에서 죄로 죽은 인간을 사랑하사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접붙이기 비유로 설명하는데, 전에 아담 안에서 죽었던 죽은 나무 곧 죄와 죽음이 왕노릇하는 cpu를 가졌던 사람이, 예수 안에서 죄사함과 부활의 은혜가 왕노릇 하는 cpu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가 여러 가지 부품이 많지만, 바울은 사람이 성화는 한계가 있고, 거듭나는 것 중생만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죄인이 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정합니다. 구약이 그것을 증거하는데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한데도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민9: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그런데 믿음으로 살지만, 내가 죄를 짓고 사는데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 중생자는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죄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은혜가 중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를 짓는 습관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와 죽음이 cpu였다면, 지금은 은혜 곧 죄사함과 의롭다함과 부활이 cpu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담의 죽은 가지를 예수 포도나무에 접붙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고 세상이 주는 들뜬 마음과 다른 새로운 마음을 줍니다. 또한 성경이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평안함은 진실함의 평안함입니다. 잘못되었으면 잘못되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과 잘되었으면 잘되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그 진실함이 있기에 말씀은 평안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왔는데 괜찮다 괜찮다 말만 하면서 병 없어요 하면 얼마나 나쁜 의사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알려줍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은 복음 곧 예수 의사에게 환자를 이송하는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사람에게 안심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님도 어떤 위인도 해 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의 저자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양식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물론 죄성이 있어서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젖먹이가 엄마 젖을 찾듯이 먹어야 합니다.
성경의 수많은 약속이 있지만 그 약속이 가리키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새약속 새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십자가가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믿음이요 소망 사랑이 예수님임을 보여줍니다.
히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으로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과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딤후1:10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준비되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
십자가는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죄인임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희생 곧 전능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망까지 쫓아 들어가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전능을 말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하면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는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은 떠나가라. 그런데 우리 몸과 마음은 마치 소금기가 많은 갯벌과 같습니다. 소금기 많은 땅은 쓸모가 없습니다. 이 땅을 간석지 농토가 되게 하려면 소금기를 빼야 합니다. 소금기를 빼려면 계속 물을 부어야 합니다. 계속 말씀을 읽어서 깨닫고 은혜를 받음으로 소금기를 빼고 좋은 농토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몸과 마음은 더러운 오염된 물과 같습니다. 그런데 수도국장이 와서 약을 풀면 어떻게 됩니까? 약품이 물에 있는 오염물질을 가라앉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 오시는 날 까지 성경책을 밥 먹듯이 되새김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거친 음식도 있고 순전한 음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되새김질을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첫 시작과 마침은 늘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초식동물 가까이 가면 사각사각 쩝쩝 우적우적 풀 듣어 먹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도 성경을 그처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살도록 해야 합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믿음이 무엇입니까
롬10:6~8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금년 시작을 성경읽기로 시작하시고 순전하고 순수한 떡과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풍성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