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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전에서 정철을 다룰 때, 이발의 가문인 광산 이씨 종가를 찾아가서 이 의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집안에 시집 온 한 여성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여성 역시 이 주문의 내력을 알고 있었고, 주문에 대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오늘날까지도 이럴까"라는 감상을 말했다.
야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발의 방계 집안에 어쩌다가 정철의 방계 집안 출신 며느리가 시집왔는데, 집안 여자들이 '정철정철정철...' 거리며 고기를 다지는 것을 이 며느리도 멋모르고 따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직접 '아가, 너는 그거 따라하지 마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믿지 못할 이야기인 게, 당파가 다른 집안끼리 통혼하지 않는 것은 양반 사회에서 기본이었다. 하물며 철천지원수의 가문과 혼인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고기를 다지면서도 정철정철거릴 정도로 옛 원한을 잊지 못하면서 통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발의 조카로 윤선도가 있다. 이발이 윤선도의 할아버지 윤의중의 사위였으므로 윤선도에겐 고모부가 된다. 윤선도 문서에 나와 있듯이, 윤선도는 서인에 대해 큰 반감을 가졌는데 이는 이발과 관련된 가족사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동인 강경파의 영수 였지만 이이를 존경해 그의 문하를 자칭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이의 제자이자 서인 강경파인 조헌과 절친한 사이였다 수정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조헌이 이발에게 정여립과 절교할 것을 권했지만 무시 했기 때문에 옥중에서 조헌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후회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기축옥사가 일어나 이발의 집안이 화를 입자 조헌이 이발의 노모인 윤씨를 찾아가 뵙기도 했다. 이발의 집안이 언급되는 일이 있으면 조헌이 매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
구한말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독립운동가 이동휘의 부친이자 자신도 독립운동가였던 이발이다. 원래 이름은 이승교였으나 독립운동을 하기위해 이름을 바꿨다. 중국에서 독립운동 단체일을 하다가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걸 알게 되자, 경성으로 와서 같은 해 5월 1일에 무려 69세의 나이로 노인동맹단 경성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45살이면 할아버지라 불리고, 60살이면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던 사회분위기에서는 정말 충격적이었던 일[10][11]이었다. 본관이 달라서 조상관계는 아니다. 또한 이 항목의 이발은 물수변이 있는, 활발하다라고 할때의 발이지만, 이동휘의 부친 이발은 거기서 물수 부수자를 뺀, 출발하다라고 할때의 發이다.
4. 대중매체[편집]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공께서는 양쪽 다 옳다고 얼버무리시는데 세상에 둘다 옳은게 뭐가 있소이까?”라는 말과 처음 등장한다. 이 일이 있고 난 직후 이이는 정철과 이발을 불러 서로 손을 잡고 둘이 사고만 치지말라고 당부한다. 이후 정인홍과 함께 심의겸을 탄핵하려 했지만 소식을 듣고 온 이이, 성혼, 김우옹에 의해 탄핵이 취하되자 이이의 집에 찾아가서 “사람이 공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공께서 의견을 져버리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공이 의겸을 버린다면 동서를 막론하고 공을 따르게 되어 동서간에 화합을 이룰수 있을터인데, 공이 자꾸 의겸을 감싸려하면 정인홍도 그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라며 심의겸을 탄핵할 것을 설득한다. 이발의 말에 걱정이 피어난 이이는 결국 이발의 의견을 수락했다. 이후 1589년 정여립의 옥사가 터지면서 정철이 지휘하는 국문을 받고는 결국 사망하면서 등장 종료.
[1] 특히 이발의 집안은 이발의 8대조부터 이발에 이르기까지 9대가 꾸준히 과거 급제자를 내어 전국에서 알아주던 명문가였다. 참고로 과거 급제자는 200명에 불과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고등고시 합격자를 9대 연속 배출했다고 생각하면 된다.[2] 인사(人事)를 책임지는 요직.[3] 동인 세력을 달래기 위해 이이는 심의겸 하나를 탄핵하는걸로 서인과 동인이 화해한다면 그도 어쩔 수 없다고 이발의 설득 이후 심의겸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다.[4] 심의겸의 형수는 이발의 딸이었다.[5] 야사에서는 이이의 중재로 둘이 서로 호기롭게 술을 마셨는데 원체 술버릇이 개같았던 정철이 술김에 이발의 얼굴에 침을 뱉어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고 한다.[6] 조헌의 문집인 중봉집에서는 반대로 이발이 먼저 정철에게 잘못한 것으로 나온다. 술에 취한 이발이 정철의 수염을 뽑아버리자 이에 화가 난 정철이 이발의 얼굴에 침을 뱉어 버렸다고 한다.[7] 이 때문에 선조 수정실록의 기록에 북인의 일원으로 언급된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b_12212001_007[8] 전라도 사투리 억양과 약간 섞여서 "증철증철증철..."이라 들리기도 한다. 또는 그냥 "철철철철..."이라 중얼대기도 했다고.[9] 이발은 후에 남인의 거두가 되는 윤선도의 고모부이기도 해서 이발의 고문사는 윤선도로 하여금 정철과 서인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