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19세기 중엽을 풍미하던 사조가 "리얼리즘"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20세기 초엽을 풍미하던
사조가 "모더니즘"이고, 20세기 후반은 다름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특징 지워 지는 것
입니다.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을 지배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낙관적이며 묵시론적인 의미를
지녔다가 건축분야에서 먼저 이론적으로 정립되면서부터 국제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
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릅니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이 되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
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사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합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객관진리는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을 받습니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에서 추상으로 옮겨갑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의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 되었습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해지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이었습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지니며,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 하였습니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니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 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합니다.
특징
첫번째 특징은 불확정성(indeterminacy)입니다. 불확정성 이란 현대문화의 여러가지 특성들 -
애매모호성, 불연속, 임의성, 반역, 곡해, 무작위, 해체, 변용 -을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의 분열 함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적 세계관에서는 절대성이란 없으며 삶의 다양성과 우연성을 모두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서는, 단편화(framentation)현상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더니스트들이 어떤 질서나
통합에 대한 동경과 향수로 가득한채 그것들의 회복을 위해 단편화의 수법을 사용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단편화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모더니즘에서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속에서 파편화 되어가는 인간 삶의 총체화를 시도합니다.
자본주의 속에서 예술의 상품화를 거부하는 것인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예술작품이 전반적인
상품 유통 속에 편입되어 단편화를 위한 단편화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탈 정전화(decanonization)현상입니다. 정전(正典)이라 함은 이제껏 고전이라 모셔져
왔고, 혹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물처럼 생각되어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이런 것들이 한낱 지배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거나 서구 중심주의, 엘리트주의, 남성 중심주의의
표상이라며 비판 합니다.
이러한, 탈정전화는 필연적으로 대중주의를 탄생시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위 고급문화
나 엘리트 주의를 거부하고 대중속에 위치하는 예술을 지향합니다. 그리하여 문학에서는 추리
소설, 공상과학소설, 여성문학등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도 코카콜라병이나, 슈퍼맨의 만화를
이용한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 높이 평가받게 됩니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우선 진보적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반성
하고, 한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을 거부합니다. 대중과 유리되는예술을 지양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를 선택합니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대단히 현실적
입니다. 현대에서의 다양하고 복잡한, 그리고 파편화된 삶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는 realism의 재현(再現)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재현 자체속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이 주는 기쁨을 거부하고
새로은 재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성들속에서 자연스럽게 포스트 모더니즘은 비 정치적, 비 역사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치는 관심밖에 있으며, 역사는 불연속 단절
로서의 역사만이 존재합니다.
모던적 사고의 해체와 포스트 모던의 태동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각각 시대정신으로서의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에 종속되는
하위개념입니다.
모더니티의 시대정신은 <이성적인 주체관><자연관의 변화><진보에의 믿음>입니다.
포스트 모더니티의 시대정신은 모더니티의 특성과 대칭 관계에 있고 따라서 하위 개념으로서
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심적 특징은 모더니티의 3가지 특징을 거부한다 는 점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규정할 때 다양한 입장가운데 한가지 공통점은 근대적인 <이성적 주체>라
는 개념을 더이상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의해서 주창된 근.현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 내지는 해체작업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성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프랑스 현대철학
자들,즉 후기구조주의 내지는 해체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적 흐름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처음 논의된 것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건축이론가들 사이에서 이며,미술
음악등의 쟝르로 확산되면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철학사상의 영역에 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 되는데, 그 논쟁의 불씨를 제 공한 프랑스 현대철학의 후기구조
주의 내지는 해체주의에서 미셸 푸코. 자끄 데리다. 쟝 프랑소아 리오따르. 등의 인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입니다.
미셸 푸코와 서양적 이성의 해부
푸코의 초기 저작인 <광기와 문명>에서 근.현대적 이성관에 의해서 당연시 되는 것이 인간의
'이성적 주체'이고 자유의지로써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주관에 의해 행
해지는 것으로 여기는-그래서 오늘날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은 역사를 들춰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푸코는 <이성>과 광기,미침으로 대표되는 <비이성>의 분리라고 하는 현상이 서양 의 경우 17
세기에 비로소 커다란 사회적 흐름으로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1656년과 1793년이 이성의 형성
사 라는 관점에서 볼때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그리고 18세기에는 비로소 이성과
비이성의 대 분리라는 유럽적 경험이 거의 완결되었다고 보았습니다.
1656년의 대감금시설인 종합병원의 유럽확장은 종합병원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이 감금시설이
노동의 규율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를 배경 으로 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법자들과 달리 정신병자들에게는 노동의 규칙을 실행하는것이 어렵다는 것이 드러
나기 시작하자 18세기에 들어와 1793년의 프랑스인 피넬이 비세뜨리 정신병원에서 인도주의적
인 의료개혁을 실천 하는등 인도주의적 개혁이 생겨나 범법자들과 미친 사람을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도주의적인 개혁은 처벌의 목표를 육체에서 정신으로 전이 시킨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푸코는 18세기에 문명화된,인간화된 정신병동이란 광인의 죄의식을 '치료'한 것이
아니라 '조직'했다고 보았습니다.
푸코는 고대나 중세에는 미친사람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
으나, 17~18세기에 정착된 '이성적 주체'라는 것은 정상인의 우월함과 정신병자의 열등함을
내면 화 하였고, 이를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주입시켰다고 보았습니다.
푸코의 후기 저작인 <감시와 처벌>에서도 비슷한 논리로 서구 역사에서 형벌제도를 설명하는데 세가지의 과정 밟았음을 말합니다. 처음 왕정시대의 '공개고문'에서 18세기의 계몽사상이 도입
되면서 '형벌제의 개혁'이 전유럽 차원에서 벌어지고 '사법적인 감금'이 그 뒤를 이었다는 것
입니다.
일제시대에 형무소는 인과응보적인 처벌관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면 인도주의적인 배경하의
오늘날 교도소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규범에 맞게 교화 시킨다고 볼 수있는데, 푸코는 겉
으로는 비폭압적이지만 은밀하게 강제로 교화 시키려는 데에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푸코는 서양의 근.현대 사회를 '유폐적 그물망'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서양의 근.현대
역사라는 것은 정신병자나 범법자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 조차도 길들이려하는 기제,장치를
갖고 있으이며, 감옥외에 학교,가정,회사등 모든 사회조직체 속에 사회의 지배계층의 가치규범
에 길들이는 작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는 투명한 '이성적 주체'라는 개념은 17~18세기의 특정 시기와 지역
에 나타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며, 그러한
투명하고 통일적인 의식을 가진 근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작업, 이것을 <해체작업>이라
부릅니다.
리오따르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조건
포스트 모던은 시간상으로 모던 이후가 아니라 모던 자체내에 내제한 어떤 문제의식의 발로라
고 보았습니다.모더니티가 배태한 여러가지 부작용,구조적 모순,문제점들을 전향적이고 창조적
으로 해결해 보는 것이 포스트 모던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현현 된다는 것이 리오따르의 주장
입니다.
리오따르는 포스트 모던이라는 것은 논리와 번화와 창조적인 실험들에 의해서 계속 추동되어
지는 과학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오는날 당연시 하는 행위양식이나 말 하는 방식등의 제한이나
한계 속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색다르고,이질적인 담론의
양식이나 실험등을 의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모더니즘의 특징인 <이성적 주체><자연관의 변화><역사의 진보>등 이야기 방식은 모던적 담론
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다른 담론들을 억압하는 <큰 이야기>라 는 것으로 포스트 모더
니즘 사상가들은 말하는데 리오따르는 이성적이지 못한 모든 양상이나 경험을 도덕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비난하면서 자기발언을 못하도록 억누르면 그러한 양상들이 탐구의 값어치가
없다는 식으로 사장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리오따르의 관점은 모던적 상황에서 우리가 이미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어떤것이 유일한 진리
이며 다른것은 열등하다는 흑백논리의 <큰 이야기>식의 모든 이야기 방식을 정당하지 못한것
으로 거부하고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권장되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관점입니다.
쟈끄 데리다의 해체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요한 방법론을 해체를 처음 주장한 사람이 데리다 인데,그는 서양의 현대
에 이르기 까지 사유를 철두철미하게 지배해온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될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비판 하였습니다. <현존의 형이상학>은 "존재의 의미를 현존 으로 이해한다"는 것, 즉
"객관 적인 세계는 따로 존재하고, 우리가 그 객관적이 세계를 우리의 언어와 개념채계를 사용
해서 정확하게 표상할 수 있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제논의 역설>에서 화살의 운동은 과거와 미래를 감안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듯이, 나의
위치에있어서도 현재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현존의 관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사실은 과거와 미래의 영향없이는 현존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서양의 언어관은 <문자언어>보다 <음성언어>를 더 우월한 것으로 간주해 왔는데, 이것은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음성언어>는 아주 명료하고 확실하게 '현존'하는 양태 로 표현하기 때문
입니다.
데리다는 전통적인 서양의 언어관이 '현존'이라는 관점에서 언어라는 매체를 파악 하기에 <현
존의 형이상학>에 침윤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언어가 결코 '현존'-지금 이 시점에서 존재하는
것- 하는 것으로써 특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존재있어서 과거와 미래가 '현존'의 관점에서 보면 부재(없음)라고 말할 수 있어도 현재
라고 하는 것이 과거와 미래에 의해 규정되는 것처럼, 언어에 있어서도 특정한 단어의 의미는
문맥의 다른 무수한 단어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를
'현존'의 문맥에서 구별화 시키려고 하는 서양의 전통적인 접근방식이 도저히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 데리다의 언어관입니다.그리고 그의 언어관이 낳은 결과를 보면 어떤 기호와 그
기호가 지칭하는 대상 사이에는 본질적인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호 일반이 근본적으로 임의적이라는 데리다의 주장에서 보면 세상의 모든것을 Text
라고 말할때 모든 것은 기호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호는 근본적으로 임의적이라는 것이고,
그러한 논리에서 생각하면 특정한 기호 체계가 다른 기호체계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근거가
없습니다. 때문에 현대인에게 있어서 '큰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학이라는 것도 특정한
기호체계에 지나지 않기에 다른 학문에 대해 배타적인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고 이러한 언어,
기호 체계의 각기 다른 다원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리오따르의 급진적 다원주의와
연결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수용과 비판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향적인 특징은 다원주의내지는 거의 무정부적인 다원주의이며 이것이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봉건적인 것과 모던적인 것이 중첩되어 있기에 모던적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서구상황과 다르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양상도 수입되 복잡한 상태이어서 그들의 문제
의식을 그대로 차용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판할 때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그것의 무정부적인 경향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부분은 인정되야 하지만 그대로 빌려 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문제 의식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인물들은 그 배경이 '후레드
릭 제임슨'이라는 미국의 맑스주의 비평가의 논리를 그대로 빌려온 것으로 특히 강내희 교수
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평할때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라는 한국 좌파들의 사회 변혁론
입장에서 어러한 논의를 제임슨의 표현을 빌려 '후기 자본주의 문화논리'라고 바판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3세계 후진국인 우리나라를 문화적으로 세뇌시키고 있고, 침윤,침략하려는 고등
수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식민지 국가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제임슨이 표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전혀 들어맞지 않습니다. 제임슨은 맑스주의자의 도식을 빌려 첫째 산업 자본주의에 들어맞는
것이 <리얼리즘>이고, 둘째 독점자본주의에 조응하는 것이 <모더니즘>이며, 셋째 다국적 자본
주의 에 조응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였는데, 강내희 교수의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라고 하는 방식은 세번째의 포스트 모더니즘과 연결되는 다국적 자본주의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독점 자본주의와 연결 됩니다. 그러므로 제임슨에게서 빌려온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채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문제가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큰 이야기'에 대한 비판과 가치는 궁극적 목표가 개인의 차원에서나
사회의 차원에서 우리의 건강성과 다원성을 어떻게 암암리에 억압해 왔는가 라고 하는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며 그래서 방법론적인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포스트모던이 근대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차이와 다원성에 대한 이해입니다. 근대의
존재론적 동일성에 대한 차이의 강조, 일원성에 대한 다원성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철학적
으로 특징지어지는 근거가 됩니다. 다원성이란 뿌리식물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얽혀 있으
면서 맺어가는 관계처럼 그렇게 다양하게 형성된 문화와 사회를 말합니다.
다원성은 보편적 인간 대신 개체로 존재하는 인간에게 각장에서 상응하는 존재의 원리와 자율
성을 허용합니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동일한 것, 전체에 얽매이지 않은 차이에 의미를 둠으로써
개인과 개체성, 부분 체계들의 존재 공간을 보장합니다. 후기구조주의에 의하면 차이를 부정
하고 동일성을 강조하는 사고는 거대 담론의 허구일 뿐입니다.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괴델의 불완전성
정의 등이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과학으로 제기됩니다.
이러한 근대과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학의 업적들은 결국 과학의 가치중립성과 절대적 객관
성을 의문시하게 됩니다. 여기에 패러다임 이론에 따라 근대 과학체계의 절대성을 비판한
토마스 쿤의 정상과학이론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근거한 오도된 포스트모던적 경향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사이비 과학이나 대체의술 등이 이런 사조에 편승하여 마치 대안과학인 듯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근거 없는 주장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카프라 등의 신과학 이론 이나 뉴에이지 운동등은 신학과 철학, 심지어는 문학과
예술 분야로까지 확산되면서 이론적 배경 없는 공허한 이성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이성 자체까지 거부하고 근거 없는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학문을 대치하려는 과격한 형태
로 주어집니다.
이들의 주장의 많은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을 자신의 천박한 주장을 보증하는 원리로 악용하면
서 진지함 대신 감정적 선언으로 지적작업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초래한 수많은 오해들
은 학문의 노력을 비웃음 거리고 만들었고, 이러한 사이비 논의들은 근대를 벗어나 새로운 사유
체계를 이루어야 할 사유의 고뇌를 희극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