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연(한국농아인야구소프트볼연맹 회장)
한 보름 전이었을까, 사무실 창밖으로 문득 내려다본 충주 대가미 공원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무들의 색깔이 달라지고 있었다. 어떤 미묘한 열기가 달무리처럼 나무를 숲을 감싸는 듯해서
그게 무언가 했는데, 아! 그 바로 며칠 후 나뭇가지에 꽃망울들이 떼거지로 매달리고 있었다.
작은 망울들은 조금씩 커지더니 하얀 꽃으로 개화하고 이내 완연한 벚꽃이 되었다.
올해는 봄꽃의 개화가 한 주일 늦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4월 중순이 가까운 요즘 예전 같으면 이미 저버렸을 벚꽃들이 아직도 공원에 남아 있다.
그 화사하게 만개했던 꽃잎들이 엊그제부터 바람에 우수수 날리기 시작했다.
문학적 감성으로 표현하자면 바람에 날리는 벚꽃닢들은 아주 작은 물고기들의 파닥이는 비늘 같다.
무수히 많은 팅커벨 요정들이 현란한 춤을 주면서 세상에 내리는 순간을 보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우리는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대가미 공원 숲의 나무들이 자기들 몸에 은은한 광채를 내고 미묘한 열기를 내뿜으면서
꽃망울을 내밀던 그 즈음, 거기서 가까운 또 다른 곳에서는 우람한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전기톱으로
무자비하게 잘려져서는 아파트 광장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참혹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연초였겠다. 아파트 현관 앞 게시판에 관리소의 안내문이 하나 붙어 있었다.
봄철을 맞아서 나무의 가지치기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벌목문제에 대해서
주민들의 찬반 의사를 묻는 투표를 한다고 부기되어 있다.
메타세콰이어 처리 문제가 처음 나온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스무 그루가 넘는 이 나무는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서 있는데 아마도 누군가가
우리 아파트의 담벼락이 이 나무의 뿌리로 인해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했던 모양이다.
길가 쪽 아파트 담벼락에 작은 균열이 두어 곳 보이는데 그 균열은 메타세콰이어가 자라면서
뿌리가 그 쪽으로 뻗어나가서 생겼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입바른 사람의 근거 없는 추측이었다.
나중에 토목 전문가를 불러서 문의했더니 담장에 보이는 작은 균열은 외부 작용에 의한 게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는 삼십년 동안 나무가 자라면서 땅속에 깊이 내린 뿌리가 주변의 지반을 견고하게 잡아주고 있어서
붕괴의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진단했다.
그랬던 것이 바로 이삼년 전인데 그 사이 새로 부임한 관리소장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다시 벌목하겠다고
주민 투표를 실시한단다. 동대표 회의에서 결재를 받은 사항이라면서 “주민들이 찬성하지 않으면 결국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했다.
동대표 회의가 이미 결정한 사항이라하니 어쩌겠는가, 그런 결정을 함부로 내린 사람들의 무모함을 탓하지만
결국 주민 투표는 실시가 되었다.
그리고 주민의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저 지난 주에 며칠 집을 비웠다가 돌아가니
아파트는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담벼락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그 나무들 외에도 메타세콰이어라는 이름의 모든 나무들은
그야말로 매사커를 당해 이제 아파트에는 나무라고 할 것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삼십 년 수명의 낡은 아파트를 그래도 안팎으로 보이는 모습을 낡음보다는 근엄한 역사로 치장해주면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던 메타세콰이어의 위용은 사라지고, 그 옆의 왜소한 다른 작은 나무들마저 가지가,
팔다리가 잘려나간 기괴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전에서 전봇대, 전선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작업시에 불편해하기 때문이란다.
Alas! 그리고 애재라.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상 필설로 이어갈 기력이 없어 보인다.
Ancient Forests라는 페이스북의 포스팅을 본다. 고대의 숲이라고 번역하는게 맞겠나,
오래된 나무들의 삶, 그 나무들의 군집된 모습들이 사진으로 자주 나타난다.
며칠 전에는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의 군락이 소개되었다.
수령 삼천 년의 그야말로 에인션트한 숲, 하늘의 구름에 닿을 듯한,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길게 깍지 끼어서 둥글게 둘러싸고 보여주는 장엄한 메타세콰이어의 모습이다.
나무의 수명은 과연 어디까지고 어느 만큼인가.
이미 삼천 년을 살아온 요세미티의 메타세콰이어는 어쩌면 또 다른 삼천 년 동안 이 세상에 존재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삼십 년을 함께 성장하고 살아온 그 친구 나무를, 고귀한 생명을 하루 아침에 그냥 베어서
없애 버렸다.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에 잘려나간 메타세콰이어의 둥치에는 지나간 삼십 년의 나이태가 선명하게
나타나 보인다. 올해도 이 의젓하고 장중한 친구는 봄을 감지하고 대가미의 벚꽃나무들처럼 뿌리로 물을
빨아올리고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섞어 광합성해서 푸른 가지를 새로 피워낼 준비를 하던 참이었을 것이다.
애재라, 통재라! 메티세콰이어여, 세상의 불운한 모든 나무들이여!
우리 인간의 무모함과 무례함과 후안무치함을 용서해주시게나.
나무에게도 천국이 있다면 부디 그곳으로 가서 요세미티의 메타세콰이어보다 더 오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게나.
첫댓글 오히려 그는 삼십년 동안 나무가 자라면서 땅속에 깊이 내린 뿌리가 주변의 지반을 견고하게 잡아주고 있어서 붕괴의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 의젓하고 장중한 친구들은 대량학살을 당해 한 문인의 통렬한 사과와 위로를 받습니다. 이 봄에 또다시 반복되는 우리 인간의 무모함과 무례함, 그리고 용서받아야 할 후안무치함!